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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순으로 만든 김치와 간고등어를 넣고 지진 고구마순 음식.
 고구마순으로 만든 김치와 간고등어를 넣고 지진 고구마순 음식.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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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코앞에 두고서 비 내리는 날이 잦다. 가을장마인가? 비 그치면 선선해지겠거니 하는데 더위는 장난이 아니고, 또 금세 비가 이어진다. 구질구질 자주 내리는 비가 좀 지겹다. 지금 기세라면 무더위도 쉬이 물러가지 않을 듯싶다.

이른 아침, 갑자기 우두둑 우두둑 비가 쏟아진다. 소낙비다. 그래도 잠깐 퍼붓다 그쳐 다행이다. 먹구름이 지난 자리에 햇살과 함께 파란 하늘이 드러난다. 소나기 삼형제라던데 형님소나기만 다녀가려는 모양이다.

늦잠 많은 아내는 늦게까지 책을 보더니만 아직도 잠결이다. 이불을 똘똘 말아 자는 폼이 비몽사몽이다.

요즘 작물들은 정말 무성하다. 잔뜩 물기 머금은 땅에서 제 세상 만난 듯, 작물들도 키를 훌쩍 키웠다.

들깨와 토란은 키가 사람 가슴 높이까지 자랐다. 좀 드물게 심었는데도 빈틈없이 자리를 메웠다. 무성한 잎의 땅콩도 소리 없이 땅 속에서 열매를 키우는 것 같다. 자랄 만큼 자란 콩과 팥은 무거운 잎을 견디지 못해 허리를 숙였다. 한창 꽃을 피우는 시기에 쓰러졌으니 열매가 제대로 달릴지 모르겠다.

고추밭을 보면 속이 상하다. 공들여 키운 보람도 없이 시듦병에 말라죽고 탄저병에 상품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 수확량이 예년에 비해 확 줄었다. 앞으로 건질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아내는 붉은 고추 수확은 포기한 것 같다.

김칫거리가 너무 비싸다? 그럼 고구마순으로 김치를….

채마밭에 뿌린 김장무가 싹을 내밀었다. 너무 배게 자라 솎아주고 있는데, 아내가 소쿠리를 들고 나왔다.

"당신, 왜 나왔어? 곤하게 자더니만!"
"난 만날 잠꾸러기인줄 알아요? 고구마순 따려고요."
"고구마순을 따서 뭐 할 건데!"
"김치도 담그고, 생선도 지져먹으면 좋잖아요! 요즘 김칫거리도 귀한데…."

껍질을 벗겨 끓는 물에 데친 고무마순. 무공해 식재료라 귀하게 여겨진다.
 껍질을 벗겨 끓는 물에 데친 고무마순. 무공해 식재료라 귀하게 여겨진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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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씨가 계속되어 김칫거리가 금값이라고 한다. 우린 여름 들어 열무 한 포기 심지 못했다. 궂은 날이 많고, 날씨도 따갑고 해서 그냥 지나쳤다. 예년에는 빈 밭에 열무며 얼갈이를 심어 김치가 떨어지지 않았는데, 올 여름엔 많이 아쉽다. 작년 김장 때 담근 묵은지를 오래 먹다보니 좀 식상하다.

고구마순김치라? 아내는 지금이 고구마순으로 김치를 담가먹으면 딱 좋을 거라며 일을 벌인다.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고구마밭으로 눈을 돌렸다. 우리 텃밭의 주력작물인 고구마밭이 그야말로 무성하다. 고랑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고구마줄기가 힘차게 뻗었다. 발 디딜 틈이 없이 빼곡하게 자랐다. 순을 걷고 고구마를 캐면 밑이 얼마나 들었을까?

고구마는 다른 작물에 비해 가꾸기가 쉬운 편이다. 특히, 고추농사에 비하면 일도 아니다.

무성하게 자란 우리 집 고구마밭. 밑이 얼마나 들었을까 기대가 된다.
 무성하게 자란 우리 집 고구마밭. 밑이 얼마나 들었을까 기대가 된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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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고구마는 고랑을 만들어 비닐을 씌워 순을 심는다. 심을 때 물주기가 중요하다. 순을 꽃은 후 몸살을 앓아 기운을 차리기까지는 며칠이 걸린다. 그러다 뿌리가 내리면 줄기를 뻗기 시작한다.

이때 밭고랑에 자란 잡초를 제압해야 풀을 이기고 자란다. 두어 차례 고랑에 난 잡초를 호미로 긁어주고, 줄기가 밭고랑을 덮어버리면 풀 자라는 것은 겁나지 않는다. 그래도 잡초가 군데군데 고개를 쳐들고 자라지만 고구마 밑드는 데는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고구마가 자랄 때 고라니 녀석들이 순을 잘라먹어 해코지를 하기도 한다. 어린 순을 망가트릴 때는 속이 상하지만, 어느 정도 자라면 고라니가 야금야금 먹는 것쯤은 상관없이 큰다.

아내가 잽싼 손놀림으로 많은 양의 고구마순을 따낸다.

"여보, 우리 고구마순이야말로 무공해지?"
"그럼, 농약 한 방울 치지 않아도 잘만 자라났지!"

고랑에 난 풀을 잡느라 많은 양을 재배하는 농가에서는 제초제에 의존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풀을 호미로 긁어 제압했다. 특별히 거름을 하지 않아도 잘만 자랐다.

아내가 한 아름이 훨씬 넘는 고구마순을 싸서 차에 싣는다.

"당신, 그 많은 양을 어떻게 할 셈인데?"
"아는 사람이랑 나눠먹고, 같이 껍질 벗겨 가져올 게요."

사실, 고구마순 요리는 좀 번거롭다. 껍질을 하나하나 벗겨야하는 수고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많은 양을 벗기기 데는 지루하기 짝이 없다. 시장 노점에서 할머니들이 고구마순 껍질을 까서 파는데, 그 수고를 생각하면 비싸다는 말을 아껴야할 성싶다.

매콤한 맛과 달큼한 맛의 고구마순 음식

아내가 볼일을 보고 집에 도착했다. 말끔하게 손질해온 고구마순이 수월찮다. 잘 아는 분과 나누고 껍질을 죄다 벗겨왔다. 텃밭에서 부추도 베고 대파도 뽑아온다. 붉은 고추, 풋고추도 금세 사냥한다. 아내는 고구마순 요리에 들어갈 재료를 밭에서 구한다.

이것저것을 챙긴 아내가 본격적으로 김치를 담글 모양이다. 물끄러미 쳐다보는데 아내의 손놀림이 민첩하다.

고구마순 김치에 들어갈 재료. 우리 텃밭에서 거둔 재료라서 소중하다.
 고구마순 김치에 들어갈 재료. 우리 텃밭에서 거둔 재료라서 소중하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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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은 양념을 하여 버무린다. 액젓이 들어가고, 식은 밥을 갈아넣어 열무김치 담그듯이 담는다.
 갖은 양념을 하여 버무린다. 액젓이 들어가고, 식은 밥을 갈아넣어 열무김치 담그듯이 담는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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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고구마순김치.
 완성된 고구마순김치.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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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팔팔 끓는 물에 고구마순을 살짝 데친다. 푹 삶아지면 물러져 맛이 떨어진다며 주의를 한다. 데친 것을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어 담가놓는다. 이제는 재료준비를 한다. 식은 밥에 통마늘을 믹서에 넣고 간다. 깨끗이 다듬은 부추, 양파, 파도 썬다. 붉은 고추, 풋고추도 송송 썰어 준비한다.

모든 재료를 데친 고구마순과 함께 섞어 고춧가루 넣고 비빌 차례다. 여기에 액젓이 들어가고, 고소한 들기름 몇 방울을 떨어뜨린다.

아내의 손맛이 가미된 고구마순김치가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다. 고춧가루 묻은 손으로 김치를 돌돌 말아 입에 넣어준다.

"맛이 어때? 간 맞아요?"
"좀 싱거운 것 같은데…. 그런데 매콤하고 아삭아삭한 맛이 끝내주는데!"

아내는 굵은 소금을 살짝 뿌려 맛을 본다. 'OK'라며 엄지손가락 치켜든다. 자신도 만족한 표정을 짓는다.

"간고등어 넣고 고구마순 지져보라고 했죠?"

 자반고등어를 넣어 지진 고구마순 음식.
 자반고등어를 넣어 지진 고구마순 음식.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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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고구마순에 자반고등어를 넣고 지져볼 요량 같다. 된장을 약간 풀어 갖은 양념으로 무쳐낸 고구마순에 애호박과 고등어를 올려놓고 고춧가루를 술술 뿌린다. 한소끔 끓여내니 색다른 맛의 음식이 탄생한다.

고구마순은 식이섬유가 많이 함유된 음식이다. 고구마순김치는 아삭아삭 씹히는 맛과 달큼한 맛이 그만이다. 간고등어를 넣어 지져낸 고구마순은 감칠맛과 함께 부드럽게 넘어간다.

고구마순으로 만든 음식이 계속된 비와 늦더위로 잃어버린 입맛을 찾아주는 것 같다.


태그:#고구마순김치, #고구마, #고구마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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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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