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1년 민주주의를 외치며 분신한 고 박승희씨 추모비가 제작 8개월이 지난 가운데 모교인 정명여고 측에서 종교적 이유를 들어 반대해 추모위와 시민단체가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박승희 열사 흉상건립추진위원회와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23일 정명여고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명여고는 박승희 열사 추모비건립 약속을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서창호 박승희 열사 흉상건립추진위원회 위원장은 "열사의 후배들인 정명여고 학생들은 흉상 제작 소식에 쌈짓돈을 마련하여 함께 하였다"라며 "숭고한 정신을 잇고자 학생, 교직원, 동문, 시민이 함께하는 모습은 지역사회의 아름다운 장면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서 위원장은 "정명여고 교장은 아름답던 정명인의 모습에 손바닥 뒤집듯 하는 행동으로 함께했던 많은 이들의 근심을 일으키고 있다"라며 "학생과 교직원, 동문까지 함께 추진한 박승희 열사의 흉상 건립 사업을 완성된 단계에서 입장을 번복하고 일체의 책임도 지지 않는 것은 교장의 올바른 모습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정명90동창회 회장 변주현은 "이사회의 반대는 없을 것이라는 두세 번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다"라며 "정명여고 교장은 자신의 언행에 책임을 지고 약속을 즉각 이행하라"고 말했다.
목포신안민중연대 윤소하 대표는 "재단 이사회의 결정사항이라는 명분 뒤에 앉아 지금까지의 구두약속을 파기하고 실행조차 하지 않는 행위는 즉각 중단하고, 정명여고 교장으로서 이사회의 이사로서의 책임 있는 자세로 사태 해결에 나서야 한다"라고 말했다.
동문인 전민재는 "옛 당나라의 사상가인 한유(韓愈)는 '사설(師說)'에서 스승이란 인간의 도리를 전하고, 학업과 생업에 종사하는 법을 가르쳐주며, 의심나는 문제를 풀어주는 사람이다"라며 "교장은 스승 본연의 모습에서 결자해지하기를 다시 한번 바란다"라고 요구했다.
광주전남진보연대 민점기 상임대표는 "교장의 비교육적인 행동에 수수방관하지 않고 목포시민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겠다"라고 강조했다.
정명여고 김순 교장은 "순수하게 처음에 일을 시작했지만 중간에 가다 보니까 이게 도저히 교육적으로, 또 교리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판단이 섰다"라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 열사의 죽음이 아이들에게 자칫 자살의 미화로 비췰 우려가 있다"라고 대답했다.
또한 정명여고 목사는 "기독교재단 소속 학교로서 교리에도 맞지 않다"라며 "재단 이사회와 교단 총회에서도 부결되었다"라고 밝혔다.
이에 박승희 정신계승 사업회 정희곤 회장은 "국가에서 인정한 순결한 희생을 일반 자살과 같은 걸로 비교하는 건 말이 안 된다"라며 "예수님도 많은 사람을 위해 순교하셨다"라고 답했다.
박승희 열사는 1991년 4월 29일 고 강경대 열사 추모 및 노태우 정권퇴진 결의대회 중 분신항거 했으며, 이후 2005년 9월 30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되어 명예 회복을 했다.
현재 박승희 열사를 기념하는 추모비(흉상)는 경기도의 한 가마터에 임시 보관되어 있으며, 유족들은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하지 않은 상태이다.
한편, 학교 측은 9월에 있을 이사회에 해당 안건을 다시 회의에 올리기로 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목포21 인터넷판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