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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아이잘론 말리 곰즈(30)의 석방을 위해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방북한다. 미국 외교정치시사 잡지인 <포린 폴리시>는 23일(현지시각) 웹사이트를 통해 익명의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 카터 전 대통령이 수일 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북한 방문을 결정했다고 단독 보도했다(<포린 폴리시> 화면 갈무리).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아이잘론 말리 곰즈(30)의 석방을 위해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방북한다. 미국 외교정치시사 잡지인 <포린 폴리시>는 23일(현지시각) 웹사이트를 통해 익명의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 카터 전 대통령이 수일 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북한 방문을 결정했다고 단독 보도했다(<포린 폴리시> 화면 갈무리).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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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니 (주한 미국)대사는 공식적인 명령이 떨어질 때를 기다리지도 않았다. 당시 남한에 거주하고 있던 세 명의 손자, 손녀에게 3일 후인 일요일까지 귀국하라고 일렀던 것이다." (돈 오버도퍼, <두 개의 한국> 477쪽)

1994년 6월 1차 북핵위기 당시 미국은 북한 영변 핵시설 폭격을 검토하고 있었다. 레이니 대사가 손주들에게 미국으로 돌아가라고 했던 6월 16일,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평양에서 김일성 주석을 만났다. 김 주석은 그에게 미국 정부가 유엔 제재를 중단하게 하고 경수로 지원에 협력할 경우, 핵개발계획을 일시동결하고 국제사찰단원과 감시장비들을 원 위치에 복귀시키겠다고 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이를 백악관에 알렸고, 이어 동행하고 있던 <CNN>의 마이크 치노이 기자와 생방송 인터뷰를 했다. 이는 그해 10월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로 연결됐다.

카터 전 대통령은 또 김 주석에게 김영삼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주선해 이를 성사시켰다.

1994년 1차 방북, 한반도 전쟁위기 종식에 결정적 기여

주한 미군의 장성들이 "속으로는 모두 전쟁이 임박했음을 예감하고 있었다"는 '전쟁위기 상황'이 종식되는 장면이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이와 함께 김 주석의 후계자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 면담을 요청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두 개의 한국> 481쪽). 당시 북한은 사실상 김일성-김정일 공동정권으로 운영되고 있었지만, 김 위원장은 중국을 제외한 외국인사들에게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지난 1월 불법입국 혐의로 북한에 억류돼 8년의 노동교화형을 받은 미국인 아이잘론 말린 곰즈를 석방시키기 위해, 카터 전 대통령이 16년 만에 다시 평양을 방문하게 됨에 따라 김 위원장과 면담이 이뤄질지 여부가 주목된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카터 전 대통령이 부친인 김일성 주석을 만난 미국의 전직 대통령이라는 예우와 함께 북미관계, 남북관계가 극히 경색돼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입장을 대외적으로 알릴 수 있는 무대라는 점에서 그를 만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김 위원장이 지난해 8월 미국 여기자 2명 석방문제로 방북한 클린턴 전 대통령을 만났다는 점도 그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미국 정부는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을 공식적으로 확인하지 않고 있다. 일단 그의 방북 목적이 곰즈의 석방인 만큼 곰즈의 신병이 확보될 때까지는 방북 자체를 공식화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그의 방북이 '제재 국면'인 대북기조의 변화로 해석되는 것을 막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미 정부인사들은 그의 방북이 개인 차원의 방북임을 강조하고 있다.

1994년 방북해 김일성 주석과 만난 카터 전 미국 대통령.
 1994년 방북해 김일성 주석과 만난 카터 전 미국 대통령.
ⓒ 카터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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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 전 대통령의 이번 방북은 1994년의 1차 방북과는 여러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당시에도 미국은 카터 개인 차원의 방북이라면서도, 딕 크리스텐스 국무부 한반도 부국장을 동행시켰다. 또 평양 방문 앞뒤로 서울을 방문해 김영삼 정부와 상의했다.

이번에는 그런 징후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는 미국 행정부 관료 동행 없이 부인 로절린과 카터센터 대표 겸 최고경영자인 존 할드만 박사 등과 함께 바로 평양으로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이 지난해 8월의 클린턴 전 대통령처럼 '석방'에만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은 이유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자신이 한정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김 위원장과 사진 촬영을 할 때도 경직된 표정을 지었었다.

물론 카터 전 대통령은 클린턴 전 대통령과 다를 수 있다. 그는 현직에 있을 때는 이스라엘과 이집트를 중재해 캠프 데이비드 회담을 성사시켰고, 재선에 실패한 뒤에도 중동, 수단, 유고슬라비아 등에서 평화중재자로 활동하면서 2002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인물이다. 1994년에도 나름의 중재안을 갖고 방북했고, 백악관을 놀라게 하면서 CNN 인터뷰를 강행해 위기 수습에 큰 역할을 했었다.

미국 정부, 개인 차원 방북 강조...북한과 카터는 적극적

이번에도 그는 상당히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방북은 그간 50회 넘게 방북하는 등 북한의 신뢰를 얻고 있는 조지아대 박한식 교수를 통해 카터 전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추진해 성사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곰즈의 석방이라는 인도주의적 접근을 넘어서, 1차 방북 때처럼 한반도 위기상황을 해소하는 데 기여하겠다는 구상이 엿보인다.

북한도 천안함 사건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장 성명 이후 6자회담을 강조하면서 적극적으로 '출구전략'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도 성과를 기대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북한은 지난 7월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이례적으로 곰즈의 자살 기도 소식을 전했다. "구원대책을 세워주지 않고 있는 미국 정부에 대한 실망감에 자살을 기도했으며, 현재 구급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으로, 사실상 미국에 고위급 인사 파견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1994년 방북 때도 카터 전 대통령이 홈런을 칠 것이라는 예상은 거의 없었다. 카터 전 대통령은 김일성 주석에 대해 "그와 잘 통했다"고 했었다. 16년 전 불발됐던, 그의 아들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태그:#지미 카터, #김정일, #1994년, #1차 북핵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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