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 다리를 건너서 휴가 복귀를 하면 가슴이 서늘해집니다.
▲ 신남에서 양구로 가는 다리 이 다리를 건너서 휴가 복귀를 하면 가슴이 서늘해집니다.
ⓒ 정재현

관련사진보기


사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에게 다시 그 부대의 소재지를 다시 찾는다고 하면 반응은 2가지로 나온다. 그 쪽 방향에는 오줌도 누지 않겠다거나 아련한 옛 추억에 잠기거나. 나는 개인적으로 오줌을 누지 않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 곳에 눈길이나 발길을 주고 싶진 않다. 이유는 푸른색이 가장 슬픈 색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여하간 나에게 군인의 옷 색깔은 슬픈 색으로만 다가온다. 애틋한 연인과의 이별, 세상과의 단절, 버텨야만 했던 시간 등등. 그런 '슬픔의 색'을 다시 보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거기를 가자고 한다. 정확하게 일치한다. 1988년 11월부터 1월까지 지냈던 강원도 양구군 남면에 있는 광치계곡에 간다고 공지가 올랐다. 이 지역에 내가 신병교육을 받았더 노도부대(2사단)가 있다.

요즘 내가 빠진 네이버의 걷기클럽 '민주화의 터'라는 곳에 번개 공지가 올랐다. 너무 좋다는 평가도 추천도 가득이다. 사실 나는 신병교육을 그곳에서 받았고, 대부분의 군 생활은 인제군 서화면 천도리에서 포병으로 지냈다. 주변의 추천과 일주일의 찌뿌듯함을 뒤로하고 가기로 했다.

준비에 들어간다. 일단 전북 위도에서 올라온 10개월 정도 묵은 무김치를 담았다. 비교적 누룩향이 강한 충북 진천 덕산양조장 덕산막걸리 3개를 얼렸다. 마트에 가면 만날 수 있다. 나는 요즘 누룩향이 풍기는 덕산막걸리나 산성막걸리가 좋다. 산에 오르거나 오래 걸을 때는 얼린 막걸리를 수건이나 신문으로 1차 포장하면 잘 녹지 않는다. 먹기 직전에 30분 정도만 실온에 내놓으면 바로 해동된다. 그렇게 포장하면 얼음을 살짝 띄운 시원한 생막걸리가 탄생한다.

김치냉장고에서 묵은 김치를 꺼낸다. 돼지고기 한 근을 볶는다. 둥글래와 볶은 옥수수 말린 것을 넣고 끓인 물을 냉동실에 넣어둔다. 1.5리터 2개 정도면 충분하다. 아니 과하다. 이웃도 함께 먹기 위해 준비한다.

싸늘한 휴가 복귀

옹녀가 맞는 거래요? 옥녀가 맞는 거래요?
▲ 옹녀폭포 옹녀가 맞는 거래요? 옥녀가 맞는 거래요?
ⓒ 정재현

관련사진보기


지난 14일 오전, 일행과 만났다. 과거의 휴가 복귀할 때 느꼈던 싸늘한 기운이 살포시 온다. 신남을 지나 양구 초입에 가면 소양호를 만난다.

광치계곡이라. 이제 생각해보니 생각이 난다. 신병교육대 시절 행군을 해서 넘었던 고갯길 이름이 광치령이다.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8시 50분에 출발하는 양구행 첫차를 타고 양구군 남면에서 내렸다. 광치계곡에 가려면 남면에서 내려야 한다. 12시가 다되어간다. 남면에서 택시를 부르려다 트럭 주인께 부탁했다. 결국 2.5톤 트럭 적재함을 얻어 타고 광치계곡 입구로 향한다. 2만 원을 드렸다.

시간이 애매하다. 일단 점심을 시작하는데 비가 쏟아진다. 비가 오는 상황에서도 밥을 꿀맛이다. 계곡 안이라 온도도 낮다. 비가와도 좋다. 이제 계곡을 오른다. 여름 계곡이 좋은 것은 역시 온도 때문이리라. 차서 시원하다. 이곳은 갈수기에도 물이 많다고 소문난 곳이다.

한 시간여를 올랐다. 바위에 대한 설명이 눈에 띈다. 강쇠바위란다. 그럼 옹녀 바위는? 양구군의 설명에 살을 붙이면 이곳의 전설은 이렇다.

옹녀와 변강쇠

오랫동안 숨겨진 계곡답다
▲ 광치계곡안내도 오랫동안 숨겨진 계곡답다
ⓒ 정재현

관련사진보기


옹녀와 변강쇠가 금강산으로 가던 중이었다. 광치계속에서 산신령이 화를 낼만큼 질펀한 정분을 나눴다. 이를 시기한 산신령이 크게 화를 내며 지팡이로 내리쳤다. 결국 옹녀는 그 자리에 엉덩이를 하늘로 향한 채 엎어졌고, 바위로 변했다.

연인 강쇠는 그곳에서 좀 아래쪽에 남근 모양의 바위로 자리 잡았다. 지금 옹녀의 엉덩이 사이로 폭포가 생겼다. 그리고 엉덩이를 타고 내려온 폭포수는 50m 아래 남근 모양의 강쇠바위를 돌아서 하류가 내려간다.

보통 대부분의 능선길에는 잡목이 우거지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대암산은 다르다. 낙락장송이 우리를 호위한다. 후곡약수터의 약수는 오색약수와 비슷하다. 먹기에는 불편한 김빠진 사이다 같다. 결국 우리 집은 밥물로 사용한다. 어디서 얼핏 그렇게 사용하면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양구군의 친절함도 눈에 띈다. 계곡을 걷다보면 들짐승을 마주한다. 절대로 놀라지 마시라. 조형물이다. 조잡하긴 하지만 귀엽다. 물을 건널 때면 나무로 만든 다리가 친절함을 더한다. 물푸레나무니 떡갈나무니 이름표가 걸린 수목도 좋다. 이렇게 안내판이 잘 놓여 있어 길을 찾기도 편하다.  

솔봉에 오르면 친절함의 과잉이 우리를 맞이한다. 억지춘향으로 세워진 듯한 목제 팔각정이다. 목조로 된 어울리지 않지만 편안한 곳이다. 그래도 다시 가라고 하면 나는 이곳을 찾을 것이다.


태그:#양구, #광치계곡, #군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월간 말, 부천시민신문, 한겨레리빙, 부천시의원을 거쳐 지금은 마을활동가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