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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환경운동연합 소속 활동가들이 경기도 여주군 이포보 공사현장에서 농성을 시작한 후 두 번째 보름달이 차오르고 있다. 유유히 흐르던 남한강 한 가운데에 하늘의 닿겠다는 '욕망의 바벨탑'처럼 우뚝 솟은 '이포 바벨탑'에 이들이 오른 지 한 달이 지난 것.

 

지난달 22일 시작한 농성이 벌써 32일째, '법정홍수기 4대강 공사를 중단', '여론 수렴위한 정부기구 구성', '국회 검증기구 구성' 등을 요구하며 시작한 농성이 이렇게 길어질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그것은 농성자들과 환경단체도 마찬가지였다.

 

농성자들은 애초 7~14일 정도 농성을 생각하고 이에 맞춰 식량과 물품을 준비해 올라갔다. 21일 농성상황실에서 만난 환경련의 한 관계자는 "나도 이렇게 길게 갈 줄 몰랐다"라며 "내려오고 싶어도 성과가 없으니 내려올 수가 없다"라고 한탄하기도 했다.

 

김종남 환경련 사무총장은 지난달 28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농성을 끝낼 수 있는 최소한의 성과를 "정부의 대화 의지"라고 밝힌 바 있다. (관련기사 : "대통령 나서지 않으면 내려올 수 없다") 김 총장은 이 자리에서 "4대강 사업 중단 및 국민대화기구와 국회 검증기구 구성 요구는 새삼스런 게 아니어서 대통령이 응답할 것"이라며 대통령에게 남아있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는 8․8 개각에서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을 유임시키며 변함없는 사업 강행 의지를 표했다. 한나라당은 국회에서 '4대강 사업 검증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자는 야당의 요구에 묵묵부답 했고, 그러는 동안 현장의 포클레인은 쉼 없이 움직였다.

 

농성 한 달 동안 정부와 여당의 고위인사가 농성장을 찾아 온 것은 7.28 보궐선거가 끝난 직후 방문한 원희룡 한나라당 사무총장뿐이었다. 여기에 여주군은 주민들을 앞세워 환경단체와 대립시키면서 '민-민갈등'을 일으켰고 경찰은 양측의 충돌을 수수방관했다.

 

소통할 것을 부르짖는 사람들에 '무반응, 무대응'으로 일관하면서 이해관계에 있는 주민들을 내세워 농성의 본질을 흐리는 작업이 지난 한 달 간 계속됐다. '명박산성'과 '세종시 수정안'으로 상징되는 이 대통령의 불통의 정치가 '이포 바벨탑'에서 또 다시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농성자 가운데 한 명인 장동빈 수원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이명박 대통령은 광우병 사태와 관련한 전국민적인 저항에 직면했을 때, 진실과 소통을 요구하는 국민을 상대로 명박산성을 쌓았다"라며 "4대강을 살린다면서 전 국토를 헤집고, 초대형 콘크리트 장벽을 만들어 국민의 소리는 물론, 뭇 생명의 소리마저도 거부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장 국장의 목소리는 농성 한 달째를 맞은 21일 오후 이포보 인근에서 열린 농성자들을 응원하는 촛불집회에서 나왔다. 농성자들은 무전기 베터리 전달이 끊긴 상황에서 수동전등을 개조한 자가발전기로 휴대전화를 충전해 목소리를 전달했다. 이날 집회에는 환경단체 회원들을 비롯해 시민 300여 명이 참석했다.

 

'불통의 정부'와 맞서 싸우는 사람들

 

 

33도를 웃도는 기온에 폭염주의보까지 내려졌지만 이포보 인근은 농성자들을 응원하기 위해 찾아온 시민들로 북적였다. 시민들은 각자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국회 4대강 특위 구성을 촉구하는 엽서를 작성하고 이포보이 내다보이는 이포대교에 올라 농성자들을 응원하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농성상황실이 차려진 장승공원으로 돌아온 시민들은 촛불을 켰다. 멀리 이포보 위에도 세 개의 촛불이 켜졌다. 그리고 시민들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농성자들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다.

 

염형철 처장은 "며칠 전 전화를 통해 훌쩍이는 딸아이에게 '사람은 자기에게 중요한 것을 위해 많은 것을 쏟아 부어야 할 때가 있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며 "민족의 젖줄인 4대강을 지키는데 앞장서고 있으니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박평수 고양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은 "댐은 물을 가둬두는 구조물의 뜻도 있지만, 영어로는 짐승이라는 뜻도 함께 있다"며 "한마디로 짐승 같은 4대강 사업을 중단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동빈 국장도 "이포바벨탑은 3일째 3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이 지속되고 있다"며 "맨 몸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뜨거운 열기가 우리의 투쟁 열정을 더욱 달구고 있다"고 농성 의지를 내비쳤다.

 

촛불을 참가자들의 격려도 이어졌다. 유원일 창조한국당 의원은 "이 나라 대통령은 국민의 소리를 들을 생각을 안 하는 것 보면 대통령 귀가 이상한가보다"라며 "뭔가 떳떳하지 않으니 대화조차 안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도 "6.2 지방선거를 통한 국민의 요구를 이명박 정부는 귀 닫고 무시하고 있다"며 "이포보 위의 세명의 활동가가 내려올 수 있도록 야당이 긴급하게 논의하고 고민하겠다"라고 말했다.

 

천정배 민주당 의원은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의 '장외투쟁'을 제시했다. 천 의원은 "야당은 이 세 명의 동지들에게 그들의 목숨의 무게만큼 빚을 졌다"라며 "이 세 명이 이제 그만 이포보에서 내려올 수 있도록, 민주당이, 야당이 거리로 나서자. 다시 광화문에서 서울광장에서 촛불을 들어 동지들을 구출하자"고 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야당의원들의 의지와는 다르게 국회에서 '4대강 사업 검증 특위'를 구성하거나 야당의 장외투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민주당은 4대강 사업의 대안이라는 '진짜 강살리기' 정책 발표를 해 놓고도 당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로 인해 후속 활동을 전혀 도모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의회 절대 다수석을 차지하고 있는 한나라당이 야당의 요구에 쉽게 움직일 이 만무하다.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4대강 사업 찬성여론이 처음으로 반대여론을 앞지르자 한나라당은 더욱 견고한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다. (찬성 43.3%, 반대 42.7%, 리얼미터 10일 발표, 성인남녀 700명 대상, 95%신뢰 수준, 오차범위 ±3.7%)

 

이와 관련 이시재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이포보 농성으로 촉발된 각계각층의 투쟁이 국민적으로 확산되는 것에 희망을 걸었다.

 

이 대표는 촛불집회 발언에서 "하루속히 농성자들을 내려오게 하고 싶은데, 요구안 중 어느 것도 달성되지 못해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며 "그러나 이들의 농성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의 일으킨 불씨를 통해 여기저기서 4대강 사업 반대 투쟁이 일고 있고 이제 전 국민이 함께 싸우는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한편, 최근 농성자들은 법원의 퇴거 명령과 불이행시 하루 900만 원이라는 벌금의 압박까지 받기 시작했다. 수원지법 여주지원 민사부(재판장 이범균 부장판사)는 지난 20일 이포보 하청업체 시공사 측에서 낸 공사장퇴거 및 공사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법원은 농성자들이 퇴거하지 않을 경우 1인당 하루에 300만 원씩 공사업체에 지급하도록 결정했다.


태그:#4대강, #이포보, #명박산성, #이명박, #고공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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