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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아이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그림과 이야기로 쉽게 전하기 위해 오오노세츠꼬씨가 그린 3.1운동의 역사
▲ 오오노세츠꼬 일본의 아이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그림과 이야기로 쉽게 전하기 위해 오오노세츠꼬씨가 그린 3.1운동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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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악명 높았던 아소탄광(전 일본총리가문의 탄광) 인근에 살면서 노조사무국장으로 일하셨고, 노동현장에서 차별과 억압을 받으며 일하던 조선인들의 모습을 직접 목격하셨던 오오노세츠코씨. 지금은 83세의 할머니이지만 일제시대 당시 조선인들에게 행해졌던 강제노동의 실상을 알리고 지금도 계속되는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을 깨기 위해 '강제연행을 생각하는 모임'을 만들어 대표로 일하고 있다.

오오노세츠꼬씨는 강제노동의 실상과 재일동포의 차별의식을 깨뜨리기 위해 그림과 이야기를 통해 일본의 초중등학교에 다니며 올바른 역사를 전하고 아시아의 평화와 사람들과의 우호를 위해 공연(그림연극-紙芝居)을 해 왔다.

그러나 일본에서 '새 교과서'가 나오고 편협한 민족주의가 일고 있는 상황이 되자 '강제연행을 생각하는 모임'은 우익들의 공격대상 중 하나가 되었고, 그림 연극도 서서히 줄어들다가 마침내 할머니의 그림은 은밀히 가려서 보관되어 오고 있었다.   

표지그림
▲ 지쿠호오이야기 표지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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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여름, 아힘나운동본부에서 실시하는 역사투어 중, 재일동포 2세인 배동록씨의안내로 오오노세츠꼬 할머니 댁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할머니의 그림을 발견하게 되었고, 할머니로부터 그림을 그리게 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아힘나운동본부는 할머니의 이런 깊은 뜻이 한국 청소년들에게도 전달되면 좋겠다는 의미로 책 출판을 제의하였고, 할머니는 흔쾌히 동의하셨으며, 1년 뒤 한국에서 <지쿠호오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이제 한국의 청소년들은 오오노세츠꼬 할머니의 책을 읽고, 지쿠호오 지역 카츠라가와쵸(桂川町)주민센터에서 '일본 할머니가 들려주시는 일본의 가해역사'를 주제로 한 그림연극을 본 뒤 작가와의 대화를 하게 된 것이다. 

강제연행을 생각하는 모임의 시바타 사무국장이 한국에서 온 청소년들에게 먼저 환영의 인사를 하였다.

"오늘은 8월 6일입니다.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진 날이에요. 오늘 이 자리 같은 건물 안에서는 이 동네에 있는 케이션중학교 1학년생들과 중3학생들이 학습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 후쿠오카현 뿐만 아니라 일본 전체적으로 8월 6일은 방학중이지만 매년 꼭 이렇게 나와서 평화를 주제로 한 학습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 중학생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마주치거나 만나면 반가운 얼굴로 인사하며 여러분과 함께 얘기를 나누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일본인의 눈으로 그린 일본의 가해역사

이번 역사기행에 참여한 청소년들에게는 두 권의 필독서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지꾸호오 이야기>였다. 한국에서 온 아이들은 작가가 직접 보여주는 그림연극을 보고 작가와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무척 기쁜 듯했다. 작은 다다미 방에서는 일본제국이 대한제국(조선)을 강제로 병합한 1910년, 꼭 100년 전의 역사가 오오노세츠꼬 할머니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잘 지내지요? 오늘 8월 6일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날입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도 아이들도 비롯해서 모두가 평화에 대해서 생각하는 날이죠. 그런 날에 한국에서 여러분들이 역사를 공부하러 이렇게 찾아와 주시니 정말 만나서 반갑습니다.

강제연행을 생각하는 모임의 회장, [지꾸호오이야기]의 저자
▲ 오오노세츠꼬 강제연행을 생각하는 모임의 회장, [지꾸호오이야기]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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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일한합병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치쿠호이야기 책 속에도 들어 있습니다만은 오늘 여러분들께 어떻게 조선이 식민지로 되어 나갔는지 그런 과정을 함께 보며, 그것을 토대로 앞으로 어떻게 평화로운 미래를 만들어갈 것인지 대화를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조선(한국)에서 강제징용된 재일1세들과의 교류해 왔습니다. 그리고 탄광 희생자들을 공양(供養)해 오며, 석탄산업이 남긴 문제들과 마주 대해오면서, 인근 아시아 사람들과의 평화와 우호를 추진하는 사업을 해 왔습니다. 이러한 평화와 우호를 위해서는 우리의 지난 역사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본은 100년 전, 일본의 무도한 소행을 호소하려던 고종왕을 퇴위시키고, 1910년(메이지 43년) 대한제국을 무력으로 병합한 죄를 지었습니다. 이에 일본의 노예로 사는 것보다는 자유로운 인간으로 죽는 편을 택하는 것이 옳다고 일어섰던 의병들을 무참히 학살하였습니다. 동양척식회사를 통해  조선의 땅을 강점하고 일본인들에게 1/10~20의 헐값에 불하한 뒤, 수확물량의 6~7할을 소작인이 된 조선의 농민들에게 소작료로 착취하여 화전민 혹은 움막살이로 떠돌게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조선인들이 먹고 살기 위하여 일본에 들어와 힘든 일들을 맡아 해 왔습니다. 지쿠호오의 대기업 탄광에서도 곤궁한 농민들을 속여 일본으로 데려와 "조선인을 때리고 부려라!"고 지시하며 노예같은 노동을 강요하였습니다.

1923년에는 일본의 도쿄, 요코하마를 중심으로 한 간토지방에 대지진이 발생하였는데, 그 때 있을 수 없는 일이 생겼습니다. 일본에 살고 있는 조선인들을 폭도로 누명씌워 6600여명을 학살해버린 것입니다. 일본은 조선(한국)에 대하여 말로 다 할 수없는 죄를 지었습니다. 이렇게 조선인을 차별하고 억압했던 역사를 저희들 일본인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황민화 정책의 죄악은 현재도 살아있습니다."

역사의 변혁기 속에서 한일의 민중들이 어떻게 억압받고 수탈당해 왔는지를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그림연극으로 보여주고 있다.
▲ 강제병합과 지쿠호오 역사의 변혁기 속에서 한일의 민중들이 어떻게 억압받고 수탈당해 왔는지를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그림연극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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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노세츠꼬씨는 일본제국이 저질렀던 식민지범죄를 아주 쉽게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셨고, 아이들은 그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탄식과 한숨 등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이렇게 일본 할머니가 일본 초중등학교를 다니며 일본국가가 저지른 식민지 범죄를 사실적으로 전하셨구나하고 생각하니 할머니의 지난했던 활동들에 대한 경의와 감사의 마음으로 가슴이 뻑뻑해졌다.      
  
한국의 청소년들, 저자에게 묻다

김규원(14·아힘나평화학교 2010학번) : "안녕하세요. 오하요 고자이마스! 할머니는 '강제징용을 생각하는 모임의 회장'이신데, 왜 그런 모임을 만드셨는지 그리고 그 모임이 어떤 활동을 해 오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오오노세츠꼬 :  "활동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강제연행을 생각하는 모임이 출범한 건 26년이고, 또 덕향추모비 요시쿠마탄광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을 추도하는 추모식을 한 지는 29년이 됩니다. 이렇게 30년 가까운 긴 세월동안 계속해 왔는데 물론 일본에는 여러 가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소위 보수적인 사람들이 많고, 또 강제연행은 없었다라고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이 지역에서 살면서 또 그 비석을 조사하면서 유골이 실제로 있었고, 그렇게 유골이 있는 납골당이라고 하면서도 아무도 돌보지 않고 방치한 상태였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 것을 계속 봐왔기 때문에 진실을 규명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몸으로 뼈저리게 느껴 왔습니다.

그래서 유골은 신원을 알면 고국으로 돌려 보내주는 것이 제일이고, 그렇지만 신원을 모르는 경우는 여기 함께 모셔서 공양을 해 나가자는 생각을 가지고 29년간 덕향추모비 공양식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재일한국인들과의 유대도 강화되었고, 사람교류회도 해마다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 여러분들이 평화기행을 하는 것처럼 매년 꼭 한번은 탄광터를 찾아 필드워크를 했습니다. 그것이 거창한 것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지속적으로 진행해 왔다는 것이 의미 있지 않을까요.

20여년 간 계속 똑같은 사람들이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니죠. 젊은 사람들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거나 병으로 돌아가신 분도 있지만, 어쨌든 한국과 일본 그리고 동아시아의 전쟁을 없애고 평화와 우호를 만들어 나가자는 활동을 20여년간 지속해 왔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사람들이 바뀌어 가면서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처럼 어린 학생들이 이렇게 이야기를 들으러 일부러 찾아와 주시고... 여러분들이 사명감 혹은 목적을 만들어서 돌아가주면 좋겠습니다. 그런 일념으로 일본에서도 이 카미시바이를 만들고 활동해 왔습니다. 활동 목적은 지금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어 가는 것' 그리고 새 세대들에게 '뭔가를 안겨주고 싶어서', '말로 백번 하는 것보다 그림이 보여주는 것' 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카비시바이를 보고 오오노세츠꼬할머니에게 질의하고 있다.
▲ 김동현 카비시바이를 보고 오오노세츠꼬할머니에게 질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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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17·아힘나평화학교 2010학번) : "저는 김동현이라고 합니다. 할머니께서 좋은 말씀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조선인 강제징용에 대한 그림을 그리시고 많은 활동들을 해 오시면서, 할머니 생각과 행동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할머니를 힘들게 한적은 없었는지 그리고 혹시 힘들게 했다면 어떤 마음을 가지시고 이런 일에 계속 해 오셨는지 궁금합니다."

오오노세츠코 : "예를 들어 식민지 정책에 대해서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이것 하나만을 가지고라도 이것은 잘못된 일이었다'라는 이야기를 하면, "그게 뭐가 잘못되었는가? 일본이 조선에 해 주었던 것을 아는가? 돈도 주었고, 철도를 만들어 주었는데 이런 일들이 다 잘해 준 것이 아니냐?" 이렇게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늘 부딪치며 활동을 해 왔고 뭔가를 하자고 할 때 역시 국가주의 국수주의에 빠진 사람들의 공격을 받거나 한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반항심이라고 할까 저항심이라고 할까요, 그럴수록 더 해야 겠다는 마음이 불타가지고 지금까지 계속 해 오고 있습니다."

김영현(14·안성여자중학교1학년) : "안녕하세요? 저는 김영현이라고 합니다.  앞으로도 선생님께서는 일본과 한국의 관한 역사에 관한 카미시바이를 계속하실 생각이신지, 그리고 그런 역사의 관한 책을 더 출판 하실지 궁금합니다."

오오노세츠코 : "그림을 새롭게 그리고 출판하려면 힘이 많이 들죠. 그런데 여러분들이 원하신다면 책 출판도 생각해 보겠습니다. (웃음) 내가 여러분에게 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림으로 그린 엽서입니다. 몇 가지 종류가 있는데요, 여러분들게 한 장씩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아이들은 오오노세츠꼬씨의 책을 들고와 저자에게 직접 사인을 요청하였고, 저자는 정성껏 아이들에게 미래평화를 위한 격려의 말을 써 주었다.

지꾸호오이야기의 저자가 안성에서 온 조원효(13) 어린이가 가져온 책에 사인해 주고 있다.
▲ 오오오노츠꼬 지꾸호오이야기의 저자가 안성에서 온 조원효(13) 어린이가 가져온 책에 사인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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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민족을 넘어 그리고 세대를 초월하여 평화의 역사를 새로 써가는 아이들의 발걸음은 할머니를 만나면서 더욱 씩씩해졌을 것이다.

역사이야기 공연을 마치고 나와 아힘나역사기행단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오오노세츠꼬의 카미시바이 역사이야기 공연을 마치고 나와 아힘나역사기행단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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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일해갈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역사의식을 함양할 수 있도록 아힘나운동본부에서 기획한 역사스터디투어의 현장르포입니다.



태그:#아힘나역사기행, #강제병합100년, #오오노세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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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평화를 위한 1923역사관 관장 천안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 공동대표 1923한일재일시민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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