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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미술 대학에서 빅터 파파넥의 <인간을 위한 디자인>(1971)을 교재로 쓰는지 모르겠다. 원제는 <진짜 세상을 위한 디자인(Design for the Real World)>인데 번역된 제목도 나쁘지 않다. 이 책의 저자는 디자인이 기업 이윤과 정부 통제의 첨병으로 전락하는 것을 경계하면서 "인간 일반"을 위한 "진짜 디자인"이 얼마나 절실하고도 가능한지 역설했다.

현시원의 <디자인 극과극>, 정신 차려살지 않으면 착각, 착시에서 벗어날 수 없는 법이라고 표지부터 경고하는 책이다.
 현시원의 <디자인 극과극>, 정신 차려살지 않으면 착각, 착시에서 벗어날 수 없는 법이라고 표지부터 경고하는 책이다.
ⓒ 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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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서점에서 만난 현시원의 <디자인 극과 극>(2010, 학고재)은 20년 전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책이었다. 불과 첫 몇 장을 넘기면서 파파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디자인이 이윤과 통제의 첨병을 지나 주력 부대가 된 지 오래고 미디어와 함께 동화 속 피리 부는 사나이를 자처하게 된 디자인 현실에서 두 책의 위상은 상당히 어정쩡하다. 하지만 <인간을 위한 디자인>이 실패한 일을 <디자인 극과 극> 같은 책들이 해낼 수도 있지 않을까?

<푸꼬의 진자>(움베르토 에코, 1988)의 주인공 까조봉은 성당 기사단을 주제로 학위를 받은 후 잠깐 정보 탐정을 업으로 삼기로 한다. 방대한 정보를 분류하고 색인을 붙여 저장해 놓았다가 고객의 의뢰가 있으면 데이터베이스를 뒤져 주문 받은 정보를 전달하고 비용을 청구한다.

<푸꼬의 진자> 출판 이후 30년 동안 정보화 사회는 급속히 무르익었지만 정보 탐정이 직업으로 자리 잡지는 못했다. 그 일은 사람보다 컴퓨터가 더 잘 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구글이나 야후, 네이버나 다음 등의 검색 엔진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검색 엔진들이 못하는 일이 있게 마련이다. 정보를 병치시키는 데 머무르지 않고 그런 병치의 의미를 따져 주는 일이다. 검색 엔진은 똑똑해야 하지만 정보 탐정은 현명해야 하는 것일까?

<디자인 극과 극>은 독특한 정보 탐정 작업의 결과다. 까조봉이 문헌 정보 탐정이었다면 현시원은 디자인 정보 탐정이다. 까조봉은 돼지고기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불과 다섯 단계로 연결시킬 수 있었다. 현시원은 미항공우주국의 우주복과 서울시의 청소복, 광장의 애드벌룬과 서랍 속의 콘돔, 토스트 리어카와 백화점 푸드 코트를 병치시킨다. 이런 연관 작업은 끈질긴 호기심과 꼼꼼한 관찰력, 그리고 진득한 사고의 결과다.

연관은 유사와 차이에 바탕을 둔다. 디자인의 목적이 기능과 탐미라면 현시원의 연관 작업 역시 그 둘을 축으로 한다. 앙드레 김의 체크 목도리가 이명박 대통령의 파란 목도리가 보온을 위해 목에 두르는 천 조각이라는 유사성을 제외하면 그 목적과 목적을 이루는 과정이 얼마나 다른 지 보여준다. 조선 시대의 수정알 안경과 21세기 에르메네질도 제냐 안경이 기능보다 품위에 역점을 두었던 점에서 어떻게 유사한지 알려 준다. 비상구 표지의 막대 인간과 이집트 벽화 <늪지로 사냥을 나간 네바문>이 유사한 단순화 과정을 통해 어떻게 다른 것을 추구하고 있는지, 그리고 잭슨 홍의 칼날 뻗친 헬멧과 호신용 의자는 엉뚱하고도 새로운 기능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고 지적해 준다.

동떨어져 보이는 사물들을 병치시킬 뿐 아니라 그것들 사이의 유사와 차이를 또다시 병치시켜 얻을 수 있는 효과는 폭로와 재구성이다.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모습으로 디자인된 질서가 실은 어떤 동기로 그렇게 구성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는 그게 꼭 그런 식이었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는 점, 그리고 그밖에도 무수히 많은 다른 질서가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군모와 선캡, 매스게임과 에어로빅, '바르게 살자'는 바위 표석과 맥아더 장군의 동상은 특정 이해관계를 드러내고 그것이 관철되는 과정이 얼마나 자의적이었는지도 보여준다. 그것은 곧 기존 질서를 비판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제안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본인이 현직 디자이너이자 디자이너들을 가르치는 저자의 이 책은 당연히 디자이너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러나 디자이너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통찰력을 줄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고 본다. 익숙함에 안주하는 고질병에 걸린 현대인에게 저자는 주위의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라고 권한다. 그것들 사이의 엉뚱해 보이는 연관을 자꾸 연습하라며 본을 보인다. 같음과 다름, 유사와 차이가 어떤 의도와 목적으로 구성된 것이며, 나는 거기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생각해 보라고 한다.

<인간을 위한 디자인>이 본래 목적을 다하지 못하고 세상이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은 그 책이 디자이너들만 독자로 삼았기 때문이 아닐까? 디자이너도 사람인지라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기업과 정부의 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법이다. <디자인 극과 극>은 디자이너 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이고, 또 그래 마땅한 책이다. 이윤 추구의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디자인의 정당한 소비자가 되고 싶다면, 통제의 수동적 피해자가 아니라 주권을 행사하는 주인이 되고 싶다면 정보 탐정, 디자인 탐정 노릇을 제대로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보자.

연간 550만 명에 달한다는 서울 지하철 이용자 중에서 지난 2~3년간 지하철 광고가 급격히 늘어난 것을 눈치 챈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전국적으로 좌측통행을 우측통행으로 바꾸기 위해 동원된 예산이 얼마이며, 그렇게 해서 어떤 유익이 있고, 그 캠페인의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극장에서 영화 한편을 보기 위해서는 약 5~6개의 스마트폰 광고를 먼저 봐야 할 뿐 아니라, 같은 광고를, 그것도 연달아, 2번 이상씩 봐야 하는 일이 생긴 까닭이 궁금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1박2일 열린다는 G20정상회담을 위해 전후 45일간 집회와 시위를 금지하고 경찰과 군대를 동원해 노점상과 노숙자, 외국인 노동자들을 단속해 가면서 서울 시내를 재디자인하는 까닭이 궁금한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물론 <디자인 극과 극>은 이런 문제에 답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런 것에 의문을 품게 하고, 답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소비자가 제 역할을 못하면 그저 기업 이윤을 위한 봉일 뿐이다. 주권자가 제 역할을 못하면 그저 정부 통제의 대상일 뿐이다.

디자인 대상을 향해 던지는 날카롭거나 따뜻한 시선 못지않게 이 책을 도드라지게 하는 것은 저자의 재기 발랄하고 거침없는 글발이다. 다소 애매하거나 복잡할 수도 있는 주제들이 발칙하지만 통쾌하게 서술돼 있다. 매일 쏟아지는 신간 한권 갖고서 소비자니 주권자니 너무 '오바'하는 게 아닌가 의심스런 사람이라도 저자의 '글발'만 가지고 본전 생각은 접힐 것이다. 게다가 평소 무덤덤하게 보아 넘기던 사물을 가지고도 시의적절한 사회 평론을 쓸 수 있다는 점도 덤으로 알게 될 것이다.


디자인 극과 극 - 현시원의 유쾌발랄 디자인 하이킥

현시원 지음, 학고재(2010)


태그:#현시원, #디자인, #극과극, #착시, #정보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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