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눈에 띄는 간판도 없는 와키하마 공중탕은 여기가 온천인지 허름한 어느 시골집인지 알 수 없는 행색을 하고 있지만 찾아오는 손님은 제법 많다.
▲ 와키하마 공중탕 입구 눈에 띄는 간판도 없는 와키하마 공중탕은 여기가 온천인지 허름한 어느 시골집인지 알 수 없는 행색을 하고 있지만 찾아오는 손님은 제법 많다.
ⓒ 규슈 온천과 숙박 타비링

관련사진보기


말복도, 입추도 지났지만 태풍이 지나간 일본 열도는 아직도 폭염과 열대야가 지속되고 있다. 무더운 날씨에 열사병과 탈수 증세, 또 한편으로 더위를 피하려다 냉방병에 몸이 혹사당하기 쉬운 한여름, 딱 생각나는 곳이 온천이다. 모두가 '여름'하면, 해수욕장과 시원한 바닷가와 계곡을 생각하지만, 몸과 마음을 오롯이 쉬게 하는 데는 온천이 제격이다.

환태평양 화산대에 위치한 일본은 곳곳에 발달한 화산 덕분에 온천 자원이 풍부하다. 한겨울 추위도 온돌없이 지내야 하기 때문에 따뜻한 물속에 몸을 푹 담그는 목욕문화는 가정내에서도 일반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추운 겨울철에만 온천을 찾는 것은 아니다. 일년내내 사시사철 피곤할 때면 온천을 찾는 사람들이 많고, 일부러 온천여행을 즐기는 여행객도 많다. 거의 날마다 동네 주민을 위한 저렴한 온천을 찾는다는 이도 있다. 특히 일본의 온천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해서 해외에서도 온천을 즐기러 오는 관광객이 많다.

오래되고 낡은 목욕탕의 충격 속에서 묘한 매력이 한꺼풀 드러나는 와키하마 공중탕 입구
▲ 와키하마 공중탕 오래되고 낡은 목욕탕의 충격 속에서 묘한 매력이 한꺼풀 드러나는 와키하마 공중탕 입구
ⓒ 규슈의 온천과 숙박 타비링

관련사진보기

내가 거주하는 나가사키현에도 온천이 많다. 전 일본과 국제적으로는 뱃부 온천이 최고를 자랑하지만, 나가사키현에도 좋은 온천이 많다. 녹차의 생산지로 유명한 우레시노 온천, 1990년대까지 화산이 폭발하고 앞으로도 언제 화산이 분화할지 모르는 후겐타케(普賢岳)가 있는 운젠시는 '지옥 온천'으로 유명하다.

지옥온천이 화산지형에서 뿜어나오는 온천자원을 이용한 산을 낀 온천이라면, 바닷가에 위치해 해수를 사용하는 오바마 온천도 운젠에 있다. 이곳에선 서민들도 저렴하게 온천욕과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오바마쵸(小浜町)는 그 이름만 들어도 이색적이다. 일본에는 오바마라는 이름을 가진 마을이 몇 군데 더 있지만, 이곳 오바마 마을에서는 2008년 미국의 대선 당시, 자신의 마을 이름과 같은 버락 오바마 후보를 열렬하게 응원했다고 한다.

투표권도 없는 일본땅에서, 그것도 작은 온천마을이 응원을 해봤자 미국 대선에 대단한 영향을 줄 리 만무하지만 주민들은 꽤나 진지하게 오바마 후보가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고 지지했다고 한다. 그 흔적은 지금도 남아있다. 온천마을로 브랜드화한 오바마의 특산품 판매장 등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을 캐릭터로 사용한 티셔츠나 작은 액세서리 등을 아직도 진열, 판매하고 있다.

열쇠도, 빗도, 거울도 없는 일본의 한 온천탕

한자로 번호를 새겨넣은 사물함에는 열쇠도 없고 그저 구멍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 넣어 문을 열고 닫게 되어 있다.
▲ 와키하마 공중탕의 사물함 한자로 번호를 새겨넣은 사물함에는 열쇠도 없고 그저 구멍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 넣어 문을 열고 닫게 되어 있다.
ⓒ 규슈 온천과 숙박 타비링

관련사진보기


일본 규슈 나가사키현 운젠시의 바닷가에 위치한 작고 아름다운 이 온천 마을 오바마는 온천뿐 아니라 석양도 일품이다. 해안선을 따라서는 30개가 넘는 각양각색의 온천과 여관, 호텔 등이 늘어서 있다. 그리고 조용한 골목을 찾아 뒤쪽으로 들어서면 옛 돌담을 그대로 간직해 온 오래된 마을 골목길로 이뤄진 낡고 촌스럽지만 편안하고 아늑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그 골목길에는 주차장으로 진입하는 작은 푯말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간판 하나 세우지 않는 와키하마 공중탕이 있다.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킨 1937년에 문을 연 와키하마 온천 목욕탕(脇浜温泉浴場)은 이전의 경영자 이름을 따서 지금도 별칭으로 '오타츠상 목욕탕' 혹은 '오탓샹 목욕탕'이라고도 불린다. 150엔이라는 저렴한 요금에 이끌려 찾아간 와키하마 온천탕도 눈에 띄는 해안가 큰 길목이 아니라, 뒷골목의 정겨운 옛 풍취 속에 조용히 숨겨져 있었다.

와키하마 온천탕을 찾았을 때 가장 놀란 것은 손님을 받는 온천탕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만큼 허름한 건물이라는 점, 또 간판도 없고 그 앞에는 역시 낡은 느낌의 주차장이 들어서 있었다는 점이다. 차를 세우고 지인을 따라서 입구로 들어서니 그제야 남탕과 여탕을 구분하는 가림막이 눈에 들어왔다. 요금을 내기 위해서 데스크에 앉은 할머니를 불러도 할머니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수차례 할머니를 불러서 계산을 치른 뒤에야 온천에 들어갈 수 있었다.

놀라운 풍경은 탈의 장소에서 더 극대화되었다. 남탕에서 여탕 탈의실 절반이 보일만큼 구분과 경계가 허술했고 소지품함은 열쇠도 없었으며 작게 뚫린 구멍으로 손가락을 집어 넣어서 문을 열어야 했다. 또 수건도 빗도 거울도 휴지통도 없었다. 로션이나 드라이기는 언감생심이다. 화장실도 온천에 들어가는 통로 부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출입구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옆에 있었다.

젊은 아가씨부터 할머니까지 이어지는 온천사랑

바닷가에 접한 오바마 온천에서는 바닷물을 온천수로 사용한다. 수도꼭지 옆에는 물컵이 놓여 있어 온천물을 맛볼 수도 있다.
▲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해수 온천 바닷가에 접한 오바마 온천에서는 바닷물을 온천수로 사용한다. 수도꼭지 옆에는 물컵이 놓여 있어 온천물을 맛볼 수도 있다.
ⓒ 규슈 온천과 숙박 타비링

관련사진보기


탕 안쪽에서 바깥을 바라보는 이 풍경 속에서 이 온천의 촌스러운 멋을 느낄 수 있다. 창문도 천장도 욕탕 내도, 그리고 안에서 바라보는 바깥 탈의실도 오래되고 낡은 온천의 묘한 재미를 던져준다.
▲ 1937년에 문을 연 일흔 세 살의 와키하마 공중탕 탕 안쪽에서 바깥을 바라보는 이 풍경 속에서 이 온천의 촌스러운 멋을 느낄 수 있다. 창문도 천장도 욕탕 내도, 그리고 안에서 바라보는 바깥 탈의실도 오래되고 낡은 온천의 묘한 재미를 던져준다.
ⓒ fwd-net나가사키이사하야

관련사진보기


문화적인 충격 앞에서 놀라는 기자에게 함께 온 70세의 지인이 "물은 깨끗해요"라고 한 마디 한다. 놀라움과 신기함을 묘하게 품은 채 탕속으로 들어가 보니, 평일 낮인데도 손님이 참 많았다. 젊은 아가씨들부터 할머니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온천욕을 즐기고 있었다.

내부시설도 참 오래된 느낌이었다. 천장이 대단히 높은데 "목욕탕 청소는 할까?"라는 '불경'스러운 의문을 잠시 품으면서 탕 속에 들어가기 전에 몸에 물을 끼얹었다. 일반적인 샤워시설은 없고 수도꼭지를 틀어 바가지에 물을 받은 뒤 적당히 몸을 씻거나 머리를 감은 후에 욕조에 들어가는 시스템이었다.

여탕에는 두 개의 초록빛 욕조가 있었는데 한쪽이 조금 더 뜨거웠다. 온몸에 따뜻한 기운이 퍼지면서 기분 좋게 싱글벙글거리자니 반대쪽 욕조에 앉아 있는, 피부가 대단히 시커멓게 그을린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할머니는 말이 없었다. 옆에는 정반대로 입심이 좋고 수다스러운 할머니가 온천욕을 즐기고 있었는데 일행은 아니었지만 과묵한 할머니는 수다스러운 할머니의 재미난 이야기에 호기심 어린 눈망울로 귀기울이고 있었다.

기자도 심술궂은 호기심과 궁금증 등이 발동하여 우선 옆 할머니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
어디서 오셨느냐 했더니 이야기 나누길 좋아하는 할머니는 이 동네 사람이란다. 농사를 지으시냐 물었더니 쌀 농사도 짓고 옥수수나 감자도 심는다고 한다.

피부색이 유난히 검은 할머니에게도 어디서 오셨느냐 물었더니 이사하야시에서 일부러 온천욕하러 왔다고 한다. 농사일을 하다보면 피부가 검게 그을리는 것은 당연하다지만, 할머니는 오키나와에서 본 할머니들보다도 더 까맸다. 할머니도 농사일을 하시느냐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일본의 태양이 한국의 태양보다 더 강렬하다는 아직 정확히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를 누군가로부터 들은 적은 있지만, 얼마나 농사일에 평생을 수고하셨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할머니의 인생이 새까만 살결과 주름 속에서 조금은 슬프게 빛나던 눈동자를 통해 전해져 왔다.

헉, 남탕 입구에서 여탕 탈의실이 다 보인다고?

오바마 온천 마을의 와키하마 공중탕은 이 길 안내표 외에는 바깥에 그렇다 할 간판도 없다. 낡고 오래된 마을길 풍경도 이채롭다.
▲ 와키하마 공중탕 올라가는 언덕길 이정표 오바마 온천 마을의 와키하마 공중탕은 이 길 안내표 외에는 바깥에 그렇다 할 간판도 없다. 낡고 오래된 마을길 풍경도 이채롭다.
ⓒ 규슈 온천과 숙박 타비링

관련사진보기


와키하마 공중탕 내에 설치되어 있는 온천물 효능안내판. '쇼와 12년 9월 22일(1937)'이라고 날짜가 적혀 있다.
▲ 온천의 치료 효능을 설명하는 안내판 와키하마 공중탕 내에 설치되어 있는 온천물 효능안내판. '쇼와 12년 9월 22일(1937)'이라고 날짜가 적혀 있다.
ⓒ 규슈의 온천과 숙박 타비링

관련사진보기


나와 동행한 나가사키시의 지인 둘이 "여긴 쇼와12년(1937년)에 만들어진 그대로 지금 남아있는 온천이에요, 진짜 오래됐죠, 이런 온천에 와 보는 거 처음이죠? 이런 체험도 재밌죠?"라고 물어 왔다. 나는 본래 한국인으로서 '쇼와00년' '평성00년' 운운하는 일왕의 연호를 따서 연도를 헤아리는 일본식 셈법에 대해 위화감을 느끼고 있어, 우스개 소리로 "이거 보이콧 해야해요"라고 주장하곤 했으나, 목욕탕 설립연도와 나의 역사의 차이를 좀더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큰 소리로, "내가 쇼와 55년생(1980)인데, 저보다 한참이나 나이가 많은 온천이네요, 경건하게 목욕을 해야겠어요"라고 말했더니, 근처에 있던 전혀 모르는 손님들도 재미있어 하면서 시선을 던졌다.

온천욕을 하고 있자니 남탕에서 누군가 헛기침을 하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오고, 이런저런 말소리가 뒤섞여 온천욕이 더 즐거워졌다. 욕조의 수도꼭지 옆에는 컵이 두 개 놓여있어 해수물 맛을 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지인이 물맛 좋다고 마시라고 컵을 들이밀었지만, 소금맛이 날까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안 마시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창밖으로는 거센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고 온천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쩌면 저토록 창문 하나 하나도 전부 수십 년 된 분위기를 풍기고 있을까'라고 생각하자, 피로가 조금씩 날아갔다.

온천욕을 끝내고 머리의 물기를 털어내고 옷을 입고 있는데, 밖에서 젊은 여자 손님들이 들어왔다. 오고가는 대화를 엿들으니 자주 이곳을 찾는 단골인 듯했다. 또래 남자친구들과 함께 와서 문 앞에서 갈라진 참이었다. 옷을 다 입고서 슬슬 가방을 챙기다가 다시 한 번 경악을 했다. 나는 소지품 보관함 중간 쯤에서 탈의를 하고 또 옷을 입었는데, 여탕 소지품 보관함은 탕속에 들어가는 유리문 바로 앞쪽을 제외하고는 남탕 입구에서도 전부 들여다 보이는 것이었다. 이걸 노출증, 관음증, 허술함이라 해야 할까, 그냥 인간적인 해프닝으로 웃어넘길 것인가 잠시 헷갈려 하며 와키하마 온천탕을 나왔다.

온천뿐 아니라, 일본에는 100년 역사를 훌쩍 뛰어넘는 식당이나 가게 등도 허다하다. 당장 우리집 근처의 작고 허름한 식당조차도 40년 이상 그 자리에서 운영해온 곳이다. 세련되고 호화로운 관광지의 온천은 아니었지만, 설립된 지 73년째의 낡고 오래된 어느 온천탕으로의 나들이는 또 하나의 색다른 추억을 안겨 주었다.

지난 한 달 동안 너무 바쁘고 더웠다. 몸과 마음에 무거운 짐들이 하나 둘 늘었다. 내일 또 온천 나들이로 지친 몸과 마음에 미안함과 감사함을 표시해야겠다. 한여름 더위에도, 장마철 지긋지긋한 눅눅함에도, 한겨울 삭막한 추위에도 역시 온천이 최고다.


태그:#일본 규슈 온천, #오바마 온천, #와키하마 공중탕, #여행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주부이자, 엄마입니다.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