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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8월 15일 광복절에 맞춰 일반에 공개될 서울 세종로 광화문의 현판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5년에 걸친 복원공사를 마치고 공개되는 광화문 현판을 기존의 한글 현판 대신 한자 현판으로 바꿔달기로 했기 때문이다.

2010년 가을 복원을 끝내고 우리에게 돌아올 광화문 복원 조감도. 2009년 4월 광화문 복원 공사현장 조감도 촬영
 2010년 가을 복원을 끝내고 우리에게 돌아올 광화문 복원 조감도. 2009년 4월 광화문 복원 공사현장 조감도 촬영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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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현판을 한자로 달 것이냐, 한글로 달 것이냐는 문제는 결코 단선적으로 볼 일이 아니다. 문화재 복원의 원칙을 어디에 둘 것이냐는 문제와 함께 역사관, 문화적 정체성, 우리글인 한글에 대한 시각, 광화문이 갖는 상징성에 대한 종합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야할 사안이다.

이런 측면에서 지금의 시대정신과 역사상 최초의 '공화정 체제'인 대한민국 시대에 다시 복원되는 2010년 광화문의 현판은 당연히 한글 현판을 달아야 한다. 현판 복원은 단순한 '짝퉁 복제'가 아니라, 복원 당시의 시대정신과 나라의 미래상이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광화문 현판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 해답이 나온다. 광화문은 결코 교조적이지 않고, 끊임없이 그 시대의 정신과 흐름을 반영해왔다. 특히 광화문 현판은 복원 당시의 시대정신이 깃들면서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사가 쌓여 왔다.

경복궁의 남쪽 정문 역할을 하는 광화문(光化門)에는 처음 조선 태조 4년 1395년 창건되었을 때 정도전이 쓴 '정문(正門)'이란 이름의 한자 현판이 내걸렸으나, 세종 7년 1425년 집현전에 의해 광화문으로 이름과 현판이 바뀌었다.

목조 건물인 광화문은 그 후 임진왜란 때 경복궁과 함께 불타 없어져 270여 년 간 중건되지 못하다가, 구한말 고종 1년 1864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재건할 때 다시 옛 모습을 되찾았다. 광화문은 다시 한국전쟁 때 불에 타 없어졌다가 박정희 정권 때인 1968년 애초 목조 대신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복원되었다.

시대에 따라 이름도 글씨도 변화해온 광화문 현판

세종대왕뒤에 광화문이 복원을 앞두고 한자 현판으로 논란이 일고 있다.
▲ 세종로 세종대왕뒤에 광화문이 복원을 앞두고 한자 현판으로 논란이 일고 있다.
ⓒ 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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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은 그 이름조차도 정문에서 광화문으로 바뀌었고, 광화문 현판 글자는 이미 세종대왕 시대 '한자 현판' 원본이 불에 타 버렸으니 아예 찾을 수가 없다. 고종 시대 복원 당시의 '한자 현판'도 불에 타 없어졌고, 1968년 복원 당시 박정희가 쓴 '광화문'이라는 한글 현판이 지금까지 걸려 있었다.

광화문은 지난 1968년 애초 목조 건물 대신 철근콘크리트로 날림 복원했기 때문에, 이번에 다시 원래 목조 건물의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광화문의 현판을 '친일파'이며 '독재자'인 박정희가 쓴 '한글' 현판 대신, 옛날의 '한자' 현판으로 다시 바꿔 달아야 하느냐는 점이다.

문화재는 기본적으로 가능한 원형대로 보존하는 것이 원칙이고, 복원의 원칙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원형 복원의 원칙은 문화재의 성격과 문화재가 놓여 있는 그 장소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또한 유연하게 적용하는 것이 오히려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건물의 구조와 모양이 중시되는 건축문화재의 경우에는 가능한 '원형 복원' 원칙이 지켜져야 하겠지만, 과연 글자인 현판까지 원형 복원의 원칙을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더욱이 원형 현판의 원본이 존재하지도 않는 상황에서 광화문 현판의 원형 복원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광화문의 현판은 이름조차도 '정문'에서 '광화문'으로 바뀌었고, 세종대왕 시대의 광화문 한자 현판의 원본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문화재청이 복원의 기준으로 삼는 한자 현판은 기껏해야 140여 년 전 고종 당시의 복원 책임자였던 훈련대장 임태영이 쓴 글씨의 사진이다. 불에 타 없어진 임태영의 글씨 사진을 보고 비슷하게 모사하듯이 다시 쓰겠다는 것.

문화재 복원을 교조적이며 도그마적으로 보는 시각이라면 광화문 현판은 애초 창건 당시의 '정문'으로 복원하고, 한자 현판도 태조 시대의 한자체로 복원해야 한다. 고종 시대 훈령대장 임태영의 구한말 한자체 현판을 복원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임태영은 한석봉처럼 시대를 대표하는 명필가도 아니고, 단지 당시 경복궁 복원 책임자 자격으로 쓴 무관일 뿐이다. 더욱이 임태영의 한자 현판 원본을 다시 다는 것도 아니고, 한자 글씨체를 복제하듯 복원한다고 해서 무슨 문화재적 가치와 역사적 가치가 있겠는가.

고종 당시의 한자 현판 복원은 시대정신도 없는 '짝퉁 현판'이고 '모사품'

한석봉의 글씨체를 복제하더라도 '짝퉁 서예'고, 모나리자 제품을 복제하면 '모나리자 모사품'이듯이, 임태영의 한자 현판을 복제하면 '짝퉁 현판'일 뿐이다. 김종택 한글학회장이 "광화문에 500~600년 전 남대문, 숭례문 현판처럼 문화재 가치가 있는 원본의 옛날 것을 그대로 다는 것은 모르지만, (광화문에 다시 달겠다는) 한자 현판은 원본도 아니고 옛날에 달았던 현판의 사진을 보고 비슷하게 복원하는 것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김 회장의 말은 타당한 지적이다.

현재 문화재청이 광화문에 달려고 하는 임태영의 현판을 비슷하게 베낀 한자 현판은 말 그대로 '짝퉁 현판'이고, '모사품 현판'에 불과할 뿐이다. '짝퉁'에는 시대정신도 민족의 혼도 담길 수 없다. 더욱이 현판은 건축물과 달리 복원 당시의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임태영의 한자 현판도 세종 당시의 한자체가 아니라 구한말 고종 당시에 널리 사용되던 해서체 한자를 사용했던 것이다. 만약, 경복궁 중건 당시 고종 때 한글이 지금처럼 한자 대신 공식적인 국어(나랏말)였다면 당연히 한글로 '광화문'이라고 썼을 것이다.

지난 1968년 박정희 정권 시대에 광화문을 복원하면서 한글 현판의 '광화문'을 단 것은 바로 한글이 마침내 공식적인 국어로 널리 사용되는 '공화정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을 반영한 결과다. '친일파'이며 '독재자'인 당시 '권력자' 박정희가 썼다는 것이 문제일 뿐이지, 광화문에 한글 현판이 내걸린 것은-고종 말 임태영이 애초 세종 당시의 한자체가 아니라 19세기 중건 당시의 해서체 한자 현판을 내걸었듯이-우리 역사상 최초로 국민(인민)이 주인인 20세기 한글이 민중들 사이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을 가장 잘 반영한 결과물이다.

한글 현판은 1945년 해방 이후 민중의 글씨인 한글이 주인의 자리를 차지한 20세기 공화정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이 그대로 반영된 역사적 산물이고 그 자체가 하나의 문화재다. '권력자' 박정희 대신에, 그 당시 한글을 가장 아름답게 쓰는 명필가의 한글 현판을 달았으면 더할 나위가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권력자들이 자신의 업적을 기리거나 명예를 남기기 위해 문화재에 멋대로 자신의 이름을 새기거나 자신이 쓴 현판이나 글씨를 남기는 것을 보면서, 무언중 문화재에 남겨진 권력자의 흔적에 대한 거부감이 쌓여 왔다.

건물은 옛 모습, 현판은 한자 '경성부청' 대신 한글 현판인 '서울특별시청'

문화재에 남겨진 권력자의 잘못된 흔적을 지우는 것은 민주주의 시대이며 민중의 시대인 지금 필요한 작업이다. 이번에 광화문을 목조건물로 제대로 복원하면서, 권력자 박정희가 쓴 한글 현판을 내리는 것은 타당하다. 다른 문화재에도 타당성이 없는 권력자의 흔적은 점차 지워야 한다. 광화문 현판의 경우, 권력자의 흔적을 지우면서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길은 박정희의 한글 현판 대신, 현 시대 최고 명필가의 한글 현판을 내거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글학회 일부에서 광화문 한글 현판의 글씨체를 세종대왕 시대의 훈민정음체로 하자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 한글로 하되 복원 당시인 오늘날 민중들이 가장 널리 쓰는 '진품' 한글체로 하는 것이, 복원 당시의 시대정신을 더 잘 반영하고 복원의미를 되살리는 길이 될 것이다.

참여정부 시절 유홍준 청장 당시 문화재청의 잘못된 시대정신과, 문화재 보존 원칙과 문화적 정체성, 역사의식, 한글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부족이 일을 크게 그르치는 실마리를 제공했다. 박정희의 한글 현판을 내리면서, 옛날의 한자 현판으로 되돌아가는 시대역행적인 문화재 복원 방법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잘못된 결정은 다시 국민적 여론을 수렴해 고쳐야 한다. 문화재에서 '독재자 박정희'의 흔적만을 지워버리면 되지, 한글 현판이라는 시대정신까지 지워버리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일제 강점기인 1926년 건립된 서울시청사가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서울시청사는 건축물은 일제 강점기의 모습 그래도 보존하고 있지만, 해방 이후부터 현판은 한자 '경성부청(京城府廳)' 대신 한글 현판인 '서울특별시청'으로 바꿔 달고 있다. 서울시청사 현판이 원본 한자 현판인 '경성부청(京城府廳)' 대신 한글 현판인 '서울특별시청'으로 바뀌었다고, 아무도 문화재나 역사적 가치로서의 서울시청사의 의미가 퇴색됐다고 보지 않는다.

광화문 현판도 마찬가지다. 한글 '서울특별시청' 현판이 해방된 서울의 시대정신을 반영하듯이, '광화문' 한글 현판은 한글이 공식 나랏말이 된 2010년 복원 당시의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것이다.  

권력자의 흔적은 지우되,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광화문이 놓여 있는 장소와 상징성을 감안해도 현판은 당연히 한글로 달아야 한다. 대한민국 수도인 서울의 한복판에 있는 현판이 우리 글자인 한글이 아니라, 중국 글자인 한자로 되어 있다는 것은 문화적 정체성과 국가적 존엄성, 국가적 이미지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광화문 현판은 집으로 치면 문패에 해당한다. 대문의 문패를 이제는 대부분 한글로 달듯이, 대한민국의 나라 문패인 광화문은 당연히 한글로 써야 한다. 나는 지난 2003년 16대 국회의원 시절 '국회의원 한글 명패 바꿔달기 운동'을 주도했는데, 지금은 민의의 전당인 국회 의사당의 국회의원 명패는 대부분 한글 명패로 바뀌었다.

세계인들이 많이 드나드는 서울의 한 복판에 달려 있는 광화문 한글 현판은 우리나라가 독자적인 글자를 갖고 있는 문화강국이며, 우리글인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데도 자연스럽게 도움이 된다. 세종대왕이 한글인 '훈민정음'을 만들어 공포한 곳이 바로 광화문 안의 경복궁이라는 역사적 사실도 한글 현판의 당위성을 뒷받침한다.

현 시점에서 다시 복원되는 광화문의 현판을 한자로 달자는 것은 아무런 시대정신도 없고 민족혼도 반영되지 않는 '짝퉁 현판'을 다는 것에 불과하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해방된 신생 독립국가들을 여행하다보면, 예외 없이 수도의 중심거리에는 나라의 '독립'과 민중이 주인인 '공화정' 체제의 출범을 나타내는 상징물들이 들어서 있다. 광화문에 민중이 쓰는 한글 현판이 달려 있다는 것은 바로 '독립'과 '공화정'의 역사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시대적 산물이기도 하다.

다가오는 8월 15일 광복절에 맞춰 광화문에 한자 현판을 내거는 것은, 광복절의 해방의 의미와 우리글인 한글의 역사성과 존엄성을 모독하는 행위다. 광화문에는 이 시대 최고의 명필가가, 민중들이 지금 가장 널리 사용하고 있는 한글 글씨체를 바탕으로 쓴 한글 현판을 달아야 한다. 이것만이 광화문 현판에서 권력자의 흔적을 지우면서, 21세기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문화적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다.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큰 건축물의 현판은 이제 권력자가 아니라, 당대 최고의 한글 명필가가 쓰는 전례를 만들어야 한다. 광화문에 명필가가 쓴 한글 현판이 걸린다면, 후대에 당시의 글씨체 문화와 명필가의 글씨를 하나의 문화재나 예술품으로 물려주는 좋은 선례가 될 것이다.

한자로 쓴 광화문 현판 제막식을 오는 15일 광복절에 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광화문 현판 제막식은 한글 현판으로 한글날인 10월 9일 맞춰서 하는 것이 더욱 그 의미를 살릴 수 있다. 광화문 현판 문제는 단순한 한자냐 한글이냐의 차원을 뛰어넘는, 우리 문화의 정체성과 역사적 정체성을 어디에 둘 것이냐는 중요한 미래의 문제다.

덧붙이는 글 | 광화문 현판 문제는 많은 토론과 논의를 거쳐야할 국가의 문화적 정체성과 역사적 정체성이 담긴 중요한 문제다. 정권이나 문화재청의 정부기관에만 맡겨놓을 일이 아니라, 전국민적 의사와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한 뒤 신중히 결정해야할 사안이다. 오는 8월15일 광복절에 예정된 광화문 현판 제막식을 늦춰서라도, 다시 한번 국민적 여론수렴과정을 거쳐야 한다.



태그:#광화문 현판, #광화문 복원, #광화문 한글현판, #박정희, #임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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