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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또 웃음이 '빵' 터졌다. 29일 오후, 조전혁 한나라당 의원의 권한쟁의 심판 청구가 헌법재판소에서 각하됐다는 소식을 접한 직후다. 조 의원에게는 유감스런 일이지만, 주변 반응도 비슷했다.

 

"이야, 조 의원 정말 대단하시네"라는 탄성 아닌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졌다. 이어 "벌써 몇 번째야?"라는 물음이 꼬리를 물었다. 온라인 반응도 비슷했다. 헌재 결정이 나자마자 다시 '조전혁'은 주요 포털사이트 인기 검색어 10위 안에 올랐다. 누리꾼들은 "또 조 의원님이 큰 웃음을 주셨다"고 자신들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했다.

 

국회의원이 시민들에게 웃음을 주는 건 나쁜 일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 정치에서는 무척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조 의원이 주는 웃음은 희망, 기쁨, 환희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조롱이나 비아냥에 가까운,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광경을 목격했을 때 터지는 실소와 비슷하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정도를 넘으면 주변을 썰렁하게 만든다. 교원단체 소속 교사 명단 공개에서 비롯된 '조전혁 쇼'는 이제 마무리될 때가 됐다. 결자해지 차원에서 조 의원이 약 7개월 동안 이어진 논란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또 큰 웃음 주신 조전혁 의원, 이젠 보기 민망하다

 

헌법재판관 9명도 소수의견 없이 전원일치로 "특정 정보를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행위는 헌법과 법률이 국회의원에게 독자적으로 부여한 권능이라고 볼 수 없다"며 "이 같은 행위가 제한된다고 해서 국회의원의 법률안 제출권과 심의표결권 등 권한 행사가 제한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결정했다.

 

사실 헌재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지난 봄 서울남부지법이 이미 "각급 학교 교원의 교원단체 가입 현황 자료를 인터넷에 공시하거나 언론에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결정했다. 법원의 권위를 빌리지 않더라도 타인의 개인 정보를 함부로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건 상식이다.

 

그럼에도 조 의원은 상식은 물론이고 법도 따르지 않았다. 대신 일명 '조전혁 콘서트'라 불리는 행사를 통해 법원이 부과한 벌금을 채우려 했고, '반전교조'라는 자신의 철학을 널리 퍼뜨리려 했다. 하지만 '조전혁 콘서트' 역시 KBS <개그 콘서트> 못지않은 큰 웃음을 남기고 일종의 해프닝으로 정리됐다.

 

조 의원의 '반전교조' 기치는 정치적으로도 이미 심판을 받았다. 조 의원과 한나라당은 '반전교조'를 핵심 의제로 내세워 6.2지방선거를 치렀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조 의원은 지난 6월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전교조와 원수진 일도 없는데, 내가 무슨 '전교조 저격수'인가"라며 "내 활동에 전교조가 반대를 많이 해서 '전교조 저격수'로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조 의원에게 필요한 건 이벤트가 아니라 성찰

 

그리고 조 의원은 "교육문제에 관해서 우리 사회 좌파와 우파는 객관적 데이터가 아닌 자기 믿음에 기초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나는 앞으로도 많은 객관적인 데이터를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종교처럼 믿음에 기초해 교육문제를 다뤄선 안 된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그렇다면 조 의원 역시 헌재 결정까지 내려진 이 시점에서 '혹시 내가 반전교조 주술에 빠져 있는 건 아닌가'하고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전교조는 헌재 결정 이후 논평을 통해 "국회의원이라 하더라도 직무행위와 상관없는 불법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재차 입증해 준 지극히 당연한 결정"이라며 "조 의원은 지금이라도 자신의 불법행위에 대해 40만 교원들에게 진실로 사과하는 책임 있는 국회의원의 자세를 보여주기 바란다"고 조 의원의 공개 사과를 촉구했다.

 

전교조 지적대로, 사실 이쯤되면 조 의원이 고개 숙여 사과를 하는 게 맞다. 그에게 필요한 건 '돼지 저금통 퍼포먼스'나 '조전혁 콘서트' 같은 이벤트가 아니다. 다른 무엇보다 성찰과 반성이 필요해 보이고, 그것은 직무와 관련 없이 누구에게나 중요하고 좋은 일이다.

 

억울하다고? '조전혁 개그' 보는 국민도 억울하다

 

그동안 조 의원 때문에 많이 웃었다. 하지만 상대방은 진지한데 이쪽에서 계속 웃는 것도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조 의원은 '조전혁 콘서트'가 무산된 뒤 이런 소감을 밝혔다.

 

"기분이 좋을 수가 있나. 김제동씨가 진짜 억울하겠다는 느낌이 들더라. 난 내가 당한 것도 싫지만, 똑같은 방법으로 남이 당하는 것도 싫다. (중략) 내 홈페이지에도 비난이 융단 폭격처럼 쏟아졌는데, 자유민주주의에서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조 의원도 이제 시민들을 그런 식으로 웃기지 않았으면 한다. 민망한 모습을 계속 연출하는 것도 일종의 민폐이고 국민을 억울하게 만드는 일이다. 2010년 상반기 동안 계속된 '조전혁 쇼'는 이제 정리돼야 한다. 조 의원이 개그하려고 국회에 입성한 것도 아니잖나. 조 의원이 좋은 정치인으로 거듭나 다른 식으로 웃음을 주는 날을 기다려본다.

 

그리고 미납한 벌금 1억 4000여 만원을 조속히 납부하는 것도 '쇼'를 빨리 끝내는 좋은 방법 중 하나라는 걸 말해두고 싶다.


태그:#조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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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랭은 고양이를, 저는 개를 업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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