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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5일부터 8월1일까지 150일 동안 총 151회 공연. 월요일을 제외한 평일 오후 7시30분, 토요일 오후 3시30분과 7시30분, 일요일 오후 3시30분. 날마다 관객을 기다리고, 날마다 공연이 진행되던 곳.

 

그 150일의 대장정이 곧 마무리된다. 이제 남은 공연은 4회뿐. 극단 재인촌 우듬지의 사랑연작 두 번째 작품 <화, 그것은 火 또는 花>가 도내 연극계에 많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짧게는 단 한 번, 길어야 3주 정도의 소극장 공연이 전부인 전북에서 우듬지는 지난해 <두 여자>라는 작품으로 도내 최초 150일의 소극장 장기공연을 선보였다. 올해는 그 장기공연 두 번째 무대인 셈이다.

 

"장기공연에 대해 다들 부정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번쯤 도전해 볼 만하다 생각했죠. 짧고 굵게만 하는 것보다 얇아도 길게 하는 공연이 지역에도 필요했으니까요. 연극이 항상 4월이나 9월과 같은 특정 시점에서만 보는 게 아니라, 보고 싶을 때 언제든 찾아가면 볼 수 있는 그런 시스템도 필요하다고 봤던 거죠. 우리 극단은 장기 공연에 필요한 소속 배우, 자체 희곡, 자체 소극장 등의 조건을 충족하고 있어 도전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경험을 쌓았다. 지난해에 관객이 없어 공연하지 못한 날이 10여 일, 단 두 명의 관객만으로 공연한 날도 7일 정도 된다. 짧게 공연하는 여타의 극단에서 관객이 이 정도라면 실패라고 단정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듬지는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물론 유료관객으로 극장을 꽉 채운 날도 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장기공연은 관객수를 예측한다는 게 쉽지 않다. 지인들, 관계자들, 관극회원들도 한계가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공연을 진행하면서 관객이 몰리는 시점과 그렇지 않은 시점에 대한, 그리고 그 이유 등에 대한 경험치는 높아지고 있다. 다 자산으로 여긴다.

 

"저 멀리 거제도에 살던 분이 전주와서 두 번이나 저희 공연을 보고 전주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우듬지 소극장을 소개했다는 무쟈게 행복한 이야기, 공연을 보고 며칠 만에 자신의 모임 구성원을 모두 데리고 온 정말 고마운 선생님 이야기, 그리고 그렇게 벌써 3번, 2번씩 관람하는 분들이 전해주시는 행복한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 속에 우리가 공연해야하는 이유가 담겨있다고 봅니다."

 

한 가지 더. 우듬지의 올해 장기공연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은 일체의 지원금 없이 공연을 진행했다는 데 있다. 연극단체들은 다른 문화예술단체들과 마찬가지로 자체공연수입만으로는 유지가 힘들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지원금을 받는다. 그 대표적인 것이 문화예술진흥기금 지원사업과 무대공연작품 제작지원사업이다.

 

현재 전북연극협회에는 15개의 극단이 가입돼 있다. 물론 우듬지도 소속단체다. 이 중 1년에 1회 이상 공연하는 단체는 모두 액수가 크던 작던 간에 어떤 형태로든 지원금을 받고 있다. 협회에 소속되지 않은 단체의 경우도 예술창작역량강화 등의 명목으로 지원금을 받는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도내에서는, 그리고 전국적으로도 그 실례가 드믈 정도의 장기공연을 펼치고 있는 재인촌 우듬지의 경우 올해 지원금이 전무한 상태다. 이유는 모른다. 다만 그게 현실이 된 만큼 최선을 다할 뿐이다.

 

"물론 빚이 늘었죠. 하지만 그 덕에 배운 것도 많았고, 작금의 현실을 타계할 수 있는 다양한 대안을 고려해 보고 있습니다. 먼저, 150일이라는 장기공연에 대한 실험은 올해까지만 하고 그만둘 예정입니다. 내년에는 길어도 3개월 정도만 하려고요. 그리고 타지역 공연을 적극적으로 늘릴 생각입니다. 현재는 서울과 대구지역을 고려 중이며, 현지 관계자들을 통해 우리 연극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고 있습니다. 또한 소극장을 소유한 타지역 연극단체와 연계해 소극장 단위의 교류전도 계획 중입니다.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자립할 수 있는 연극단체를 만들어보는 것이 꿈입니다."

 

한편 이번 작품 <화, 그것은 火 또는 花>는 인조와 소현세자의 이야기다. 인조는 반정을 통해 신하들이 세운 왕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선택한 신하들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사랑하던 아들이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갈 적에는 그렇게 서러워했지만, 8년의 시간이 흐른 뒤 인조는 돌아온 세자를 죽인다. 그가 왕으로 남기 위해서.

 

그러나 극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인조가 권력을 위해 소현세자를 독살했다는 것에 있지 않다. 부자간의 천륜마저 저버리게 하는 권력의 역학관계가 주제다. 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저승길을 가던 아들이 돌아와 묻는다. "그러니 아버지시여! 이 아들을 왜 죽이셨답니까? 왜 그렇게 살갑게 대하시던 아들을 죽이셨답니까?"라고.

 

왕은 아버지고, 세자는 아들일 뿐이다. 그로인해 인조와 소현세자라는 시대극의 형태를 빌리고 있지만, 이번 작품의 메시지는 현재를 살고 있는 모든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가슴에 남는다.

 

"참, 아직도 이번 작품 안 보셨어요? 보러오세요. 정말 보실 만해요. 이번 공연을 놓치면 다음 공연은 2013년 9월5일까지 기다려야 한답니다. 빨리 보러오세요. 며칠 남지 않았답니다. 어서어서 공연 보러 오세요."

 

공연은 이번 주말까지다. 문의 282-1033.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주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재인촌 우듬지, #우듬지소극장,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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