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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상주해수욕장
▲ 체험학습 남해 상주해수욕장
ⓒ 박병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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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여름 방학 때 바다에 갈까?"
"예에!!!!!!!!!!!!!"

고1 학급원 36명이 우렁찬 함성으로 화답한 게 지난 5월이었습니다. 아마도 습관인 모양입니다. 해마다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일박이일 동안 학급 체험학습을 진행합니다. 몇 해 전만 해도 교감, 교장 선생님이 결재 과정에서 약간의 불안감을 표출하시더니 이제는 아이들과 멋진 추억을 만들어 오라시며 기분 좋게 격려하십니다. 전국의 모든 학교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여행은 지난 7월 24일부터 25일까지 진행했습니다. 올해는 아주 특별한 여행입니다. 아버지 다섯 분이 동행하기 때문입니다. 체험학습 동의서를 받으며 동행하고 싶은 아버지 명단도 받았는데, 다섯 분이나 동행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러니 저는 신바람이 났습니다. 아버지를 한 팀으로 하여 학생들과 체육활동을 할 수 있고, 아버지 특강도 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동행한 아버지들
▲ 체험학습 동행한 아버지들
ⓒ 박병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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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들께 특강을 제안했더니 부담을 느낍니다. 그래서 살아오면서 자식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개인당 10분 정도로 요약해서 들려주십사 부탁하니 흔쾌하게 동의합니다. 마당 깊은 민박집에서 아버지가 들려주실 이야기가 뭘까 궁금해하며 버스에 올랐습니다.

대전에서 경남 남해 상주해수욕장까지 3시간 이상을 달려 민박집에 도착했습니다. 방이 여섯 개인 민박집을 통째로 빌렸습니다. 여섯 명씩 여섯 개 조로 나눠 여장을 풀고 점심 식사를 준비합니다. 조별로 해먹는 점심이므로 협동이 우선입니다. 고1 학생들이 해먹는 밥이 어설프다구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조별로 특색 있는 메뉴를 마련하여 맛나게 먹습니다.

이어서 간단히 준비운동을 하고 해수욕장에 진입합니다. 충청도 내륙에 살면서 바다는 늘 별천지처럼 느껴집니다. 바다 속으로 뛰어드는 제자들의 모습만 보아도 배가 부릅니다. '오길 잘 했다'고 여기는 건 저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반 36명 전원과 아버지 다섯 분도 같은 생각입니다. 해수욕장을 찾은 모든 사람들도 같은 생각이겠지요.

이보다 좋을 순 없다.
▲ 체험학습 이보다 좋을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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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나는데?
▲ 체험학습 폼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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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좋긴 좋다.
▲ 체험학습 바다가 좋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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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잡아 봐라~"
▲ 체험학습 "나 잡아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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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 너무 큰 거 아녀?"
▲ 체험학습 "어어? 너무 큰 거 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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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게 해수욕을 한 후 일정에 맞춰 조별 체육대회를 진행합니다. 미니 축구, 배구, 닭싸움, 씨름을 했습니다. 종목별 우승 조를 정하고 아버지들과 한 판 경기를 벌입니다. 오늘의 부자 경기는 배구와 씨름입니다. 저도 아버지들 편에 끼어 배구 경기를 합니다.

오른쪽 종호가 불리한 상황!
▲ 닭싸움 오른쪽 종호가 불리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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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겼다!"
▲ 체험학습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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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학교 운동장에서 자녀들과 족구를 할 때는 구관이 명관이라고 아버지들이 완승을 했는데, 백사장에서 펼치는 배구는 다른 모양입니다. 세트 스코어 1:1 상황에서 아버지들이 학급 대표들에게 2:1로 패했습니다. 패배를 기념하여(?) 야식을 쏘기로 합니다. 학급원들은 신바람이 났습니다.

"용호상박"
▲ 씨름 "용호상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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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팽팽한 경기~ 결국 무승부!"
▲ 부자 씨름 "워낙 팽팽한 경기~ 결국 무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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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씨름 경기에 돌입합니다. 공식 샅바까지 준비해서 제법 폼이 납니다. 조별 씨름은 정말이지 긴장감이 흘렀습니다. 조별로 각각 세 명씩 2:1 승부를 내기로 했는데, 어찌나 신중하고 격렬하던지 보는 이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습니다. 녀석들 세계에선 분명 그들만의 자존심이 있을 테니까요.

자, 드디어 아버지와 학급 대표간 씨름 대결입니다. 아버지 대표 세 분과 학급 대표 세 명입니다. 결과가 궁금하신가요? 아버지들이 2:1로 패했답니다. 이후 현이랑 현이 아빠가 공식 부자 대결을 벌였는데, 치열한 공방전 끝에 용호상박 무승부로 끝났습니다. 관중들의 환호 속에 백사장 추억 만들기를 마치고 민박집으로 향합니다.

"어휴~ 시원해! 바로 이 맛이야!"
▲ 등목 "어휴~ 시원해! 바로 이 맛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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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욕장에서 반나절이었지만 아이들의 피부색이 시나브로 변했습니다. 벌겋게 그을린 아이들이 속옷만 입은 채 마당에서 등목을 하거나 온몸에 물을 뿌립니다. 저도 동참합니다. 수돗물 고무 호스 끝을 눌러 세차게 물 장난을 합니다. 팬티만 입은 선생이 신기했을까요? 한 녀석이 도둑 촬영을 하고 잽싸게 사라집니다. 그 파일을 찾아서 폐기해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누구더냐! 이 글을 보거들랑 이실직고하거라!) 우리는 그렇게 하나가 되었습니다.

맛나게 저녁을 먹고 모두가 마당에 모였습니다. 아버지들 특강 시간입니다. 첫 번째 강사로 찬영이 아버지가 나섰습니다. '계획을 세워라! 그리고 실천하라!' 원자력 연구소에 근무하는 연구원으로서 우리나라 원자력 관련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녀석들, 내가 수업하는 시간보다 훨씬 진지합니다. 약간 질투도 납니다.

"계획을 세워 실천하거라!"
▲ 아버지 특강 "계획을 세워 실천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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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강사로 현이 아버지가 등장합니다. 시작부터 거창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부보다 친구다! 그리고 목표를 뚜렷하게 세워서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 10년 단위로 계획을 세워 실천하는 삶을 살아라!' 아이들 모두 공감합니다. 특강 실황을 동영상에 담는 준형이의 모습이 아름답게만 느껴집니다.

세 번째 강사는 창섭이 아버지입니다. 이제 마흔 살로 아주 젊은 아빠입니다. '최고는 한 명밖에 될 수 없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아름답다. 최선을 다하다 보면 최고가 될 수 있다. 나는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부끄럽지 않다.' 작은 식당을 운영하며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절대 부끄럽지 않다고 강조하는 창섭이 아버지는 언제나 좋은 결과를 기대하며 열심히 살고 계신답니다. 맞습니다. 지금 우리 모두 그렇게 살고 있잖아요.

"주도권을 잡아 인생을 살아라!"
▲ 아버지 특강 "주도권을 잡아 인생을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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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강사는 준영이 아버지입니다. '인생은 누가 주도권을 잡느냐에 따라 처지는 인생을 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인생을 살 수도 있다. 주도권을 가지고 살아라. 그리고 상대를 배려하는 삶을 살아라. 그리고 소통이 안 되면 폭탄이 터지는 것이다. 모두 함께 소통하며 살자.' 준영이 아버지는 이런 자리를 마련해 준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자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안 계신 어머니들께 박수를 보내자고 하십니다. 민박집 마당 안에 어머니의 눈동자가 가득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강사는 웅재 아버지입니다. '이 세상에 가장 탁월한 선생이 네 분 계신다. 바로 공자, 소크라테스, 석가모니, 예수라는 4대 성인이다. 이 네 사람의 공통 생각은 열심히 살아라! 그리고 저항하라! 이다. 자기 몸을 돌보는 데 연연하지 말고 열심히 저항하고 영혼을 장엄하게 하라! 넋 빠지고 얼 빠진 사람 되지 말고 덕으로 넋을 세워야 한다!' 철학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윤리학을 지도하고 있는 교수로서 아주 적절한 특강을 하셨습니다.

아버지들의 자애와 보이지 않는 덕담까지 아버지들의 특강을 어찌 언어로 요약할 수 있을까요? 마당 깊은 민박집엔 학생, 아버지, 선생이 일체가 되어 교실 밖 체험학습의 꽃이 피어났습니다. 선생 노릇하면서 이만큼 장엄한 광경을 드물게 경험합니다.

그렇게 아버지 특강을 마치고 야간 자유 시간을 이어갑니다. 노래방, 피시방, 놀이동산, 밤 바다 그곳이 어디이든 책임이 따르는 자유를 누려보는 것입니다. 조장들과 문자 메시지를 교신하며 예정보다 늦은 시간에 모두 모여 잠을 청했습니다. 민박집 평상에 몸을 눕힌 저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행복에 젖었습니다. 교실보다 교실 밖이 진정으로 공부하는 공간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이틀째, 우리는 더욱 신나는 자유 시간을 누렸습니다. 오후 3시에 출발하여 6시 30분에 대전으로 도착하기까지 그 누구에게도 문제 한 점 없이 우리는 바다 찾아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고 왔습니다.

바다 찾아 추억 만들기
▲ 체험학습 바다 찾아 추억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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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마치며 담임 교사로서 반성합니다. 제가 아이들에 관해 알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단편적이고 좁다란 것이었는지 깊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이번 체험학습이 없었다면 아이들의 행동 특성을 전혀 모르는 까막눈 담임이었을 것입니다.

은석이는 기타와 앰프를 가지고 왔습니다. 태훈이는 낚싯대를 두 대나 가지고 왔습니다. 이번 체험학습이 아니었다면 은석이가 그렇게 기타를 잘 치는지 어떻게 알았을까요. 방송반 태훈이랑 아침 일찍 갯바위에서 낚시하며 나눈 이야기를 잊을 수 없습니다. 준수의 장기자랑 진행 솜씨, 재희의 노래 실력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교실 안에서 숫기 없다고 판단한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 깊습니다. 교실 밖에서 바라본 아이들에겐 성적도, 등급도 없습니다.

"모두들 수고했습니다."
▲ 무지개 "모두들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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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박이일 체험학습을 마치고 대전에 도착한 순간 하늘에 무지개가 떴습니다. 마치 우리들의 여행을 축하라도 해주듯 말입니다. 함께 했던 우리 반 36명 제자들, 그리고 다섯 분 아버지, 마음으로 응원해주신 교육 가족 여러분! 고맙습니다. 


태그:#체험학습, #남해 상주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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