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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노란부분이 꽃이고, 보라색부분이 꽃받침이다.
▲ 금꿩의다리 노란부분이 꽃이고, 보라색부분이 꽃받침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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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재미가 없어진 것이거나 아니면 여유가 없는 것이거나 혹은 배신을 한 것이거나 셋 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 어쩌면 아닐 수도 있구요. 꽃만 보면 카메라에 담고 그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을 그렇게 좋아했는데, 근래에 들어서 그냥 바라보기만 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들을 잘 담을 수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들을 잘 담지 못하는 이유가 아마도 삶이 재미가 없어진 것이거나 여유가 없는 것이거나 배신을 한 것인 듯 합니다.

소낙비 내린 뒤 고개를 살포시 숙였다.
▲ 금꿩의다리 소낙비 내린 뒤 고개를 살포시 숙였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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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만났습니다. 아, 요즘 이들이 피어나는 계절이구나 생각하니 피기도 전에 숲을 서성이며 걸었던 때도 있었는데 이젠 피어도 핀 줄 모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4대강 사업이 속전속결로 진행되는데 그것하나 막지 못하면서 자연을 사랑한다고 하는 내가 싫었습니다. 자연에 죄진 듯하여, 자연을 팔아먹는 듯하여 감히 그들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냥 그렇게 멀어진 것 같습니다.

작은 꽃몽우리들은 그들의 꿈이다.
▲ 금꿩의다리 작은 꽃몽우리들은 그들의 꿈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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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잠깐 소낙비가 내렸습니다. 소낙비 내린 숲을 바라보았더니만 금꿩의다리가 화들짝 피어있습니다.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듯 꽃망울이 더 많습니다.

아, 누가 봐주지 않아도 그들은 늘 그렇게 피어나고 있다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사실 앞에서 나를 돌아봅니다. 그렇게 살지 못했기 때문에 충분히 꽃도 찾아다니고 담고 글쓰고 모든 일들을 다 하면서 살 수 있었는데 그러질 못했습니다.

이제 피어나기 시작하면 가을까지 피어날 것이다.
▲ 백일홍 이제 피어나기 시작하면 가을까지 피어날 것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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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으로 나를 보기보다는 타인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힘겨워했던 시간 그리고 그것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누가 봐주지 않아도 피어나는 꽃은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물론 아집으로 똘똘 뭉친 삶이라면, 타인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고,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도 봐야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상을 넘어서 오로지 타인의 눈에 비친 자신에만 연연하게 되면 자기가 사라지는 것이지요.

백일홍을 찾아온 손님
▲ 백일홍 백일홍을 찾아온 손님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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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의 날개에는 비바람에 찢겨나가기도 한 상처도 있습니다. 상처가 있다고 날지않는 나비는 없습니다. 날아오르지 못할지라도 끝까지 비상하려고 날갯짓을 하는 것이 나비의 마음입니다.

한 철을 다 살지도 못하는 나비도 이렇게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살아가는데, 그냥 본능이라고 넘겨버리면 우리는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없습니다. 참, 그 '본능'이라는 말이 왜 저속한 언어 중 하나가 되어버렸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 중의 하나인데 말입니다.

하얀나비가 하얀 백일홍을 찾았다.
▲ 백일홍 하얀나비가 하얀 백일홍을 찾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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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본능에 따라 살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자연입니다. 물론, 그네들은 '돕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큰 자연의 질서의 맥락에서 보면 서로 돕고 돕는 관계입니다. 이것을 더불어 삶이라고 하지요. 무슨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잣대가 없어 잔인해 보이지만 오히려 윤리를 말하고 도덕을 말하는 포장된 인간들의 행동보다 훨씬 우위에 았는 그런 삶 말입니다.

아마도 한동안 그들과 거리를 둔 것은 이런 것들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리 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어도 머릿속에서만 맴돌 뿐, 결국 나라는 인간도 그들을 이용해 먹겠다는 생각 외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내게도 자연을 잉여의 대상, 이익창출의 대상으로 보는 개발론자들의 생각이 가득하다는 것, 그것때문에 감히 그들을 사랑한다 말하지 못하게 했고, 그들과 거리를 두고 살아가게 했던 것입니다.

참당귀의 풋풋하고 알싸한 향기를 닮은 수수한 꽃
▲ 참당귀 참당귀의 풋풋하고 알싸한 향기를 닮은 수수한 꽃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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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오랜만에 그들을 바라보다가 카메라에 담고, 그들에게 말을 걸어보았습니다. 그들은 이제서야 자신들을 바라본다고 서운해하지 않습니다. 누가 봐주지 않아도 그냥 그렇게 자기의 삶을 살다가 갑니다. 누군가 자신을 필요로 하면 왜인지 묻지 않고 그냥 줍니다. 그렇게 주다가 자기의 삶이 마감된다고 해도, 그냥 다른 이의 요구를 거절하지 않습니다.

강도 그렇지요. 굴삭기로 파헤치면 파헤져지는 대로 그냥 가만히 있습니다. 앞으로 더 큰 아픔이 있을지라도, 수천 수만 년 유유히 흘러온 세월이 있어도, 그들이 품고 있는 수많은 생명을 보내야해도 그냥 묵묵히 제 몸을 파고드는 아픔앞에서 침묵하고 있습니다. 때론 그들의 침묵이 더 무서운 이유입니다.


태그:#금꿩의다리, #백일홍, #참당귀, #4대강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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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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