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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을(은평구 불광·갈현·구산·대조·역촌·진관동) 선거구는 15·16·17대 총선에서 이재오 한나라당 후보를 내리 3번 당선시켜준 지역이다. 이 후보도 갈현동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했을 뿐 아니라 40년 넘게 산 토박이이기도 해서, 이번 선거 당락과 상관없이 이 후보에겐 '삶의 터전'인 지역이다.

 

'탄핵 역풍'이 거셌던 2004년 17대 총선에서도 이 후보를 당선시켜준 은평을 지역은 4년 뒤인 2008년 4·15총선에선 이재오를 버렸다.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의 일등공신으로, 공천 과정에서 친박근혜계에 대한 무자비한 '사(死)천'을 자행한 것에 대한 지역구민들의 '심판'이 내려졌다는 것이 당시 이 지역 표심에 대한 지배적인 분석이다.

 

다시 2년 3개월 만에 치러지는 국회의원 재선거. 이 후보는 국민권익위원장 직을 내던지고, 여당 유명 정치인들의 지원사격도 사양한 채 한 표를 달라고 유권자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은평을 유권자들은 이재오의 손을 다시 잡아줄까?

 

다른 당의 후보들과 달리, 이 후보가 이 지역의 오랜 토박이라는 점은 분명 강점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은평을 내 모든 지역이 이 후보의 '표밭'은 아니다.

 

지난 17대 총선 득표 자료를 보면, 부재자투표를 제외하고 이 후보가 확고한 우세를 점한 지역은 자택이 있는 구산동과 갈현동, 진관동밖에 없다. 불광동에선 28표, 대조동에선 47표 차이로 겨우 이겼고, 역촌동에선 송미화 후보에게 519표 차로 졌다.

 

 

17대 총선

(2004. 4. 15)

18대 총선

(2008. 4. 9)

5회 전국 지방선거

(2010. 6. 2)

후보

이재오

한나라

송미화

열린우리

득표차

이재오

한나라

문국현

창조한국

득표차

오세훈

한나라

한명숙

민주

득표차

불광동

16062

16034

이 28

10873

14201

문 3328

12203

12943

한 740

갈현동

11150

10113

이 1037

8895

11151

문 2256

9921

10050

한 129

구산동

5847

5289

이 558

5272

6117

문 845

5516

6050

한 134

대조동

6181

6134

이 47

4578

6305

문 1727

5300

6257

한 957

역촌동

8382

8901

송 519

6506

9190

문 2684

7457

8855

한 1398

진관동

5436

4064

이 1372

357

397

문 40

5708

6134

한 426

합계

이 2523

합계

문 10880

합계

한 3784

 

이젠 뉴타운이 된 진관동, 이재오의 '잃어버린 표밭'

 

그러나 이 후보를 확실히 밀어준 지역이 있었으니, 당시 진관내동, 진관외동으로 분리돼 있었던 진관동이었다. 이 지역은 이 후보에게 송 후보보다 1372표 더 많은 표를 줬고, 당시 이 후보의 은평을 지역 전체득표율이 45.3%였는데 이 지역 득표율은 50.9%에 달했다.

 

그런데 18대 총선에서는 이 '표밭'이 사라졌다. 진관동 전반에 걸쳐 진행된 은평뉴타운 때문이었다. 아파트를 짓느라 옛 동네는 철거됐고, 사람들도 떠났다. 17대 총선 당시 선거인명부에 올라간 이 지역 유권자는 1만7395명이었는데, 18대 총선에서 이 지역 유권자는 1703명으로 확 줄었다. 그야말로 유권자가 10분의 1로 줄어든, 어찌 보면 한 동네가 통째로 없어진 상황이었다.

 

각 지역별로 문국현 후보에게 고른 득표를 안겨줬던 18대 총선에서 이 '진관동 변수'는 크게 작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은평뉴타운 후유증은 이번 재선거에서도 그대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사는 사람들이 바뀌었기 때문이다(18대 총선 이후 뉴타운 입주자가 늘어나면서 유권자도 늘었다).

 

주거복지 관련 시민단체인 나눔과 미래는 이 지역 원주민 재정착율을 20% 미만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는 사람들이 바뀐 징후는 지난 6·2지방선거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나타났다. 진관동 유권자들은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에게 45.6%, 한명숙 민주당 후보에게 49.0%의 표를 줬다. 강남권을 제외한 여타 지역의 투표성향과 거의 비슷한 면을 보인 것.

 

은평뉴타운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는 40대 박아무개씨는 "이재오씨가 토박이라는 점은 이곳에서는 어필하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재오 후보의 '진관동 표밭'이 사라진 것이다.

 

'오래된 이웃' 구산동·갈현동, 이재오 손 다시 잡아줄까?

 

그러나 이 후보에겐 구산동이 있다. 이 후보 자신이 오랫동안 거주하고 있고 동네사람들이 모두 이 후보의 이웃주민이기도 한 구산동이다. 18대 총선에서 진관동을 제외한 다른 지역들이 각각 천 단위의 표 차이로 이 후보를 떨어뜨렸을 때, 구산동에선 문 후보와 이 후보의 차이가 845표밖에 안 됐다. 구산동과 붙어 있는 갈현동은 6·2지방선거에서 오세훈(47.1%) 후보와 한명숙 후보(47.7%) 간 득표율 차이가 0.6%포인트로 주변 지역에 비해 한나라당 지지율이 높다는 점이 이 후보에게 희망적이다.

 

불광동·대조동·역촌동에서 이 후보의 기반이 원래 굳건하지 않았고 진관동은 '새로 생긴 동네'나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오래된 거주지역이자 토박이들의 동네인 구산동과 갈현동이 이 후보가 기대해볼 만한 지역으로 보인다. 이들 지역이 '토박이 이재오'의 손을 다시 잡아 줄지가 이번 선거의 주요 관전 포인트인 셈이다.

 

 

22일 구산동에서 만난 60대 김아무개 슈퍼마켓 사장은 "이번에도 이재오"라고 단언했다. 김 사장은 "다른 사람은 모르고 이재오가 어떤 사람인지는 내가 잘 안다"고 말했다. 

 

이웃들의 민심에 대해 김 사장은 "저번(18대 총선)엔 이재오가 박근혜한테 잘못한 것이 많아 노인네들이 확 틀어졌는데, 지금 박근혜 인기가 예전 같지 않아서 다시 이재오에게로 돌아서는 표들이 많지 않을까 한다"고 예측했다.

 

지역 발전 때문에 이재오 후보를 찍겠다는 이도 있었다. 갈현동에서 마주친 40대 주부 최아무개씨는 "우리 동네는 너무 오래돼서 개발을 좀 해야 한다"면서 이 후보 지지 의사를 밝혔다. 그의 요지는 '국민권익위원장을 하면서 전국의 민원을 해결하고 다닌 사람이 우리 동네 국회의원을 하면 좋은 것을 많이 해주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웃인 이 후보에게 탐탁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도 있었다. 구산동에 사는 50대 김아무개씨는 "선거를 혼자 하겠다고 큰소리쳤는데 믿을 게 못 되더라, 유세차도 계속 돌아다니고 그러대"라고 실망감을 표시했다.

 

실제 이 후보의 선거 유세 차량은 은평을 지역을 돌아다니고 있고, 선거운동원들도 조직돼 활동하고 있다. 다만 이 후보가 이 차를 이용해 유세를 하는 것은 아니고, 선거운동원이 차에서 지지연설을 하는 방식으로 유세 차량이 운용되고 있다. 중앙당의 지원을 받지 않고 낮은 자세로 선거운동을 하겠다는 취지였지만, 이 후보가 '나 홀로 선거운동'을 너무 강조하는 바람에 빚어진 역효과인 셈이다.

 

"MB 심판은 트렌드 아니에요?... '한명숙 단일화'처럼 해줘야"

 

번화한 연신내역이나 불광역 근처에서는 젊은이들을 많이 마주쳤다. "별로 관심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20대 남성은 "'MB 심판'은 트렌드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너무 잘못한 것이 많아 얘기하기도 귀찮다, 그러나 이명박을 대통령 만든 사람이 이재오라는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불광역 인근에서 만난 40대 상인 김아무개씨는 "4대강 사업은 안 하는 게 좋겠지만 이 지역에서 외칠 구호는 아닌 것 같다, 우리 지역 숙원 사업도 많다"며 "저번에 문국현 찍었는데, 좀 실망스럽기도 해서 지금은 이재오를 찍는 쪽으로 기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이재오씨가 요새 낮은 자세로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걸 봤는데, 사실 국회에 간 뒤에도 그럴지 좀 의심되긴 한다, 아직 잘 모르겠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야권 후보 단일화에 대한 요구는 거셌다. 'MB 심판'의 대표선수를 정하면 투표가 더 쉬워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야당 후보들의 유세 차량에서 후보자들을 홍보하는 노래가 우렁차게 울려 퍼지고 있는 연신내역 인근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30대 남성은 "(지방선거 땐) 한명숙으로 단일화가 돼서 마음을 쉽게 정했는데, 야당 후보가 많고 누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겠다"며 "제발 좀 간단하게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후보 단일화에 대한 바람을 나타냈다.

 

불광역 부근에서 만난 대학생 장아무개씨는 "이번에 투표를 반드시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후보가 총리(서리)였다고 하는데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다, 야당들이 한 후보를 정해서 찍어달라고 하면 주저 없이 그 후보를 찍겠다"고 장담했다.

 

22일까지 진행된 각종 언론의 여론조사나 각 정당들의 자체 여론조사에서는 이재오 후보의 지지율이 40%를 넘어 50%에 육박, 2·3위 후보의 것을 합친 것보다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민주당·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은 여론조사 방식을 통해 25일까지 후보를 단일화하자는 원칙에 합의한 상태다. 야당이 '이재오의 귀환'을 막을 방법은 후보 단일화밖에 없어 보인다.

 


태그:#은평을 재선거, #이재오, #진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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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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