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재오 전 국민권익위원장 등이 서울도시철도공사(사장 음성직, 아래 도시철도공사)가 전동차를 자체 제작할 수 있도록 한 조례 개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지난 제7대 서울시의회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내용의 회의록이 나왔다. 하지만 당시 외압 의혹을 제기했던 인사는 "외부 압력이 있었는지 떠보기 위한 발언이었다"고 해명하고 있으며, 이재오 전 국민권익위원장도 이를 부인하고 있다.

 

<오마이뉴스>가 최근 입수한 제221회 서울시의회 교통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지난 3월 25일 열린 철도공사 업무보고 당시 최홍우 교통위원장은 "이재오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한테 직접 전화를 받았다"며 "김상범 (서울시 도시교통)본부장께서 청와대 민정수석까지 들먹이면서 (조례 개정을 추진)하는 것은 얼굴이 불쾌해질 정도"라고 말했다.

 

이는 최 위원장이 이른바 '윗선'으로부터 서울시와 도시철도공사가 추진하고 있는 전동차 자체 제작 관련 조례 개정안을 통과시키라는 내용의 '전화 압력'을 받았다는 것으로 해석돼 논란이 예상된다.

 

실제 이 조례 개정안은 최 위원장의 '폭로'가 있은 다음날인 26일 교통위원회에서 무기명 표결 끝에 가결됐고, 지난 4월 1일 본회의에서도 통과됐다. 앞서 도시철도공사는 2012년 개통 예정인 지하철 7호선 연장구간(온수~부천~부평구청)에 도시철도공사가 자체 제작한 차량을 투입하겠다며 조례 개정을 추진해왔다.

 

인천시·부천시, 공개 반대... 차량 자체 제작 '안전성' 논란

 

지하철 7호선 연장구간은 건설비 1조 3천억원의 97%(국비 제외)를 경기도 부천시와 인천시가 부담하고, 도시철도공사에게 차량(전동차) 구매를 포함한 건설·운행 업무를 위탁하여 진행중인 사업이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음성직 도시철도공사 사장은 7호선 연장구간에 구매한 차량을 투입하는 대신, 도시철도공사가 자체 제작·조립한 신형 전동차 56량(8량 7편성)을 투입해 운영하는 것을 목표로 차량기술단을 만들었다. 전동차 자체 제작·조립과 관련한 사업규모는 670억 원대에 이른다.

 

그러자 서울시의회 교통위원회는 "새로운 사업을 하려면 법제가 완비 되어야 한다"(부위원장 김현기)며 제동을 걸었다. 특히 7호선 연장구간 사업의 공동시행자인 인천시와 부천시는 전동차 제작 경험이 전무한 도시철도공사가 전동차를 제작해 투입하겠다는 사업 계획을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전동차 안전 문제 및 사업기간 지연 등이 이유였다.

 

그러나 도시철도공사측은 "자체 제작하는 전동차도 국가가 공인한 인증시험기관의 안전성 검증절차를 거쳐 납품하기 때문에 안정성 문제는 없다"고 주장했다. 도시철도공사측은 또 "조례개정을 통해 철도차량의 제작사업을 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는 국토해양부의 의견서까지 받아, 본격적인 조례 개정에 나섰다.

 

이후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3월 16일 도시철도공사가 차량을 자체 제작할 수 있도록 한 '서울시 도시철도공사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개정조례안'을 서울시의회에 제출했다.

 

최홍우 '외압' 폭로 후 무기명 표결 끝에 조례 개정안 원안 통과

 

하지만 최홍우 위원장을 비롯한 교통위원회 위원들은 지속적으로 도시철도공사의 전동차 자체 제작계획에 대한 법적 타당성, 안전성, 민간영역 침범 등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런 와중에 최홍우 위원장의 외압 의혹 발언이 불거진 것이다.

 

최홍우 위원장은 지난 3월 25일 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청와대 민정수석께서 도시철도(공사)에서 하는 일이 그렇게 저기(나쁜) 한 일이 아니니까, '좀 해 달라' 그렇게 했다"면서 "이재오 최고위원님한테(으로부터) 직접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의회 의원들의 저기를(업무를) 자꾸 위에서, 옆에서 전화를 하게 되면… 뭔가 잘못 되는 것 같다"며 "김상범 (서울시 도시교통)본부장께서 청와대 민정수석까지 들먹이면서 하는 것은 얼굴이 불쾌해질 정도"라고 토로했다.

 

당시 회의록에 기록된 최홍우 위원장 등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

 

위원장 최홍우 "오늘 아침에, 방금 지금 김상범 본부장께서, 속기를 해도 좋겠습니다. '청와대민정수석'께서 도시철도(공사)에서 하는 일이 그렇게 저기 한 일이 아니니까 '좀 해 달라' 그렇게 했는데, 혹시 여기 앉아계신 간부 중에서 '이재오 (전) 최고위원님'한테 전화하신 분 계십니까? 제가 '이재오 (전) 최고위원님'한테 직접 전화를 받았습니다.

 

의회 의원들의 저기를 자꾸 위에서 옆에서 전화를 하게 되면…. 뭔가 잘못 되는 것 같아요, 지금. 저희들은 저희들 나름대로 서울시민의 교통편익을 위하고 도시철도를 위해서 일하는 의원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김상범 본부장께서 '청와대민정수석'까지 들먹이면서 하는 것은 얼굴이 불쾌해질 정도입니다, 지금. 혹시 (철도공사) R&D본부장님 전화 안 하셨어요?

 

R&D본부장 최정균 "전화한 적 없습니다."

위원장 최홍우 "알겠습니다. 들어가세요. 민감한 사항을 자꾸, 위원님들이 도시철도공사 쪽으로 좋은 방향으로 설정하려고 하는데, 자꾸 개인적인 얘기를 전화하고 하면 안 되지요."

 

그러나 서울시의회가 인터넷 등을 통해 외부로 공개하고 있는 당시 회의록에는 최 위원장의 발언 중 '청와대 민정수석', '이재오 최고위원님' 등 외압의 '윗선'으로 지목한 단어가 공란으로 처리돼 있다. 서울시의회측은 "당시 위원들의 요청에 따라 (속기록) 원본은 보존용으로만 보관하고, 외부 공개용은 공란으로 처리한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당시 설로만 떠돌던 외압 의혹과 관련 최 위원장이 외압의 주체로 이재오 전 권익위원장 등을 지목했다는 사실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결국 도시철도공사가 추진한 조례 개정안은 최 위원장의 '외압' 발언이 나온 다음날(3월 26일) 전체회의에 안건으로 상정됐고, 무기명 표결까지 실시하는 진통 끝에 찬성 6표, 반대 4표로 원안 통과됐다. 본회의도 아닌 상임위에서, 인사 문제가 아닌 일반 조례 개정안을 두고 무기명 투표를 실시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표결에 앞서 교통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이 "최근 공기업이 핵심사업을 제외하고는 아웃소싱을 통하여 조직 슬림화와 경영효율화에 나서고 있고, 도시철도공사도 최근에 자회사(서울도시철도엔지니어링(주))를 설립하여 조직 축소에 나섰던 점을 고려할 때 공사가 '전동차 조립·제작'사업을 새롭게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는 면밀한 검토와 종합적인 판단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는 '검토보고'를 냈지만 소용이 없었다.

 

또한 윤기성 위원 등이 "전동차 제작의 타당성 여부 및 그 안전성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며 조례 개정안 보류 동의안을 냈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조례 개정안은 지난 4월 1일 서울시의회 전체회의에서 재석의원 61명 중 찬성 55명, 반대 1명, 기권 5명으로 가결됐다.

 

이와 관련 윤기성 전 시의원은 지난 22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상임위 전날(3월24일)만 해도 도시철도공사에서 너무 방대한 사업을 진행한다고 해서 최 위원장을 비롯한 위원 대부분이 반대를 했다"며 "어떤 외압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갑작스레 표결 당일날 모두들 마음이 변했고, 그래서 저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또 "당시 조례 개정안은 무기명 투표로 할 이유가 없었는데, 무기명 투표로 한 것 자체가 이상했다"며 "(위원들이) 서울시 집행부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최홍우 "외부 압력 있는지 떠보려고 공갈 쳐 본 것"

이재오 "최홍우에게 직접 전화를 건 사실이 없다"

 

최홍우 전 시의원(전 교통위원장)도 당시 회의록에 기록된 자신의 발언을 모두 인정했다. 그러나 최홍우 전 의원은 "사실 이재오 (전) 최고위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적은 없다"며 "(당시 발언은) 제가 오버를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최 전 의원은 또 "음성직 도시철도공사 사장이 과거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대중교통정책보좌관을 했다"며 "하도 '(음 사장이) 이명박의 사람이다'하니까, 내가 떠보려고 공갈 한번 쳐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음성직 사장이 조례 개정안 통과를 위해 '외부의 권력'을 동원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거듭 "(조례 개정안 때문에) 내가 실제 외압을 받은 적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공식 회의 석상에서 '거짓말'을 하고, 또 그것을 굳이 '속기를 해도 좋겠습니다'라며 회의록에 남기는 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이냐"는 질문에는 "지금 생각해보면 잘 못 한 것 같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그는 오히려 "처음부터 도시철도공사에서 차량을 만든다는 것이 너무 생소했기 때문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며 "(조례 개정안이 통과된) 지금 생각해봐도 그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다, 운영이나 잘 할 일이지"라고 말했다.

 

당시 최 전 의원으로부터 "이재오 최고위원한테 전화하지 않았느냐"고 추궁을 받았던 최정균 전 철도공사 R&D 본부장은 "최 위원장에게 '당사자가 듣지도 않은 얘기를 나한테 물어보면 어떻게 하느냐'며 화를 냈던 기억이 난다"며 "이재오 의원이나 한나라당이 조례 개정안 통과를 도와주려고 했다는 것은 납득이 안 가는 얘기"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재오 전 권익위원장도 "최홍우에게 직접 전화를 건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고, 이 전 위원장의 한 측근이 전했다. 이 측근은 또 "당시는 권익위원장으로서 한참 조심해야 할 때인데, 그럴리가 있느냐"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또 다른 측근도 "최 위원장이 속기록에 남겨질 만큼 실명을 거론했다면 이유가 있겠지만, 최 위원장이 누군지도 잘 모르겠고, 이 전 권익위원장과 서울시 조례가 무슨 연관이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최 전 의원이 언급한 김상범 전 본부장 역시 "회의록에 내 이름이 나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언급된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한 관계자도 "지방공사가 추진하는 조례 개정안 하나 때문에 청와대가 나섰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외압은) 전혀 사실 무근"이라고 말했다.


태그:#이재오, #서울시도시철도공사, #서울시의회, #청와대, #외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