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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장혜원팀장, 카자흐스탄의 신라리사씨, 네팔의 쿠마리씨, 베트남의 진티마이안씨, 중국의 맹홍자씨, 일본의 가즈요씨
 왼쪽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장혜원팀장, 카자흐스탄의 신라리사씨, 네팔의 쿠마리씨, 베트남의 진티마이안씨, 중국의 맹홍자씨, 일본의 가즈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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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코시안' 등의 말이 한국사회에 깊숙이 들어온 지금 이들의 삶을 조명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정부에서도 점차적으로 관심을 갖고, 지역사회에서도 이들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들 스스로 자립하려는 의지가 돋보이는 곳이 있다. 부산시 남구 문현동에 위치한 아시아공동체학교.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곳은 부산지역 다문화가구 자녀를 위한 대안학교일 뿐만 아니라 이들과 함께 색다른 배움의 기회를 원하는 아이들이 찾는 열린 배움터다. 장마가 한창이던 무더운 여름날,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던 쿠마리, 가즈요, 잔티마이안, 맹홍자, 라리사 선생님을 만나 다양한 아시아 문화의 한 가운데에 서 있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이들은 사단법인 아시아공동체에 소속되어 다방면으로 활약 중이다. 아시아공동체는 2007년 1월 12일 부산광역시로부터 어린이, 청소년 교육을 위한 비영리법인으로 인가받았으며, 다문화가족 자녀들의 교육과 다문화가족의 안정적인 사회정착을 돕기 위해 설립되었다. 이곳에서는 지난 2005년부터 체계적으로 다문화 지원에 힘써왔다. 통번역사업을 시작한 것은 2008년 사회적 기업으로 구축을 시작하면서부터다.

문현동 1003번지의 기적

2006년 9월 부산 남구 문현동 한 곳에 아시아공동체학교는 지난해 초 구조 변경 공사 때문에 남구 대연동의 한 사무실로 옮겼다가 지역사회 도움으로 지난 3월 옛 배정초등학교 건물에 번듯하게 자리 잡게 됐다.

그러나 후원금으로 살림을 꾸려나가는 이곳으로서는 폐교된 지 몇 해가 지난 학교의 시설에서 아이들에게 포근한 공간을 제공하기에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다. 다행히 현대건설, 남해해양경찰청, 부산은행, 한국전력, 한국화약 등에서 적지 않은 도움의 손길이 있었고 지금은 아이들이 마음껏 배움을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됐다.

아시아공동체의 누리집에는 자원봉사를 문의하는 사람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다. 영남권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2천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가 다녀갔다. 주변 사람들은 이곳을 일컬어 '문현동 1003번지의 기적'이라는 근사한 이름을 붙여주기도 했다.

여러 번의 이전 끝에 제 모습을 갖추게 된 아시아공동체학교의 다문화가구 아이들에게는 무엇보다 마음 놓고 뛰어놀 수 있는 드넓은 운동장이 생긴 것이 가장 큰 기쁨이다. 학교 측도 아이들에게 희망찬 공간을 선물하게 돼 그 어느 때보다 기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얼마 전에는 동아일보와 LG가 여성가족부의 후원으로 올해 제정한 'LG와 함께하는 동아 다문화상(賞)'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한국 특유의 '우리' 문화에 익숙해지다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 다섯 선생님들은 아시아문화가정의 중추역할을 담당하면서도 아시아공동체학교, 아시아 커뮤니티 통번역센터에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들은 한국에서 오랜 생활을 하다 보니 한국어 실력도 이미 한국인과 크게 구분되지 않을 정도다. 타국에서 한국으로 와서 생활하는 심정은 어떨까. 초·중학생부터 어엿한 대학생 자녀까지 둔 학부모로서 그들은 이미 한국사회의 내면에 깊숙이 동화되어 있었다.

       
맹홍자씨는 한국어에 능통해서 처음보는이들은 중국인인줄 모르고, 자신도 굳이 밝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맹홍자씨는 한국어에 능통해서 처음보는이들은 중국인인줄 모르고, 자신도 굳이 밝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 진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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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온 지 오래되어 이미 현지인처럼 한국어를 구사하는 맹홍자씨는 한국인들의 고유한 성향에 대해서도 깊이 알고 있었다. 그녀는 "'우리'를 중시하는 것이 한국인의 오랜 관습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자기 자신을 우선으로 하지만 한국에서는 '우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한국문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풀어놨다.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다니고 있는 딸이 치과의사가 되기를 바란다는 그녀는 한국의 독특한 점으로 의료제도를 꼽았다. 중국은 한 병원 안에 양의․한의가 함께 있지만 한국은 병원이 대부분 따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 한국의 기업문화 역시 그녀에게는 낯설게 느껴졌다. 맹홍자씨는 "중국에서는 계급은 있지만 모두 평등하다"며 한국의 수직적인 서열 구조에 대해 의문을 나타내기도 했다.

한국의 이러한 독특한 문화를 대부분 이해하는 그녀이지만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다. 한국인이 타 아시아 국가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 어린 시선이 바로 그것이다. 맹홍자씨는 "한국인은 서양의 문화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반면, 동남아인들에게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그녀는 굳이 자신이 중국 출신이라는 것을 밝히려고 하지 않게 됐다고 한다. "내 아이가 똑같은 잘못을 해도, 한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게 될까봐 걱정되어 일부러 숨겨야 했던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다문화'라는 말, 한국에만 있는거 아세요?"

맹홍자씨의 말은 틀린 점이 없다. 실제로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은 인종 역 차별을 일상생활에서 터부시하고 있다. 예를 들면 백인이 길을 물어보면 친절하게 가르쳐주지만, 피부색이 검은 사람이 말이라도 걸어온다면 못 들은 체 지나기 십상인 것이 사실이다. 우리도 해외에 나가면 외국이라는 것을 잊게 되는 모양이다. "외국은 여러 민족과 다양한 인종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살아서 특별히 다문화라는 말을 쓰지 않는데, 유독 한국만이 단일민족이나 한민족을 강조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맹홍자씨의 말에서 한국인이 갖고 있는 잘못된 시각이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과제임을 알 수 있었다.

오랜 한국에서의 생활이 맹홍자씨에게 쉽지만은 않았을 터. 그러나 여자이기보다는 아이들의 어머니로서 그녀는 "큰아이는 공부를 잘 하는 편이라 걱정이 없지만, 작은 아이는 그저 몸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랄 뿐"이라며 여느 한국의 주부 못지않은 내공을 자랑했다.

"투박하고 거친 부산 말투, 이젠 친숙해져"

카자흐스탄에서 온 고려인3세 신라리사씨, 어려보이는 동안이지만 올해 43세로 대학생 자녀가 있다.
 카자흐스탄에서 온 고려인3세 신라리사씨, 어려보이는 동안이지만 올해 43세로 대학생 자녀가 있다.
ⓒ 진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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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는 "다른 문화는 있을지언정, 틀린 문화는 없다"는 것이다. 카자흐스탄 출신의 라리사 씨는 문화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풀어놓았다. 그녀는 "우리나라뿐 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 다양한 그들만의 문화가 있다"며 "하지만 분명한 것은 수많은 문화가 존재하지만 어느 것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생인 그녀의 자녀가 국제통상학을 전공하며 국제변호사가 되기를 꿈꾸는 것도 그녀의 확고한 교육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 온 가즈요씨는 처음 부산에 왔을 때의 느낌에 대해 풀어놨다. 그녀에게 가장 먼저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비교적 거친 부산 말투였다. 하지만 그녀에게 이것은 부산이 지닌 고장의 특생일 뿐 단점은 아니었다. 대한민국 고유의 지방색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그녀는 "자녀들에게도 열린 교육을 하고자 꼭 무엇이 되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며 무엇보다도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함을 역설했다.

남편 형제들이 모두 일본여성과 결혼했다는 특별한인연을 들려주는 후나코시 가즈요씨.
 남편 형제들이 모두 일본여성과 결혼했다는 특별한인연을 들려주는 후나코시 가즈요씨.
ⓒ 진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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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홍자씨와 마찬가지로 가즈요씨도 '다문화'라는 단어 자체에도 개선되어야 할 점이 있다고 밝혔다. 그녀는 "원래의 뜻을 생각한다면 지구촌 한 형제를 나타내는 좋은 말이겠지만, 사실 내 입장에서는 좋은 말이 아니라 한국과 타국을 차별하는 말같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녀가 바라는 세상은 '다문화'라는 말조차 필요하지 않을 만큼 경계선이 없는 '하나의 세계'일 것이다.

한국에서 살고 있는 것이 기쁘고 감사하다고 말하는 네팔 출신의 쿠마리씨는 시종일관 짓고 있는 미소가 인상 깊었다. 그녀는 "한국에 내가 와서 살고 있는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며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많이 힘들기도 했지만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웠기 때문에 지금의 내 모습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통번역 센터에서 번역 일과 어른들을 대상으로 초보 영어회화 수업도 병행하고 있는 그녀는 부산지방검찰청의 네팔어 통역자원봉사위원으로도 등록되어 있다.

네팔출신의 쿠마리그릉씨, 그녀는 네팔에 대해 잘 모르는 한국인을 위해 네팔문화를 전하는 역할을 한다.
 네팔출신의 쿠마리그릉씨, 그녀는 네팔에 대해 잘 모르는 한국인을 위해 네팔문화를 전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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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한국 국적을 취득했을 정도로 한국인이 다 된 그녀이지만 사회생활 중에 겪게 되는 한국인과의 비교는 그녀를 힘들게 한다. 쿠마리 씨가 생각하는 다문화는 "다양한 문화가 서로 존중하며 어울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쿠마리씨는 "한국어도 열심히 배우고, 스스로 공부도 할 뿐 아니라 한국사회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봉사활동도 하는 등 잘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더 좋은 다문화 사회를 만드는 데에 앞장서겠다는 결의를 나타내기도 했다. 이렇듯 그녀가 밝은 모습을 잃지 않는 것은 한국에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제 2의 오바마, 한국에서 탄생되길

"이주민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의 벽을 허물기를.."
"다 함께 하는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었으면.."
"엄마 나라의 말을 같이 배울 수 있도록 행정적인 뒷받침이 있어준다면.."
"이주민들에게 취업 관련 프로그램이나 적절한 일자리를 구해주길.."
"중·고등학교까지 멘토링을 지원해 줬으면.."

그녀들이 바라는 것들이다. 다양한 나라에서 한국으로 왔지만 그녀들이 한국에 바라는 점은 크게 다르지 않았고, 공통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라리사씨는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주변에 함께 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 신뢰, 관심이다. 아이들은 사회와 국가의 미래이기 때문에 항상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교육부분뿐만 아니라 신체적·정신적인 건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베트남 출신의 잔티마이안씨, 최근 베트남신부의 죽음이 남다르지 않았을 것 같은데, 정작 그 얘긴 꺼낼 수 없었다. 서로의 상처였기에..
 베트남 출신의 잔티마이안씨, 최근 베트남신부의 죽음이 남다르지 않았을 것 같은데, 정작 그 얘긴 꺼낼 수 없었다. 서로의 상처였기에..
ⓒ 진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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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출신의 잔티마이안씨는 12년 전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아는 사람이 없어 문제가 생기더라도 해결하지 못해 답답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일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도 정보를 얻는 방법이 마땅치 않아 좋은 직장을 구하기도 힘들었다.

그녀는 "결혼 후 아이들이 생기고 항상 아이와 남편을 먼저 생각하고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며 "10년, 20년 후 우리 아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잘 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는 굳은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녀들은 모국과 한국의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음에 큰 보람을 느끼며, 앞으로도 더 넓은 분야에서 많은 일을 해 보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자원봉사, 국가자격증 취득, 통·번역 활동, 외국어 수업 등으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그녀들은 이제 점점 한국과의 동거가 익숙해지고 있다.

기자는 잔티마이안씨에게 최근 부산에서 발생했던 베트남 신부의 죽음에 대해서는 차마 묻지 못했다. 어떤 대답이 나올 지 예상 되고도 남았기 때문에.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동서저널8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아시아공동체, #국제결혼, #베트남신부, #다문화가족, #다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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