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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시마지막 바다인 인주면 걸매리 갯벌에서 자취를 감춘지 30년만에 다시 발견된 백합. 백합은(또는 대합으로도 불리는데) 100가지 모양의 무늬가 있다고 해서 이름붙여 졌다고 한다.
 아산시마지막 바다인 인주면 걸매리 갯벌에서 자취를 감춘지 30년만에 다시 발견된 백합. 백합은(또는 대합으로도 불리는데) 100가지 모양의 무늬가 있다고 해서 이름붙여 졌다고 한다.
ⓒ 충남시사 이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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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위에 놓고 백합을 관찰하려는데 갑자기 도끼날 모양의 근육발이 나오더니 모래 속으로 쑥 들어가고 있다.
 갯벌위에 놓고 백합을 관찰하려는데 갑자기 도끼날 모양의 근육발이 나오더니 모래 속으로 쑥 들어가고 있다.
ⓒ 충남시사 이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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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고, 놀랍고, 반가운 것이 눈물까지 핑 돌지 뭐여."


"한 30년도 더 됐지? 한때는 전국에서 대합이 가장 많이 나던 곳이 여기 인주 갯벌이었어. 박 대통령 시절에 아산호 제방 막고 나서부터 조금씩 줄기 시작하더니, 삽교호까지 막고 나니까 금방 씨가 말라버렸지. 요새 다시 바다가 살아나는걸 보니 자연 무서운 걸 새삼 알겄다니까."

30여 년 전에 사라졌던 백합(대합)이 잡힌다는 아산시 인주면 주민의 제보를 받았다. 인주어촌계(계장 박용규)와 공동으로 갯벌생태탐사를 한 지도 어느새 1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인주면을 수십 차례 드나들며 1년 내내 생산되는 각종 해산물을 관찰했다. 그러나 백합이 잡힌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더 놀라운 것은 어민들조차 사라진 것으로 알고 있던 백합이 적지 않은 개체 수를 보이며, 새로운 소득원으로 자리매김할 충분한 가능성까지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백합은 100가지 무늬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얻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새하얀 속살과 뽀얗게 우러나는 국물이 일품인 백합은 씹으면 씹을수록 깊은 향과 단맛이 난다. 백합은 조개 중에서도 최상품으로 분류돼, 부르는 게 값인 귀한 존재다.

"바다 속에서 드러난 광활한 모래 섬"

물이 빠지고 광활하게 펼쳐진 갯벌이 모습을 드러내자 주민들이 ‘대합칼’이라는 장비를 이용해 대합채취에 나섰다.
 물이 빠지고 광활하게 펼쳐진 갯벌이 모습을 드러내자 주민들이 ‘대합칼’이라는 장비를 이용해 대합채취에 나섰다.
ⓒ 충남시사 이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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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길(46), 김동열(55), 안창기(61)씨가 1톤 남짓한 소형선박에 동승했다. 김재길씨가 운전한 배는 10분 가량 달려 바다 한가운데로 나갔다. 그리고 갯벌의 가장 높은 곳에 정박했다.

간조에 맞춰 바닷물이 빠지자 서서히 모래섬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원인은 알 수 없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어디서 떠밀려 오는지 바닷 속 모래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곳 주민들은 평택과 당진을 비롯한 서해안의 갯벌매립 및 각종 콘크리트 구조물이 생기면서 물의 흐름이 바뀌어 나타나는 현상으로 추측하고 있다.

평택과 아산호에 인접한 갯벌은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모래 한 알 섞이지 않은 부드러운 진흙이었다. 반면 당진과 삽교호에 인접한 갯벌은 밟아도 꺼지지 않는 모래와 진흙으로 단단하게 다져져 있어 갯벌에서 움직이기가 한결 수월했다.

물이 완전히 빠지자 수백만평은 됨직한 광활한 갯벌이 모습을 드러냈다. 언제 시작됐는지 여기저기서 "대합이다", "씨알도 참 굵다"라며 흥분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대합은 '대합칼'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잡는다. 대합을 잡는 요령은 철로 만든 'ㄷ'자 모양의 납작한 틀로 모래진흙 속을 긁는데, 이때 '덜컥'하며 뭔가가 걸리는 느낌이 들면 백합이 있는 것이다. 그때 바닥을 헤집으면 매끄럽고 독특한 무늬의 백합을 건져낼 수 있다. 백합의 존재를 어떻게 알았는지 평택과 당진에서 원정 온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게 20여 명이 한데 어우러져 백합사냥을 했다.

세대를 이어가며 꾸준히 번식하는 백합

손톱보다 작은 어린 백합부터 어른 주먹 크기의 백합이 잡혀, 세대를 잇는 번식이 이뤄지고 있음이 확인됐다.
 손톱보다 작은 어린 백합부터 어른 주먹 크기의 백합이 잡혀, 세대를 잇는 번식이 이뤄지고 있음이 확인됐다.
ⓒ 충남시사 이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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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보다 작은 어린 백합부터 어른 주먹 크기의 백합이 잡혀, 세대를 잇는 번식이 이뤄지고 있음이 확인됐다.
 손톱보다 작은 어린 백합부터 어른 주먹 크기의 백합이 잡혀, 세대를 잇는 번식이 이뤄지고 있음이 확인됐다.
ⓒ 충남시사 이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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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보다 작은 어린 백합부터 어른 주먹 크기의 백합이 잡혀, 세대를 잇는 번식이 이뤄지고 있음이 확인됐다.
 손톱보다 작은 어린 백합부터 어른 주먹 크기의 백합이 잡혀, 세대를 잇는 번식이 이뤄지고 있음이 확인됐다.
ⓒ 충남시사 이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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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 찾기를 시작한 지 2시간여 지나자 능숙한 솜씨로 백합을 찾아내던 김동열씨의 망태가 점점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손톱보다도 작은 것부터 밤알 크기, 또 어른 주먹만 한 것까지 크기와 모양도 다양했다. 인주 앞바다 갯벌에는 사람들이 모르는 사이에 백합을 비롯한 각종 생명체들이 세대를 이어 번식했고 꾸준히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주민들에 따르면 최근 10일 이상 꾸준하게 백합채취가 있었다고 한다. 열흘 전에는 누구나 많은 양의 백합을 손쉽게 잡을 수 있었지만 열흘이 지난 현재는 조금씩 채취량이 줄어, 점점 더 깊고 먼 갯벌을 파헤쳐야 잡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백합은 모래펄 표면에서부터 깊이 2m까지 오가며 갯지렁이 같은 환형동물이나 칠게, 농게 등 절지동물과 함께 갯벌에 산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각종 생명체들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채취한 백합을 잠시 모래펄 위에 올려놓자 도끼날처럼 생긴 부드럽고 새하얀 근육발이 나오며 순식간에 모래 속을 푹 헤집고 달아나려 했다. 손으로 조개의 발을 살짝 건드리자 순식간에 뚜껑이 닫히며 꼼짝도 하지 않는다.

백합은 알과 정자를 배출해 바닷물에서 수정한다. 대부분 바닷물고기들이 조개의 알을 좋아하기 때문에 번식기에 조개들이 많이 서식하는 곳으로 모여든다. 이 때문에 조개의 씨앗들은 물고기들에게 대부분 잡아먹히고, 척박한 갯벌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조개는 얼마 안 된다.

그 열악한 환경에서도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백합이 인주 앞바다 갯벌을 다시 생명의 땅으로 되살리고 있다. 

"30년 전만 하더라도 백합이 지천이었는데…"

사진 왼쪽부터 김동열, 김재길, 안창길씨가 선상에서 30여 년전의 풍요롭던 걸매리 갯벌의 상황을 회상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김동열, 김재길, 안창길씨가 선상에서 30여 년전의 풍요롭던 걸매리 갯벌의 상황을 회상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충남시사 이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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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숙한 솜씨로 백합을 찾아내던 김동열씨가 가장 먼저 망태를 채웠다.
 능숙한 솜씨로 백합을 찾아내던 김동열씨가 가장 먼저 망태를 채웠다.
ⓒ 충남시사 이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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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만 하더라도 백합이 지천에 널렸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돈 구경하기가 얼마나 힘들 때였나? 마을사람들은 호미를 들고 매일 갯벌로 나갔다. 수백 명이 갯벌에서 백합 캐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렇게 매일매일 백합을 캐내도 어디서 또 새롭게 나오는지 지금 생각하니 정말 신기한 일이다. 그때는 백합 잡아 살림 꾸리고, 자녀 대학교육까지 시켰다."

김동열씨가 말문을 열었다. 그는 오래 전부터 해왔던 일처럼 능숙하게 백합을 찾아냈다.

"말하면 뭐햐? 아산호와 삽교호를 막기 전까지만 해도 인주 앞바다는 물 반 고기 반이었다니까. 저녁 때면 물고기가 수면위로 튀어 오르는 모습이 소나기 오는 것 같았다고. 먼바다까지 나갈 필요가 없었어. 동네 앞바다에서만 잡아 올려도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만선이었지."

안창기씨가 거들었다. 그렇게 각종 생선과 조개 등을 잡아오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수집상들이 몰려와 떠들썩하게 흥정하며, 장터가 만들어지기도 했단다.

김재길씨의 설명이 이어졌다.

"인주 앞바다는 갯벌 속의 풍부한 유기물과 플랑크톤으로 산란장 역할을 한 것 같다. 그런데 1973년 아산호 둑을 막으면서 황금어장이 무너졌다. 그 많던 물고기와 조개, 각종 해산물들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1979년 삽교호 둑까지 막히자 그 많던 생명체들이 모두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인주 앞바다와 걸매리 갯벌은 죽은 바다, 썩은 갯벌로 인식돼 왔다. 갯벌은 각종 쓰레기와 오물투기장이 돼 버렸다. 수많은 지역 주민들은 대책 없이 일터를 잃어 버렸다. 인주면은 자연환경도 잃고, 일자리도 잃고, 경제적으로도 피폐하게 됐다."

그는 이어 "그런데 더 놀랍고 신기한 것은 30년 전에 모두 멸종된 것으로 알았던 그 물고기와 조개, 각종 해산물이 하나 둘 되돌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인주에 현대자동차나 공단이 들어서면서 주민들에게 어떤 혜택이 돌아왔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 이전의 갯벌은 인주 주민들에게 풍부한 어족자원을 제공하며 생계를 이어 갈 수 있도록 젖줄 역할을 해줬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죽은 갯벌이 되살아나 왕성한 생명력 뿜어내

인주갯벌에는 각종 이름모를 생명체들이 자신만의 독특한 흔적을 남기며, 왕성한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인주갯벌에는 각종 이름모를 생명체들이 자신만의 독특한 흔적을 남기며, 왕성한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 충남시사 이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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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주갯벌에는 각종 이름모를 생명체들이 자신만의 독특한 흔적을 남기며, 왕성한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인주갯벌에는 각종 이름모를 생명체들이 자신만의 독특한 흔적을 남기며, 왕성한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 충남시사 이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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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교호와 아산호를 경계로 자연스럽게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던 인주 앞바다는 손꼽히는 황금어장의 하나였다. 이후 물막이 공사와 함께 급격한 환경변화가 일어나자 다양한 생명체가 살아가던 해양습지 생태계가 큰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갯벌은 그 기능을 상실한 채 사망선고를 받았다.

다시 30여 년이 흘렀다. 아산시가 갯벌을 매립해 산업단지를 조성하면 해양항구도시로 거듭나 고용창출, 세수확대 등 엄청난 지역발전을 가져올 것이라며 갯벌매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인주 앞바다와 걸매리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인주 앞바다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것을 어민들은 먼저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갯벌매립을 반대하며, 겨우 숨쉬기 시작한 갯벌을 두 번 죽일 수 없다고 막아섰다.

지난 1년 어촌계 어민들과 함께 한 생태탐사를 통해 인주면 걸매리 갯벌에는 칠게, 농게, 청게, 참게, 꽃게 등 게 종류부터 숭어, 망둥어, 우럭, 붕장어, 볼락, 실뱀장어 등 생선과 삐쭉이, 소라, 피조개, 가리맛 등이 해를 거듭할수록 개체 수를 늘리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더욱이 올해는 백합까지 나타나며, 황금어장의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걸매리 갯벌에서 중대백로, 쇠백로, 왜가리, 괭이갈매기, 재갈매기, 알락꼬리마도요 등과 도요새 무리 수천 마리가 어울려 먹이 다툼을 하고 있는 것도 확인했다. 특히 국제자연보존연맹(IUCN)과 국제조류보호회의(ICBP)가 멸종위기 종으로 분류한 노랑부리백로와 알락꼬리마도요도 수백 마리의 발견은 큰 수확이었다.

게다가 갯벌생태의 완성단계인 칠면초 군락까지 광범위하게 펼쳐져 인주면 걸매리 갯벌이 더 이상 죽음의 펄이 아닌, 생명의 펄임을 증명하는 자연현상이 곳곳에서 관찰되고 있다.

앞으로 어떠한 생명체가 또 다시 나타나 놀라움을 줄지도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충남시사신문>과 <교차로>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백합, #걸매리, #아산시, #인주면, #갯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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