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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EP <믿어줄래>로 홀로서기에 성공한 '박재범'.
 새로운 EP <믿어줄래>로 홀로서기에 성공한 '박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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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음반 요즘 잘 나가나요?"

정말 오랜만에 집 근처 음반매장에 들러 스무 살가량 돼 보이는 여직원에게 물었다. 사실 내 손에 있는 이 음반이 잘 나간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발매 직후 각종 음원차트 1위는 물론, 음반 판매 차트마저 '빅뱅' 태양의 <솔라>나 서태지의 <더 뫼비우스>를 제치고 있는 그의 가공할 인기를 내가 모를 리 없었다.

다만 근 10여 년 만에 직접 오프라인 매장에 들러 아이돌 음반, 그것도 남자 아이돌 음반을 사는 게 쑥스러웠던 탓에 앨범을 한참 만지작거렸다. 좀 이상하지 않은가. 여고생이나 여대생이 아닌 딱 봐도 찌든 냄새가 나는 웬 남자가 매장에 들러 남자 아이돌의 음반을 사다니.

그래서 음반을 사면 같이 준다는 포스터는 굳이 사양할 수밖에 없었다. 순간 받아서 여동생이나 아는 사람에게 줄까 생각도 했지만, 역시 무리다. 외려 이상한 눈으로 날 볼지도 모른다. 그래서다. '잘 나가는 편'이라는 답변을 뒤로 하고 후다닥 매장 밖을 튀어나온 이유말이다. 그렇게 매장을 나온 내 손에 들린 음반이 바로 전 '2PM' 멤버 박재범의 솔로 EP(미니앨범)인 <믿어줄래>였다.

화려한 복귀, 박재범의 <믿어줄래>

박재범의 EP <믿어줄래>
 박재범의 EP <믿어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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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음반을 구입한 이유는 조금 충동적이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딱히 관심이 없었다는 표현이 맞다.

절대 그의 음악성을 무시하는 게 아니다. 다만, 최근 주목해야 할 국내 음반으로 박재범의 음반 말고도, 오소영의 EP <다정한 위로>, 최은진의 1집 <풍각쟁이 은진>, 박지만의 김소월 프로젝트 <그 사람에게> 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변명하고 싶다. 그럼에도 이 음반을 구매한 이유는 역시나 궁금해서다. 그렇게 숱한 이야기를 남기며 떠난 그가 새로 내놓은 '음악'이 궁금했다.

검증 안 된 고약한 루머로 얼룩졌던 그가 내놓은 음반 <믿어줄래>. 평론가들 사이에서 국내 아이돌을 향한 팬덤(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또는 그러한 문화현상)의 성향 자체를 재조명하게끔 만들기도 했다. 딱히 팬이 아니라도 그가 이번에 과연 음악을 통해 무엇을 들려주고 또 이야기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 음반에 실린 곡은 총 세 곡이다. 타이틀곡 '믿어줄래'는 미국의 힙합 뮤지션인 B.o.B의 히트곡인 '낫싱 온 유(Nothin' On You)'에 작곡가 박근태씨가 작곡한 멜로디를 추가해 완성한 곡이다. 나머지 두 곡은 같은 곡의 영어 버전, 그리고 리믹스 버전으로 채워져 있다. 결국 이 음반에 실린 신곡은 단 한 곡이다.

여기서 사실 좀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자리 잡고 오디오를 켠 다음, 20분도 채 안 돼서 감상이 끝나버렸다. 마지막 곡이 재생될 때 입에 물었던 담배가 채 반도 타지 않았다.

음반가격도 가격이지만, 박재범이라는 뮤지션이 홀로서기 해 내놓은 음악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를 가지고 구입했던 나로서는 맥이 빠질 수밖에. 한 마디로 연일 떠들썩했던 그의 화려한 복귀치고는 너무나 조촐한 편성의 음반이었다.

발매 3일 만에 3만장... 음악성은?

하지만, 그런 나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 음반은 앨범집계사이트 한터정보시스템(지난 15일 기준)에 따르면, 발매 3일 만에 2만 7000여 장 판매를 돌파했다. 이런 기세라면 조만간 3만 장은 가뿐히 돌파할 예정이다. 말 그대로 '대박'이다.

결국 이번 음반의 엄청난 판매실적은 국내 음반계의 판도를 들썩이게 하기에 충분하다. 나아가 음악의 힘 위에 존재하는 팬덤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다시 한번 증명했다. 사실 그것이 주류다. MP3 논쟁 이후, 음악이 좋으면 음반을 산다는 대중들의 주장은 이처럼 아이돌 팬덤의 권력에 맥없이 무너진다. 어찌보면 한 곡 정도만 담겨 있는 음반도, 사흘이 안 돼서 3만장 정도 판매하고 또 구입할 힘이 그와 그들에겐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일어나는 특수한 현상은 아니다. 일본의 걸 그룹인 'AKB48'의 팬들이 <봄의 제전>이라는 이벤트에 참가하기 위해, 수집하다시피 그녀들의 음반을 사모아서 이루어낸 AKB48의 2008년 싱글 판매량은 심히 경악스럽다.

이런 현상을 '그녀들의 음악성이 특히나 뛰어나서'와 같은 범주로 논의하기에는 분명 거리가 있다. 하지만 좀 무서운 건 이런 현상이 이제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는 것이다. 단언컨대 '아이돌 팝'과 '아이돌'은 한국에서도 완벽한 '산업의 도구'로 우리에게 존재한다.

박재범 효과(Jay-Effect)에서 찾는 음악 산업

그의 음반의 성공은 '음악성'보다는 '팬덤'의 힘에 좀 더 무게가 실린다. 그리고 이것은 기획사의 입장에서 '산업'의 중요한 수입원으로 작용한다.
 그의 음반의 성공은 '음악성'보다는 '팬덤'의 힘에 좀 더 무게가 실린다. 그리고 이것은 기획사의 입장에서 '산업'의 중요한 수입원으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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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프로모션도 없었다. 예능에 나와 앨범 홍보를 위해 뒹굴지도 않았다. 공중파 순위프로그램에 나와 노래를 부르지도 않았다. 음반도 사실 팬 서비스용 싱글에 가까울 정도로 내실 있는 음반이라 하기 어렵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하면 박재범의 이번 음반 판매율은 가히 놀라운 수준이다. 박재범 효과(Jay-Effect)는 그렇게나 강력한 것이었다.

박재범과 대중들은 말 그대로 엄청난 일을 해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그의 이번 음반이 3만 장 이상 팔릴 만큼 탄탄한 음악성을 겸비한 음반인가' 하는 것엔 역시 의문이 남는다. 그의 음반의 성공은 '음악성'보다는 '팬덤'의 힘에 좀 더 무게가 실린다. 그리고 이것은 '음악 산업'의 중요한 수입원으로 작용한다.

과거 우리가 아이돌 그룹들의 흥망을 보면서 느끼고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면, 그들이 결코 영원하지 않다는 진리다. 누구 말마따나 팬덤이 흔들던 오색찬란한 풍선과 함성은 분명 '진정성'이 있었지만,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던 그들은 그 진정성에서 한 발짝 벗어난 '산업'에 종속되어 있는 존재이지 않았던가. 슬프지만 현실이다. 우리는 그런 경우를 참으로 숱하게 보아왔고 앞으로도 볼 것이다.

그렇다면 그 후에는 무엇이 남는가. 가수는 물론이고 팬덤도 영원하지 않고 오로지 돈을 번 기획사만이 영원하다고 한다면, 가수와 팬들이 떠난 그 자리에는 과연 무엇이 남는가. 거기서 우리는 '음악'이 남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과연 그때 그 아이돌들에게 열광한 이유가 뛰어난 음악성 때문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박재범의 내실 있는 다음 음반을 기대하며

JYP로부터의 퇴출. 루머. 팬들의 변함없는 지지. 싸이더스HQ 라는 거대한 기획사를 통한 복귀. 그리고 발매한 팬들에 믿음에 보답하는 이벤트성 음반. 그리고 3만 장.

음반을 감상하는 시간은 30분도 안 됐지만, 꼬리를 무는 생각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조금 다른 이이야기이긴 하지만 박재범이란 한 가수의 인생도 이런 걸 보면 참 파란만장하다.

예전엔 좋은 음악은 스스로 성장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요즘엔 자꾸 자신이 없어진다. 소리는 사라지고 산업만 남는 것 같아 자꾸만 무서워진다. 그리고 그 산업이라는 놈은 과거 거대 기획사들이 그랬듯, 진정성을 가진 팬덤을 배신하고 또한 박재범을 비롯한 아이돌들에게 다시 한 번 상처를 입힐 것만 같다. 언젠가는 분명히 또 그럴 것 같다.

그러니 박재범을 비롯한 우리가 사랑하는 아이돌들의 다음 음반은 그들 스스로 아티스트로서의 역량을 나타내는 훌륭한 음악이 가득 담긴 음반이길 기대해본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들과 팬들은 더 이상 산업에 휘둘리며 기획사에게 목숨을 담보하지 않아도 될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음악'은 그렇게 살아남는다.


태그:#음반의 재발견, #박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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