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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직후 군과 경찰에 의해 대전 골령골에서 집단 희생된 희생자들의 유해가 빗물에 잠겨 있다.
 한국전쟁 직후 군과 경찰에 의해 대전 골령골에서 집단 희생된 희생자들의 유해가 빗물에 잠겨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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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럽게 흙더미를 젖혔다. 유골이 담긴 항아리 뚜껑이 두 쪽으로 쪼개져 있었다.

"저런∼"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항아리 뚜껑이 열렸다. 항아리에는 물이 가득 차 있었다. 깨진 독 뚜껑 사이로 빗물이 스며들어간 것으로 보였다. 막상 빗물에 잠긴 유해를 본 유가족들은 누구도 말을 잇지 못했다.

한 유가족들이 "어쩐댜..." 하며 혀를 찬 것이 전부였다. 나머지 유가족들은 망연자실 한동안 물끄러미 지켜볼 뿐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14일 오후 5시 무렵. 대전 산내 골령골에 희생자 유가족 10여 명이 모여들었다. 몇몇 유가족이 한국전쟁 당시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자 암매장지임을 알리는 표지석 부근에 안장해 놓은 유해에 물이 스며든 것 같다며 일부 유가족들을 긴급 소집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유가족들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물이 조금 스며든 정도가 아니라 항아리 가득 출렁거리고 있었다.

한 유가족이 물에 잠긴 유해를 항아리에서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물기를 머금은 두개골 파편, 정강이뼈, 치아 등 수백 점의 유해가 비닐 위로 옮겨졌다. 또 다른 유가족이 담배를 꺼내 물고, 널브러진 유해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한 점 한 점 유해를 어루만지던 그가 어느 순간 뚫어져라 한곳을 응시했다. A1소총 탄피인 듯했다. 유해 어딘가에 소총 탄피가 섞여 있었던 모양이다. 유가족들은 10여 년 전부터 인근에서 건축공사나 농사를 짓는 도중에 드러난 유해를 모아 항아리 유골함에 안장해 오고 있다.  

"도대체 뭐가 변한 거유."

땀을 흘리며 흙을 갈무리하던 한 유가족이 침묵을 깨듯 큰소리로 말했다.

유가족들이 물기를 없애기 위해 유골함에 있던 유해를 헤집어 놓았다.
 유가족들이 물기를 없애기 위해 유골함에 있던 유해를 헤집어 놓았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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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20일 동안 3차례에 걸쳐 4900여 명이 군·경의 불법행위에 의해 집단 희생된 것은 '진실'이라고 밝혔다. 유가족들의 속을 까맣게 태운 4년여의 조사 끝에 얻은 결정문이었다.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해 억울하게 희생됐다는 '결정'이 내려졌지만 '변한 게 뭐냐'는 것, 그것이 유가족의 항변이었다.    

"차차 나아지겠죠."
"찾아낸 유골도 안치할 곳이 없는데 나아지긴……어느 천년에……."

돌이켜보면 대전 산내 골령골에 묻혀 있는 유해만큼 기구한 운명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희생자들의 유해는 그들이 살아왔던 파란만장한 삶보다 더 곡절을 겪고 있다. 불치병을 고치는 데 쓰기 위해 도굴된 유해는 약과였다. 한동안은 여우 등 산짐승들이 사람의 뼈를 이 산 저 산 물고 다녔다. 이어 암매장지가 농경지로 바뀌면서 유해는 여기저기 버려졌고, 그로 인해 상당 부분 사라졌다.

상당수는 하천 정비 공사 때 버려졌고, 또 상당수는 도로 정비 공사 때 훼손돼 버려졌다. 그나마 남아 있는 유해를 보존하자며 시민단체가 나선 때는 사건 발생 후 50년이 흐른 지난 2000년이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암매장지 한복판에 건축공사 허가가 내려지는 등 유골 수난사는 계속됐다.

지난 2005년 진실화해위가 발족해 유해 발굴을 시작했지만 산내 골령골만큼은 예외였다. 1매장지와 2매장지의 토지소유주는 각각 진실화해위에 과다한 금액을 제시하며 토지 매입을 요구하고, 유해 발굴을 거부했다. 3매장지와 4매장지는 유해를 발굴할 수 없을 만큼 지형이 변해 발굴작업을 할 수 없었다. 유가족들은 땅만 헤집으면 쏟아져 나오는 유골 밭을 그대로 묻어둔 채 산기슭에 있는 30여 구의 유해를 발굴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한 유가족이 유해 속에서 A1 소총 탄피를 찾아내 들여다보고 있다.
 한 유가족이 유해 속에서 A1 소총 탄피를 찾아내 들여다보고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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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위가 할 수 있는 일은 유해 훼손을 막기 위한 응급처치 방안으로 현장에 유해 매장지임을 알리는 안내판을 설치하는 일이었다. 진실화해위는 지난해와 올해 각각 대전시와 관할 구청인 대전동구청을 통해 관련 예산을 지원했다.

하지만 대전시와 대전동구청은 모두 진실화해위가 지원한 예산을 거부했다. 지가 하락 등 지역주민들의 부정적 여론이 많아 안내판을 세우지 않기로 했다. 유가족들은 대전시와 관할 구청을 방문해 안내판이라도 세워 현장 훼손을 막아달라고 호소했지만 소용없었다.

물기가 가시자 유해는 새 항아리로 옮겨져 안장됐다. 유가족들은 조촐한 안장식을 끝내고 술 한 잔을 유해 앞에 미리 준비해온 술잔을 올렸다.

한 유가족이 혼잣말처럼 푸념했다. 

"세상 어디를 가도 여기 골령골 같은 곳은 없습디다. 내 부모 유해조차 수습 못하게 하니... 서럽고 마음이 아파 말도 안 나와유..."

"... 좋은 날이 오겠죠."

이날 유가족끼리 나누는 대화가 시종 선문답처럼 느껴졌다.   

재안장된 희생자 유해
 재안장된 희생자 유해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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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대전형무소, #대전 골령골, #진실화해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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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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