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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의 기차길과 작은 마을들을 들르기도 하며 여유로이 달려 가는건 자전거 여행자만이 누릴 수 있는 여정의 즐거움이다.
 바닷가의 기차길과 작은 마을들을 들르기도 하며 여유로이 달려 가는건 자전거 여행자만이 누릴 수 있는 여정의 즐거움이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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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에 휴가 가야 된다며 이번주까지 서류를 보내 달라거나 일을 처리해 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진다. 드디어 손꼽아 기다리던 여름 휴가 시즌이 다가왔구나 실감이 든다. 여름 휴가 때 어디로 떠날 거냐고 물어보니 동해 바다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쇠라도 녹일 듯한 한여름의 뜨거운 햇볕이 머리 위로 그대로 내리 쬐는데도 동해 바다를 찾는건 저마다 그곳만의 특별한 매력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동해안만의 낭만적이고 특별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자전거를 타고 떠나는 여행이다. 심신의 건강은 물론 일상 생활에 여러모로 도움을 주던 자전거가 휴가 때는 여행의 좋은 도구로 변신한다. 동해안의 여러 가지 매력을 구석구석 느낄 수 있게 해주니 말이다.

서울 청량리역에서 동해행 마지막 야간 열차에 애마 잔차를 싣고 새벽녘 묵호역에 도착, 하얀 등대가 비추는 묵호항에서 출발하여 동해시 북평동의 북평 오일장을 거쳐 애국가에 나오는 기암괴석과 푸르른 파도가 멋진 추암해변과 바다위 새천년 해안도로를 넘어 언덕동네가 정겨운 삼척항까지 달려가 보았다.     

동해안을 여행하려면 흔히들 7번 국도를 타고 가지만 그건 주로 자동차 여행길이고, 자전거 여행은 해안가의 다양한 길을 달리며 풍성한 여정을 만끽하면서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 길이 다양하니 풍경도 여행의 즐거움도 덩달아 다채롭다. 이 코스는 험준한 언덕길이 없어 여성이나 초급 라이더도 주행이 가능하며, 휴가를 맞아 꽉 막힌 차량들의 행렬에 끼어가지 않아도 되니 더욱 즐거운 여행이 되겠다.  

묵호항의 새벽은 언덕동네위 등대 불빛으로 더 아름답게 빛난다. 저 구름다리를 걸어 오르면 하얀 등대가 나타난다.
 묵호항의 새벽은 언덕동네위 등대 불빛으로 더 아름답게 빛난다. 저 구름다리를 걸어 오르면 하얀 등대가 나타난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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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 항구의 아침 풍경은 장터처럼 북적이는게 사람 냄새가 나서 좋다.
 동해안 항구의 아침 풍경은 장터처럼 북적이는게 사람 냄새가 나서 좋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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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속에서 환히 빛나는 등대 마을

세상이 좋아져 기차에 애마 잔차를 실으려고 하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넓은 자리까지 알려준다. 오후 10시 50분 발 야간 열차는 밤새도록 달려 눈시린 파도가 반기는 동해 바다까지 데려다 줄 것이다. 동해 바다행 밤기차를 타니 다들 마음이 설레는지 사람들은 자정이 넘어도 잘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스름한 새벽녘 마침내 동해 바닷가의 기차역 묵호역에 다다랗다. 주인처럼 웅크리고 자던 잔차를 깨워 안장에 올라타 가까이에 있는 묵호항을 향한다. 오전 4시 반에 들른 항구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묵호항에는 특별한 곳이 있으니 바로 언덕길 구름다리를 걸어 올라가는 하얀 등대와 정다운 등대 마을이다. 어느 동네나 존재하는 새벽 운동 나온 나이 지긋한 주민분에게 등대로 올라가는 구름다리를 물어보면 된다.  

야트막한 언덕 위에 소박한 집들과 펜션들이 자리하고 있는 가운데 정말 구름다리가 저 위의 등대를 향해 나있다. 등대 불빛이 눈앞의 동해 바다와 언덕 동네를 어루만지듯 비추는데, 새벽이라 더욱 크게 들리는 파도 소리와 함께 참 잊기 힘든 정경이다. 항구의 언덕 동네에서 들려오는 새벽을 깨우는 우렁찬 닭소리도 재미있고, 언덕 꼭대기위 아담한 교회에서 나오는 젊은 목사님의 낭랑한 찬송가 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저멀리 수평선 위로 서양의 인상파 그림 같은 오렌지빛 태양이 떠오르는 일출을 감상하면서 그렇게 아침이 오면 묵호항엔 어제 오후에 떠났던 어선들이 물고기들을 싣고 돌아온다. 큰 항구는 아니지만 경매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배 주위로 몰려드는 주변 상인들의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활기있고 사람 냄새나는 풍경이다.     

울퉁불퉁한 모양에 배만한 크기의 감자를 보니 강원도의 심(힘)이 느껴진다.
 울퉁불퉁한 모양에 배만한 크기의 감자를 보니 강원도의 심(힘)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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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평 오일장터의 어느 식당 풍경이 마치 잔칫날 상차리는것 같다.
 북평 오일장터의 어느 식당 풍경이 마치 잔칫날 상차리는것 같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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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동네가 정겨운 오일장터

묵호항에서 북평 오일장이 가까운 동해 기차역을 향해 달려 가는 길. 기차길 옆 손글씨로 '민박' 간판을 단 수수한 어촌 마을을 천천히 지나간다. 마을이 어찌나 한적하고 조용한지 들리는 건 앞 마당에 넘실거리는 파도 소리와 간간이 지나가는 기차소리뿐이다. 반갑게도 예전에 없던 긴 산책로가 생겨나 인도나 차도를 달리지 않고 기차길 주변 동네 풍경을 구경하며 동해역까지 가는 편안한 여행길이 되었다.
    
동해 기차역에 도착하니 아직 오전 10시 밖에 안 됐다. 새벽에 일어나니 하루가 이렇게 길게 느껴진다. 늙어갈수록 새벽잠이 없어지는 게 이승의 시간을 좀 더 주려는 자연의 고마운 섭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든다. 때깔도 곱고 귀여운 원앙새들이 명랑하게 지저귀는 동해역의 시원한 쉼터에 앉아 매점에서 파는 간식과 음료수도 마시고, 기차역을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여유를 부려본다. 오늘 오일장(매 3일, 8일)이 열리는 북평동은 동해역에서 자전거로 5분 거리에 있다.   

강원도에서 가장 크게 열린다는 북평 오일장은 정말 온동네가 장터다. 4차선의 차길은 노점에 차선을 양보해 2차선으로 바뀌고, 인도에도 동네 골목길에도 크고 작은 좌판으로 가득하다. 싱싱할수록 짙은색을 띄는 산오징어에서 수제 호미, 미군복까지 없는 게 없는 만물 장터다. 미니벨로라고 불리는 내 작은 자전거도 다니기 힘들어 아예 한 곳에 묶어두고 오일장터 구경에 나섰다.

지글지글 소리가 침 나오게 하는 메밀전병, 메밀국수로 일단 시장기를 없애고 꽈배기, 팥도넛 등으로 다양한 점심식사를 했다. 배만한 크기의 울퉁불퉁 투박한 감자를 보고 놀라고, 사고팔 물건을 두고 상인들과 밀고 당기기를 하는 손님 사이에서 들려오는 재미있는 억양의 강원도 사투리를 들으니 내가 강원도에 오긴 왔구나 싶다.  

추암해변에서 바닷가를 따라 증산해변으로 넘어가는 해안길은 파도소리가 더욱 크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좋다.
 추암해변에서 바닷가를 따라 증산해변으로 넘어가는 해안길은 파도소리가 더욱 크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좋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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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푸른 파도와 짙은 피부색의 오징어들은 동해 바다의 상징이다.
 깊고 푸른 파도와 짙은 피부색의 오징어들은 동해 바다의 상징이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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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S보다 좋은 JPS  

북평 오일장에서 차길 이정표에 크게 써져 있는 추암 해변을 향해 달려 간다. 애국가 화면에도 나오는 바닷가의 촛대바위가 멋진 추암해변을 지나, 동해 바다를 발아래로 내려다 보며 달리는 새천년 해안도로를 넘어 삼척항으로 가기 위해서다. 한적한 길을 20여 분을 달려 도착한 추암해변은 역시 기암괴석과 그런 바위들을 멋지게 조각한 파도의 장쾌한 몸짓이 멋있는 곳이다.   

추암해변에서 증산해변으로 바닷가를 따라 연결된 나무데크 산책로가 있는데 이곳을 지나면 바로 새천년해안도로가 나온다. 전에는 몰랐던 길로 북평 오일장에서 위아래로 자전거복을 멋지게 갖춰 입은 할아버지가 내 행선지를 물어보더니 알려준 좋은 길이다. 첨단의 GPS보다 내가 자주 애용하는 JPS(주민대화형시스템)가 위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이런 좋은 산책로겸 해안가를 잔차를 끌며 걸어가는데 맞은편에서 중년의 한 외국인이 자전거를 아예 들고 걸어온다. 자전거 하나로 친해져 산책로 벤치에 앉아 얘기를 나누었는데 내가 지나온 북평동에서 한국 여자와 산 지 10년이 넘었다고 한다. 강원도의 해변 구석에서 외국인을 그것도 자전거 탄 외국인을 만나니 참 재미있는 인연이라 같이 사진도 찍으며 기념을 했다.   

삼척에는 삼척항보다 더 푸근한 풍경의 언덕 동네가 있다.
 삼척에는 삼척항보다 더 푸근한 풍경의 언덕 동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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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바다를 발아래로 내려다보며 삼척항을 향해 새천년해안도로를 구불구불 달려간다. 웅대한 그 이름과 달리 코스가 짧아서 좀 아쉬운 해안도로를 내려오니 묵호항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삼척항이 맞아준다. 그런데 항구보다 더 인상적인 풍경이 있었으니 바로 언덕위에 자리잡은 푸근한 동네들이 그곳이다. 우리나라는 어딜 가나 크고 작은 산들이 참 많다.   

내가 사는 서울에서는 이런 언덕 동네가 사라진다며 사진을 찍고 기록을 하며 법썩(?)을 떠는데, 오늘 달려온 동해안에서는 흔한 풍경이다. 도시 속의 언덕동네는 때론 처연하기도 한데, 항구와 바닷가를 내려다 보고 있는 동해안의 언덕 동네는 외지인의 눈엔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바닷가에서 만난 미국인 릭을 강원도 주민으로 10년 넘게 살게 할 만큼 매력있고 살기 좋다는 동해안. 언제 가도 도시인의 답답한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푸르고 호쾌한 파도와 까맣고 싱싱한 오징어들이 있어 고맙다. 거기에다 푸근한 항구들과 바다가 보이는 낭만적인 언덕 동네와 정겨운 오일장까지 있으니 이 더운 여름에도 들썩들썩 자꾸만 생각나는 곳이다. 

묵호역에 내려 묵호항 - 북평동 오일장 - 추암, 증산해변 - 새천년해안도로 - 삼척항까지 파도 소리를 들으며 달려가는 동해안 자전거 여행 코스
 묵호역에 내려 묵호항 - 북평동 오일장 - 추암, 증산해변 - 새천년해안도로 - 삼척항까지 파도 소리를 들으며 달려가는 동해안 자전거 여행 코스
ⓒ N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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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2010 이 여름을 화끈하게' 응모
- 서울로 돌아올때는 삼척시내에 있는 고속(시외)버스터미널을 이용했습니다.



태그:#자전거여행, #묵호항, #북평오일장, #삼척항, #동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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