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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학급여행 모습. 남해 상주해수욕장에서 노는 아이들 모습. 이보다 좋을 순 없다!
 작년 학급여행 모습. 남해 상주해수욕장에서 노는 아이들 모습. 이보다 좋을 순 없다!
ⓒ 박병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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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고 수학여행 뒷돈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숙박업체, 관광업자들이 교장들에게 학생 개인당 얼마까지 계산해 돈을 주었단다. 돈을 받은 전·현직 교장들이 무더기로 징계를 당할 예정이라는데, 고질적인 교육계 비리라는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왜 이런 반교육적인 사태가 발생했을까?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30~4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학년별 모든 학급이 한꺼번에 수학여행을 간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일어난 것은 아닐까.

이제는 학년 단위로 전체가 싸잡아 다니는 수학여행은 그만 둬야 한다. 바꾸자. 학년 단위 수학여행을 학급별 테마 여행으로 바꾸면 된다. 같은 날짜, 같은 곳으로 수백 명이 한꺼번에 다니는 여행보다 학급별 테마 여행이 훨씬 교육적인 방법이라고 필자는 자부한다.

뒷돈 논란? 학급별 테마 여행이면 걱정 없어

작년 테마 여행은 "바다 찾아 추억만들기"였다.
▲ 동행 작년 테마 여행은 "바다 찾아 추억만들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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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급별 테마 여행을 하면 뒷돈 문제는 깔끔하게 사라진다. 어디 이뿐인가. 대형 안전사고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고, 보다 아기자기하고 자유롭고 다양한 체험 활동이 가능하다. 물론 필자가 수학여행을 대신할 만한 거창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수학여행으로 불거진 고질적인 병폐를 차단하고 보다 교육적인 접근이 가능하다는 차원에서 참고 자료가 되기를 원한다.

필자는 22년째 인문계 고교 담임을 맡고 있다. 해마다 여름방학이 되면 바다로 1박2일 체험학습을 떠난다. 버스 한 대와 민박집 한 채만 빌리면 된다. 나머지 행사는 모두 학급회의를 통해 결정한다. 대학입시에 몰입하는 인문계 고교에서 여름방학 체험학습을 진행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1박2일 정도에 감지덕지하고 있지만, 집단 수학여행을 학급별 테마 여행으로 바꿀 수만 있다면 3박4일도 가능하다.

체험학습 학부모 동의서를 받고, 결재를 마치면 학급회의 시간을 이용해 토의를 한다. 비용 산출은 아주 간단하다. 버스와 민박집 대여료, 1박2일 여행자 보험을 합산하여 참가 인원으로 나누면 끝이다. 가령 버스 대여료 60만원(대전에서 남해까지), 민박집 한 채(방 7개) 대여료 40만원, 개인당 보험료 1050원이니 개인당 3만 원을 넘지 않는다.

참고로 결재 과정에 장애 요인은 안전사고다. 질풍노도 고교생들을 데리고 물가에 가서 만에 하나 무슨 사고라도 난다면 어떻게 하느냐는 거다. 강조컨대 안전사고 운운은 의미 없다. 시행해 보면 안다. 우리 아이들이 안전사고로부터 결코 어리석지 않다는 것을. 사고란 인간이 존재하는 한 늘 따라다니는 관용어일 뿐이다.

그 다음 진행은 일사천리다. 먼저 모둠을 짜야 한다. 그리고 1박2일 동안 무엇을 먹을 것이며 무슨 활동을 할 것인가도 숙고한다. 아이들과 함께 라면 아주 창의적인 해답이 나온다. 물론 모둠별로 밥을 직접 해먹어야 한다. 지금까지 경험한 결과 의외로 아이들이 먹을거리 준비를 잘 해온다. 모둠별로 밥을 짓고 요리를 하는 과정 자체가 교실 밖 체험 학습의 묘미 아닐까?

밥짓기, 삼겹살 굽기, 카레라이스 만들기, 참치김치찌개, 된장찌개, 부대찌개, 라면 끓이기 등 먹을거리가 완성되면서 협동과 우정과 공동체의 가치가 움트기 시작한다. 설거지를 마치고 바다에 나가는 순간 체험학습은 절정에 이른다. 조별 체육활동이 시작된다. 비치발리볼, 씨름, 미니 축구, 닭싸움 등 다양한 경기를 진행한다. 백사장엔 웃음꽃이 핀다. 추억은 밀물처럼 밀려오고, 학습 노동은 썰물처럼 밀려간다.

어두워져 민박집에 돌아온 아이들이 민박집 마당 우물에서 서로서로 알몸을 드러낸 채 바가지나 양동이에 물을 담아 시원스레 몸을 씻는다. 도시에서 맛볼 수 없는 아름다운 과거 체험이다. 불쑥불쑥 다 커버린 아이들이다. 그 쾌감에 젖어 있는 아이들을 민박집 마당에 모아 교실에서 나누지 못한 살아가는 이야기를 엮어간다.

담임 교사로서 숨겨두었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낸다. 현재의 나, 미래의 나를 비교해서 발표하기도 하고 자부심에 관해 토의하기도 한다. 꿈을 이야기한다. 바닷가 민박집 마당에 쏟아지는 별빛, 그것은 은총이고 축복이다.

작년에 남해 상주해수욕장 민박집에서 함께 했던 시간. 졸업 후 제자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되었다.
▲ 동행 작년에 남해 상주해수욕장 민박집에서 함께 했던 시간. 졸업 후 제자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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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바다의 자유시간, 사고 걱정은 말아요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너무 길면 오히려 부작용이 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밤바다의 자유 시간! "두어 시간 마음껏 놀다 오거라!" 담임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함성과 함께 조별로 삼삼오오 민박집을 나선다. 왁자지껄 소란했던 민박집에 정적이 깔린다. 선생 노릇하면서 그런 정적을 언제 맛볼 수 있으랴. 그 정적은 보이지 않지만 위대한 교육력을 담고 있다.

나도 민박집을 나와 밤바다를 거닐다가 아이들이 가있음직한 장소를 둘러본다.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불협화음에 눈과 귀를 집중한다. 그래봤자 헛일이다. 아이들은 바닷가에서 지상 최대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아이들이 가장 많이 머물고 있는 노래방에 들어가 본다. 핏줄을 세워 목청을 올리는 철이가 있다. '아니, 저 녀석이!' 그렇다. 그 숫기없고 내향적인 철이가 아이들 앞에서 숨은 끼를 드러낸다. 나만 놀란 게 아니다. 친구들도 모두 놀라 박수와 함성으로 화답한다.

미처 몰랐던 너와 나는 금세 우리가 된다. 하나가 된다. 아이들 청에 못 이겨 마이크를 잡는다.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열창한다. '아니, 쌤이!' 놀라는 아이들 앞에서 율동도 곁들인다. '세상에 이런 일이!' 우리는 그렇게 친구가 된다.

이러쿵저러쿵 더 열거하는 것은 사실을 왜곡할 우려가 있어 줄인다. 아이들 가슴에 꽂혀 있을 아름다운 감정들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교실 밖으로 벗어나지 않고 어떻게 참사람을 볼 수 있을까? 우리 교사들이 아이들과 함께하면 무슨 조건이 필요한가!

제자들이 졸업하고 나면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때 그 체험학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그런 보람이 있어서 선생 노릇도 하는 거 아닐까?

올해는 아버지 여섯분이 동행해요

작년 학급여행에서 다함께 찍은 사진.
 작년 학급여행에서 다함께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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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획일화된 수학여행은 사라져야 한다. 학급별 테마 여행으로 바꿔야 한다. 학교는 학교대로 교육청은 교육청대로 다양한 테마여행을 위한 방법과 장소를 보다 세분화하여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어쩌다 보니 여름 방학 중 학급 수련회는 습관이 되었다. 올해는 7월 24일부터 25일까지 경남 남해 상주해수욕장으로 간다. 결재도 다 마친 상태다. 이번에는 좀 특별하다. 고1 우리 반 아버지들 여섯 분이 동행한다.

나는 아버지들께 약간의 부담을 드렸다. 자식들에게 살면서 가장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소중한 이야기를 10분씩만 해달라는 거였다. 이번 기회에 자식과 아버지의 간격을 더 좁히라는 거다. 백사장에서 자식들과 족구도 하고 씨름도 할 것이다. 교실 밖 자식의 모습을 바라보며 아이들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이런 게 수학여행이기를 간절히 원한다.

수학여행은 학습의 연장이다. 그런 수학여행이 수많은 교장들의 뒷돈 수수로 언론의 도마위에 올라 있다. 학습의 연장이 아니라 감옥으로 가는 여행이었나 보다. 교육자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학급별로 날짜를 다르게 하여 다양한 장소로 아기자기하게 여행다운 여행을 해보자. 대한민국 금수강산이 모두 다 교육현장이다.


태그:#체험학습, #수학여행, #테마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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