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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힘들어지고 기대고 싶을 때 우리는 바다로 간다. 바다에서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리라. 더군다나 질척한 갯벌이 있는 서해 바다는 억척스러운 삶들이 그려져 있어 위안을 받고 세상에 다시 나갈 힘을 충전하는지 모르겠다.

 

어릴적 기억을 찾아 영종도 여행을 해 오고 있는 한 사진가가 있다. 그녀는 사각의 프레임속에 어떤 선과 어떤 빛을 그리고 어떤 시간을 담아내고 있을까? 그리고 그것은 그녀에게 또 우리들에게 무슨 의미로 다가오는가.

 

사진은 반영인가 투영인가

 

김윤경 사진가를 처음 만난 것은 '영종도 사진전'이 열리던 인사동의 갤러리였다. 영종도를 주제로 한 사진들은 모두 색을 벗겨낸 빛바랜 모습이었다. 마치 시골 외할머니집 벽에 걸린 오래된 흑백사진들처럼 오랜 시간에 희미해져 버렸지만 그 시간과 추억만은 또렷하게 기록해 둔 그것처럼 말이다.

 

영종도 곳곳을 발품 팔며 기록한 사진가의 작품에서 경외심이 들었다. 솔직히 필자도 10년 이 넘게 영종도를 샅샅이 돌아다니며 기록하고 사람을 만나고 지도를 만들어왔지만, 그녀의 작품에서는 내가 알던 영종도는 볼 수 없었다. 이렇게 아름답고 애틋하고 사랑스럽게 바다와 갯벌, 그리고 사람들을 담아낸 풍경과 작품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진이란 그 대상만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시선을 담고 있어서 대상에 다가서고 애정 어린 마음으로 볼 수 있어야 그것을 비로소 아름답게 담게 되는 예술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김윤경 사진가는 영종도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 하겠다.

 

기억을 찾으러 떠난 영종도 여행

 

그녀가 기억하는 바다의 첫 경험은 유년시절 인천 연안부두에서 한두 시간 남짓 통통배를 타고 바다를 가로질러 왔던 영종도다. 바다에서 해수욕하고, 갯벌에서 뛰어놀고, 아름다운 석양을 바라보며 가족과 함께 했던 즐거운 시간들과 갯골에 빠져 옴짝달싹 못하고 죽음이란 상상까지 했던 무서운 기억들이 함께 얽혀 있다. 그녀는 지금 과거의 기억을 찾기 위해 영종도 여행을 하고 있다.

 

"기억이란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지고 퇴색되어 가지만,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이 끄집어내게 되지요. 공항고속도로가 개통되고 영종도를 쉽게 올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찾기로 했죠. 잃어버린 과거의 기억들을……."

 

영종도는 이제 그녀가 처음 찾았을 때 한적하고 고즈넉한 그 섬이 아니다. 이미 서쪽 용유도를 연결하고 중간에 바다를 매립해 인천국제공항이 들어섰다. 영종도는 이제 대한민국의 관문이 되었고, 경제구역의 중심이 되었다. 곳곳에는 개발의 굉음으로 소란스럽고 하루가 다르게 산은 잘려 나가고 갯벌은 조금씩 생명력을 잃어 가고 있다.

 

 

열정이 아름다운 사진가

 

그녀의 나이가 믿어지지 않았다. 연약해 보일 정도로 왜소하고 작은 얼굴의 그녀, 카메라를 들기보다는 사진에 담겨야 어울릴 듯한 인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연극영화과를 전공한 그녀는 유지인, 홍요섭씨와 동기란다.

 

청주에 내려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캐릭터가 강한 배우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을지도 모른다. 결혼이 여자의 무덤이라는 것에 그녀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녀가 대단해 보이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이다. 두 자녀를 키우면서도 그녀는 10개가 넘는 자격증을 취득했다.

 

어릴적 집에 있던 사진기로 친구들의 추억을 기록해주던 기억은 지금 다시 카메라를 들게 한 힘이 되었고, 배움을 향한 그녀의 열정은 나이를 숫자로 만들었다. 쉰이 넘는 나이에 사진을 공부하러 대학원에 진학하고 일주일에 두세 번 청주와 서울을 오가면서 자식 같은 동기들과 진도를 맞추었다.

 

"아이들을 다 공부시켜서 시간이 좀 나더라고요. 이제는 내가 공부할 때다 그러고 다니고 있죠. 배우는 것에 나이가 있나요. 죽을 때까지 배워도 모자랄 텐데요."

 

그리고 서울로 왔을 때에는 반드시 추억으로 남은 과거의 조각을 찾기 위해 새벽시간에 영종도를 찾았다. 멀리서 해가 밝아오면 한 컷이라도 더 아름답게 담아야겠다는 마음에 살짝 과속도 했다며 수줍어하는 그녀는 너무도 순수해 보인다.

 

몇 번만 경험하면 아니 일 년만 지나면 다 보았고 다 담았다고 얘기할 수도 있는데 벌써 10년이다. 그녀의 영종도 기록 여행은 언제까지일까?

 

"많이 왔었죠. 하지만 한 번도 바다와 갯벌이 같은 적이 없었어요. 항상 다른 모습 다른 얼굴을 하고 있죠. 아마도 갈매기들이 내 얼굴들을 알아보고 포즈를 취할 때까지 영종도에 올 것 같아요."

 

다시 영종도에서

 

그녀의 처음 기억은 유년시절의 일이고, 기억을 반추하기 위한 여정은 영종대교 개통 후부터 시작되었다. 그녀는 오늘도 길 위에 있다. 영종도 곳곳을 누비던 승용차는 중고차로 내놓을 수도 없는 상태가 되어 폐차 시켰고, 4륜구동의 RV를 새로 구입했다. 얼마 안 된 새 차는 벌써 4만 킬로미터나 달렸다.

 

금산IC에서 진출해서 예단포로, 다시 고염나무골을 지나 중산동과 운북동을 거쳐 준설토 투기장을 지나 운겸도까지 다다랐다. 네비게이션에는 표현되지도 않는 바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달려온 것이다.

 

사진가에게는 카메라를 다루는 기술보다 세상을 관찰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그녀는 수년 전부터 이 길을 오가며 하루하루의 변화와 함께 영종도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재밌는 일이 많았어요. 군부대의 제지로 몇 개월간 길을 열어주지 않아 운겸도에 들어갈 수 없었고, 개발 현장에서는 원주민들과 공사관계자들 사이에 민원으로 카메라를 뺏기기도 했지요. 지금은 알아보고 커피 타주는 사람도 생겼어요."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밝지만은 않다.

 

"없어졌어요. 얼마 전까지의 모습이 아니에요......"

 

영종도와 운겸도 사이에 조성된 준설토 투기장에서, 영종하늘도시 조성으로 사라져 버린 갈대숲 앞에서, 한가로운 어촌 풍경이 사라져버린 예단포 운북레져타운 조성지에서 그녀는 아쉬워했다. 조금씩 조금씩 없어지는 갯벌도 그렇고 그곳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보이지 않는 것도 영종을 사랑하는 사진가에게는 안타깝기만 하다.

 

"개발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급격하게 변해가고 있어요.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개발 그런 지혜는 없을까요."

 

 

에필로그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그러나 기억을 풍부하게 해 주는 사진이 우리에게는 필요한 것 같다. 하루하루 달라져가고 있는 영종도에 그녀의 사진은 아름다웠던 과거일 수 있고 앞으로 추구할 아름다운 미래일 수 있다. 사진가 김윤경이 남기는 영종도의 한 프레임은 분명 누군가의 기억을 풍부하게 해 줄 그런 사진이 될 것이다.

 

그녀의 열정에 찬사를 보내며, 고집스럽고 지난한 기록과 반추의 작업에 단비처럼 지자체나 개발주체의 후원이 닿기를 기원해본다.

 

덧붙이는 글 | 하이블레스에도 게재한 글입니다.


태그:#김윤경사진가, #영종대교기념관, #기념관사진전, #영종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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