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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막걸리 태풍이 열대성 대기압으로 변한 모양이다. 배다리막걸리니 산성막걸리니 팔도의 유명한 막걸리들이 다시금 각광을 받았고, 청담동과 신촌에서는 막걸리 칵테일까지 만들어 열기를 더했다. 그러나 이들 막걸리는 집으로 가는 길, 목이 마른 사람들에게 윤동주 시인의 시구처럼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기 마련이다.

캔맥주, 아니면 동동주, 아니면 그 무엇이든 알코올이 다소 함유된 시원한 음료를 갈구하는 날 밤이면 주머니 부담없이, 주문 부담없이 마시고 나올 수 있는 그러한 아지트를 나는 오랫동안 꿈꾸었다. 그리고 찾은 곳이 동작구청 근처의 '시골막걸리' 집이다.

"막걸리 한잔도 되나요?" 했는데, 안주가 '줄줄줄'

천 원짜리 대포 한 잔. 그리고 서비스 김치찌개
 천 원짜리 대포 한 잔. 그리고 서비스 김치찌개
ⓒ 최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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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집에 들어간 지난 겨울 어느 날, 나는 "한 잔도 되나요?"라고 수줍게 물었다. 한 잔도 된다는데 이어 나온 막걸리 한 잔과 서비스 김치찌개에 나는 일단 놀랐고, 막걸리의 시원하면서 은은하게 단 맛과 상큼함에 다시 놀랐고, 김치찌개의 눅진함에 또 한 번 놀랐다.

주인 아저씨는 "그냥 두부도 좀 줘야지" 하면서 간장을 친 두부모를 놓고 갔고, 나는 죄송스러 몸둘 바를 몰라 하다가 결국 한 잔을 더 마시고 갔었다.

이 집은 만 원이 훌쩍 넘는 양심불량 메뉴들이 창궐하는 세태에 역행하듯, 안주가격이 소위 '착한' 집이다. 그러나 사실 안주는 필요치 않다. 깍두기에 두부 서비스만 먹어도 배가 부르고, 철 따라 김치찌개나 김국, 운 좋으면 다른 손님이 주문하고 남은 부침개 반죽으로 만든 동그랑땡도 슬쩍 나오기 때문이다.

한번은 라면을 시켰더니 주인아저씨가 비를 맞으며 근처 가게에서 라면을 사와서 오징어 썰은 것과 양파, 쪽파 등 고명을 푸짐하게 얹어 끓여내기에 본의 아니게 해장을 해버린 적도 있었다.

막걸리집의 진짜 매력은 '시'

시가 있는 바람벽
 시가 있는 바람벽
ⓒ 최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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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푸짐한 안주와, 안성 직송 막걸리만이 '시골막걸리' 집의 매력은 아니다. 그 어느 막걸리보다도 상큼하고 은은한 막걸리를 마시다 보면 이 집의 진짜 매력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벽이고 천장이고 온통 쓰인 '시'이다.

이 집에서 술을 마시다 보면 어느 날은 '목련꽃 브라자', 다른 날은 달력에 적힌 용산참사 추모 연작시, 다른 날은 함형수 시인의 '해바라기의 비명'을 읊을 수 있다. 얼큰히 취기가 올라오면 천장에 매달린 등에 적힌 신동엽 시인의 명시 '봄은'이 확대되어 들어온다.

봄! 유난히 추웠던 지난 봄, 냉전의 그림자가 다시금 드리우는 한반도의 한복판에서 '봄은'을 읽으며 마시는 막걸리는 유난히 사치였다. 친구들을 데리고 온 어느 늦은 봄날 마늘쫑과 집된장을 씹으며 마시던 막걸리는 독했다.

그럴 때면 주인 아저씨는 옆자리에 앉아서 우리랑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 선거는 나눠서 찍었어. 그래도 진보를 추구하는 당이 되어야 없는 사람들도 잘 살지" 그러면서 왜 멸종해가는 황태를 파냐고 물으면 "멸치는 찌깔시러워서 안 팔어" 하고 쿨하게 대답하곤 했다.

임대 종이 나붙은 가게, 그러나 나는 믿지 않으련다

시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시골막걸리' 집의 멋진 주인장님
 시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시골막걸리' 집의 멋진 주인장님
ⓒ 최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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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한 인심에도 이 집은 손님이 적고, 손님이 있어도 혼자 있으면 주인 아저씨의 성화로 합석하기 마련이다. 집에 가는 어느 날 손님이 있나만 보려고 가게를 들여다 보았다가 눈이 마주쳐 결국 끌려들어왔고, 그날은 유난히 손님이 없었다.

'함께 만들어요 좋은 세상'만이 벽에 걸려 있었다. 나는 막걸리를 마시다 그만 눈물이 나고 말았다. '좋은 세상'이 대체 무엇이기에? 표현할 말이 그리 없어 '좋은'이란 말을 내걸 수밖에 없던 것인가? 그것을 이토록 정직하게 표현한 이 현수막의 천연덕스러움은 나의 나태함인가?

허허로웠던 나의 귀가길을 시와 술로 달래주던 이 '시골막걸리'집에 지난 주부터 '임대' 종이가 나붙었다. 깜짝 놀라 물어봐도 주인 아저씨는 '배터리가 다 되었나벼'하면서 부침개를 부쳐주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부담없이 한 잔씩 걸치고 가는 막걸리 '바(bar)'를 만들고 싶다던 주인 아저씨의 꿈이 다했다고 아직 믿고 싶지 않다.

주차장 한 칸도 없이 육교 아래 숨어있지만, 재떨이도 없이 바닥에 꽁초를 떨궈도 된다는 '쿨한' 집이기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발걸음만은 너무나 행복한 집이기에, 나는 아직 '시골막걸리' 집을 떠나보낼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위치 : 동작구청 오른편 육교 밑
지하철 : 9호선 노량진역 5번 출구 나와서 도보 3분
버스 : 5614, 5516 동작구청 정류소 하차 후 도보 2분



태그:#막걸리, #노량진, #시골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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