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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후플러스> 홈페이지.
 MBC <후플러스> 홈페이지.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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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의 죽음은 2·12 총선과 함께 한국인의 민권수위를 한 단계 올려놓은 역사적인 사건으로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경찰이 발표해 민중들의 울분을 끓게 하며 87년 6월의 도화선이 되게 했던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이렇게 표현한 이가 과연 누구일까요?

놀랍게도 저 글의 주인공은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입니다. 비교적 온건했던 기자시절이던 1987년, 한길사에서 출간한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들>에서 기자 조갑제는 고문이 정권의 야만성을 드러내는 구조적 폭력이요, 한국사회에서 고문의 연원은 일제 시대 헌병, 형사들로부터 비롯됐다고 쓰고 있습니다. 

<해방 전후사의 인식>을 펴낸 출판사인 한길사에서 책을 출간해 줄 정도였던 그가 어떤 과정을 통해 지금의 모습으로 탈바꿈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당시 조갑제 기자 역시 당대 경찰에 의한 고문 피해자들의 피해 상황을 철저히 묘사하고, 상황을 추적한 뒤, 고문자는 당대에 처단해야 한다고 단언한 바 있습니다.

20여 년 전 기자 조갑제도 몸서리 쳤던 그 고문의 기술이 2010년 MB 정부 들어 부활했습니다.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는 이 정부는 민주화 이전으로의 복원과 회귀를 다채롭게도 이뤄내고 있는 셈이죠. 

경찰 고문을 주제로 지난 1일 방영된 MBC <후플러스>(목요일 오후 11시 5분) '고문과 실적주의' 편을 봤습니다. 암담하더군요. MB정부 들어 거세진 경찰들의 실적주의는 결코 고문과 같이 구시대의 부활로 치부하거나 형사, 강력범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나에게도 들이닥칠 수 있는 아주 무시무시한 현실이었습니다.

더욱이 가혹행위를 넘어 정치, 비정치적인 사안을 가리지 않는 경찰의 실적주의야 말로 공권력이 어떻게 시민들을, 또 현 시국을 바라보고 있느냐를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되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경찰청장은 부인하는 고문의 기술!

강희락 경찰청장.
 강희락 경찰청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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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경찰서 고문 사건이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조사로 밝혀진 이후 이 대통령이 "어떤 이유로든 수사과정에서 고문은 용납될 수 없다"고 발표했지만, 강희락 경찰청장은 "유독 양천서에서만 그런 일이…"라며 발뺌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지요.

연이은 인권위 조사에 이어 검찰이 양천서에서만 22건의 가혹행위 혐의가 있었음을 밝혀냈고, 경찰관 4명이 구속 수감됐습니다. 6월 28일에는 이 사건과 관련해 채수창 서울 강북경찰서장이 "경찰 지휘부의 성과주의 탓"이라는 양심선언을 했고, 이에 조현오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저는 '실적주의 때문에 이런 사건이 있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결코 책임을 느끼지 않습니다"라며 전면 부인으로 화답(?)했다지요.

<후플러스>는 먼저 사건의 발단이 된 임씨 사건의 전말을 확인합니다. 지난 3월 28일 송파구 한 모텔에 절도용의자 첩보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필로폰 환각 상태에 있던 용의자 임아무개씨 등 남성 6명을 체포합니다.

임씨는 다음 날 양천경찰서 경찰 5팀이 양팔에 수갑을 채워 팔을 꺾어 올리고 입을 수건과 테이프로 막은 뒤 몽둥이로 때렸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임씨는 고문과 폭력, 강압에 의해 약 29분 만에 혐의를 인정하게 됩니다. 

구속된 임씨는 변호사를 통해 억울함을 호소했고, 바로 인권위의 조사가 시작됐지요. 이후 사건의 전말은 상기한 바와 같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후플러스> 팀이 입수한 경찰 조서입니다.

'본 건 조사시 폭행이나 협박, 강요에 의해 진술한 것이 있는가요?'
'없습니다.'
'위와 같은 진술을 법정에서 할 수 있나요.'
'네, 할 수 있습니다.'

'법정에서 진술하겠는가'와 같은 이례적인 질문 자체가 자신들의 부당한 수사 과정을 은폐하려 했다는 증거인 셈이죠.

웃지 못할 코미디는 이해식 양천경찰서 형사과장이 연출합니다. 사건 초반 전화 인터뷰에서 "조사 과정에서 난동을 피울 우려가 있어서 뒤로 수갑 채운 사실은 있어. 근데 인권위에서 얘기하듯 저항하지 않는 피조사자들에 대해 압도적인 물리력을 행한 적은 없다"라고 강경하게 부인하던 이 과장은 경찰관 4명이 구속되자 "지금 제가 말씀드릴 그런 건 아니고요. 아무튼 그래요. 우리 다음에 다시 한 번 더 통화하죠"라며 꼬리를 내리더군요.

3만 7천 원 훔친 중학생도 구속하는 실적주의!

여기까지였다면, <후플러스>는 그저 양천서 사건의 재구성에 그쳤겠지요. 그렇다면 저 또한 이 글을 쓰고 있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취재진이 발굴한 경찰의 실적주의 사례에는 기가 막힌 것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먼저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가 장롱에서 3만 7천 원을 훔친 최아무개 군을 경찰은 사건 후 한 달 후에 형사 입건했더군요. 액수도 적고, 초범인 14살짜리 소년을 말이죠. 경찰은 피해자 측이 화가 나있고 처벌을 원해 입건했다고 밝혔지만, 취재진들이 만난 최군 친구 아버지는 처벌도 원하지 않았고 과한 처사라고 의아해 하더군요. 오히려 1년 전 좀도둑을 잡아달라고 신고한 것은 감감무소식이라고 답답해하고요.

전·현직 경찰들의 내부고발도 이어졌습니다.

"강도나 살인범을 잡으라는데 이게 뭐 지금 쉬운 일이냐고요. 이게 어려운 건데 계속 하라고 하다 보니까 그러면 다급해지니까 없는 걸 만들어 낼 수밖에 없는 거죠."

부당한 실적주의 폐해를 내부통신망에 문제제기 해왔던 박윤근 경사는 2009년 파면됐고, 석 달 전 해고 무효소송 1심에서 승소했다는군요. 초등학교 5학년 두 명이 과자 1개를 훔쳐 먹은 것을 특수절도라는 어마어마한 죄명을 붙여 인계한 것이나, 일반 '절도'를 '점유이탈횡령'과 같은 큰 죄목으로 바꾼다는 현직 경찰의 증언도 잇따르고요. 

더욱 암담한 것은 112 신고 접수 처리의 점수가 높다는 이유로 아는 사람은 물론이요, 심지어 아내에게 허위 신고를 시킨 경찰관도 있더군요. 경찰청 감사결과 한 해에만 54명이나 이런 만행을 저질렀더군요.

또 천안함 사건의 의혹을 제기한 유인물을 배포한 대학생을 잡기 위해 경찰차로 버스를 멈춰 세운 뒤, 위협적으로 임의 동행을 요구한 장면은 황당했습니다. 심지어 2008년 '장애인의 날' 행사에 참여했던 뇌성마비 중증장애인을 2010년 뒤늦게 소환 통보해 조사한 사례는 정말 어이가 없더군요.

이래서야 실적주의 시행 이후 살인, 강도, 절도 등 5대 범죄 발생률이 6.6% 줄고, 검거율이  7.5% 늘었다는 서울경찰청의 자료를 믿을 수 있을까요? 불심검문 시 쓰는 휴대용 신원조회기 사용 건수가 626만 건이던 2005년에 비해 2008년은 무려 10배, 2009년에는 5500만 건에 달했다는 통계는 어떻게 설명하실 건가요?

정권에 과잉충성하는 실적주의, 시민들의 분노 부를 것

채수창 강북경찰서장이 지난 28일 오후 서울 번동 강북경찰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천경찰서 고문수사'와 관련 경찰 지휘부의 실적주의를 비판하며 조현오 경찰청장과 동반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채수창 강북경찰서장이 지난 28일 오후 서울 번동 강북경찰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천경찰서 고문수사'와 관련 경찰 지휘부의 실적주의를 비판하며 조현오 경찰청장과 동반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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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강력범이라는 이유로, 또 사건의 발단이 된 임씨처럼 마약 사범이라 해서 경찰이 폭력을 휘두를 권리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범죄와 치안을 담당하는 그들에게 서비스업에 가까운 친절을 바라는 것은 절대 아닐 겁니다. 그저 공명정대한 법집행과 수사과정을 바랄 따름이죠.

권에 반하는 목소리를 낸 시민들을 윽박지르고 조사하는 과잉 충성은 결국 경찰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깎아 먹을 것입니다.

"지역 주민들의 어떤 생각을 우리가 파악하는 것이 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에 지금처럼 모든 범죄 유형에 대해서 단지 숫자로 평가하는 방식들은 조금 개선할 필요가 있다."

방송 말미, 곽경대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렇게 논평했는데요. 글쎄요, 어투는 꽤나 조심스러웠지만 핵심은 실적주의의 개선임을 분명히 하셨더군요. 하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피해를 보는 것은 일반 시민들입니다. 단순 실적 위주의 강압적이고 검거, 입건 위주의 수사를 펼쳤을 때 피해를 보는 것은 바로 우리 일반 시민들입니다. 빵 하나를 훔친 초등학생도, 유인물을 돌린 대학생도, 집회에 참가한 장애인, 그들은 모두 우리의 친구, 가족이 될 수도 있거든요.

무엇보다 정권에 입맛에 맞지 않는 목소리를 내는 이들에게는 이미 촛불집회나 용산 참사  때 그 힘을 보여주지 않으셨습니까. 개발, 성장을 부르짖는 정권을 만났다고 해서 경찰들마저 쓸데없이 실적에 열을 올릴 필요는 없는 겁니다. 선량한 시민 모두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한다면, 그에 따른 분노와 맞대응은 정권이, 그리고 공권력이 감수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태그:#후플러스, #경찰, #강희락,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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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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