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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서울대 교수의 법 고전읽기'가 22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조국 서울대 교수의 법 고전읽기'가 22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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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리라는 물고기는 어항에서는 10밀리미터, 연못에서는 50밀리미터, 강에서는 150밀리미터, 바다에서는 500밀리미터까지 자랍니다. 우리도 이와 비슷합니다. 더욱 자유롭고 개방적인 사회가 되어야 우리들 자신도 더 클 수 있습니다."

어항과 바다 사이. 요즘 한국 사회에서 개인이 누리는 자유는 어느 정도 크기일까? 조국 서울대 교수는 지난 22일 열린 '법 고전읽기' 특강 첫 시간에서 "우리 사회에서 진정한 자유 향유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그동안 사회를 지배하던 관습들이 우리를 10밀리미터짜리 물고기처럼 살도록 만들어왔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미네르바' 박대성씨 구속과 국가정보원이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게 손해배상 청구를 한 일 등의 실례들을 들며 이명박 정부 들어 토론이 사라지고 자유의 범위가 크게 줄어든 한국 사회의 풍경을 지적했다.

1859년에 출간된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교재로 이날 오후 7시 30분부터 10시까지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진행된 이날 강의에서 조 교수는 "자유의 의미가 곡해되고 있는 한국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책"이라며 "모든 사람들이 주체적 개인이 되고 또 연대해야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남을 해치지 않는 한 개인의 자유는 무한해야

<자유론>은 영국의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존 스튜어트 밀이 개별성이 급격히 사라지던 19세기 영국 사회를 배경으로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다룬 책이다. 밀은 이 책에서 양심·사상·표현의 자유와 취향과 탐구의 자유, 단결의 자유를 강조하면서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개인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이 책이 지금 한국 사회에 유효한 이유로 '미네르바' 박대성씨의 구속을 들었다.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의 글을 인터넷 공간에 쓰던 박씨는 지난 2009년 허위사실 유포로 구속, 기소되었으나 같은 해 4월 무죄로 풀려났다.

"<자유론>에서 밀은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얘기합니다. 여기서 표현이 중요한데 표현하지 못한다면 양심, 사상의 자유는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미네르바는 자기 생각을 표현했다는 이유로 구속되고 '30대 무직자에 불과하다', '대학도 안 나왔다' 등의 모욕을 공개적으로 당했죠."

조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개인이 어떤 것이 옳고 그르다는 것을 판단을 하고 그것을 드러내면 형사처벌과 모욕이라는 방식의 제재가 작동한다는 것이 드러난 사건"이라며 "이 사건 이후 많은 누리꾼들이 자신이 쓴 글을 인터넷 공간에서 내리는 '냉각효과'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가 국가정보원을 통해 시민단체를 압박한다'는 의혹을 제기했던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게 국정원이 손해배상 소송을 낸 것도 미네르바 사건과 성격이 비슷한 사안이다. 조 교수는 "유신 시대에 '국가모독죄'라고 해서 국가를 비판하면 감옥에 넣는 법이 있었다"며 "이것이 지금 와서는 벌금을 매기고 돈을 뺏는 방법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국 서울대 교수의 법 고전읽기'가 22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조국 서울대 교수의 법 고전읽기'가 22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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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자유주의, 주체적 개인이 만든다"

정부가 형사처벌과 손해배상 소송, 사회적인 모욕 등의 수단을 동원해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옥죄는데도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유가 뭘까? 조 교수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자유에 대한 인식이 약한 면이 있다"며 한국전쟁과 군사 권위주의 정부를 그 이유로 꼽았다.

"밀은 책 속에서 개성에 대해 무관심한 19세기 영국 국민들의 얘기를 계속합니다. 당시 영국 사회에서는 관습의 횡포가 매우 심각했는데 밀은 인간 전체를 동일화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음을 강하게 비판했죠.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좌우대립이 심해지고 전쟁을 겪으면서 (생존을 위해) 한 편을 선택해야만 하는 경험들이 국민들에게 쌓였고, 그 이후 군사 권위주의 시대를 거치면서는 상명하복의 문화가 자리 잡았죠."

한국의 역사적 특성 때문에 어떤 사람이 말을 하면 그 내용이 근거가 있느냐를 묻기 전에 누구 편인지를 먼저 묻는 집단주의적인 관습이 생겼다는 얘기다. 이런 집단주의적 특성을 가진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를 보장받기 어렵다는 것이 조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윗사람이 말하는 것에 민감하고, 다수가 대접받고, 소수 의견이 무시당하는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한다"며 말을 이었다.

"내 속에 있는 진짜 나의 개성과 욕망을 발견하라는 것이 <자유론>에 등장하는 밀의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진보적 자유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내가 스스로 개성을 가진 '주체적 개인'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과 연대해야 한다는 거죠."

밀은 주체적 개인의 연대를 자유주의의 척도로 보았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의 자유주의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조 교수는 2008년 촛불집회 때 이명박 대통령의 반응을 예로 들었다.

"촛불집회에 대응했던 정부의 논리를 보면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주체적인 개인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아니 먹고살기에도 바쁜데 (생업에 종사해야 할 시민들이) 왜 나온 거야.' 군사 권위주의 시대의 상명하복형 사고방식이 그대로 드러났던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사항이 이거죠. '촛불 산 돈을 누가 댔는지 조사하라.' 권위주의적 방식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에 다른 방식의 사람이 이해가 안 가는 거죠."

"천안함 문제, 함께 토론으로 풀어야"

밀의 자유주의가 민주사회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그것이 민주주의에서 국가 권력을 통제하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조 교수는 "어떤 경우라도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논쟁과 토론을 통해 무엇이 옳은지 따져보고 나은 선택을 하자는 것이 밀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천안함 침몰 후 참여연대가 국가와 다른 의견을 밝혔죠. 그로 인해 여러 가지 탄압을 받고 있습니다. 참여연대 사안의 경우, 참여연대가 맞았거나 정부가 맞았거나 아니면 둘 다 맞거나 둘 다 틀렸을 경우가 있을 겁니다. 밀은 어떤 경우건 간에 토론을 거쳐서 해결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합니다. 참여연대의 문제제기가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과학적인 토론과정을 통해서 밝혀내야 한다는 것이죠."

조 교수는 "일반 시민은 정부 발표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할 권리가 있고 이럴 경우 정부는 이 의문을 풀어줘야 할 의무가 있다"며 "의문에 대한 답을 하지 않고 '적을 이롭게 한다'고 몰아세우기만 한다면 해결되지 않을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국 서울대 교수의 법 고전읽기'가 22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조국 서울대 교수의 법 고전읽기'가 22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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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조국, #자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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