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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팬카페를 통해 표절을 인정한 이효리.
 자신의 팬카페를 통해 표절을 인정한 이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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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했던 일이 일어났다. 얼마 전 신보를 내고 스스로 트렌드 세터임을 자처하며, '모두가 날 따라한다'는 도발적인 가사로 노래하던 슈퍼스타 이효리가 자신의 팬 카페를 통해 4집 <에이치 로직>(H-Logic)의 일부 곡들이 표절 곡임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일부라고는 하지만, 한두 곡이 아닌 '바누스 바큠'이란 작곡자 집단에게 받은 7곡 전곡이다. 

우선 'To Treno Feygei Stisokto'라는 곡을 표절했다는 의심을 받은 '그네'라는 곡은, 초기에 논쟁이 일어나자 저작권자가 존재하지 않는 그리스 민요의 샘플링 곡이라고 밝혔지만, 확인 결과 민요가 아닌 엄연히 저작권자가 존재하는 곡의 표절로 밝혀졌다.

또한 'How Did We Get'이란 곡도 처음에는 애니 레녹스의 커버곡, 즉 리메이크라 해명했지만 이 곡 역시도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지 않은 표절곡으로 지목됐다.

특히 이번 표절 논쟁에 거론된 아티스트 이름만 해도 쿠키 쿠튀르, 릴 프레셔스, 일렉트로 뱀프, 세컨드 퍼슨, 멜라니 듀란트 등 상당하다.

이로써 논란 초기에 방패막이 되었던 '샘플링'이니 '커버곡'이니 하는 해명은 변명에 불과하다는 게 드러났다.

'설마'했던 표절 논란, '진짜' 그 정도로 대담하게?

이효리의 4집 [H-Logic]
 이효리의 4집 [H-Log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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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표절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 <에이치 로직>의 음원이 인터넷에서 발표되자마자 많은 이들의 입에서 오르내렸다.

맨 처음 의심을 받았던 곡은 앞서 언급한 '그네'와 'How Did We Get'이었는데, 말 한 대로 당시에는 샘플링과 커버곡이라해명했다.

그럼에도 표절 논란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자 바누스 바큠측은 자신들의 음원이 불법으로 유출되어 일어난 사건이라 해명하며 또 다시 논란을 잠재웠다. 과거 가이드녹음 한 걸 여러 기획사에 전달했는데, 이게 인터넷상에 공개된 것이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피해자라 밝힌 것이다.

당시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누구도 이렇게 대놓고 표절을 할 것이라곤 감히 생각하지도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필자는 논쟁이 한창 커지기 시작할 때 <에이치 로직>의 리뷰 글을 작성하기 위해 관련 곡들을 들었다. 곡의 인트로(곡의 도입 부분)나 브릿지(중간 부분) 혹은 사비(후렴 부분) 등등을 언급할 필요도 없이 표절 원곡들과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았다.

원래 표절을 한다면 이렇게 대놓고 똑같이 할 수가 없다. 요즘 누가 이렇게 무식하고 티나게 표절을 할까. 그것도 슈퍼스타 이효리의 음반에서 말이다. 곡의 부분을 짜깁기해서 교묘히 표절해도 문게자 될 수 있는 판국에,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표절해 놓고 버젓이 음반을 내놓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거기다 노래 제목의 경우 멜라니 듀란트의 'Feel the Same'은 'Feel the Same'으로 똑같고, 제이슨 데룰로의 'How Did We'는 'How Did We Get'으로, 쿠키 쿠튀르의 'Boy, Bring It Back은 'Bring It Back'으로 같은 제목이나 다름없게 지어놓았다. 

고백하건대 내가 만일 작곡자였다면 이런 식으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못했을 것이다. 최대한 교묘하고도 논란을 야기하지 않는 방향으로 음원을 만들어 저작권을 챙긴 뒤 나중에 합의를 거친 언론플레이로 그냥저냥 넘어가게 하는 것이 표절의 정석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이제야 말하지만, 이 용감하고도 대담한 바누스 바큠의 도둑질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그것도 그 누구나 주목할 것이 뻔하며, 과거 표절 논란으로 홍역을 치른 바 있는 슈퍼스타 이효리의 음반에서 말이다. 그 누구도 쉽게 예상치 못했을 '과감한 사기극'이었다.

바누스 바큠, '양심'은 없다!

그녀는 표절 논쟁 이후 사실을 스스로 인정했다.
 그녀는 표절 논쟁 이후 사실을 스스로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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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이번 논쟁에서 가장 큰 비난을 받아야 하는 집단은 사실 이 곡을 만들어 속여서 판 작곡자들이다.

바누스 바큠, 그들이 확실히 악의를 가지고 행한 일이라면 그들의 음악적 양심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음악적 관점에서 비평을 하기 이전에, 노래를 부르는 가수와 대중을 애초에 우습게 여긴 것과 다름없다. 그러므로 대중들이 이번 표절에 분노한다면 초점은 그들이 불법적으로 얼마를 벌었느냐와 같은 숫자의 개념이 아니라, 그것으로 그들이 대중과 아티스트를 얼마나 기만했는지에 맞춰야 한다.

이효리 측에서 먼저 언급하며 양심고백을 하지 않았다면, 분명 이 과감한 사기극은 성공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들이 교묘하게 숨겨놓은 이러한 기만은,  '의혹'은 제기할 수 있어도 '판정'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상당히 힘들다는 것을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또한 프로듀서-작곡자-가수-미디어로 이어지는 표절의 연결고리들이 더욱 공고해지면 대중들이 그 고리를 끊는 것이 매우 어려워진다. '도둑질'과 '비판'은 있지만 '책임'은 없다. 그것이 우리나라 가요계의 '표절'이란 놈의 현실이다.

따라서 이효리가 표절을 시인한 것은 그 스스로 빠져나갈 구멍을 차단한 것과 같다. 원래 이런 표절 논란에서는 관련 이익 주체들이 서로 입을 맞추며 빠져나갈 구멍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다. 만일 음반을 만든 프로듀서와 곡을 만든 작곡자, 노래를 부르는 가수와 그들의 음악을 전해주는 미디어가 서로 결탁한다면 표절 논란 따위는 어디까지나 '그들만의 논란'에만 그치는 것이다.

하지만 이효리는 그러지 않았다. 대중에게 표절을 시인한 것이다. 이렇게 그들만의 논란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온 것은 평가받아야 한다. 또 이번 표절 논란에 언급된 노래들의 정확한 원작자를 찾기 위해, 어쩌면 가해자일지도 모르는 그들 스스로 피해자를 찾아 헤맸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것이 가수의 자존심에 대한 문제이든, 혹은 기획사가 바누스를 상대로 제기한 사기죄의 법적인 절차를 위한 문제이든, 혹은 엠넷미디어와 오는 8월 계약이 만료되는 이효리의 현 상황 때문이든 간에 정치적 합의를 거부하고 스스로 표절임을 밝히는 용기는 이전의 가요계에서는 볼 수 없던 용기 있는 태도다.

'도의적 책임'의 한계는 어디인가?

그녀와 기획사가 말한 '도의적 책임'을 이젠 직접 보여 줄때다.
 그녀와 기획사가 말한 '도의적 책임'을 이젠 직접 보여 줄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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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것으로 이효리에게 모든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알다시피 그녀는 이번 <에이치 로직>음반의 프로듀서였다.

바누스를 비롯한 작곡자들에게 구입한 곡들이 표절인지 아닌지 발매 이전에 철저하게 조사했다는 그녀의 말은, 발매되자마자 음악이 대중들에 의해 낱낱이 파헤쳐진 걸 생각하면 스스로의 능력이 부족함을 보여준다.

그 점을 의식해서인지 그녀는 자신의 팬 카페에 남긴 글에서 '도의적 책임'을 언급했다. 작곡자에게 물건을 꼼꼼히 살펴보지 않고 구입한 죄, 혹은 절대 표절이 아니라고 그녀를 옹호했던 팬들의 실망에 대한 책임을 일정 부분 통감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도의적 책임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지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히 말하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 잘못과 비판은 있지만 '책임'은 없는 과거 가요계의 표절 문제에 비해서는, '책임'이란 단어를 언급했다는 점에서 그나마 진일보했지만 그 모습이 뿌옇다는 것이 문제다. 분명 '책임'이란 형체는 존재하지만 앞에 '도의적'이란 어중간한 단어에 가로막혀버린 것이다.

따라서 그 형태가 음반, 음원의 직접적인 환불제가 되었든, 혹은 다음 음반과 공연의 무상제공과 같은 간접적인 보상제가 되었든, 구체적인 책임에 대한 언급이 이번 기회에 반드시 나오길 기대해 본다.

아울러 바누스와 같은 표절 작곡자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애써 십자가를 짊어 진 이효리의 고백은 의미가 사라질 것이며, 대중들과 노래를 하는 가수를 우습게 보는 양심없는 음악인의 기만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어떻게든 대중에게 첨단의 소리를 들려주길 기대했던 이효리의 진실 어린 노력이 빛 바라지 않기 위해선 더욱 그렇다. 


태그:#이효리, #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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