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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선수 1명 이면에는 99명의 탈락한 학생선수들이 있다. 학생선수가 10만 명, 이 중 대학에 진학 가능한 인원이 10%, 대학 진학 후 그 분야로 직업을 가질 가능성 10%. 즉, 운동을 시작해서 직업을 가질 수 있는 비율은 전체 학생선수의 1%라는 것이다."

중도에 운동을 그만둔 '중도탈락' 학생선수의 인권상황을 조사한 류태호 고려대 교수의 말이다. 이처럼 1명의 특별한 '박지성'이 있다면 99명의 탈락자들이 있는 것이 스포츠의 현실이다. 이 99명, 특히 아직 학생 신분으로 운동에만 전념하던 이들은 중도탈락 후 학업부진, 학교 부적응 등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중도탈락 학생선수들의 인권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7월부터 9월까지 중도탈락 학생 560명을 대상으로 설문, 40명을 대상으로 심층면접을 실시했고, 17일 그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 결과 발표는 '2010 남아공월드컵' 선전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높은 시점에 나온 것이어서 시사하는 바가 더욱 크다.

중도탈락 학생선수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 발표가 17일 오전 10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진행되었다.
 중도탈락 학생선수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 발표가 17일 오전 10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진행되었다.
ⓒ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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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선수들의 학습권 침해 문제 심각"

학생선수들의 인권상황을 심층 조사한 류태호 고려대 교수가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학생선수들의 인권상황을 심층 조사한 류태호 고려대 교수가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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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생 운동선수 인권 실태 조사를 총괄 지휘한 류태호 교수는 "학생선수들의 학습권 침해 문제가 굉장히 심각하다"며 "제대로 공부할 수 없었던 학생선수들의 다수는 운동을 그만둔 후 하위 성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 설문에 응한 중도탈락 학생선수들의 2/3는 운동을 했던 것 때문에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웠다고 응답했고, 응답 학생의 14%만이 하위 성적에서 벗어났다고 답했다.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지 못하는 구조 속에서 학업을 포기했던 학생선수들은 학업에 복귀해도 벌어진 격차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농구선수였던 김아무개씨는 연구원들과 한 면담에서 "책상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며 "국어수업시간에는 이게 한글인데 하나도 이해가 안 됐다"고 토로했다.

중도탈락 학생선수들에게는 학교생활 자체에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도 발생했다. 아이스하키 선수였던 조아무개씨는 면담에서 "학교에 오면 긴장되고 무슨 말을 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자신감도 없고, 불안하고 소화가 잘 안 됐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학생선수들은 '미래가 불안해서'(33.3%), '훈련이 힘들고 고통스러워서'(30.1%), '자신의 운동 능력이 부족해서'(25.1%) 중도탈락하게 되었다. 하지만 학습부진, 학교 부적응의 상황에 처한 학생 선수들의 1/3은 '운동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주어진다면 운동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만큼 힘든 상황에 놓인 것이다.

학생도 아니고 선수도 아닌 경계인이 되어버린 이들의 좌절은 방황과 비행으로 나타났다. 중도탈락을 경험한 이들의 1/3(30.1%)은 운동을 그만둔 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고 고민했다고 답했고, 1/11(8.8%)은 비행 폭력을 한 적이 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도탈락 학생선수는 세 가지 상실을 경험"

류태호 교수가 중도탈락 학생선수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류태호 교수가 중도탈락 학생선수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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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교수는 중도탈락 학생선수는 운동으로 인해 '학업·운동·삶의 상실'을 경험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첫 번째 상실은 학생 생활을 대표하는 '학업의 상실'이며, 두 번째 상실은 운동 생활을 의미하는 '운동의 상실'이고, 세 번째 상실은 학생으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총체적인 '삶의 상실'이다"라고 설명했다.

세 가지 상실을 감당해야 하는 중도탈락 학생선수들은 운동을 그만둔 후의 적응 과정을 생존의 과정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농구선수였던 임아무개씨는 면담에서 "지면 죽는 거잖아요, 운동하다 한 번 죽었는데, 또 죽을 수는 없잖아요"라고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열악한 학생선수들의 인권 상황을 조사한 류 교수는 "스포츠가 국위선양의 도구로 이용됨에 따라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열심히 운동만 하라는 외길 인생을 운동선수들에게 강요해 왔다"며 "탈락 없는 학교 운동부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학생선수의 인권 상황 개선을 위한 방안으로 "다른 나라 선수들은 전지훈련에 오면 항상 튜터들이 함께 따라와 선수들의 공부를 돕는다"며 "이처럼 최소한의 수업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나친 훈련을 막을 가이드라인 마련, 상담기구 운영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류 교수는 "스포츠는 본래 인간을 위한 것이었으나 학생선수들에게 스포츠는 자신을 위한 것이 되지 않고 있다"며 "스포츠가 사람을 위한 것이 될 수 있게끔 정부가 제대로 정책을 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태그:#스포츠 , #박지성, #인권, #중도탈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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