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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중순 지하철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 바로 앞에 있는 별다방 정문을 집결지로 하여 '서울시 종로, 중구 걷기모임'의 회원들이 만나 한옥마을 북촌과 인사동의 뒤를 잇는 문화와 상업 거리인 삼청동을 걸었다.

집결지의 길 건너에 있는 종로경찰서는 보수공사를 하고 있는지, 외벽을 전체적으로 덮어서 수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별다방 옆에 있는 옛 참여연대가 있던 건물은 리폼공사를 거의 마치고 있는 상태라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울러 다방 앞에 정독도서관 도서 반납함이 오늘 따라 크게 보이는 것을 보면 오랜만에 안국동에 온 것 같다.

골목 길 안으로 들어서면 우측에 술 도매상인 '순흥상사'가 있다. 내 고향 영주시에 위치한 '소수서원' 있는 순흥면은 남다른 문화의 고장인데, '이곳 주인이 혹시 영주사람이거나 순흥안씨가 아닌가?' 하는 재미있는 상상을 해 보며 지난다.  
        
안국동
▲ 아름다운 가게 안국동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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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문여고 담장을 따라 길을 오르면 바로 왼쪽에 '아름다운 가게' 본사 건물이다. 아름다운가게(Beautiful Store)는 원래 영국의 옥스팜을 본보기로 하여 2002년 출범한 비영리기구이자 사회적 기업이다.

아름다운 가게의 사명은 대체 무역과 시민의 참여로 영리를 추구하지 않으며 그 수익금을 제3세계 사람들과 사회적 약자를 위해 사용한다. 낡거나 오래 된 물건을 사람들이 기증하면 다시 이 물건들을 되살려 시장으로 보낸다. 다시 말해 자원의 순환 운동을 꾀하는 생태적, 친환경적 변화에 기여할 목적으로 운영되는 상점이다.

안국동 점은 현재 별다방이 있는 건물의 옆 칸에 있었는데, 2~3년 전 헌법재판소 옆에 있는 한옥을 개조하여 이전 운영 중에 있다. 
               
중앙선원
▲ 선학원 중앙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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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풍문여고와 덕성여고 사이에 있는 '재단법인 선학원(禪學院)의 중앙선원'이다. 불교의 선리(禪理)를 연구하기 위하여 세운 학원으로 일제강점기 사찰령(寺刹令)을 반포하여 한국 불교를 일본총독부 관할 아래에 두었다.

이에 한국 불교의 일본 불교화에 항거하고 한국 불교 고유의 법통을 굳게 지켜 가기 위하여 1923년에 낙성된 선종의 중앙 기관이다. 이곳이 조계종의 뿌리가 되는 곳이라고 한다. 간혹 지나면서 사찰이 있다는 것을 알기는 했지만, 조계종의 시작이 이곳에 있다니 놀라웠다.
       
상당히 개혁적인 교회이다
▲ 안동교회 상당히 개혁적인 교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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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1909년에 설립된 유서 깊은 교회인 '안동교회'다. 예장통합측 장로교회로 교단에서 여성장로를 허용하기 이전에 이미 장로를 임명할 만큼 진보적인 모습을 보였던 곳이다. 현재의 교회 입구에는 한옥으로 된 손님들을 위한 휴게실과 아담한 정원이 있어 편하게 방문이 가능한 곳이다. 
             
미개방이다.
▲ 윤보선가 미개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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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회 앞은 1890년경에 지어진 사적 438호인 '윤보선(尹潽善)전 대통령의 생가'다. 윤보선은 4.19혁명으로 이승만정권이 붕괴된 후 대통령선거에 민주당후보로 입후보하여 4대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이듬해 박정희가 주도한 5.16쿠데타로 인하여 1962년 사임했다. 생가는 개방을 하고 있지 않아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아쉬움이 있는 곳이다.
             
명문당
▲ 도서출판 명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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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주로 대학교재를 많이 만들어 파는 '도서출판 명문당'의 사옥이다. 안국동에 비싼 땅에 아직도 허름한 건물로 출판사를 하고 있는 주인의 안목이 대단한 것 같기도 하고, 영악하지 못한 것 같기도 하다. 보통사람 같으면 출판사는 변두리로 옮기고 이곳에 카페나 갤러리 같은 것으로 수익사업을 할 것 같은데, 낡은 건물을 유지하면서 출판사로 쓰고 있는 것이 놀라운 곳이다.

이어 길을 왼쪽 골목으로 잡으면 '조선어학회 터'을 알리는 작은 표지석이 보인다. 조선어학회는 1921년 국어학과 국어운동의 선구자 주시경 선생의 문하생 임경재, 최두선, 이승규, 이규방, 권덕규, 장지영, 신명균 등 10여 명이 원서동 휘문의숙(徽文義塾)에서 한국 최초의 민간 학술단체인 '조선어연구회'를 창립한 것을 시발점으로 한다. 이것이 한글학회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한글학회의 전신
▲ 조선어학회 한글학회의 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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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학회의 이름을 '조선어학회'로 고쳤고 사무실을 이곳 안국동에 두었다. 광복 후인 1949년 '한글학회'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는 새문안교회 인근인 종로구 신문로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간판이 아름다운 공예점 은나무
▲ 은나무 간판이 아름다운 공예점 은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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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길을 조금 더 가면 몇 년 전 '한국의 아름다운 간판 대상'을 받은 공예품 점 '은나무'다. 한글, 영어, 일본어로 된 글씨와 나무창문, 나무 지붕을 흉내 낸 모양, 낡은 자전거 등이 참 특이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그 앞에는 최근에 문을 연 한옥의 '민들레 영토'다.

젊은 사람들이 많은 찾는 토론이 가능한 모임방을 빌려주는 찻집으로 나는 종로와 혜화동의 민들레영토를 자주 이용하는 편인데, 이곳에도 문을 열어 한번 가보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 앞에는 '아라리오 서울' 갤러리다. 얼마 전 화가 강형구의 고흐의 얼굴 작품을 보기 위해 방문한 적이 있는데, 중학교 동창생인 친구가 한국과 중국을 오가면서 아라리오에서 큐레이터를 하고 있는 곳이라 정이 많이 가는 곳이다.

그리고 가끔 중국만두를 먹기 위해 방문을 하는 곳으로 정말 한국어가 서툰 중국인 직원이 있어 약간은 곤란한 곳인 '천진포자'라고 하는 중국 만두집이다. 만두 맛은 일품이다. 그 앞의 '짬뽕 뉘우스'나 라면집, 분식집 등이 여러 곳이 있다. 여고가 두 곳이나 있어 학생들이 많이 찾는 것 같다.

골목을 벗어 나오면 바로 왼쪽에 '선재아트센터'가 있다. 갤러리에 영화관을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장남 선재씨를 추모하기 위해 만든 아트센터라고 한다. 예전에 경주에 있는 힐튼호텔에 갔다가 그곳에 있는 아트센터를 둘러 본 적이 있어 친근하다.
               
옛 경기고 터
▲ 정독도서관 옛 경기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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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횡단보도를 건너면 옛 경기고등학교 터에 위치하고 있는 '정독도서관'이다. 경기고는 1900년에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관립중등학교로 현재는 강남으로 이전을 했다. 이곳에 정독도서관이 들어서 학생들과 일반인들의 출입이 많은 편이다.

이 터는 고려 말 조선 초에 청백리로 널리 알려진 '맹사성 대감의 후손들이 살던 맹동산' 이 있던 곳이며, 조선 전기의 학자로 사육신의 한사람으로 훈민정음 창제에 공헌한 '성삼문(成三問)이 살던 곳'이기도 하다.
         
사육신
▲ 성삼문 집터 사육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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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에는 총포를 제작하던 '화기도감(火器都監)'이 있던 곳이다. 화기도감은 임진왜란 때 왜병의 조총에 대항하는 화기를 만들기 위해 설치한 조총청을 개편한 것으로, 현자총(玄字銃), 백자총(百字銃), 삼안총(三眼銃), 소승자장가(小勝字粧家) 등을 제작했다. 
         
정독도서관 내에 있다
▲ 서울교육자료관 정독도서관 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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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독도서관의 입구에는 우리의 교육사를 통사적으로 전시해 된 작은 박물관인 '서울교육사 자료관'이 있다. 삼국시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는 학생들의 교과서와 복장, 교실 등의 모형을 만들어 두어 참고할 자료가 많은 곳이다.

정독도서관에는 칡넝쿨이 많았고, 곳곳에 벤치와 잔디밭, 나무가 좋았다. 연못가에 만들어진 원두막과 도서관 앞뒤의 나무로 가족과 함께 산책을 하기에도 적당한 도서관이었다. 도서관 건물 뒤편에는 맹사성 선생의 후손들이 살던 맹동산 지역의 돌절구 등의 유적이 야외에 전시되어 있어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맹동산의 유적
▲ 정독도서관 맹동산의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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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도서관 건물을 등지고 좌측에는 원래 경복궁 옆에 있던 옛 기무사 터에 있었던 '종친부(宗親府)'가 있다. 1981년 이곳으로 이전되어 현재에 이르는 종친부는 조선 왕가의 족보와 왕의 영정을 받들고 왕가의 인사 문제와 다툼 등에 관한 문제를 의논하고 처리하던 관아였다.

종친부 건물은 조선 시대 관아 건축에 해당한다. 원래 종친부가 경복궁 동쪽 문인 건춘문 맞은편에 위치했던 것은 종신과 외척 및 부마, 인척, 그 외에 궁에서 일을 보는 상궁들만 건춘문으로 드나들게 했던 궁궐의 제도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경복궁 인근에 있던 것이다
▲ 종친부 원래 경복궁 인근에 있던 것이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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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친부 옆에는 의빈의 인사 문제를 관장하는 '의빈부(儀賓府)'가 있었다. 의빈이란 왕의 부마, 즉 왕비의 소생인 공주와 후궁의 소생인 옹주의 남편 되는 사람을 말한다. 이들 의빈들도 왕족 대우를 받았으므로 그들이 모여 의논하고 친목을 도모하는 곳으로 종친부 옆에 의빈부가 마련되었었다.

참으로 정독도서관은 보물창고 같은 곳이다. 현재는 주로 학생들을 위해 도서관으로 쓰이지만, 교육적으로 도움이 되는 교육사자료관과 종친부, 맹사성 선생의 후손들이 살던 맹동산, 사육신 중에 한 사람인 성삼문 선생의 집터, 화기도감, 경기고 등이 있었던 곳으로 역사 문화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역사 문화와 함께하는 서울시 중로, 중구 걷기 모임 카페

http://cafe.naver.com/daipapa.cafe



태그:#북촌, #삼청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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