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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미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이 타오른 지도 2년이 됐습니다. 진보와 보수할 것 없이 모든 언론들이 '촛불 2년'을 조명하고 있는 가운데 <조선> 등 일부 보수언론은 촛불 참가자들의 발언을 왜곡 보도했다는 논란에 휩싸여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촛불집회 현장에서 동고동락했던 인터넷카페, 동호회 회원과 지역촛불 주인공들, 촛불 소녀,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사람들과의 3차례 방담을 통해 '촛불 2년'의 진정한 의미와 '촛불, 그 후'의 삶을 들어봤습니다. [편집자말]
2008년 5월 6일 모습.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에 교복을 입고 참가한 학생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
 2008년 5월 6일 모습.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에 교복을 입고 참가한 학생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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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는 어떻게 나가게 되었냐"고 물어보자 난다(20)와 엠건(20)은 일제히 "와, 되게 오랜만에 듣는 질문이다~"를 외쳤다. 옆에 있던 유진(20)이 "2년 전에는 여기저기서 만날 물어봤단 말이에요"라며 한 마디 거든다. 이들이 처음으로 촛불을 들었던 2008년 5월, 유진은 고2, 엠건은 고3, 그리고 난다는 '자퇴서에 도장을 찍은 지' 한 달도 채 안 된 '자발적 퇴교생'이었다. 

5월부터 "있었던 집회는 거의 다 나갔다"는 유진, "만날 (집회 현장에서) 같이 밤을 꼴딱 꼴딱 새고 도망 다니고 그랬으니까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는 난다와 엠건. 2년 전 "미친소 너나먹어"를 외치던 '촛불소녀'들은 올해 스무 살이 되었다(엠건은 생일이 빨라서 1년 일찍 학교에 들어갔단다).

지난 2008년 <오마이뉴스>는 '올해의 인물'로 '촛불소녀'를 선정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촛불정국'을 촉발시켰던 이들에게 2년 전 '촛불'은 어떤 의미였을까. 지난 2년 간 그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그리고 지금, 그들은 어떤 고민을 갖고 살아갈까.

지난 8일, 스무 살이 된 '촛불소녀'들을 만났다. 엠건과 난다가 이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라 유진과 어색하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웬걸. 서로가 동갑이라는 것을 알자마자 바로 말을 놓더니, 공감하는 이야기가 나올 때면 "맞아", "그래"하며 맞장구를 치고 깔깔댔다. 이날 '명랑소녀'들과의 '유쾌한 수다'는 2시간 정도 진행됐다.

"얘들아, 지금은 중간고사를 볼 때가 아니야"

스무 살이 된 '촛불소녀'들 왼쪽부터 엠건, 난다, 유진
 스무 살이 된 '촛불소녀'들 왼쪽부터 엠건, 난다, 유진
ⓒ 홍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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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집회에는 어떻게 나가게 됐나?
유진 : "그때가 중간고사 기간이었어요. 인터넷을 하다가 우리나라가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한다는 거랑 이게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가를 누가 카페에 올린 걸 봤는데 그걸 보고 언니랑 충격을 받아서 그날 시험공부를 접었어요. 공부를 많이 안 했으니까, 그 다음 날 시험은 대충 보고 또 집에 와서 언니랑 이야기하고. 그렇게 중간고사를 다 날렸어요. 애들한테 말했죠. '지금은 중간고사를 볼 때가 아니야.' 그게 4월 말인가 그랬는데 5월부터 바로 시위에 나갔죠." 
엠건 : "그전부터 'FTA 문제'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5월 초에 청계광장에서 (집회를) 되게 크게 했는데 그날, 반 애들 절반 정도가 (집회에) 갔어요. '이랬대, 저랬대, 나쁜 놈들, 야,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이러면서."

유진 : "애들한테 학교에서 막 얘기했어요. 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애들이 처음에는 '뭐야', '뭐야' 그러더니 한 명씩 같이 나가고 저는 학교 선생님이랑 같이 나갔어요. (휴대폰에 저장된 '인증샷' 보여주며) 우리학교는 이걸(집회에 나가는 걸) 반대하면서 못 나가게 하고 그런 학교는 아니었어요. 그래서 그때 (집회) 있었던 건 거의 다 나갔던 거 같아요. 밤 11시, 12시까지 선생님이랑 같이 시위하다가 집에 가고."
난다 : "4월에 자퇴하고 5월에 촛불이 터졌어요. 엠건이랑은 그 전에 한 청소년 인권단체에서 먼저 만났는데 촛불에서 친해졌죠."
엠건 : "만날 같이 밤을 꼴딱꼴딱 새고 도망 다니고 그랬으니까. 그때 청소년 단체 애들이랑 같이 집회준비도 하고 '반말하지 마세요' 이런 피켓같은 것도 만들고 그랬어요." 
난다 : "스프레이로 거리에 낙서하고, 분필로 '이 차도가 다 우리 거야' 이러면서."

- 촛불집회 나갈 때 학교나 가족들 반응은 어땠나?
엠건 : "집에 잘 안들어가니까 처음에는 엄마랑 엄청 싸웠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엄마가 익숙해졌어요."
유진 : "저희 부모님도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공부를 안 하니까 걱정하셨어요. 그리고 직접 현장에 나와서 보면 저희는 순수하게 집회만 하고 들어가는건데, 뉴스에서는 전경들만 보이고 싸우는 것만 보이고 너무 위험한 거예요. 불법 폭력시위다 뭐다…."
엠건 : "누가 먼저 불법을 저질렀는데. 아, 생각할수록 짜증나."
난다 : "4월에 자퇴도장 찍고 나와서 활동하는데 저희 엄마도 걱정하시면서 안 좋아하셨어요. 그런데 나중에 엄마도 한 번 같이 나왔어요. 그때 엄마는 피곤하다고 먼저 들어가고 저는 밤새웠어요."  

"5월 30일~6월 1일, 충격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 집회 나가서 발언한 적도 있나?
유진 : "저 있어요. 애들이 아무도 안 간다고 해서 집회에 혼자 나간 적이 있는데 '안 되겠다. 나도 한 마디 해야겠다' 싶더라고요. 시청광장 시민 발언하는 곳이었는데….
엠건·난다 : "우와. 대단하다. 그 때 본 것 같아."

- 혹시 물대포도 맞았나? 
엠건 : "5월 30일에서 6월 1일 넘어갈 때. 너무 충격이었어요.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지. 울먹울먹 거렸어요."
유진 : "맞아. (물대포가) 너무 세서 멍들었다는 사람도 있었고. 고막 터졌다는 사람도 있었고."
난다 : "우리를 사람으로 안 보는 거야."
엠건 : "2년이 지났는데도 그때 떠올리면 생생하긴 해요."

- 잡혀간 적도 있나?
엠건 : (난다 가리키며) "얘 잡혀갔어요."
난다 : "사람들이 되게 많이 연행된 날이었어요. 그때 밤 10시쯤 해산명령이 내려져서 시청광장 쪽으로 가서 해산을 하겠다고 하고 잔디밭으로 갔는데 갑자기 전경들이 사람들을 우르르르 둘러싸는 거예요. 그래서 저랑 제 친구 두 명이랑 촛불 들고가서 전경들한테 '사람들 연행하지 마세요' 이랬는데 갑자기 팔이 아래에서 쑥 들어오더니 저를 잡아가는 거예요. 버스를 타고 영등포 경찰서로 가서 22시간 정도 있었어요.

밤을 새고 오전에 유치장 들어갈 때 되게 무서웠어요. 다음날 오전에 진술서를 쓰는데 경찰이 불러주는 대로 다 쓰래요. '다시는 이런 불법시위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쓰래요. 그래서 제가 그건 좀 아닌 것 같다고 말했어요."

2008년 5월 27일, 난다의 연행 모습은 '울부짖는 여중생', '청소년까지 연행하는 경찰'이라는 제목의 사진과 함께 보도되었다. 이 사진은 '여린 소녀까지 잡아가는 무자비한 경찰'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사진의 주인공이었던 난다는 '촛불소녀'가 '보호되어야 할 대상'으로 그려지는 게 불편했다고 말했다. 미성년자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석방되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난다는 또한 자신은 여중생도 아니었다면서 그 사진으로 인해 많은 '놀림'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우리나라, 내가 생각했던 나라 아니라는 게 충격"

2008년 5월 17일 오후 서울 덕수궁 앞 모습. 한 학생은 가면을 쓴 채로 '미친소, 미친교육, 청소년이 바꾼다! 5.17 청소년 행동의날' 행사에 참여했다.
 2008년 5월 17일 오후 서울 덕수궁 앞 모습. 한 학생은 가면을 쓴 채로 '미친소, 미친교육, 청소년이 바꾼다! 5.17 청소년 행동의날' 행사에 참여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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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그렇게 집회에 열심히 나갔던 거 같나?
유진 : "그때 마음은 안 나갈 수가 없었어요. 거기 있는 사람들이 왜 다 나갔겠어요. 나부터 안 나가면 안 되겠다. 그런 마음도 있었던 거 같고."
엠건 : "재미있기도 재미있었어요. 광화문 도로에 자리 깔고. 소풍가듯이." 
난다 : "사람들이 북같은 거 들고 와서 꽹과리 치고."
엠건 : "김밥 같은 것도 나눠주고."
유진 : "소라기둥있잖아요. 거기 앞에서 사람들이 밤에 촛불 들고 다 같이 있는 게 참 예쁘고 좋았어요."

- 연행도 되고 물대포도 맞으면서 '무섭다', '그만 나가야겠다' 이런 생각은 안 들나?
엠건 : "오히려 분노를 지피면 지폈죠."
난다 : "분노게이지만 상승시켰어요"
유진 : "맞아. 더 짜증나게 했지."
엠건 : "다칠 수도 있는데 설마 물대포를 쏠까, 설마설마 했는데 그 설마가 자꾸 깨졌어요. 촛불 생각하면 떠오르는 가장 큰 키워드가 '국가의 폭력'이에요. 그걸 내가 당한 거고. 그리고 그때 느낀 게 '이게 촛불집회 만의 일은 아니겠구나'였어요."
유진 : "언론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게 충격이었어요. 난 그 현장에 있었는데 뉴스에는 그게 나오지 않으니까. 나라에서 잘만 통제하면 되겠구나. 신문·뉴스같은 거 다 거짓말이겠구나."

엠건 : "사람들 마구잡이로 때리고, 난다 말처럼 우리를 인간으로 안 보는 사람들이 정책을 만든다고 생각하니까 앞으로 장난이 아니겠다 싶었어요."
난다 : "전경들이 나한테 몰려오는 걸 본 이후로 아, 내가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고 어떤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 똑바로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유진 : "그때는 어린 마음에 한국에서 살기 싫다, 내 아이는 한국에서 살게 하지 말아야지 라는 생각도 했어요. 우리나라가 내가 생각했던 나라가 아니라는 게 엄청 충격이었어요."

"투표권만 주면 '이런 대통령 뽑나봐라'했는데 꼭 투표해야죠"

- 촛불 이후에 자신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나?
엠건 : "촛불만이 아니라 촛불집회에서 활동하면서 만난 사람들이랑 이야기하면서 한결 더 편하게 대학 안 가는 걸 결정할 수 있었어요. 사실 겁나잖아요. 대학 안 가도 그럭저럭 살 수 있는데 하도 주위에서 들은 얘기가 많아서 대학 안 가면 큰일 날 것처럼, 당장 인생의 낙오자가 될 것처럼.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은데.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촛불 같은 데서 폭력을 보면서 세상이 정말 무섭고 끔찍한 것들이 존재하고 있고 나는 그런 세상 속에서 살고 있구나. 적어도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변화시킨다'까지는 감히 생각도 못하겠지만 세상이 이대로 돌아가는 걸 원하지 않는다면 뭔가 해야겠구나." 

유진 : "신문을 보거나 뉴스를 보는 시선이 달라진 게 제일 큰 거 같아요. 지금은 민감한 문제가 나오면 한 번이라도 더 보게 돼요. '비판적 시선'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안목이 생겼어요. MBC 파업 문제만 해도 너무 열받고요. 무슨 뉴스가 너무 크게 나오면 정부가 뭘 덮으려고 저렇게 뉴스를 터뜨릴까. 천안함 사태를 왜 한 달 내내 내보내는 거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엠건 : "'김연아 금메달 따는 날 MBC 사장 바뀐 게 우연일까' 이런 거."

'대학새내기'인 유진과 달리 엠건과 난다는 대학을 다니지 않고 있다. 둘은 지난해부터 촛불시위에서 만난 친구 3명과 함께 <모난라디오>라는 청소년방송을 진행하는가 하면 청소년 인권운동 활동을 하고 있다. 이날도 둘은 '기호 0번, 청소년 교육감 후보'의 공약을 준비하는 워크숍에 참석했다가 오는 길이었다.

2008년 6월22일 모습. 학생과 시민들이 서울 시청광장 앞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 참여해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와 전면 재협상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08년 6월22일 모습. 학생과 시민들이 서울 시청광장 앞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 참여해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와 전면 재협상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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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무 살이 되니 어떤가?
유진 : "저는 재미있게 다니고 있죠. '내가 이러려고 3년을 그렇게 공부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아요. 제가 고등학교 때 스트레스 받으면서 피곤하게 다녔거든요. 애들이랑 놀러가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유일하게 바깥으로 나돈 게 촛불 때였어요. 촛불 이후에는 고3 되면서 집, 학교, 독서실만 가고. 그런데 지금은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없는 게 너무 좋아요. 고등학교 때는 새벽 2시까지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6시에 일어나서 또 학교가고 그랬는데 지금은 잠들기 전에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 안 해도 돼서 좋고."

엠건 : "스무 살 되니까 술이나 담배 같은 걸 편하게 살 수 있잖아요. 그렇게 자유가 생길 수록 청소년 때 당했던 억압이나 불합리하거나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게 가물가물해 지는 것 같아요. 어제도 청소년들이랑 같이 놀다가 어떤 애한테 옆반 애가 자살했다는 문자가 온 거예요. 그때 '나는 지금 빠져나왔지만 거긴 여전히 전쟁 중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친동생만 해도 우울증이 심하고 저도 학교 다닐 때 그랬고."

-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나?
유진 : "학교 열심히 다녀야죠. 학교에서도 총학생회 이런데서 학교쪽이랑 문제가 있어서 대자보 같은 게 붙으면 다른 애들은 그냥 지나쳐도 저는 한 번이라도 더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애들이 총학투표도 안 하더라고요. 그런 거 보면 답답해요.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텐데. 아, 투표도 하려고요. 고2, 고3 때는 투표권만 주면 내가 이런 대통령 뽑나, 이런 교육감 뽑나 봐라 그랬는데 꼭 투표해야죠."
난다 : "난 생일이 안 지나서 투표권이 없어. 억울해."

엠건 : "'활기'라고 청소년 인권 활동가 활동기반 프로젝트 이름인데, 청소년 활동가들 지원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는 프로그램을 진행 중인데 쉽지 않네요."
난다 : "청소년 인권 활동하는 게 돈도 없고 사람도 없고 인정도 못받고 무시당하고. '애들이 하면 뭐해' 이런 식이라."
유진 : "그때 당시에도 그런 시선이 너무 싫었어요. '애들이 뭘 안다고'"
엠건 : "아이고 기특해라, 애들이 나라도 걱정하고."
난다 : "'우쭈쭈주' 됐거든요."

"촛불이 청소년을 이용한 게 아니라 <조선>이 그랬다"
20살이 된 '촛불소녀'들과의 유쾌한 수다를 마친 지 이틀만인 지난 10일 <조선일보>에는 '촛불소녀'에 대한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기사가 실렸다. <'촛불소녀' 한채민양 "무대에서 읽은 편지는 모두 시민단체가 써준 것">이라는 제목의 기사다. 한채민양은 11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조선일보>의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해당 인터뷰 기사에 등장하는 다른 두 명의 '촛불소녀' 역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조선일보가 왜곡보도, 편파보도를 했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의 '촛불소녀' 보도에 대한 난다, 엠건, 유진의 생각은 어떨까. 지난 12일 전화를 통해 물어보았다.

-<조선일보> '촛불소녀' 기사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난다: "촛불을 깎아내리려고 발버둥을 치는 듯하다. 뻔뻔하다는 생각이 든다. 객관적인 척 하면서 의도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촛불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로 선택한 게 '청소년 스스로 한 게 아니라 대신 해줬다'는 건데, 청소년들이 (그 때 당시) 어떤 의도를 가지고 왔는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제대로 보려는 노력을 안 한 것 같다."

유진: "왜곡된 인터뷰를 보고 잠을 못 잤다고 했는데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 나도 그 여자분(한채민양)처럼 시위에도 나가고 발언도 하고 인터뷰도 많이 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보도될 줄 모르고 인터뷰를 했는데 그런 기사가 나왔다면 어이가 없었을 것 같다."

엠건: "<조선일보>와 <오마이뉴스> 기사를 연달아봤는데 나였으면 <조선일보>랑 절대 인터뷰를 안 했겠지만, 만약에 했는데 그런 식으로 나왔으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을 거다. 엄청 화가 났을 거다. 인터뷰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도 없고 저래도 되나 싶다. 말만 받아서 짜깁기 한 걸 보면, 그 사람이(인터뷰이) 어떻게 될지 생각을 안 하고 이용해 먹은 거다. <조선일보>에서는 청소년들이 촛불단체 쪽에 이용당했다고 하는데 청소년을 이용한 건 <조선일보>다. 청소년들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고 어른들에게 휩쓸려서 나왔다는 시선은 촛불시위 때도 많이 봤던 건데 <조선일보>의 기사 역시 그렇다."


태그:#촛불소녀 , #촛불 2주년 , #촛불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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