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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군산시 장미동에 자리한 구 군산세관은, 제1차 군산항 축항공사 기간(1905~1910)이었던 대한제국 순종 2년(1908년)에 자본금 8만 6천 원을 들여 지어졌다. 처음엔 망루 등 부속 건물이 많았으나 모두 헐리고 지금은 본관 건물과 압수품을 보관하던 창고가 남아 있다. 

1993년 10월까지 군산세관으로 사용됐던 건물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유럽의 중세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는데 서울역사, 한국은행 본점 등 전국에 3곳만 현존하고 있어 건축은 물론 향토사적 가치도 높다.

귀한 유물, 그러나...

정면에서 바라본 구 군산세관, 70-80년대까지만 해도 일반인은 신원을 확인하고서야 출입할 수 있었던 금지구역이었다.
 정면에서 바라본 구 군산세관, 70-80년대까지만 해도 일반인은 신원을 확인하고서야 출입할 수 있었던 금지구역이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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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개방을 하지 않았던 본관 건물에 '호남 관세 전시관'(이하 전시관)이라는 간판을 붙이고 군산세관의 역사자료와 일제강점기 잔혹사가 담긴 사진들을 전시해놓고,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고 해서 둘러보았다.

전시관은 개항되던 해에 설치된 '군산 해관'(1907년에 '세관'으로 개칭)이 1993년까지 약 85년간 사용해오다가, 1994년 8월10일 전라북도 기념물(제87호)로 지정되어 지방 문화재로 보호 관리되고 있다. 

독일인이 설계하고, 벨기에에서 수입한 붉은 벽돌을 사용하여 단층 건물(69평)로 건축했다는 전시관 지붕은 슬레이트와 동판으로 된 고딕 양식에, 창문은 로마네스크 양식이다. 대한제국 때 완공된 귀한 유물이다. 하지만, 조선 백성을 핍박하고 쌀을 수탈해가던 일본의 상징이어서 뼈아픈 유산이기도 하다.   

현관의 처마를 끄집어 낸 것은 영국의 건축양식으로, 전체적으로 유럽의 건축양식을 융합한 근세 일본 건축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지붕 위 세 개의 뾰쪽한 '철탑'(바늘탑)이 인상적인데, 일제가 하늘로 웅비하는 의미를 살려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무도회장으로도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구 군산세관 사무실. 군산세관 역사와 일제강점기 군산 사진들을 모아 진열해놓았다.
 무도회장으로도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구 군산세관 사무실. 군산세관 역사와 일제강점기 군산 사진들을 모아 진열해놓았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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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정면 중앙의 출입구 바닥은 화강석이며, 바깥벽은 붉은 벽돌로 쌓고, 지붕을 얹어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안정되고 무게감 있는 외관을 보여준다. 내부는 거의 대칭으로 배열되어 있고, 효율성을 위해 복도가 한쪽에만 설치되어 있다. 천정의 화려한 조명등 흔적은 각종 연회 행사장으로 사용됐던 것으로 추측된다.

원래는 사무실과 선박 입출항을 감시할 수 있는 망루 2개 동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현 청사를 신축하면서 망루는 철거하였다. 신축공사 당시 '일제 건축물은 헐어내고 새로 개발해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함에도 '아픈 역사도 소중한 역사!'라며 보존을 적극적으로 주장한 제61대 방길남 군산세관장(1993년 4월-95년 6월 재임)의 설득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제가 호남과 충청지역의 쌀, 곡식 등을 수탈해갔던 창구로 이용했고, 해방 후에는 밀수품 단속을 주 업무로 하면서 수많은 애환과 곡절을 간직한 전시관은 2006년에 방영됐던 KBS 드라마 '1945 서울'에서 인력거가 등장하는 일제강점기 거리 장면 녹화장이 되기도 했다.

다양한 사람들 이곳 방문

현재는 내부를 개편 확장하고 19세기 후반의 군산항 및 주변 건물들의 모습을 찍은 자료사진들과 세관역사, 가짜 밀수품을 쉽게 판별하는 설명문과 함께 압수품들을 전시하고 있어 관세행정 홍보의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진열품 하나하나에 관심을 표하면서 진지한 표정으로 해설사 설명을 듣는 송미리씨 일행
 진열품 하나하나에 관심을 표하면서 진지한 표정으로 해설사 설명을 듣는 송미리씨 일행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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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가슴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후손들에게 가르치고 보여주고 들려주기 위한 산 교육의 장소로 그 가치의 중요성을 느끼면서 역사에 대한 애착을 두고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종예(61) 해설사의 설명이다.

그는 "건물 관리는 군산세관에서 하고 있으며, 유지 및 보수는 군산시 문화 관광과에서 하고 있다"며 "산교육의 장소이다 보니, 초등학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계층의 방문객이 찾아오고 있다"고 귀띔했다.

하루 평균 1백여 명, 시티투어가 있는 주말에는 수백 명씩 다녀가기도 하는데, 초등학생은 물론, 부모를 모시고 오는 젊은이들과 주한미군, 가족단위로 오는 일본인과 외국인들도 상당수 있다고 설명했다.  

밖에서는 텅 비어 있을 것으로 알았는데, 막상 들어와 보니까 구경할 게 많아 매력을 느꼈다는 젊은 여성도 있고, 평화봉사단으로 와서 시내 관광지도를 만들어 기증한 외국인도 있고, 선조들의 잔학상을 듣고 죄송하다며 사과하는 일본 방문객들도 간혹 만난다고 했다.

서울에서 직장 동료와 제11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참석했다가 시간을 내서 들렀다는 송미리(29)씨 일행은 옛날 흑백사진 하나하나에 초점을 맞추면서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특히 송미리씨는 "외국인들도 와 본다는데 지금까지 몰랐다니 창피하네요. 돌아가면 가족과 친구들에게 알려서 다시 와야겠네요!"라며 수줍은 표정을 짓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상업의 중심지

일제의 조선 식민지화 정책으로 이루어진 군산의 개항(1899년)은 왜놈들의 쌀 수탈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나 다름없었다. 일제가 호남평야의 기름진 쌀을 일본으로 실어 나르는 창구 구실을 했던 항구였기 때문이다.

인천항 개항(1883년), 목포항 개항(1897년)에 이어 군산항이 1899년에 개항했다. 개항 당시 군산은 150가구에 주민 511명이 사는 한적한 어촌이었고, 겨우 보부상들이 이용하는 작은 포구였으나 식민 수탈의 핵심으로 부상하게 된다.

일제 강점기 군산의 중심가 본정통, 건물들이 모두 일본식임을 금방 알 수 있겠는데, 도로 가운데 소달구지가 이채롭다. 좌측으로 조선은행 지붕도 보이고.
 일제 강점기 군산의 중심가 본정통, 건물들이 모두 일본식임을 금방 알 수 있겠는데, 도로 가운데 소달구지가 이채롭다. 좌측으로 조선은행 지붕도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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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 이전 군산전경(상단 좌측), 축항공사가 시작된 개항 직후(상단 우측). 1900년대 초 거류민단 시절의 군산 (하단 우측), 1920년대 영화동 부근(하단 좌측).
 개항 이전 군산전경(상단 좌측), 축항공사가 시작된 개항 직후(상단 우측). 1900년대 초 거류민단 시절의 군산 (하단 우측), 1920년대 영화동 부근(하단 좌측).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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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제일의 호남평야와 충남평야가 배후지였던 군산은 금강이 서해와 만나는 자리에 있어서 개항 전부터 중국이나 일본을 드나들며 교역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상당수의 일본인과 중국인이 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개항 이전 군산은 서남쪽이 산지였으며 동쪽은 갈대밭으로 가로막힌 조선 12부 중 가장 협소한 60만 평의 공간을 가지고 있던 지역이었다. 그러나 일제는 동서의 양 구릉지 사이 낮은 평지를 이용하여 격자형 도시공간으로 계획하였다.

이후 군산 시가지는 일본인 거류지를 중심으로 동서로 길게 확장되어 서쪽으로는 북정구 너머까지 형성되고 동쪽으로는 경포천 부근까지 확장되었다. 이와 더불어 도시의 관리기능을 담당하는 근대적 통치기구와 시설들이 북정구 본정통 일대에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세관건물 앞은 군산 본정통(중심가라는 뜻) 출발점이었다. 조선은행(1903년 제일은행 군산출장소), 십팔은행 군산지점(1907년 4월), 미곡검사소(1907년) 등이 자리하였고, 부근에는 우체국(1901년 3월), 경찰서(1901년), 이사청(1906), 日人 거류민회(1899년 11월), 탁류에 나오는 '미두장',  병원 등 식민지 관리기관들이 집중되어 상업의 중심지였음을 지금까지 남아 있는 적산가옥들과 자료사진을 통해 알 수 있다. 

왜놈들이 쌀을 수탈해가던 내항 주변에 2층 규모의 시립박물관 공사가 한창이고, 지곡동 옥산공원 일대에는 근대역사문화관 건립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모쪼록 근대 역사 문화 벨트가 조성되어, 군산이 애환의 역사를 보고 듣고 배우는, 역사교육의 도시로 거듭나기를 기원해본다.

ⓒ 조종안

덧붙이는 글 | 위 기사는 군산시청 홈페이지와 '군산시사(群山市史)'를 참고했습니다.



태그:#군산세관, #개항, #수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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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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