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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때마다 내 동반자가 되어 준 낡은 여행가방, 어버이날 기념으로
아이들이 선물로 준 제주도 여행도 나와 함께 할 것이다
 여행때마다 내 동반자가 되어 준 낡은 여행가방, 어버이날 기념으로 아이들이 선물로 준 제주도 여행도 나와 함께 할 것이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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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이번 어버이날 무슨 선물 받고 싶으세요? 저희가 아빠 원하시는 선물 한 가지 해 드릴게요."
"선물? 선물은 무슨. 아빠는 됐다. 꼭 갖고 싶거나 필요한 물건도 없고."
"꼭 필요한 것 없으세요? 평소 갖고 싶으셨던 것, 엄마는 멋진 티셔츠 갖고 싶다고 하시던데요. 멋진 봄옷이나 넥타이, 아니면 등산복은 어때요?"

며칠 전 아침을 함께 먹던 아이들이 무슨 선물이 받고 싶냐고 물었다. 그러고 보니 5월은 가정의 달, 5일이 어린이날이고 8일은 어버이날이다. 우리 집엔 어린이가 없으니 어린이날은 특별할 것이 없고, 큰 딸은 대신 어버이날 우리 부부에게 무엇인가 선물을 하고 싶은 것이리라. 동생들과는 미리 의논을 했었나 보다.

"당신은 벌써 티셔츠 받고 싶다고 주문해 놨어?"

식탁 맞은편에 앉아 아침을 먹는 아내에게 물으니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당신 티셔츠 많은데 뭘 또? 아빠는 선물 같은 거 필요 없으니까 신경 쓰지 마라."

예쁜 옷에 대한 욕심이 많은 편인 아내는 아이들이 묻자 선뜻 티셔츠를 선택했나 보다. 그렇지만 옷에 별 관심이 없는 내겐 사실 특별히 선물 받고 싶은 선물이 있는 건 아니다.

"당신도 갖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요. 아이들이 선물하겠다고 하면 받는 게 좋아요. 매번 이렇게 받지 않겠다고 하면 쟤들 습관이 돼서 나중에도 당신에게 신경 안 쓰게 되니까. 우리 아빤 아무것도 안 해줘도 된다고..."

아이들이 어릴 때 선물한 손수건에 감동

아내의 말이 옳다. 부모와 자식 사이지만 항상 거절하다보면 당연히 해주지 않아도 되는 대상이 돼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아내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어른을 배려해야 한다고 가르쳐왔다. 맛있는 과자나 음식도 꼭 어른에게 먼저 권하고, 생일이나 명절이면 작은 선물이라도 하도록 가르친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 3남매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우리 부부의 생일과 어버이날(전엔 어머니날)엔 용돈을 아껴 작은 선물을 하곤 했다. 모두 성장하여 30대 초·중반이 된 3남매는 지금까지 해마다 작은 선물이라도 잊지 않고 해오고 있다.

그런데 사실 요즘은 특별히 선물 받고 싶은 물건이 없었다. 젊었을 때와 달리 사회활동을 많이 하지 않기 때문에 옷이나 생활도구가 별로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멋을 부린다거나 외모 치장에 관심이 없었는데, 나이 들어가며 초라한 모습이 되면 안 된다는 아내의 성화에 어쩔 수 없이 전보다는 조금 신경을 쓰고있다. 그러나 여전히 외모와 멋 부리는 데는 관심이 없는 내가 아니던가. 등산복과 등산화, 그리고 등산 모자도 몇 년간은 전혀 필요치 않았다.

"선물은 너희들 초등학교 다닐 때 적은 용돈 모아서 어버이날 엄마 아빠에게 선물로 사준 손수건을 받았을 때 가장 감동적이었지, 요즘은 정말 갖고 싶은 것이 없다."

아이들이 어버이날이라고 선물을 하겠다고 성화를 부리자 문득 30여 년 전 아이들 어렸을 때 받은 선물이 생각난다. 그땐 정말 아이들이 어버이날이라고 선물을 하리라곤 생각도 못했었다. 그런데 연필로 또박또박 쓴 3남매의 편지와 함께 어설프게 포장한 손수건 두 장을 받은 것이다. 한 장은 빨간색, 또 한 장은 연보라색.

"저희들이 어렸을 때 손수건을 선물 했었어요? 호호호 하하하."

아이들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다가 손수건 선물 이야기를 꺼내자 새삼스럽게 재밌다는 표정들이다. 손수건 이야기를 시작으로 아이들은 어린 시절로 되돌아 간 듯 깔깔거리며 재미있어 한다.

"고마워 제주도 여행 선물"

"아빠는 선물 싫으시다니 어쩌겠니? 그냥 둬야지... 아니다. 이달 말 경에 아빠네 친구들 모임에서 제주도 여행계획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걸 너희들이 해주면 좋을 것 같다."

내가 계속 선물을 거절하자 아내가 대신해 여행 선물을 제안하고 나선다. 처음엔 포기하려고 했다가 문득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여행을 떠올린 것이리라. 얼마 전 어느 모임에서 거론된 제주도 여행 계획을 듣고 아내와 의논한 것이 문득 생각난 것이다. 전에도 몇 번 다녀온 제주도지만 이번 여행은 코스도 특별하고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그럼 잘 됐네요. 그 제주도 여행은 저희들이 보내드리는 걸로 할게요. 얘들아, 너희들 알았지?"

큰 딸이 두 동생들에게 말하자 두 아이들도 좋다고 한다. 아내와 아이들이 결정하고 나서니 나도 할 말이 없다. 아니 어쩌면 내게도 좋은 선물이었다. 왜 그걸 생각하지 못했을까? 선물이라고 꼭 옷이나 보석 같은 물건만 있는 것은 아니지.

여행이야 어차피 떠나게 될 것이고 아이들이 그 비용을 맡아 준다면 내게도 기분 좋고 부담 없는 여행이 될 것이다. 여행비용은 가끔 조금씩 받는 원고료를 모아서 쓰고 있는데, 이번 제주도 여행비용을 아이들이 어버이날 선물로 부담해 주면 연말이나 내년 쯤 계획 중인 해외여행도 한결 쉬울 것이다.

"얘들아, 고맙다. 어버이날 제주도 여행선물."

이번 어버이날 아이들부터 받게 된 여행선물은 내 마음에도 흡족했다. 작은 선물 사양하다가 등 떠밀려 받게 된 제주도 여행선물은 어쩌면 그동안 내가 가장 받고 싶었던 선물이었는지도 모른다.


태그:#어버이날, #제주도, #여행선물,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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