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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선물'을 좋아합니다. 괜찮다는 말은 마음에 없는 소리랍니다.
 엄마도 '선물'을 좋아합니다. 괜찮다는 말은 마음에 없는 소리랍니다.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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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어린이날이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조카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고 있는데 곁에 있던 아들이 한 마디 합니다.

"아! 어린이날이구나. 근데 저는 뭐 없어요?"
"아들, 너 며칠 뒤에 예비군 훈련이라며, 예비군 훈련 다니는 어린이도 있니? 어린이날 선물 받을 생각 말고 어버이날 선물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니니? 사랑이 담긴 감사편지 뭐 이딴 걸로 싸게 넘기려 하지 마. 엄마는 정성보다는 가격이 중요하니까."   

갑자기 허를 찔린 듯 한 아들의 표정. 아마도 아직 어버이날 선물을 준비하지 못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다고 순순히 넘어가 줄 제가 아닙니다. '받을 건 받고, 줄 건 주자'가 평소 제 생각이다 보니, 부모 자식 간에도 받아야 할 건 철저히(?) 받아내야 직성이 풀리거든요.

사실 아이들이 고등학생이었던 5년 전만 해도 어버이날 선물 같은 것에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그땐 입시다 뭐다 가뜩이나 지쳐 있는 아이들에게 어버이날 선물까지 신경쓰라고 말할 수 없었거든요.

하지만 부모인 저에게는 하지 못해도 할머니, 할아버지 선물은 꼭 챙기라고 가르쳤습니다. 아들은 스스로 용돈을 모아 마련하기도 했지만 사실 제가 미리 준비를 해 두고 녀석들의 손을 통해 전달하는 경우가 더 많긴 했지만 말이지요.

손자들의 선물을 받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기쁨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나이 어린 손자들이 코 묻은 용돈을 한푼 두푼 모아 산 선물이라는 것을 잘 아시기에 비록 작은 것이기는 해도 자식들이 드리는 두툼한 용돈봉투 이상의 기쁨이 되지요.

5년 전 어버이날, 덜컥 서운함이 밀려들다

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 선물은 챙기라고 가르치면서 '엄마 아빠 선물은 됐다'고 했던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나는 괜찮으니까 할머니 할아버지 선물이나 꼭 챙겨"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온 제가 하루는 그것 때문에 펑펑 울고 말았거든요.

두 아들이 모두 고등학생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 해도 어버이날을 앞두고 시어머니와 친정 부모님을 위한 작은 선물과 용돈봉투, 그리고 식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지요.

아들들에게도 할머니 할아버지 선물을 준비하라고 미리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선물을 살 만큼의 돈을 용돈에 더 얹어 준 건 말할 것도 없고 미리 선물 품목까지 지정해 주며 녀석들의 수고를 덜어 주려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선물을 준비하면서 한편으로 허전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뭐야? 어린이날엔 애들 선물 챙겨, 어버이날엔 부모님 선물 챙겨, 난 왜 아무도 안 챙겨 주는 거야. 눈치 없는 아들 녀석들,  엄마가 아무리 필요 없다고 해도 알아서 좀 챙겨주면 큰일나나?'

왜 그랬는지 자꾸만 아들들에게 선물을 기대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건 아마도 친구 딸들 소위 말하는 '엄친딸'(착하고 공부 잘하는 엄마 친구 딸)들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적지 않습니다.

"글쎄말이야. 우리 딸이 지난해 어버이날 향수를 선물 했잖니. 제 아빠한테는 반짝이 넥타이를 선물하고… 편지도 어찌나 눈물나게 썼는지. 남편하고 나하고 울었잖아. 그런 재미에 자식키우는 건가봐."

"그래? 우리 애는 작년 어버이날에 영화표를 예매해주더라. 나가서 영화보고 맛있는 거 먹고 오라는데 사실 별거 아니지만 마음이 예쁘잖아."    

친구들은 올해는 또 어떤 선물로 아이들이 자기들을 놀라게 해 줄지 자못 기대가 크다고 했습니다. 어떤 친구는 벌써부터 아이들이 어떤 선물이 좋은지 물어오기까지 했다며 자랑이 늘어집니다.

남의 집 이야기지만 부모를 생각하는 아이들의 마음이 그렇게 훈훈하고 따뜻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집 두 아들 녀석은 어느 녀석 하나 엄마의 이런 마음을 알지 못하니 답답함을 넘어 염장이 날 수밖에요.

"나쁜 놈들 어버이날이라고 니들이 해 준 게 뭐있어?"

그래서 답답한 녀석들에게 언질을 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동안은 엄마가 어버이날 선물을 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겠지만 그건 다 엄마가 쿨 한 척 마음에도 없는 공언을 한 것 뿐이었다고. 사실은 엄마도 어버이날 선물을 무척이나 기다리고 있다고 말이지요. 하지만 그 말 하기가 왜 그리 구차하고 치사한지…. 도무지 입에서 나와 주지가 않는 겁니다.

'애효~ 어버이날 선물. 차라리 내가 사서 날 주고 말지. 저런 무심한 녀석들에게 뭘 바란담….'

그러다 마침내 어버이날이 돌아왔습니다. 아무리 눈치코치 없는 아들 녀석들이라지만 엄마가 그 정도 텔레파시를 보냈으면 하다못해 종이 카네이션 한 송이라도 들고 들어와야 하는 게 아닐까요. 

혹시나 했던 제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고 저는 그만 이성을 잃고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야 니들은 어떻게 어버이날에 엄마한테 선물하나가 없니? 하다못해 카네이션이라도 한 송이 사오든지. 감사편지라도 한 장 써 오든지."

"엄마는 갑자기 왜 그래? 엄마는 선물 필요 없다며? 하루 꽂고 버리는 카네이션도 싫어한다며, 엄마가 그랬잖아. 카네이션 비싸기만 하고 쓸모없으니 사지 말라고."

"그럼 편지는? 편지도 못 쓰니? 난 엄마 아니야? 나쁜 놈들 어버이날이라고 니들이 해 준 게 뭐있어? 다른 엄마들은 뭐 받았다, 뭐 받았다하는데 그 엄마만 엄마고 난 엄마도 아닌 거야? 도대체 너희한테 엄마는 뭐니?"

입이 떼지자 그동안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던 서운한 감정이 나도 모르게 폭발하면서 못나게도 눈물까지 보이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그런 상황이 속상하기도 하고 애들 앞에서 감정 자제하지 못한 것이 창피해서 황급히 자리를 피해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올해 어버이날 선물은 4월부터 미리 당부했어요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방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엄마 잠깐 들어가도 돼요?"

문을 열고 들어온 아들들 손에 카네이션 한 다발과 반짝이는 포장지가 들려 있었습니다. 아마도 급히 나가서 선물과 카네이션을 사 들고 온 모양이었습니다.

"엄마 죄송해요. 다음부터는 꼭 챙길 게요. 정말 엄마가 선물을 싫어하는 줄 알았어요."

뒤늦게라도 선물을 가져온 아들들도 민망했겠지만 선물 때문에 서운하다고 울고불고한 저 역시 아들들 볼 면목이 없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들들 말대로 선물이 받고 싶었으면 받고 싶다고 솔직히 말하면 될 걸 마음에 없는 척, 쿨 한 척은 다 해놓고 웬 뒤끝인지요.

그후로는 아들들도 저도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자'는 주의가 됐습니다. 공연히 마음에도 없이 사양하거나 됐다고 거절하지 말고 당당하게 받을 건 받고 그것 때문에 뒤끝을 남기지 말자는 것이지요.

사실 올해 어버이날 선물은 4월부터 미리 당부해 두었습니다. 선물을 준비하려면 용돈을 미리 미리 아껴두어야 하니까 한 달 전 쯤 예고를 하는 것은 받을 사람의 예의에 해당하는 것이지요.

"아들, 올해 어버이날 선물은 뭐 할 거야? 기대해도 되는 거지? 혹시 정성과 사랑이 담긴 감사 편지는 아니겠지? 달랑 편지 하나로 싸게 해결하려 들지 마라. 엄마가 받고 싶은 것은 정성과 사랑이 담긴 편지와 물질적 가치가 충분히 들어간 '선물'이야. 알았지? 기대할게."   


태그:#어버이날,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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