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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등반...
지리산 첫날...조망바위에 휴식하고 있던 아이들...
▲ 어린이날 선물... 지리산 등반... 지리산 첫날...조망바위에 휴식하고 있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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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천왕봉 일출

새벽 2시 30분, 잠이 깼다. 장터목대피소에서 늦도록 뒤척이다 잠든 밤, 화장실 잠깐 다녀온 뒤 잠이 오지 않아 눈만 감고 있었다. 새벽 4시가 되기 전, 천왕봉에 올라갈 준비를 하고 4시 15분에 천왕봉으로 향해 출발한다. 아직 먹물 같은 어둠이 온 산을 덮고 있다. 랜턴 불빛 하나 의지해 발 앞의 어둠을 밀어내며 더듬더듬 한 걸음씩 나아간다.

뭉친 근육이 당겨서 장터목대피소에서 급경사 바윗길 오르는 데 꽤 힘이 든다. 급경사 바윗길을 올라 제석봉으로 가는 길도 더듬더듬 바윗길을 더듬어 간다. 험한 바윗길을 랜턴 불빛을 이정표 삼아 나아간다. 남편은 많이 지친 모양이다. 새벽걸음을 힘겨워 한다. 새벽 5시, 통천문을 지난다. 천왕봉까지는 500m 남짓 남았다.

새벽 일찍 일어나 천왕봉으로 향하는 발걸음...어둠도 서서히 물러가고...
▲ 지리산... 새벽 일찍 일어나 천왕봉으로 향하는 발걸음...어둠도 서서히 물러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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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천왕봉 정상에서...아침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 새벽... 지리산 천왕봉 정상에서...아침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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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희미하게 드러나는 사물의 실루엣, 천왕봉 가는 새벽길에 랜턴 불빛이 앞에서 뒤에서 어둠 속에 깜박인다. 모두 새벽길을 걸어서 새벽을 깨우며 지리산 천왕봉으로 가는 사람들이다. 먹물 같았던 어둠이 천천히 푸르스름한 잉크 빛으로 변해간다.

천왕봉 도착, 새벽 5시 20분이다. 바람이 높고 차갑다. 배낭에 든 여벌옷이라는 옷은 다 껴입었는데도 이른 새벽 천왕봉 바람은 춥다. 먼저 온 사람들은 조용히 천왕봉 높은 봉우리에 올라서서 찬바람 속에서도 일출을 기다리고 서 있다.

새벽부터 아이들과 함께 올라온 부모도 있고 친구와 함께, 연인과 함께, 직장동료들과 혹은 부부가 나란히 함께 온 사람, 혼자 온 사람. 사람들이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해 모여 섰다. 남편과 나 또한 오랜만에 어둠을 밀어내며 올라오는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해 여기 섰다. 천왕봉 새벽바람이 매우 차다.

해야 솟아라...
동녘 하늘 붉게 물들이며...
▲ 지리산... 해야 솟아라... 동녘 하늘 붉게 물들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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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솟아라...동녘하늘을 바라보며 아침해를 기다리는 사람들...
▲ 기다림... 해야 솟아라...동녘하늘을 바라보며 아침해를 기다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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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 정상에서 ...
▲ 지리산... 천왕봉 정상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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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솟기 전, 먼저 동녘 하늘이 붉게 물들어 간다. 붉게 물들어 가는 아침 노을빛에 물드는 얼굴들... 기다림 끝에 아침 해는 수줍은 듯 떠오른다.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민 해는 금방 위로 떠올라 밝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일출, 새벽 5시 30분이다.

살을 에는 바람에 몸을 움츠리고서도 천왕봉에 올라온 사람들은 일제히 해바라기를 하고 섰다. 장터목에서 새벽길을 더듬어 오는 동안 달무리가 져서 일출을 볼 수 있을까 했는데 붉은 해가 떠올랐다.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을 오래 마주 서 있을 수 없어 하산한다. 새벽 5시 45분이다.

지리산에서 만난 '도인 할아버지?!

천왕봉에서 중산리까지는 5.4km, 장터목까지 1.7km, 대원사까지 11.7km다. 햇살이 퍼지기 시작하는가 싶더니 맑았다 흐렸다 하다. 중산리까지 가는 길은 급경사 내리막길이다. 급경사 내리막 바윗길에 일부는 전에 없이 나무계단이 생겨 걸음이 편하다.

다시 비탈바위길이다. 바위투성이인 비탈길을 걸으니 속도를 낼 수도 없다. 조심스럽게 한발 한 발 내딛는다. 일찍 하산하는 길 마음은 느긋해 걸음이 더 느리다.

도인 할아버지...?!
에고~설마 초상권 침해 했다고 쫓아오시진 않겠지...
▲ 지리산... 도인 할아버지...?! 에고~설마 초상권 침해 했다고 쫓아오시진 않겠지...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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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산장을 300m 정도 앞두고 바위에 앉아 휴식하는 도인 할아버지를 만난다. 하얗고 긴 수염과 하얀 눈썹, 하얀 수건을 터번처럼 두르고 커다란 배낭 하나 옆에 두고 앉은 노인은 천상 도인이다. 우리보다 앞서 오던 아주머니와 대화를 하고 있다. 잠깐 옆에 서서 이야기를 듣는다.

아주머니 말에 의하면 지리산에 사신다 하는데, 지난밤엔 지리산 천왕봉에서 비박을 하고 하산해서 법계사에서 주무실 거라고 한다. 새벽에 잠깐 서 있어도 추운 천왕봉 정상에서 어떻게 비박을 하셨을까. 춥지 않았냐고 물으니 '조금 춥기야 하지요' 하신다.

나이는 여든다섯이란다. 와우~대단도 하신다. 시간이 주어진다면 할아버지의 사연을 더 듣고 알고 싶기도 했지만 마냥 그럴 수도 없어 걸음을 옮긴다. 내려오다가 조망바위에 잠시 휴식하다 보니 할아버지가 앞서 가신다. 우리도 그 뒤를 따른다.

앞서 가는 분을 불러 '할아버지! 지리산에 다니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하고 물었더니 퉁명스럽게 '오래 됐어요!'한다.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계단 길에서 어린 아들과 함께 올라오는 젊은 아버지도 있다. 남자는 할아버지를 보더니 '도인 할아버지!'하고 서슴없이 반갑게 인사한다. 할아버진 잘 알려진 분인가 보다.

어린이날 특별한 선물, 지리산

"어린이 날 특별 선물입니다"...멋지십니다^^
▲ 아버지와 아들... "어린이 날 특별 선물입니다"...멋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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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나란히 올라오는 걸 보며 남편이 '아들과 함께 올라 오시네요'하고 말하자, "어린이날 선물입니다!"이라고 남자는 유쾌하게 대답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비싼 선물은 못 사주고...!"하고 말했다. 어린이날 선물로 지리산을 아들과 함께 온 아버지, 그야말로 멋진 분이다. 씩씩하게 아버지 뒤를 따라 올라가는 어린 소년의 걸음도 힘차다.

어제도 세석대피소에서 장터목대피소까지 오는 동안 부부 동반, 아이들과 함께 온 사람들이 여럿 보였는데 오늘도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은 5월 5일, 어린이날이라 그런지 가족 단위로 등산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요즘은 부부가 함께 등산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 것 같다. 참 아름다운 풍경이라 한 번 더 뒤돌아봐진다.

오전 7시 25분, 로타리 대피소에 도착한다. 대피소 바깥 나무의자에 앉아 아침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아무 생각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여유를 누리다가 다시 출발. 8시 55분이다. 계속해서 산으로 올라오는 사람들과 맞닥뜨린다.

나이 많은 중년 부인은 남편 뒤를 따라 땀을 팥죽 같이 흘리며 우리를 보디니 "고생들 많이 하셨네요"한다. 내심 부러운 듯하다. 어제 등산길에서 만난 하산하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가 느꼈던 똑같은 감정일 것이다. 우리도 그랬으니까. 산이 좋아 산에 들면서도 언제 갔다 오나...

하산길에 만난 학생들...힘들게 땀흘려 올라오는 모습들...
▲ 지리산... 하산길에 만난 학생들...힘들게 땀흘려 올라오는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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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아이들...지리산 등산 위해 배낭 등에 지고...단단히 준비하셨네요...힘찬 발걸음...
▲ 지리산... 엄마와 아이들...지리산 등산 위해 배낭 등에 지고...단단히 준비하셨네요...힘찬 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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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급경사길 끝없이 이어지는데 한 무더기의 고등학생들이 연이어 올라온다. 모두들 힘들고 지친 표정들이다. 정상이 어딘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궁금해 하고 빨리 당도하고 싶은 표정들이다. 아직 반도 채 오르지 않았는데도 땀을 흘리며 지쳐 있어 마음이 안쓰럽다.

지친 학생들을 향해 이따금 '파이팅'을 외치기도 하고 힘 내라고도 격려해보지만 에고~힘들어야 정상까지 닿는데 어떻게 하냐.

"법계사까지는 얼마나 더 가야 해요?"
"등산의 비법 같은 거 없어요?"하고 묻기도 한다.
"등산 비법? 한 걸음씩!"

그렇게 대답해 줄 수밖에 없다.

"천천히 한 걸음씩 걷다보면 닿게 되니까 성급하게 뛰지 말고 꾸준히 그리고 천천히 가렴."

오전 10시 20분 삼거리에 도착한다. 바로 앞에 환한 계곡 물소리... 삼거리에서 천왕봉까지는 4.1km, 로터리대피소까지 2.1km, 중산리까지 1.3km, 장터목대피소까지 4.0km다. 그동안 급경사 길이었지만 이제부터는 완경사길이라 조금 낫다.

엄마랑 아이들이랑 배낭을 메고 잰걸음으로 올라오는 모습이 여기서도 보인다. 엄마랑 아빠랑 아이랑 셋이 나란히 올라오는 모습도 보이는데 아이 신발이 겨울 부츠다. 저대로 정상까지 가진 못할 텐데, 알고 보니 조금 올라가다가 내려온단다. 그럼 그렇지.

거림까지 가는 버스가 11시에 있다고 했던가? 갑자기 걸음이 빨라지고 속도를 낸다. 10시 50분, 중산리 탐방지원센터에 도착, 차를 얻어 타고 주차장까지 도착한다. 아차, 거림까지 가는 버스는 하루에 3, 4번 밖에 없고, 차는 제 시간도 잘 안 지키는 데다가 11시가 아니라 1시 가까이 되어야 한단다. 어떡한담?! 하는 수 없이 택시를 타고 거림까지 간다.

제법 먼 길이다. 거림은 역시 산골짜기 중에 산골짜기인 모양이다. 거림 마을에 도착, 낮 11시 30분이다. 우린 어제 주차해 놓았던 우리 차를 타고 이제 집으로 간다. 온 몸이 절여놓은 배추처럼 축 늘어진다. 그래도 좋아라. 오랜만에 지리산을 만났으니.

산행수첩
1. 일시:2010년 5월 4일(화)~5일(수): 1박 2일
2.산행: 남편과 나
3.정상에서의 조망:탁월함
4.산행기점: 거림마을
5.산행시간: 14시간 55분
6.코스: 거림-세석대피소-천왕봉-로터리대피소-중산리

2010년 5월 5일(수), 약간 흐림, 6시간 40분
장터목대피소(04:10)-천왕봉정상(5:20)-일출시간(5:31)-하산(5:45)-개선문(6:25)-로타리대피소(7:25)-아침식사후 출발(8:55)-망바위(9:40)-삼거리(장터목, 중산리갈림길/10:20)-중산리탐방지원센타(10:50)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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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화

덧붙이는 글 | 지리산 두 번째 이야기...



태그:#지리산, #천왕봉, #도인할아버지, #어린이날,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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