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올봄은 참 유별나다. 화창한 봄날을 느껴본 게 며칠이나 될까? 잦은 비에 강풍에 황사까지. 며칠 전 봄의 속내를 잠깐 보여주다 잿빛 구름 뒤에 숨어버렸다. 그러고 보니 어느덧 여름 들머리라는 입하가 지났다. 이제 뜨거운 여름이 등장하는 건 아닐까? 올봄은 떠나면서까지 징하게 심술을 부리고 있다.

그런데 궂은 날씨가 훼방을 부려도 온갖 새싹들은 돋아났다. 파릇파릇 키를 키우고 나름대로 예쁜 자태의 꽃을 피우고 있다.

요즘 아무데다 자란 들꽃 중에 참 예쁜 것들이 많다. 보아주는 이 없어도 어느새 꽃이 피었다. 청초한 보라색 제비꽃이며, 널찍한 잎 사이로 화사한 자태의 민들레, 지천으로 핀 작은 꽃의 냉이. 애기똥풀도 노랑색으로 인사를 한다. 눈여겨 자세히 보면 자연의 아름다움이 있다.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낸 아내가 카메라를 들었다.

"여보, 제비꽃이 피기 전엔 무슨 풀인가 했는데, 꽃을 보니 제비꽃이었네! 미안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네. 밟히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이야. 앉은뱅이 민들레꽃은 겨우내 힘든 시련을 어떻게 견뎠을까?"

아내는 애기똥풀과 냉이꽃에도 관심을 두고 셔터를 누른다. 사람을 피해 살아남은 꽃들이 어느새 키를 똑바로 세웠다. 꽃을 피워 자손을 퍼트리려는 자연의 이치는 경이롭기만 하다.

겨울을 이겨낸 생명력 지닌 쪽파

앞마당에서 텃밭 가장자리로 옮겨 다니며 아내는 봄을 만끽한다. 밭일을 하던 옆집아저씨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옆집아저씨께서 뽑아주신 쪽파.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질긴 생명력을 자랑한다.
 옆집아저씨께서 뽑아주신 쪽파.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질긴 생명력을 자랑한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사진만 찍지 말고 우리 쪽파 좀 뽑아 가셔?"
"작년 김장 때 심은 쪽파요? 우리 차지까지 되요?"
"우리 먹고도 넉넉해."
"그럼 조금만 뽑아갈 게요."
"필요한 만큼 뽑아 김치도 담고 그러구려. 좀 있으면 꽃대가 올라와 맛이 달라!"

아내와 옆집아저씨가 나누는 말 속에 인심이 묻어난다. 아내는 소쿠리를 찾아 내손을 잡아끈다. 옆집 텃밭에는 들풀처럼 겨울을 이겨낸 쪽파가 소담스럽게 서있다. 어떻게 차디찬 언 땅에서 썩지 않은 뿌리로 생명력을 키웠을까?

아저씨가 소매를 걷어붙인다. 순식간에 파를 뽑으며 건넨 입담이 구수하다.

"봄파는 완전 자연산이야! 농약을 했나 비료를 주었나? 가을파보다 봄파가 훨씬 좋은 이유를 알겠지? 가을엔 벌레가 먹고, 파 끝이 깨끗하지가 않아 약 안 치고선 못 배기지. 그런데 봄파는 따스한 기운만 먹고 자라 얼마나 좋아!"

아저씨는 한사코 그만 뽑으라는 우리 성화에도 한 아름이나 넉넉하게 뽑는다. 파김치를 담가먹으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한다 면서 소쿠리 가득 안겨준다.

고마운 마음에 아내가 인사를 건넨다.

"아저씨네는 부추 없으시죠? 우리 밭엔 파랗게 올라왔어요. 듬뿍 베어다 겉절이도 하고 전도 부쳐 잡수세요."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 집에 없는 것은 이웃집에서, 이웃집이 궁한 것은  우리 텃밭에서. 나누는 이웃사촌의 정이 이런 게 아닌가 싶다.

쪽파 김치는 봄에 먹어야 제 맛

아내는 소쿠리를 쏟아내며 쪽파를 같이 다듬자고 한다. 쪽파 다듬는 일은 만만찮다. 가느다란 것을 하나하나 겉껍질을 벗겨 손질하려면 시간이 꽤 걸리기 때문이다.

쪽파는 요긴한 야채이다. 약방의 감초처럼 모든 음식에 들어가고 파전이나 파김치를 담가먹으면 그 맛이 참 좋다.
 쪽파는 요긴한 야채이다. 약방의 감초처럼 모든 음식에 들어가고 파전이나 파김치를 담가먹으면 그 맛이 참 좋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아내가 한참 쪽파를 다듬다 말고 뜬금없는 말을 꺼낸다.

"언젠가 내 친구 중에 쪽파가 크면 대파가 되느냐고 묻더라구요. 쪽파 대파도 구별 못하고선!"
"그 친구 도회지에서만 자랐나? 하기야 요즘 애들 중에는 쪽파가 대파 새끼쯤 되는 줄 아는 애들도 많을 거야!"

사실 그렇다. 파는 모두 같은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 쪽파는 쪽파고 대파는 대파다. 쪽파와 대파는 전혀 다른 종이라는 뜻이다. 쪽파와 대파는 번식하는 방법부터가 다르다.

쪽파는 뿌리로 심는다. 가을김장 때 요긴하게 쓰인다. 생명력이 강한 쪽파는 겨울에도 뿌리가 썩지 않고 봄에 새움이 올라온다. 봄에 자란 쪽파는 초여름에 꽃대가 올라오고 뿌리는 실하게 굵어진다. 대가 말라비틀어지면 뿌리를 캐 보관해두었다 초가을에 심는다.

반면 대파는 초여름 묵은 줄기에서 꽃이 핀다. 이때 맺힌 씨를 받아 재배한다. 씨에서 싹이 틀 때는 쪽파보다 가늘다. 이 실파가 조금 굵어지면 옮겨 심는다. 두세 달 자라 굵어지는 게 대파다.

쪽파나 대파는 참 소중한 야채다. 각종 비타민과 양질의 단백질을 함유하고 있다. 소화를 돕고 감기와 불면증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는 나물을 무칠 때나 찌개를 끓일 때 약방의 감초처럼 모든 음식에 들어간다. 자라는 환경이 달라서인지 파에 따라 음식맛도 달라진다.

특히, 쪽파는 해물과 함께 파전을 붙이면 그 맛이 독특하다. 또 파김치를 담가먹으면 아주 훌륭한 반찬거리가 된다.

파김치는 액젓으로 숨죽이고 찹쌀밥을 갈아 담근다

파김치를 담글 때 액젓에 절여 숨을 죽인다.
 파김치를 담글 때 액젓에 절여 숨을 죽인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맛난 파김치를 담그는 아내.
 맛난 파김치를 담그는 아내.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다듬어놓은 쪽파가 수월찮다. 하얀 밑동에 파란 쪽파가 싱싱하다. 아내는 파김치를 담글 요량이다. 흐르는 물에 씻어놓은 파가 더욱 싱싱해 보인다.

아내만의 쪽파김치 솜씨를 발휘할 모양이다.

파김치는 액젓을 살살 뿌려 숨을 죽인다. 숨이 죽는 동안 적당량의 찹쌀밥을 지어 믹서에 갈아 준비한다. 파가 숨이 죽으면 액젓을 따라내고 거기다 찹쌀풀, 고춧가루를 불려놓는다. 마지막으로 마늘을 조금 넣고 손으로 살살 버무리면 맛난 파김치가 완성이다.

푸짐하게 담근 파김치이다.
 푸짐하게 담근 파김치이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아내는 김치통에 가득 담긴 파김치를 보며 흐뭇해한다.

"여보, 옆집아저씨 불러 파김치에 막걸리나 한 잔 하시구려! 당신, 막걸리 소리에 귀가 번쩍 띄지? 아저씨네 파로 담갔으니 맛도 보여드려야 하잖아요! 조금 덜어드리고요!"

아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잰걸음으로 막걸리를 사왔다. 모처럼만에 햇살 따뜻한 마당 잔디밭에서 막걸리 파티다. 안주라야 파김치에 묵은지 지진 것이 전부이지만 풍성하게 느껴진다. 옆집아저씨 표정도 싱글벙글이다.

막걸리 한 잔을 단숨에 들이키는 아저씨는 흥에 겨운 말 한마디 꺼낸다.

막걸리 안주 삼아 옆집아저씨와 함께 함께 나눈 파김치.
 막걸리 안주 삼아 옆집아저씨와 함께 함께 나눈 파김치.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우리 집 파로 담가 그런지 맛이 참 괜찮네! 봄을 느끼며 먹는 막걸리 맛도 좋고! 그보다 사모님 김치솜씨는 일품이라니까!"

아저씨 칭찬에 아내는 해맑은 미소를 짓는다.


태그:#쪽파, #파김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