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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으로 들어가는 덕수궁돌담길과 로댕전 포스터
 서울시립미술관으로 들어가는 덕수궁돌담길과 로댕전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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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로댕미술관과 한국일보가 공동기획으로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회고전 성격의 '신의 손 로댕(Auguste Rodin, 1840-1917)殿'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8월 22일까지 열린다. '생각하는 사람', '지옥의 문' 등 113점의 청동, 대리석, 석고작품과 42점의 드로잉과 25점의 사진작품 등 그의 걸작을 서울에서 직접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전 홍보담당자 이혜민씨는 유럽에서 아이슬란드 화산재 낙진으로 갑자기 비행기 수송문제가가 생겨 마음 졸인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전시가 무산될 뻔했는데 기적처럼 열려 기쁘고 따라서 그만큼 이번 전시회에 대한 기대도 크단다.

로댕은 당시 제도권에서 밀려난 비주류 작가(?)

1900년 이후 로댕의 뫼동작업실
 1900년 이후 로댕의 뫼동작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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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의 당시 국립미술학교입학에 3번이나 실패한 비주류 작가였다. 그러나 그런 좌절과 실패를 전화위복으로 삼고 또한 카미유 클로델과의 순탄치 않은 사랑으로 경험한 갈등과 번민이 오히려 그의 창작활동에 원동력이 되게 하여 그를 더 위대한 예술가가 되게 했으리라.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감동의 파도가 밀려온다. 그의 작품을 처음 대했을 때 그가 예술적으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작가라기보다는 우리에게 뭐라 말할 수 없는 창조적 열정과 영감을 주는 작가라는 인상이 든다. 시공간을 넘어 우리에게 삶을 깊이 사랑하면서 더 아름답고 더 열정적으로 살아보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주관적 감성이 풍부하고 인간적 체취가 넘치는 조각

'피에르 드 비상(Pierre de Wissant)' 청동 196×113×95cm 1886년경(아래). '세례자 요한' 석고 204×74×125cm 1880
 '피에르 드 비상(Pierre de Wissant)' 청동 196×113×95cm 1886년경(아래). '세례자 요한' 석고 204×74×125cm 1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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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조각은 '피에르 드 비상(1886)'에서 보듯 이상적이고 신화적인 그리스로마 조각과는 확연히 다르다. 과장이나 왜곡이 없는 있는 그대로의 인간 본연의 모습이다. 삶의 고뇌와 난관을 뚫고나온 인간의 아름다움을 한데 녹여낸 것 같다.

'세례자 요한(1880)'같은 성서 속 인물도 신령해 보이지 않는다. 눈앞에서 보는 사람처럼 사실적이다. 그러나 한 인간의 내면에 흐르는 감정이나 개성을 섬세하고 풍성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1871년 파리코뮌과 1875년 제3공화정의 등장 등 당대 프랑스의 근대화와 민주화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어느 시대나 그렇지만 앞서가는 자는 외롭다. 로댕도 예외는 아니다. 그의 제자로 스승의 고독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 시인 릴케는 그의 스승의 심경을 이렇게 기록했다.

"로댕은 명성을 얻기 전에 고독했다. 그러나 명성을 얻은 후에는 더욱 고독해졌다."

청동과 대리석에 작가의 기와 혼을 넣다

'신의 손(La main de Dieu)' 대리석 94×82×55cm 1898-1902
 '신의 손(La main de Dieu)' 대리석 94×82×55cm 1898-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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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는 신(神)도 아름다움을 창조하기 위해서 지금도 방황하고 있다고 위트 넘치는 말을 했는데 예술가의 손과 조물주의 손은 같은 맥락이다. 성서에 조물주는 흙에 기를 넣어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데 로댕은 석고 등에 생명을 넣어 작품을 잉태시킨다. '신의 손'에서 보듯 예술이란 물질을 생명으로 순간을 영원으로 바꾸는 것이 아닌가 싶다.

카미유 클로델, 비극적이고 운명적인 사랑

카미유 클로델(Camille Claudel) I '왈츠(La Valse)' 43×23×34cm 1889-1905
 카미유 클로델(Camille Claudel) I '왈츠(La Valse)' 43×23×34cm 1889-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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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과 카미유 클로델과(1864~1943)의 비극적이고 운명적인 사랑은 너무 유명하다. 이 러브스토리는 브루노 누이탕(Bruno Nuytten) 감독의 연출로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카미유의 불같은 열정과 예술적 광기를 잘 그렸다. 카미유의 예술적 감각은 집안내력이 있다. 그녀의 남동생인 폴 클로델은 외교관이면서도 유명한 시인이었다. 

19살 때 카미유는 43살의 로댕을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진다. 로댕은 카미유의 첫사랑으로 그에게 모든 것을 바친다. 그러나 로댕은 이미 중년이었고 그녀에게만 몰입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나날이 미쳐갔고 결국 불행한 여생을 맞게 된다.

'왈츠'는 바로 그런 비극적 사랑의 주인공인 카미유 클로델의 작품으로 열정적인 사랑을 경험하지 않고는 만들 수 없는 것이다. 카미유가 얼마나 로댕을 사랑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사랑에 대한 꿈과 환상과 이상을 춤 조각으로 형상화했다. 그들의 운명적 사랑은 비극으로 끝났고 그 애틋함은 예술이 되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사랑은 인류가 풀어가야 할 영원한 테마

'영원한 우상(L'Eternelle Idole, grand modele)' 석고대리석주형 73×59×41cm 1893
 '영원한 우상(L'Eternelle Idole, grand modele)' 석고대리석주형 73×59×41cm 1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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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우상'을 보면 사랑이란 인류에게 던져진 영원히 테마임을 알 수 있다. 피카소도 사랑에 대해 "평생 나는 누군가를 사랑해왔다. 이 세상에 사랑이 사라진다면 나는 나무를 아니 문고리라도 사랑할 것이다. 사랑이 없는 삶을 어찌 상상할 수 있겠는가"라고 토로한 적이 있다. 로댕도 그런 사람이었다. 

남녀의 애틋한 사랑에서 느끼는 절박한 감정은 인간을 구원하는 한 요소가 아니겠는가. 우리가 때로 서양미술을 감상할 때 소통의 어려움을 느끼지만 이런 작품은 전혀 문제가 없다. 누구나 쉽게 공감하고 감동을 받는다. 조각에서 무슨 설명과 번역이 필요한가.

전 작품에서 빛나는 그의 에로티시즘

'안드로메다(Andromede)' 대리석 26×30×21cm 1887
 '안드로메다(Andromede)' 대리석 26×30×21cm 1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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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예술에서 가장 높은 단계인 에로티시즘의 정수를 보여준다. 프랑스의 저술가 조르주 바타이유(G. Bataille)는 "에로티시즘은 죽음 속에서까지 삶을 찬양하는 것이다"라고 했지만 그의 에로티시즘은 참으로 열정적이고 순수하다. 예술창작의 한 정점으로 인간의 고뇌와 사랑의 아픔을 뛰어 넘어서게 하는 힘이 있다.

미술은 어느 예술장르보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로댕은 에로티시즘을 주제로 삼으며 예술을 사회적 통념이나 금기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었나보다. 그는 이렇게 인간 본연의 욕망과 관능을 적나라하게 드려내고 이를 예술화했다.   

'입맞춤' 앞에 서면 숨이 확 막힌다

'입맞춤, 대형기념상(Le Baiser, grand monumental)' 석고 189×113×113cm
 '입맞춤, 대형기념상(Le Baiser, grand monumental)' 석고 189×113×11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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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의 기념비적인 작품 '입맞춤'을 보는 순간 탄성이 터지고 숨이 막힌다. 로댕이 얼마나 깊은 사랑의 열락에 빠져 살았는가 알 수 있다. 사랑에 대한 그의 예민성은 카미유 클로델을 평생 정신병원에서 보내게 하는 요인이 된다.

그의 이런 사랑의 감정에 대한 예민성은 바로 예술적 창작과 열정과 통할 것이리라. 게다가 인간에 대한 뜨거운 연민까지 동반된다. '입맞춤'은 남녀의 통합이요 우주만물의 교합이자 음양조화의 극점이라 할만하다. 그렇게 황홀한 순간을 조각에 옷 입혀 영원한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켰다.

고뇌하고 사유하는 인간전형 제시
 
'생각하는 사람(Le Penseur)' 채색석고 184×107×150cm 1881-1882. '지옥문3번째(축소물)' 청동109×73×28cm 1880(아래)
 '생각하는 사람(Le Penseur)' 채색석고 184×107×150cm 1881-1882. '지옥문3번째(축소물)' 청동109×73×28cm 1880(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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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종교를 떠나 이상적 인간의 전형으로 '반가사유상'이 있다면 프랑스인에게는 시공을 떠나 인간내면의 고뇌를 숭고한 정신세계로 끌어올린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생각하는 사람의 고민이 뭔지 궁금하다. '인간에게 왜 고통이 있으며, 인간의 고독이 어디에서 오는 것이며, 인간을 무엇으로 구원을 얻는가' 등의 질문이 포함됐으리라.

로댕의 또 다른 대표작인 '지옥의 문'도 위와 같은 주제다. 우리가 만약 지옥문에 던져지는 운명에 놓인다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처할까 하는 고민이 담겨있다. 원래 사유란 이렇게 막다른 골목에 놓일 때 생기는 것이 아니겠는가.

대중의 외면 속에 근대조각의 선구자 되다

'빅토르 위고기념상(Monument a Victor Hugo)' 청동 155×254×110cm 1900년 이후. '발자크, 옷을 두른 습작' 석고 114×41×45cm 1896-1897(왼쪽)
 '빅토르 위고기념상(Monument a Victor Hugo)' 청동 155×254×110cm 1900년 이후. '발자크, 옷을 두른 습작' 석고 114×41×45cm 1896-1897(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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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로댕이야기를 마무리하자. 그는 당시의 통념을 깨며 기존작가와 다른 길을 걸었다. 그래서 때로 엄청난 조롱도 받았다. 이는 역으로 그가 참으로 독창적 작가임을 반증한다. '발자크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당시 프랑스문인협회가 의뢰한 것으로 구상과 추상을 절묘하게 융화된 걸작이었으나 사람들은 그 진가를 몰랐다.

이번 전의 최고선물은 역시 '위고기념상'다. 이 작품 앞에 서면 말할 수 없는 예술의 힘이 느껴진다. 이 작품도 문인협회가 팡테옹(위인국립묘지)에 위고기념상건립을 위해 의뢰한 것이다. 하지만 1차작품은 협회로부터 거부당했고 2차작품도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로댕은 이렇게 50세까지 가난에 시달리며 대중의 외면을 받았으나 말년에는 국가훈장을 받는 등 크게 숭앙받는다. 회화보다 더 조형적인 예술인 조각은 르네상스 이후 오래 파묻혔고 정치나 이념의 도구로 전락했으나 로댕은 기존조각에 새 숨결과 바람을 불어넣어 그 생명력을 살려냈다. 그렇게 해서 근대조각의 아버지가 되었다.

덧붙이는 글 |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로댕전 홈페이지 http://www.rodinseoul.com
성인 12000 학생 10000 어린이 8000 화-토(10시-21시) 일-공휴일(10시-20시까지) 월요일휴관



태그:#오귀스트 로댕, #카미유 클로델, #생각하는 사람, #입맞춤, #에로티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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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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