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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금강산 관광지구 내 한국 측 인원 중 16명(현대아산 중국인 직원 2명 포함)만 금강산에 남고 나머지는 모두 철수했다. 이들은 동해선 육로의 군사분계선을 넘어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2007년 10월 2일, 노무현 대통령이 분단 이후 사상 처음으로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은 이후 2년 7개월 여 만이다. 

 
"국민 여러분, 오늘 중요한 일을 하러 가는 날이라서 가슴이 무척 설레는 날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자리에 선 심경이 착잡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 여기 있는 이 선이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민족을 갈라놓고 있는 장벽입니다. 이 장벽 때문에 우리 국민들은, 우리 민족들은 너무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발전이 정지돼 왔습니다.

 

다행히 그동안 여러 사람들이 수고해서 이 선을 넘어가고 또 넘어왔습니다. 저는 이번에 대통령으로서 이 금단의 선을 넘어갑니다. 제가 다녀오면 또 더 많은 사람들이 다녀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마침내 이 금단의 선도 점차 지워질 것입니다. 장벽은 무너질 것입니다. 저의 이번 걸음이 금단의 벽을 허물고 민족의 고통을 해소하고, 고통을 넘어서서 평화와 번영의 길로 가는 그런 계기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2007년 10월 2일, 노무현 대통령 군사분계선 통과 메시지

 

노 대통령이 말한 "제가 다녀오면 또 더 많은 사람들이 다녀오게 될 것이고, 그러면 금단의 선도 점차 지워져 마침내 장벽이 무너질 것"이라는 예측과는 정반대의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애석한 일이다. 만약 노 대통령이 살아서 이런 비극적인 현실을 지켜봐야 했다면 참으로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나 역시 미국에서 인터넷으로 역사적인 장면을 지켜봤고 그 전에 이미 금강산을 다녀오느라 군사분계선을 넘었던 터라 이번 금강산 폐쇄 조치가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역사적인 금강산 관광을 통해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인 한반도에서 남과 북이 왕래하고 평화의 기운이 움트는가 했더니… 이젠 그마저도 기약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하니 정말 가슴이 아프다. 

 
아름다운 금강산을 추억하다
 

 
지난 2007년 7월, 우리 가족은 금강산에 있었다. 볼 수록 아름답고 신기한 명산에서 우리는 일만이천봉 봉우리들을 바라보며 온몸으로 금강산을 느끼고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뗄 때마다 이렇게 아름다운 산이 한반도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고 이렇게 직접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금강산 관광을 마치고 돌아온 뒤 나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금강산을 호흡하고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생생하게 체험하며 '통일'이 요원한 문제가 아닌, 당면한 현안이자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라는 사실을 금강산 관광을 통해 깨닫게 되기를 바랐다.

 

사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반공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다. '의심 나면 다시 보고 수상하면 신고하자', '혼란 속에 간첩 오고 안정 속에 번영 온다'는 식의 붉은색 반공 표어를 늘 보면서 자랐다. 수상한 사람을 보면 바로 신고할 수 있도록 감시의 눈길을 번뜩이며 '간첩신고 113'도 외우고 다녔다.

 

연례 행사인 '반공', '반북한' 표어나 포스터, 글짓기 행사를 하면서 북한괴뢰라는 '북괴' 원수 이미지를 떠올리기도 했고 이승복 어린이가 외쳤다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무용담을 들으며 그의 영웅적인(?) 행동에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간첩과 관련된 궐기대회가 있으면 충실하게 동원된 청중이기도 했다.

 

이런 교육을 받으며 자란 나는 은연중 북한에 대한 비뚤어진 선입견과 편견을 오래도록 간직해왔다. 그래서 금강산에서 만난 해맑은 미소의 안내원이 "우린 뿔 달린 괴물이 아니에요"라며 활짝 웃어보일 때 솔직히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들은 황석영의 <사람이 살고 있었네>에 나오는 것처럼 뿔 달린 괴물이 아니었고 그냥 사람이었다. 우리와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음식을 먹는 '동족'이었다. 그들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공부 잘하는 자식을 자랑할 때는 한없이 행복한 아버지였고, 음식 솜씨 없고 잔소리 하는 아내를 흉볼 때는 누가 들을 새라 목소리를 낮추기도 하는 소박한 남편이었다.   

 

북한과 북한사람에 대한 굳었던 마음이 풀리던 순간

 

북한으로 들어가 첫 수속을 밟을 때 그곳에 있던 직원과 큰딸이 나눈 대화다. 

 

"대학생입네까?"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 네? 전 고등학생인데요."

"(위에서 아래를 훑어보며) 키가 많이 크고만. 엄마를 닮았나 보구나."

"아, 네."

"영리하게 생겼구만. 공부 잘하나?"

"(후후) 네. 잘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사람 냄새 나는 살가운 대화는 금강산 관광 기간 내내 이어졌다. 외금강 호텔 앞에서 만난 두 명의 남자 직원은 두 딸에게 고등학생이 공부는 안 하고 놀러 왔다며 선생님 같은 잔소리를 늘어놓기도 했다.

 

"왜 학교 안 가고 놀러 왔나?"

"지금 방학인데요."

"공부 열심히 하시라요. 부모에게 효도하게."

"네."

 

그 직원은 자기네 가족의 사는 이야기를 들려 주었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도 궁금해 했다. 그래서 시시콜콜한 가정 이야기를 서로 나누기도 했다. 자칭 사진사라는 그 직원은 우리 가족 사진도 많이 찍어주었다. 낯설고 무섭게만 느껴졌던 북한과 북한 사람에 대해 굳었던 마음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이들 뿐만이 아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람은 구룡폭포 가는 길에 만났던 신은경 안내원이었다. 남편은 신 안내원에게 남한의 유명한 아나운서와 이름이 같다며 먼저 말을 건넸다. 

 

2년제 대학을 졸업했다는 신 안내원은 북한의 핵 보유나 남북 경제 협력, 이산가족 상봉, 통일 등의 현안에 대해 아주 논리정연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북한 사람들이 대개 그러하듯 신 안내원 역시 야무지고 똑부러지게 말을 잘 했다.

 

'한국에서 가볼 만한 곳' 물으면 '금강산' 꼽았건만...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신 안내원의 무궁무진한 질문 공세였다. 그녀는 남편을 '교수 선생님'이라 부르며 진지하게 많은 것을 질문했다. 공부 잘 하는 학생마냥 그녀는 열심히 경청했고 때로는 반박을 하기도 하고 우리를 설득하려 들기도 했다. 곁에 선 두 딸들도 남편과 신 안내원의 재미있는 대화에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경청했다.

 

신 안내원과의 일화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나는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그녀가 이따금 손톱으로 자신의 손목을 긁는 것을 보았다. 동생같기도 한 그녀에게 손목을 좀 보자고 했다.

 

손목 안쪽에 하얀 버짐 같은 게 피어 있었고 하도 긁어서 빨갛게 되어 있었다. 약이라도 바르면 좀 좋아질 것 같았는데 그런 약도 없다고 하니 안타까웠다. 미국에 가서 우편으로라도 보내주고 싶은 생각에 주소를 물었는데 그녀는 불가능할 거라면서 알려주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아프다. 

 

하여간 이렇게 북한사람들과 속내를 털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부질없이 상대를 미워하고 적대시했는지 알 수 있었다. 비록 우리의 체제가 서로 달라 당장 통일이 되고 한 몸이 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이런 민간 왕래를 통해 서로를 '뿔 달린 빨갱이'나 '미제 앞잡이'로 보는 일은 없을 것이고 조금씩 상대를 알아가면서 통일의 분위기도 무르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금강산 관광을 마친 뒤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나는 이곳 사람들이 한국에서 가볼 만한 곳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언제나 금강산부터 꼽았다.  

 

"한국 가시면 금강산부터 가보세요. 경치도 좋지만 특히 사람들과 얘기를 나눠보세요. 좋아요. 지금은 문이 열려있지만 언제 닫힐지 모르니 기회가 될 때 빨리 다녀오세요. 남북 관계는 정말 예측할 수 없잖아요."

 

꽁꽁 얼어붙은 남북관계, 너무 가슴 아프다

 

그런 내 예측이 사실이 되고 말았다. 20세기 마지막 전위 예술이라던 정주영 회장의 '소떼몰이 방북'에 이어 전직 대통령들의 역사적인 방북과 금강산 관광 등으로 한반도에 평화의 꽃이 피는가 했더니 꽃은커녕 다시 꽁꽁 얼어붙는 얼음장 관계로 돌아가버려 정말 가슴이 아프다.

 

통일을 향해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고 앞으로 앞으로 전진해도 시원찮을 판에 도리어 뒷걸음질을 친다고 하니 이게 웬 퇴보인가 싶다. 왜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 하는지 답답한 노릇이다. 

 
이번 금강산 폐쇄 뉴스는 내 딸들에게도 슬픈 소식이다. 아이들은 금강산을 다녀온 뒤 학교에서 직접 가본 북한 얘기를 글로 쓰곤 했다. 그러면 선생님이나 아이들이 많이 놀란다고 했다.
 
아이들은 이따금 "금강산에 또 가고 싶다"고 혼잣말을 한다. 그곳에서 만난 다정한 북한 사람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어 기회만 된다면 다시 가고 싶다는 것이다. 아이들 방 한쪽 벽에 걸린 '금강산 관광객' 신분증에도 '재방문 고객께는 10% 할인혜택을 준다'는 문구가 적혀 있어 잘 보관해 오고 있었는데 이게 웬 비보인지.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 코리아. 우리는 언제 분단을 뛰어넘어 당당한 하나의 '코리아'로 우뚝 설 수 있을까.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언제 그 꿈이 실현될 수 있을까. 정녕 우리가 다시 금강산에 갈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 것인가.  

 


태그:#금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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