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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드디어 입주를 했다. 친구가 입주한 아파트는 바로 우리 아파트 앞 동네. 1500세대나 되는 아파트에 불이 켜지니 공사중이었을 때, 먼지나고 시끄러웠던 기억은 사라지고 마치 내가 새 아파트에 들어가 사는 것처럼 기분이 새롭다.  

 

친구가 처음 아파트를 분양 받았다고 할 때 나는 궁금한 게 있었다. 바로 요즘 누구나 분양 때 신청하는 전실(안방을 뺀 나머지 방과 거실) 확장 신청을 했는지 여부였다. 왜 그런지 나는 발코니를 확장한 집에 가면 거실 끝까지 가는 게 겁이 나, 꼭 중간 쯤에 멈춰서고 만다. 즉 발코니가 없으면 거실 끝에 가 서는 게 무섭고 겁이 나 더 이상 가지 못하는 것이다.   

 

"발코니 확장 했어?" 

"아니, 안 했어. 발코니가 있어야, 화분이라도 놓지. 난 구식이라서 발코니가 있는 게 좋아."

 

너무도 씩씩한 친구의 대답에 난 기분이 좋아졌다. 아파트가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내 눈길은 자연스럽게 친구네 집이 있는 층에 머물렀다. 친구의 집을 구분하기는 쉬웠다. 다른 집들은 샤시를 해서 평면인 반면 친구의 집은 샤시를 하지 않아 뻥 뚫려 있었던 것. 물론 멀리서 보기에 그렇다는 거지만, 아무튼 같은 동에 샤시를 하지 않은 집은 달랑 그 집 하나였다. 바꿔 말하면 발코니 확장을 하지 않은 세대는 친구 집, 단 한 세대뿐이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입주를 앞둔 친구는 고민에 빠졌다. 모두가 샤시 걱정 없이(확장을 하면 다 해주니까) 인테리어를 새로 한다, 새 가구를 장만한다, 들떠 있을 때 샤시 공사를 걱정하고 있었던 것. 문제는 샤시 뿐이 아니었다. 작은 방들도 확장을 해야 했다. 45평 아파트에는 발코니가 모두 여섯 개다. 방 넷과 거실, 그리고 주방까지 합쳐서. 그런데 안방과 거실, 주방은 발코니가 필요하지만 작은 방들은 발코니 때문에 방이 너무 작아 책상이나 침대 하나 들여놓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부득이 공사는 해야 하는데 업체를 선정하기는 쉽지 않았다. 한꺼번에 1500세대가 입주를 하다보니 거의 모든 설비업체들이 일이 밀려 있는 상황. 친구는 어쩔 수 없다며 입주 시기를 늦추면서 공사업체를 찾았다. 그러다 넉넉하게 한달 기간을 두면서 겨우 입주업체를 선정했고, 공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공사라는 게 만만치 않았다. 공사를 맡은 업체 역시 다른 일과 병행하다 보니 일이 늦어졌고, 이사 날은 다가오는데 도무지 진척이 되지 않았다. 오죽하면,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그냥 확장을 할 걸'하는 말까지 나왔다. 이사 일주일 전, 아파트는 말 그대로 엉망이었다. 작은 방은 발코니를 확장 하느라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고, 바닥에 상처 날까봐 깔아 놓은 카펫은 그대로 방치돼 있어 공사 현장을 방불케했다.

 

그래도 천신만고 끝에 보존한 발코니는 안정감 있게 '턱' 자리 잡고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나는 친구 위로도 할 겸 말을 꺼냈다.

  

"고생은 했지만 그래도 훌륭하네. 이렇게 발코니가 있으니, 안정돼 보이고 얼마나 좋아."

"그렇지. 여기 아파트 공사하는 분들도 그러더라. 자기네가 살 집이라면 절대 발코니 확장 안 한다고. 확장을 하면 겨울에 추워서 난방비도 많이 나오고 습기 때문에 마루 끝이 썩는다고 하더라고. 난 사실 공사도 힘들었지만, 작은 방들 확장하면서 나온 벽돌이며 창틀이나 유리들이 얼마나 아까웠는지 몰라. 다 새로 지은 건데 때려 부쉈으니 꼭 죄 짓는 기분이었어."

"정말 그러네. 그래도 어쩌겠어, 부분 확장을 해 주면 이런 일이 없는데, 꼭 자기네 편한대로 전실 확장만 해 주니 어쩔 수 없잖아."

 

 

같은 아파트로 이사한 다른 사람들 의견을 들어봤더니, '34평 형은 거실이 작아서 확장을 하지 않으면 정말 쓸모가 없다, 하지만 45평이나 54평은 굳이 확장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들 했다. 그런데 문득 돌이켜 보니, 예전에는 30평대 아파트도 거실이 그렇게 좁지는 않았다. 분명히 발코니를 두고도 거실에 소파나 그외 필요한 가구를 놓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찌된 일인지 30평대 거실은 확장을 하지 않으면 턱없이 비좁아 소파나 가구를 들여놓을 수가 없다. 작은 방들은 더하다. 작은 방들은 확장을 하지 않으면 거의 방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을 정도다. 솔직히 작은 방 발코니는 설계도 상에만 존재하는 공간으로 생각될 정도로 작다. 어쩌다 건설사의 발코니 확장에 동의하지 않는 가구도 작은 방 발코니는 확장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런데도 건설사는 확장에 들어가는 비용을 모두 입주자 부담으로 돌리면서 입주자들의 요구사항은 외면한 채 전실 확장만 고집한다. 또 입주자들은 입주자들대로 건설사를 상대로 이길 자신이 없다고 판단하는지, 건설사들이 하는 대로 이끌려가는 형편이다. 물론 전실 확장을 원하는 세대도 있겠지만 부분확장을 원하는 세대도 분명 있을 텐데, 건설사는 공사의 어려움이나 다른 핑계를 대며 무조건 외면만 한다.

 

 

전실 확장을 빌미로 분양가 외에 1200만 원에서 2000만 원에 가까운 금액을 요구하면서, 거기다 붙박이장이나 주방가구 연장 등 여러가지 설비를 나열해 놓고 마치 서비스로 많은 혜택을 주는 양, 생색까지 내면서 말이다. 모델하우스에 가 봐도 그런 속셈은 한 눈에 드러난다. 거실 발코니를 넓게 잡아 놓고 발코니에 해당하는 부분을 붉은 선으로 그어놓았는데, 소파나 장식장은 죄다 그 붉은 선을 지나서 놓여 있다. 그것은 무언의 압력이나 강요에 다름 아니다. 확장을 하지 않으면 이렇게 가구도 제대로 들여놓을 수 없을 만큼 비좁다, 그러니 꼭 확장을 해야만 제대로 공간을 활용을 할 수 있다는 뜻을 공공연히 드러내 놓고 있다.

 

이젠 무조건 건설사들의 요구에 따를 게 아니라 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건설사 입장에서도 눈 앞의 이익만 추구하다가 큰 것을 놓칠 수가 있다. 중대형 평형의 미분양 사태도 발코니 확장과 무관하지 않다고들 한다. 발코니를 확장해 실내가 넓어지니 소비자들은 굳이 중대형 평형을 선택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다는 것이다.

 

 

이번에 입주한 1500세대 중에 전실 확장(안방만 뺀 나머지 발코니)을 하지 않은 세대는 달랑 4세대 뿐이란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친구는 자신이 너무 유별난 사람이 됐다며 웃었다. 그런데 이건 결코 웃고 넘길 일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다. 전실 확장을 하지 않으면 어찌 됐든 손(공사)을 대야 살 수 있는 몇 억짜리 집이라니, 이건 말이 안 된다. 고가의 상품이라면 소비자의 만족도를 염두에 두어야 마땅하다.

 

대부분은 건설사의 속내를 모르니까 그저 하라는 대로, 또 보기에 좋아보이고 편해 보이는 쪽으로 선택을 한다. 사실 이 같은 현실 앞에서는 조금(분양가에 비하면)의 돈이 덧붙는 것도 크게 상관하지 않는 분위기다. 생활면에서 봐도 안방 발코니 하나만으로는 부족하고, 화재시에는 안전지대로, 겨울 철에는 완충지로서, 또 아파트라는 주택의 문제를 보완한 틈새 휴식공간으로서 발코니는 나름의 충분한 역할이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건설사에 휘둘려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넓어진다는 데에만 솔깃해서 비싼 돈을 지불하면서 까지 말이다. 한 번 확장을 하면 다시 만들 수도 없다는데…. 이러다간 오래지 않아 발코니 자체가 없어지지 않을까 여간 염려스러운 게 아니다.

 


태그:#아파트, #발코니, #발코니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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