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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한강에서 강수욕과 모래찜질을 즐기는 모습
 60년대 한강에서 강수욕과 모래찜질을 즐기는 모습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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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에만 해도 한강은 헤엄치고 모래찜질도 하는 곳이었다. 독일 뮌헨시가 복원한 이자르강 모래톱에도 일광욕을 위해 많은 시민들이 찾고 있다."

염형철 환경연합 사무처장이 들고 있는 사진에는 자갈로 된 강변에 나와 일광욕을 즐기는 독일인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또 다른 사진에는 젊은 아가씨들이 수영복을 입고 강변을 거닐고 아이들은 모래에 파묻혀 찜질을 즐기고 있다. 60년대 한강의 모습이다.

18일 서울환경연합과 대한하천학회는 '한강의 생태적 복원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한강의 생태적 복원 계획'은 70·80년대 준공된 콘크리트 시설, 수중보와 호안축대를 제거해 모래밭을 다시 되살리고 숲길을 조성해 한강을 생태적으로 복원하자는 주장이다.

이번 현장 조사는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에서 출발해 강서습지생태공원까지 이르는 약 13Km 구간의 한강본류와 강변지역에서 진행됐다.

여의도 모래밭을 들어낸 서울시

최호철 작가가 그린 한강 조감도. 최 작가는 "콘크리트로 덮인 한강이 아니라 은빛 모래밭과 숲이 있는 자연과 사람이 하나되는 행복한 한강으로 다시 살아나야합니다"라고 말했다.
▲ 은빛 모래밭과 숲이 살아나는 진짜 한강입니다. 최호철 작가가 그린 한강 조감도. 최 작가는 "콘크리트로 덮인 한강이 아니라 은빛 모래밭과 숲이 있는 자연과 사람이 하나되는 행복한 한강으로 다시 살아나야합니다"라고 말했다.
ⓒ 최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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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계 전문가와 서울환경연합 회원, 시민과 기자들로 구성된 20여 명의 조사단은 오전 9시 30분 여의도선착장에 모여 조사를 시작했다. 조사단은 가장 먼저 여의도 동쪽 끝, 한강이 본류와 샛강으로 갈라지는 지점에 형성되는 모래밭을 관찰하기 위해 이동했다.

현장은 모래밭이 넓게 형성돼 있는 지난해 촬영한 사진과 매우 달라져 있었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넓은 모래밭이 있었다는 현장은 모래대신 커다란 조경석으로 채워져 있었다. 염형철 서울환경연합 사무처장은 "얼마 전 서울시청에서 이 곳에 모래를 치우고 조경석으로 강변을 따라 제방을 쌓는 공사를 했다"고 말했다.

염 사무처장은 "홍수로 물이 불어났다가 다시 빠지면서 이 곳에 모래가 쌓인다"며 "지금은 모래를 치우고 돌을 쌓았지만 또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모래밭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자연이 만든 모래밭을 들어내고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강변은 언젠가 또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제방에서 뒤쪽으로 2~3m 떨어진 곳에는 시민공원으로 올라가는 능선을 따라 모래밭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조경석이 깔리지 않은 공간에는 모래가 펼쳐져 있었다. 그동안 한강에서는 밟아보지 못한 푹신푹신하고 고운 모래였다.

서울시가 준설공사를 하기 전 모래밭이 형성된 여의도. 지난해 여름에 촬영한 모습이다.
 서울시가 준설공사를 하기 전 모래밭이 형성된 여의도. 지난해 여름에 촬영한 모습이다.
ⓒ 서울환경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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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 공사 이 후 모래밭이 사라지고 조경석이 깔렸다.
 서울시의 공사 이 후 모래밭이 사라지고 조경석이 깔렸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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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바닥에 쌓인 오염된 뻘

본격적으로 강과 유역을 탐방하기 전 조사단은 수상택시 선착장 옆에 강바닥으로 내려놓았던 그랩(물건을 집어 올리기 위한 기구)을 끌어 올렸다. 바닥에 쌓여 있던 시커먼 뻘(개흙)이 그랩에 가득 차 올라왔다. 물의 흐름을 막는 보로 인해 강의 유속이 느려져 강으로 유입된 오염물질이 쓸려가지 않고 그대로 침전된 것이다.

강바닥의 뻘을 채취하는 작업은 수상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네 차례나 계속됐다. 안양천이 합류하는 양화대교와 성산대교 사이에서 채취한 뻘에서는 시큼한 냄새가 났다. 하지만 수상택시가 지천이 유입되는 지점 가까이 접근하기 어려운 공릉천 주변에서는 뻘을 채취할 수 없었다. 조사단에 참가한 한 시민은 "이 전에 지천이 유입되는 강변 가까운 곳에서 채취한 흙에서는 냄새를 맡기 어려울 정도로 역한 냄새가 났다"고 말했다.

박창근 시민환경연구소 소장은 "한강의 지천인 중랑천, 탄천, 안양천, 공릉천 등에서 하수가 정수되지 않아 오염물질이 무방비 상태로 유입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조사단에 참여한 수질 관련 전문가는 "한강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는 한강 하류에 있는 신곡보를 철거해 유속을 빠르게 하는 것과 함께 각 지천의 하수 처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박 소장은 "신곡보 철거는 환경공학적으로는 논란이 필요 없을 정도로 당연히 해야 하는 사업이지만 정치적인 논란이 생길 수는 있다"며 "정부가 추진하는 4대강 사업과 경인운하사업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보를 설치해 유량을 늘리려는 4대강 사업에 반하는 정책이고 보를 철거해 수심이 얕아지고 유속이 빨라지면 경인운하와 한강을 연결해 대형 선박을 한강 상류까지 보내려는 계획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수상택시에서 강바닥의 뻘을 채취하고 있다.
 수상택시에서 강바닥의 뻘을 채취하고 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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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바닥에서 채취한 오염된 뻘.
 강 바닥에서 채취한 오염된 뻘.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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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파된 밤섬을 다시 만들어낸 한강의 위대함

수상택시는 서강대교 근처에 있는 밤섬을 지나쳤다. 밤섬은 지난 68년, '한강개발3개년' 계획에 따라 제거됐다. 하지만 폭파 당시 강 아래 남아 있던 밤섬의 암반층은 강물에 떠밀려 흘러내려 온 흙과 생명을 불러 모아 다시 생명이 사는 섬으로 부활했다.

현재 밤섬은 버드나무, 물쑥, 갈풀, 갈대, 물억새 등 194종의 식물과 해오라기, 청둥오리, 흰뺨검둥오리 등 77종의 조류가 서식하고 있다. 1999년 '자연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지만 계속되는 정부의 개발정책을 생각하면 위태로워 보인다. 

밤섬을 지난 조사단은 양화대교 인근에서 바지선을 띄워놓고 교각을 넓히는 공사가 진행 중인 현장과 마주쳤다. 3~5천 톤급 유람선이나 화물선을 한강 이촌지구에 생기는 용산국제여객터미널까지 운항할 수 있게 하는 공사다. 수면 위로 새 교각이 솟아오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공사현장을 바라보는 조사단의 표정에서 무거워진 기분이 느껴졌다. 바로 옆, 밤섬이 보여 준 자연의 평화로운 모습과는 상반된 장면이었다.

강서습지생태공원에 날아온 왜가리.
 강서습지생태공원에 날아온 왜가리.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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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에서 헤엄치고 모래 찜질할 그날, 곧 오겠지?

수상택시가 1시간여의 운항을 마치고 강서습지생태공원의 선착장에 멈춰 섰다. 강서습지생태공원도 여의도처럼 모래밭이 잘 형성되는 지역이다. 하지만 이도 얼마 전 서울시에서 준설작업을 해 많은 부분이 치워져 있었고 선착장보다 하류 쪽에만 약간의 모래밭이 남아 있었다. 크지 않은 모래밭이었지만 고운 모래 위로 한강이 물결치는 모습은 낯설고 신기한 장면이었다. 그동안 콘크리트로 뒤덮인 강변이 익숙했고 한강에 모래사장이 있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사단은 강서습지생태공원에 조성되어 있는 모래밭에 모여 한강을 생태적으로 복원할 수 있는 방안과 조사에 참여한 소감을 나눴다. 조사단에 참여한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은 "한강 유역에 무분별한 개발로 많은 역사유산이 유실됐다"며 "암사동의 고대유적과 미사리의 유적도 대부분 유실됐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강은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가 각축했던 곳이고 그 후로도 각 시대의 문화풍습이 남아 있는 곳"이라며 "콘크리트를 뜯어내고 있는 그대로의 한강으로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시민 참가자는 "한강을 이대로 물려주면 다음 세대가 욕한다"며 "우리 자손들에게 빚지지 않았으면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조사단이 모여 있는 동안 동행했던 아이는 강변의 모래를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었다. 서울의 한강유역 40여Km 가운데 아이가 강·모래와 함께 놀 수 있는 강변이 이곳을 제외하고 또 어디에 있을까. 한강에서 헤엄치고 강변에서 모래찜질 하는 그날을 떠올려 본다.

강서습지생태공원에 조성된 한강 모래밭에 모여있는 조사단.
 강서습지생태공원에 조성된 한강 모래밭에 모여있는 조사단.
ⓒ 서울환경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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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습지생태공원에서 아이가 모래로 장난치며 놀고 있다.
 강서습지생태공원에서 아이가 모래로 장난치며 놀고 있다.
ⓒ 서울환경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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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한강, #한강복원, #생태, #모래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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