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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터, 파견사원, 아르바이트 노동자, 실업자와 빈민 그리고 니트족과 히키코모리 그 누구라도, 혼자라도, 불안정한 노동자들이 생존을 위하여 똘똘 뭉친 곳이 있다. 어떠한 상부조직도 없고 후쿠오카를 거점으로 독립적인 활동을 펼치는 노동조합 그러나 단순한 노동조합을 넘어서 '생존조합'을 표방하는 '프리터 유니온 후쿠오카'.

가와이 악기 및 가와이 음악교실과 부당계약, 부당해고에 맞써 싸우며 단체교섭에 응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프리터 유니온 후쿠오카'의 가두 '사운드 시위'. 사진에 보이는 건물에는 가와이 음악 교실 텐진역 지점이 들어서 있다.
 가와이 악기 및 가와이 음악교실과 부당계약, 부당해고에 맞써 싸우며 단체교섭에 응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프리터 유니온 후쿠오카'의 가두 '사운드 시위'. 사진에 보이는 건물에는 가와이 음악 교실 텐진역 지점이 들어서 있다.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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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두 차례의 정기 회의가 있고 한 달에 한 번 금요일에는 번화가인 텐진 역 부근의 '가와이 음악 교실' 앞에서 사운드 시위도 벌인다. 가와이 음악 교실은 2년 전, 가와이 악기 제작소와 위임계약을 맺고 가와이 음악교실의 피아노 강사로 취직한 Q씨에게 다양한 유료 연수와 등급인정시험 등을 강요하다가 Q씨가 노조를 통하여 이의를 제기하자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해 버렸다.

그래서 프리터 유니온 후쿠오카는 가와이 측의 부당한 위임계약 제도 및 노동자 해고에 대하여 항의하며 단체교섭에 응할 것을 줄기차게 요청하고 있다. 현재 후쿠오카현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하고 해놓고 있다.

불안정한 노동자들의 생존조합, 프리터 유니온 후쿠오카

후쿠오카시 텐진역 부근에 있는 한 작은 원룸을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이곳에서 공부도 하고, 회의도 자고, 자료도 만들고,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잠도 자고, 놀기도 하고, 생존을 위해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서로를 돕는다.
▲ 프리터 유니온 후쿠오카의 사무실 후쿠오카시 텐진역 부근에 있는 한 작은 원룸을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이곳에서 공부도 하고, 회의도 자고, 자료도 만들고,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잠도 자고, 놀기도 하고, 생존을 위해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서로를 돕는다.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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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프리터 유니온의 다케모리 마키(竹森真紀) 집행위원 및 조합원들을 만나기로 한 날(지난 3월 26일)도 정례회와 사운드 시위가 있는 날이었다. 트럼펫을 불고 지나가는 시민들과 가와이 악기 측에 제멋대로의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확성기로 자유롭게 발신하는 30분 정도의 시위와 함께, 가와이 악기와 무엇 때문에 싸우고 있는지, 프리타 유니온 후쿠오카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간단하게 정리한 한 장짜리 전단지도 나눠주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목표했던 전단지는 전부 배포했다.

시위가 끝나고 돌아가려고 하는 찰나 두 명의 경찰관이 등장했다. 시끄럽다는 항의가 들어왔다며 책임자가 누구냐고 '상냥한' 목소리로 질문을 해왔지만 다케모리씨는 "그런 거 없다. 우리는 노동조합이다. 조합으로서 교섭해야 할 사측에 대해 항의하고 집회를 할 권리가 있다. 한 달에 딱 한 차례 30분만 간단하게 하고 끝내고 있다. 그다지 소음으로 피해를 준 적도 없다"라고 씩씩하게 말하며 경찰관들의 입을 막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사무실은 아파트의 방 하나를 빌려서 사용하고 있는데 깨끗하고 넓은데다, 책상과 의자, 시위용품과 노조 물품은 물론이고 주방도구와 이불까지 있었다. 회의가 끝난 뒤에는 함께 식사를 한다며 주먹밥을 열심히 주물럭거리고 전골요리를 만드는 다케모리씨의 손길은 매우 능숙했다. 사운드 시위에는 역시 집행위원인 우에무라 요이치로씨, 이마이 코헤이씨, 우치노 미즈키씨와 대학생 조합원인 오키 나오히코씨가 참석했고, 회의까지 끝나자 하나 둘 사람 수가 늘었다. 조합원은 50대 초반의 두 집행위원을 제외하면(이들도 조합 창립 초기에는 40대였다), 대다수가 20대 청년 실업자와 불안정 노동자였다.

책상 위에는 2009년 출판된 아베 히로다이의 <스무살의 원점-일, 가족의 지금부터 ハタチの原点――仕事、恋愛、家族のこれから>가 놓여 있었다. 본인도 아직 30대 중반(76년생)의 젊은이인 사회학자 아베씨는 <젊은이는 왜 3년만에 일을 그만두는가?>, <착취당하는 젊은이들>, <과로하는 젊은이들> 등을 쓰면서 "취직도 실패하고 싶지도 않고, 연애도 결혼도 하고 싶은데, 자신의 장래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고민하는 20대의 사회학을 쓰고 있다.

이번 책에서도 '취업 빙하기'를 맞이하여 졸업예정자, 즉 '신졸(新卒)'이 아니면 뭔가 무능하거나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찍혀 채용되지 않는다는 공포에 떨고 있는 청년들의 노동, 정규직과 파견(또는 비정규직) 문제, 소비, 연애와 결혼, 가족에 대한 향방과 앞으로 이 젊은이들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를 담아내고 있다.

비행기 타고 와 시위 참여 "후쿠오카 시위는 재밌다"

거리 시위 현장에서 사용하는 물품들. 금세라도 뭔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만 같다.
 거리 시위 현장에서 사용하는 물품들. 금세라도 뭔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만 같다.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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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하여 일본 사회에서도 반전 운동이 뜨겁게 타오른 적이 있다. 사회의 시스템을 개선하여 차별과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하는 다양한 그룹의 투쟁이든 반핵평화운동이든 사회 각분야의 운동이 분열되어 좀처럼 함께 연대하지 못하는 약점을 안고 있는 일본 시민운동계에서 이때만큼은 인권과 평화, 생명의 가치를 옹호하는 이라면 '공산당' 계열의 그룹이라도 '리버럴'계의 그룹이라도 함께 할 수 있었다. 이념과 투쟁방식을 넘어서 서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생겨난 것이다.

또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 반대운동 당시 젊은이들이 상당히 많이 참여하였다. 거리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고 다양한 퍼포먼스도 하면서 전쟁 반대만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가치를 외칠 수 있는 축제가 되었다.

그런데 1년 뒤, 이라크에서 민간인을 위한 자원활동을 펼치던 일본인 평화운동가들이 무장세력에 납치되었다가 간신히 구출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일본 사회에는 '자기 책임론'의 광풍이 거세게 몰아친다. 납치된 것은 자기 책임이니 국가에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거나,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노숙자와 다양한 사회적 약자의 아픔, 실업자와 빈민 등에 대해서도 사회적 책임보다 본인의 무능에 화살을 돌리게 된 것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이라크 반전 시위 등에 열심히 참여하며 시민운동을 시작한 오노 토시히코(小野俊彦씨 등의 청년을 중심으로 해, 프리터 등의 불안정 노동자, 자기책임론, 고학력 실업자 문제 등으로 함께 싸워가는 젊은 세대의 모임을 만들자, 간단히 노동조합을 만들어 활동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의견들이 싹트게 되었다. 그리하여 2006년 5월 1일, 공식적으로 조합이 결성된다. 산별 노조나 정당 등 어떠한 기존조직과의 끈도 없이 '풀뿌리' 불안정 노동자 시민의 의지만으로 만들어졌다.

2007년 1월에는 <요즘의 노동조합-프리터 유니온 후쿠오카 今どきの労働組合>가 방송되어 전파를 타기도 했다. 각종 신문사에서도 프리터 유니온 후쿠오카의 싸움을 앞다투어 소개했다. 지금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젊은 사회운동가 중 한 명인 아마미야 카린씨도 도쿄에서 비행기를 타고 이들을 만나기 위해, 이들과 함께 시위에 참여하고 싶어서 찾아온 적도 있다.

당시 도쿄에서도 후쿠오카의 시위에 참여해 충격과 감동을 받은 이들 사이에 "후쿠오카는 재밌다"는 소문이 퍼졌다고 한다. 아미미야 카린씨가 참여했던 2007년 5월 19일의 '5월 병(病) 축제'에서도 프리터 유니온은 "무장보다는 여장을"을 외치며 간호사복이나 롤리타, 해골 등 재미있는 차림을 하고 "병들었을 때 정도는 쉬게 하라", "프리터를 일회용으로 쓰고 버리지 말라", "거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것이다", "기업을 위해서 죽지 않는다", "우리는 프리터, 니트족, 빈민, 비국민이다!", "안정적인 일을 달라.", "5월 병에 걸리지 전에 5월 혁명을 일으키자" 등의 혼란스럽지만 축제같은 '대소동' 시위를 벌였다. 노동자들의 시위가 아니라 얼핏 겉모습만 보면 '대학생들의 서클 페스티벌' 같은 모습이었다고 한다.

불안정 청년 노동자 1600만, 장래의 노숙인 우려

지금의 프리터 유니온이 있기까지 많은 역할을 했던 오노씨는 2006년 당시 규슈대학 대학원에서 사상사 박사과정 코스에 있었지만 전공을 살릴 수 없었고 일본의 수험학원에 해당하는 예비교의 비상근 강사로 일하며 월 9만엔(약 100만원)의 수입이 전부였다. 일본에서는 15만엔 이하의 수입이란 굉장한 저임금에 해당한다. 프리랜서 작가인 간바라 리카(神原里佳) 조합원은 원고료가 입금되기까지 쌀을 구매할 돈도 없어 수제비를 끓여먹고 버티다가 심야도시락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비영리법인의 직원이라도 다를 바는 없다. 노숙자 지원센터 직원인 마루타 히로아츠(30, 丸田宏篤)씨도 불안정 노동자이기는 마찬가지다. 저임금은 기본이고 사회적 보험과 후생복리에 대한 혜택을 거의 누릴 수 없는 고용형태 때문에 나중에 병에 걸리거나 큰 일을 당하면 감당할 수 없을 거라고 걱정한다. 이는 한 사람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비영리법인은 당연히 희생하고 봉사하는 것이다. 저임금도 당연하다'는 인식 때문에 직원들이 장기간 일할 수 없게 만든다. 이노우에 씨가 일을 그만두면 다음 사람을 구하기도 당연히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이노우에 씨는 노숙자 문제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마루타씨는 다큐멘터리 <요즘의 노동조합-프리터 유니온 후쿠오카>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프리터 유니온에서 활동하는 까닭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잠재적으로 아슬아슬한 곳에서 간신히 생활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1600만 명을 넘는다. 그러한 사람들이 장래 노숙으로 내몰리게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면, 이 문제는 굉장히 중요하다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취직을 해서 사측의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이들이 많은데 해고를 당하면 거주지도 동시에 잃게 되므로, 공백기 없이 곧장 취업하지 못할 경우 노숙자의 길로 쉽게 전락하게 된다. '넷트 카페 난민'이라는 신조어는 여관이나 방을 빌릴 돈이 없어 PC방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 밤을 보내는 이들의 비참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말이다.

현 집행위원 중 한 명인 우에무라 요이치로(上村陽一郎)씨는 비교적 뒤늦게 합류한 축에 속하는데, 2007년에 유니온 홈페이지를 보고 연말 시위나 학습회에 참여하게 되었고 "일반적인 모임들에서는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을 이야기하는 모임이었다. 재미있다고 생각했다"며 이듬해 3월에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대학생 조합원인 오키(沖直彦)씨는 "대학 내에는 갈 곳이 없어요. 나는 유니온이 정말 좋아요. 함께 공부하고 활동하고 대화하고 고민을 나눌 동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아요"라고 말한다.

"시위가 재미없을 필요 있나요?"

"사람을 쓰고 버리는 일회용 취급, 빈민화 공격 정지!!"라고 쓰여 있다.  손수 그리고 제작하는 플래카드나 피켓은 매우 재미있고 익살스러운면서 촌철살인의 메시지를 간략하게 담아내고 있다.
▲ 프리터 유니온 후쿠오카의 시위 용품 "사람을 쓰고 버리는 일회용 취급, 빈민화 공격 정지!!"라고 쓰여 있다. 손수 그리고 제작하는 플래카드나 피켓은 매우 재미있고 익살스러운면서 촌철살인의 메시지를 간략하게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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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처음 사무실에 들어서서 다케모리씨에게 "노동과 생존의 문제는 상당히 심각한 것인데, 참 재미있고 활동하고 싸우시네요"라고 말했더니, "별로 심각할 것도 없어요. 그리고 재미없을 필요가 있을까요? 같이 있을 때는 모두 즐거워요. 하지만 아마 혼자 떨어져 있을 때는 심각하고 괴로운 일도 많이 있겠죠"라고 응수해 왔다.

그랬다. 막상 이들의 회의에 참석해보니 사회를 보던 한 청년이 "가와이 악기랑 어떻게 붙잡고 싸우는 게 좋은 것인지,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를 때가 있다. 내가 뭘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커뮤니케이션도 어렵고 생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하면 표현이나 전달이 안 된다. 자신이 뭘 말하고 싶은지 표현이 안 되고 위화감도 느낀다"면서 금세 어두운 표정이 된다.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내뱉는 게 어렵다며 괴로워 하는 그는 "완벽히 잘해야만 한다"는 강박증 때문에 매번 회사 면접 등에서도 곤란을 겪고 좌절한 적이 많은 듯 했다.

처음에는 조합의 활동, 조합원에 대한 이야기 혹은 사무적인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공유하고 토론하기보다 '자기 자신'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회의 시간에 집중적으로 내놓는 것에 대해, 그것도 '구체적이지 못하고' 대단히 추상적으로 혼잣말 하듯이 '웅얼'거리는 이 청년에 대해 약간 당황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굉장히 성실하게 열의를 다하여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언을 하는 다른 조합원들을 보면서 "아, 이곳은 생존조합이었지. 조합원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생존과 노동, 자신의 다양한 콤플렉스에 대해서 스스럼없이 노출하고 나누고 남과도 싸우지만 자신과도 싸워나가는 그런 생존 모임이지"라는 자각이 다시 한 번 들었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보이는' 다양한 문제들이 노동이나 생존에 직결되는 것이었기에 그들에게는 중요한 테마가 되었던 것이다.

현재 일본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파견이나 계약직, 시간제 근로 등을 모두 포함하면 2009년 기준으로 1721만 명에 달했으며, 이는 전체 노동자 5102만명의 33.8%를 차지한다. 일본은 1990년대부터 지속된 장기불황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면서 근로 빈곤층, 노숙자, 노동자 파견법 문제, 배제와 차별, '빈곤·격차사회' 문제가 사회적 핵심키워드로 떠올랐다.

프리터 유니온 후쿠오카는 노동자를 일회용 취급하는 정치나 경제에 저항하면서 각종의 언론과 표현의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동시에 지금 자신의 눈 앞에 놓인 현실과 생존을 이어가기 위하여, 즉 살아남기 위해서 서로를 떠받치고 또 자신도 살려지면서 때때로 즐거운 소동을 펼치기도 하는 그런 모임이었다.

일찍이 버블 경제 시대에 '젋은이의 자유로운 삶'을 상징하는 라이프 스타일로서 1980년대 후반에 사용되기 시작한 '프리터(프리+아르바이터의 조합어)'란 용어는 지금은 정치권과 미디어에 의해 오히려 부정적인 사회적 꼬리표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어떤 때는 가엾은 사회적 희생자가 되기도 하고, 또 다른 때는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프리터 유니온 후쿠오카의 생각은 다르다.

프리터를 사회적 희생자라는 수동적 입장에 두지 않고 적극적으로 주체로서의 정체성을 띠고 '이 사회에 강제되고 있는 상황들을 반전시켜 자유로워지려고 하는 모든 노동자, 빈민, 실업자'라고 말한다. 따라서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상담뿐 아니라 일을 하고 싶지 않은 니트족과 히키코모리도 동료로 생각하며 어깨를 나란히 한다. 그렇다고 해서 정규직 노동자를 배제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자연스럽게 프리터 유니온의 중심은 비정규직 불안정 노동자가 되고 있을 뿐이다. 

프리터 유니온 후쿠오카는 지금까지 NPO법인 직원이나 아르바이트 노동자, 정사원 등 고용형태에 관계없이 부당 해고 철회, 노동기준법 위반의 개선 등 의뢰받은 안건에 대해서 확실하게 해결해왔다고 자부하고 있다. 노동기준감독서나 큰 규모의 노조에서는 간혹 '무리하지 않고 무사히 일을 마무리짓는 것을 바라는 경향'이 있거나, 변호사에게 일임하여 결국 노동자에게 과중한 부담을 안겨주는 경우가 있지만 프리터 유니온은 집행위원이든 일반조합원이든 절대다수가 불안정 노동자이며 약자의 입장에 서있기 때문에 상담자에게 최선의 해결책을 진지하게 모색한다.

상담 자체는 전부 무료이며, 구체적인 사안에 착수하여 본격적인 활동이 진행될 경우는 조합원으로 가입할 것을 권유하여 월 2000엔의 회비를 받는 것이 전부다.  프리터 유니온 후쿠오카 홈페이지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노동조합에 가입해서 같은 입장의 사람들과 단결하고 연대하여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단순히 '내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는 빈곤한 발상을 넘어서 이 사회를 바꿔나가기 위한 사회운동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들과도 만나

이들은 여타의 다른 시민사회운동과의 교류도 활발하다. 큰 조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키나와 후텐마 미군 비행장 이설 문제나 재일조선·한국인에 대한 배외주의, 다른 노동자 모임이나 각종 사회적 차별과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수많은 이들과 연대하고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

지난해는 한국의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들과도 만났다. 일상적으로 매월 좋은 다큐멘터리나 영화의 상영회, 학습회, 정례 회의, 함께 생존의 밥과 우정을 나누는 파티, 사운드 시위, 노동자들로부터의 상담과 문의에 대응하고 대단히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함께 싸워주는 생존 공동체로서의 나날에 성실하게 임하고 있다.

사무실 구석구석에 베어있는 장난기와 끼, 즐거움과 우정, 그 한켠에 각자의 가슴 속에 품은 생존의 고뇌들을 느끼며 필자도 그곳에서 1박을 하였다. 봄은 왔으나 아직은 추웠던 밤, 내가 몸을 뒤척이며 잠을 청하던 자리는 사실 회의 시간에 졸다가 그만 아예 드러누워버린 대학생 조합원 오키씨가 쌔근쌔근 잤던 곳이다.

회의 시간에 자 버리는 조합원에게 "많이 피곤했나봐요. 오늘 오키 씨가 많이 힘들었나요?"라며 베개를 끼워주고 이불까지 덮어주던 다른 조합원 형의 상냥함도 인상적이었다. 사실 프리터 유니온 후쿠오카는 쌀을 살 돈 조차 없는 조합원이나 회비를 장기간 체불하는 노동자에게는 별 말 없이 쌀을 '그냥' 주기도 했다고 한다.


태그:#프리터유니온후쿠오카, #비정규 노동자, #노조, #청년 실업자, #생존 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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