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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 어머니의 알로에 치료가 즐거운 듯 카메라를 들고 남편옆에 앉은 딸의 발가락사이에도 어느새 알로에가 들어가 있다
▲ 자식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있다는 것이 행복한 팔순의 노모 팔순 어머니의 알로에 치료가 즐거운 듯 카메라를 들고 남편옆에 앉은 딸의 발가락사이에도 어느새 알로에가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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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경기도 용인에 살고 있는 선배 부부 집에 초대를 받아서 갔다. 초대라고는 하지만 언제나 서울에 올라올 때면 스스럼없이 드나들며 잠자리를 해결하는 데라 서울에 있는 또 다른 내 집과 마찬가지로 여기는 곳이다.

그날도 언제나처럼 '오늘은 무슨 안주로 소주 한잔 할까'를 고민하며 그 집에 들어섰을 때, 선배의 집에는 작은 변화가 있었다. 경기도 문산에서 살고 계시다는 선배의 어머니가 와 계신 것이었다. 우리는 여느 때와 같이 소주잔을 주고 받으며 그간 있었던 서로의 이야기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을 해나가던 중 자연스럽게 선배의 어머니 이야기로 흘러갔다.

경기도 문산에서 아버님과 단 둘이 여생을 보내시던 선배 어머니에게 암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왔다. 일산 암센터에서 정밀검사를 받은 결과 간암 3기 판정을 받으셨는데, 간경화까지 있는 터라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의사의 판단이 내려졌다.

선배 어머니는 1차 색전술(수술이 불가능한 암환자에게 시행하는 시술)을 받으셨고, 어려서부터 자신을 돌보지 않고 동생들 뒷바라지만 해 더 이쁘고, 미안하고 고맙던 큰딸이 엄마의 남은 여생을 모셔야겠다고 마음 먹고 남편과 상의해 집으로 모시고 왔다는 것이다.

자신의 간암보다 딸·사위 갈라진 발이 더 마음 아픈 노모

손발이 쩍쩍 갈라지면 그게 얼마나 아프냐며 사위에게 알로에를 건네시는 어머니
▲ 이게 특효약이야 손발이 쩍쩍 갈라지면 그게 얼마나 아프냐며 사위에게 알로에를 건네시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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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역시 간암으로 색전술을 시술하신 장인어른을 보아왔던 터라, 색전술의 후유증을 익히 알고 있었는데 의외로 의연하고 밝은 선배 어머니의  표정을 보며 '참 강한 분이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 부부와 함께 앉아 술자리를 하려고 하는데 건넌방에 계시던 선배 어머니가 얼굴에 미소를 지으시며 나오셨다. 손에는 어디서 나셨는지 갓 자른 알로에 하나가 들려있다.

"김서방 발이 그렇게 말라서 갈라지고 그러면 얼마나 아파? 내가 김서방 발라줄라고 알로에 사왔어, 앉아봐" 하시며 큰사위 손을 식탁 아래로 이끄시더니 이내 손에 들고 있던 알로에를 갈라 사위의 발에 문지르기 시작하신다.

"아휴 허허~ 어머니 저 괞찮아요" 하며 민망해 하는 50대 중반이 넘은 큰사위를 향해 어머니는 연신 손사래를 치며 특유의 김천 사투리로 "아이라~ 무신 소리라. 손발이 그래 쩍쩍갈라지마 큰일나, 그기 얼마나 아픈데 그카노, 니(딸)도 일로 오너라" 하신다. 그러고는 사위와 딸, 두 자식들에게 정성스레 알로에 마사지를 해주신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흐뭇하다 못해 가슴 속이 짠해오기 시작한다. 어머니, 자신도 팔순이 넘으신 연세에 간암과 간경화로 인해 힘든 투병을 하고 계신 분이 아니신가. 그럼에도 자신의 병마보다는 자식들 갈라진 발에 더 가슴이 아프셨는지, "아이고~ 김 서방, 이 발로 식구들 맥여 살릴라고 온데를 쫒아 다녔으니 쯧쯧쯧 얼마나 아팠어?" 하신다.

"이게(알로에) 정말 특효약이야, 내가 김 서방 발라 줄라고 사왔어."

곱게 웃음짓는 어머니 앞에 쉰을 바라보는 나이의 딸도 간만에 즐거운 듯 자신도 내려앉아 남편과 함께 열심히 알로에를 바르기 시작했다.

알로에 수분이 마르면 안된다며 사위의 발을 촘촘히 싸 주시는 어머니
▲ 촘촘히 사위의 발을 싸주시는 어머니 알로에 수분이 마르면 안된다며 사위의 발을 촘촘히 싸 주시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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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참 동안 알로에 마사지를 해주시고 마지막에는 수분이 날아가면 안 된다며, 헝겁쪼가리로 사위의 발을 꽁꽁 싸주는 것까지 잊지 않으시는 팔순의 노모. 이를 지켜 보던 나는 붉어지기 시작한 눈시울을 들키기 싫어 슬그머니 일어서 현관으로 나왔더니, 이번엔 복도 한켠에 줄기가 잘려나간 알로에 화분이 눈에 들어온다.

한눈에 보기에도 무거워보이는 알로에 화분. '설마 이걸 들고 오신 것은 아니시겠지?' 하며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무는 나의 눈에 들어온 잘려진 알로에 마디. 그것을 보며 '저런 것인가? 자식들을 위해 평생을 자신의 삶 마디를 자르며 살아오신 분들이 우리의 어버이들이신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뒤로 여전히 팔순의 노모는 쉰이 넘은 자식들과 함께 웃음을 터트리고 계신다. 5월이면 또다시 그 힘든 2차 색전술을 앞둔 힘겹고 두려운 자신의 병마 앞에서.

붉어진 눈시울을 감추려 나온 곳에서 또다시 눈시울을 붉히게 만드는 알로에 화분
▲ 줄기가 잘려나간 알로에 화분 붉어진 눈시울을 감추려 나온 곳에서 또다시 눈시울을 붉히게 만드는 알로에 화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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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간암, #어버이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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