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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하구 김포반도와 강화도 사이에 위치한 유도
▲ 유도전경 한강하구 김포반도와 강화도 사이에 위치한 유도
ⓒ 박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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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8일 아침 김포 반도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그러나 유도가 바로 앞에 보이는 초소 앞에 섰을 때, 유도의 새들을 관찰하기에 충분할 정도였다. 수백 마리의 민물가마우지가 둥지만 400여 개 이상 틀어놓은 놓은 유도 동쪽은 나무마다 똥으로 하얗게 온통 뒤덮여 있었다. 섬 안쪽 나무 사이로 백로 50여 마리가 둥지를 틀고 앉아있는 모습은 마치 꼭꼭 숨어있는 듯하다. 섬 가까이 해변에는 청둥오리 100여 마리가 한가로이 노닐고 있었다.

저어새는 겨우 한 두 마리 정도 유도 북쪽으로 날아 넘어가는 모습을 포착할 수 있었다. 숫자도 적었지만 가까이서 볼 수 없는 것이 아쉽다고 생각할 즈음, 초소 아래 강변 모래사장에서 저어새 한 마리가 부리를 휘휘 저으며 다닌다. 도도하게 느껴질 정도로 잘 빠진 왜가리 5~6마리 사이로 먹이를 찾아 뒤뚱거리는 모습은 게걸스러울 뿐 아니라 참 볼품없다. 고개를 들어 특유의 깃을 드러내며 자태를 뽐낼 때와는 완전 딴판이다.

유도 동쪽은 민물가마우지 둥지가 400여 개 있다.
 유도 동쪽은 민물가마우지 둥지가 400여 개 있다.
ⓒ 박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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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하구 김포반도와 강화도 사이에 홀로 떠있는 유도는 해마다 이맘때쯤 저어새 80~100쌍을 볼 수 있었던 섬이다. 한국전쟁 후 60년간 남과 북이 마주하며 사람의 발길이 닿지 못한 덕을 전 세계 2000여 마리 밖에 남지 않은 저어새가 톡톡히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2006년까지의 일이다.

2006년 봄, 저어새는 여느 때처럼 유도를 찾아와 둥지를 틀고 번식을 시도하였으나 전부 실패했다. 저어새가 바닥에 둥지를 틀고 알을 놓는 까닭에, 비가 너무 많이 온 탓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포식자가 한강을 떠내려 와 저어새 둥지를 습격한 탓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사람이 들어갔을 거라는 얘기도 있지만 군도 1970년대 이후로 유도에 들어간 적이 없는 터라 신빙성이 떨어진다.

유도에 들어간 고라니가 우리쪽을 쳐다보고 있다.
 유도에 들어간 고라니가 우리쪽을 쳐다보고 있다.
ⓒ 박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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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 서쪽 끝 갯바위에 고라니 한 마리가 생뚱맞게 우리 쪽을 쳐다보고 있다. 저 놈도 강물에 휩쓸려 섬까지 들어갔을 게다. 2006년에도 저런 식으로 포식자가 들어가 저어새의 둥지를 습격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보지만 아무런 증거가 없다. 들어가서 확인할 수 없으니 추측만 무성하다.

저어새 한 두 마리가 유도 북쪽 어딘가로 날아 넘어가는 것을 보니 동쪽 초소에서는 볼 수 있을까 싶어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거기서도 저어새의 둥지는 발견할 수 없었다. 만약에 유도에 저어새 둥지가 있다면 남쪽에선 볼 수 없는 북쪽 어디엔가 있을 게다. 그러나 숫자는 몇 안 될 것으로 보인다.

필드스코프와 쌍안경으로 유도의 새들을 조사하는 손성희 연구원(왼쪽)과 박건석 선생님(오른쪽)
 필드스코프와 쌍안경으로 유도의 새들을 조사하는 손성희 연구원(왼쪽)과 박건석 선생님(오른쪽)
ⓒ 생태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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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반도 북단 민통선 지역을 다니려면 최소 일주일 전에 군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다가 유도 등 전방을 관찰하려면 소초 관계자의 안내를 받아야한다. 우리와 동행한 박건석 선생님은 "철책 등 군 시설을 찍으시면 안 된다"는 초병의 말에 "잘 알고 있다"고 응수했다. 그저 새가 좋아서 사진에 담아두려는 것뿐인데, 강화·김포의 바닷가를 다니며 귀에 못이 박히도록 저 소릴 들어왔을 게다.

박건석 선생님은 농부다. 강화에서 농사를 지은 지 10년째. 어느 순간 바닷가에서 새를 바라보고 있더란다. 그렇게 새를 보기 시작한 지도 10년이 다 되어 간다. 농사일이 한창일 텐데 김포 북단에 저어새를 보러 가자는 손성희 연구원의 제안에 흔쾌히 동행했다. 좋은 사진까지 남겼으니 감사한 일이다.

민통 지역을 빠져나와 하성에서 점심 식사한 뒤, 시암리 쪽을 향해 다시 들어갔다. 길을 못 찾아 철책 부근에서 헤매는데 초소 군인들의 반응이 민감하다. 철책으로 들어가려 하는 줄 알았나보다. 얼마 전에도 김포시장이 이곳을 찾아 철책을 들어가려 했으나 사전에 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돌아서야 했단다.

물어물어 도착한 작은 소초에서 간부의 안내를 받아 약간 높은 언덕에 오르니 강변을 관찰할 수 있었다. 철책 너머로 저어새 다섯 마리, 비오리 열 마리, 갈매기 두 마리, 쇠기러기 열 마리가 어우러져 먹이를 찾아다니는 모습은 너무나 평화로워 보였다. 사람이 다가갈 수 없으니 새에겐 더없는 낙원이다.

재두루미 두 마리와 저어새 네 마리 가족이 한눈에 보인다.
 재두루미 두 마리와 저어새 네 마리 가족이 한눈에 보인다.
ⓒ 박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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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평리, 석탄리를 빠져나와 남쪽을 향했다. 전류리를 지나고 제방도로를 따라 가다가 차를 세워 한강 너머 파주 쪽으로 필드스코프를 고정시켰다. 아직 북쪽으로 떠나지 못한 재두루미 한 쌍과 저어새 네 마리가 한 눈에 들어왔다. 올 봄이 봄답지 않게 추웠던 까닭일 게다. 필드스코프를 상류 쪽으로 돌리니 또 다른 저어새 네 마리가 부리를 휘휘 저으며 먹이를 찾고 있다. 가끔 고개를 들었을 때 보니 부리 끝이 노란 것이 두 마리는 노랑부리저어새다.

육안으로는 부표와 저어새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어 필드스코프로도 자세히 볼 수 없다는 게 아쉬웠지만, 그 때문에 저어새가 안심하고 그곳을 찾을 수 있으니 그것으로 만족할 따름이다.

약간 하류 쪽으로 눈을 돌리니 개리 50여 마리가 청둥오리들 사이로 보인다. 철탑 쪽에도 개리 25마리가 더 있다. 재두루미처럼 벌써 북쪽으로 날아갔어야 할 녀석들이 느긋하게 한강하구에서 노닐고 있다.

공릉천하구는 파주와 고양을 가르며 한강하구와 만난다.
 공릉천하구는 파주와 고양을 가르며 한강하구와 만난다.
ⓒ 생태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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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서쪽을 향해 내려올 무렵, 박건석 선생님과 헤어지고 한강을 건너 공릉천을 찾았다. 그곳엔 수십 명의 군인들이 참호 보수를 하느라 한창이었고 청둥오리와 흰뺨검둥오리 몇 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곳만은 잘 보전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지만 교하신도시 우회도로 계획 등 각종 개발 계획이 진행 중이다.  

금단사를 돌아 산을 오르니 중턱에서 한강하구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북쪽으론 오두산전망대가 자리를 잡았다. 곳곳에 우뚝 솟은 타워크레인과 굴착기, 한강 양안을 따라 길게 이어진 철책에서 한강하구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본다. 저어새가 언제까지 안심하고 이곳을 찾을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우리나라 4대강하구 중 유일하게 하구언으로 막히지 않은 곳 한강하구. 그곳은 저어새, 재두루미, 개리 등 멸종위기종뿐 아니라 온갖 생명들이 안심하고 깃드는 소중한 곳임을 누군가는 기억하고 지켜가야 할 것이다.

한강하구와 공릉천하구 사이로 자유로가 지난다.
 한강하구와 공릉천하구 사이로 자유로가 지난다.
ⓒ 생태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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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생태지평연구소 홈페이지(ecoin.or.kr) 와 블로그(ecodmz.tistory.com)에 중복개재합니다.



태그:#생태지평, #한강하구, #유도, #저어새, #재두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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