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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강진으로 태평양 연안국가 전체 비상경보 발령, 폭우로 인한 출발 연기, 여행 전 불안증세 가중(최악의 안전사고와 천재지변을 상상하게 된다)...여러 우여곡절 끝에 지난달 4일 시작한 20여 일간의 일본 여행이 아무 탈 없이 끝났다.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남긴 채.

다시 돌아온 일상에서 '길 위에서의 추억'을 떠올릴 때면, 마치 비오는 날 따뜻한 크림스프를 마시듯 흡족하고 안온한 기분이 든다. 이제 여정의 마지막을 정리하면서 현지에서 직접 체득한 '최신판' 유용정보와 미처 못 전한 소회를 밝힌다.  

[잠자리 정보]

첫째로, 여행에서 먹는 것만큼 중요한 게 '잠자리 정보'다. 나는 느린 여행을 즐기기 때문에 때로는 먹는 것보다 숙소를 더 신경 쓴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소개할 세 곳은 저렴한 비용·편리한 부대시설·주인의 친절함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춘, 거짓말 좀 보태서 살아도 좋을 만한 '강추' 코스다.

오사카 신이마미야역에 위치한 비지니스 호텔 CHUO. 유사가격대 인근지역 최고시설이며 '훈남' 주인 아저씨의 한국어 실력이 꽤 유창하다.
 오사카 신이마미야역에 위치한 비지니스 호텔 CHUO. 유사가격대 인근지역 최고시설이며 '훈남' 주인 아저씨의 한국어 실력이 꽤 유창하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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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오사카 신이마미야역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는 비즈니스 호텔 CHUO. 일단 신이마미야역만 가면 쉽게 찾을 수 있으니, 어지간히 길눈이 어둡거나 초행자라도 걱정할 필요 가 없다. 싱글룸 기준 침대방 2500엔, 다다미방 2300엔인데 5일 이상 투숙자나 재방문자에겐 10%의 할인혜택이 주어진다. 

이곳의 최대강점은 역 근처에 있는 비슷한 가격대의 호텔 가운데 가장 깔끔한 객실과 공동욕실이 구비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로비나 방 안(노트북 소지자에 한해) 어디서건 무료 인터넷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

단 샤워실이 아닌 공동욕실의 경우 남녀 이용시간이 다르니 이 점,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한 번은 아침 산책을 마치고 맨 몸으로 욕실 문을 열었다가 낯선 남자의 실루엣을 확인하고 혼비백산하는 사건이 있었다. 어림짐작으로 시간이 됐다 싶어 들어간 게 실수였다.

교토에서 돌아와 다시 이곳에 묵었을 때 우연히 이 얘기를 전해들은 주인 아저씨는 내가 본 가장 유쾌한 표정으로 박장대소를 했다. 참고로 언뜻 유시민을 닮은 이 잘생긴 주인 아저씨는 한국말이 꽤 유창하다. '영어 울렁증 있으신 분들, 그냥 한국말 해도 됩니다.'

CHUO 호텔에서 길 건너 맞은편 골목 안쪽에 위치한 역시 비즈니스 호텔 TOYO. 이 일대 가장 저렴한 숙박비로 각국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CHUO 호텔에서 길 건너 맞은편 골목 안쪽에 위치한 역시 비즈니스 호텔 TOYO. 이 일대 가장 저렴한 숙박비로 각국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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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CHUO에서 길 건너 맞은편 골목 안에 있는 TOYO다. 비즈니스 호텔보다도 시설이 다소 열악한데, 그럼에도 이 근방에서 제법 경쟁력을 갖는 이유는 싱글룸 다다미방을 불과 1400엔(최소 기준)에 빌릴 수 있기 때문. 게다가 할아버지 주인을 비롯한 전 직원이 매우 친절한 것도 가격 만족도와 더불어 이곳의 큰 장점이다.

이 일대에 TOYO와 비슷한 가격대의 숙소들이 몇 곳 있긴 하다. 그러나 실제로 가보면 흡연실처럼 방 안에서 담배 냄새로 찌든 매케한 냄새가 나거나, '인터넷방'을 사용하려면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TOYO에서는 노트북이 있다면 각 객실에서 공짜로 무선랜 사용이 가능하다. 경비를 최대한 아끼면서 앞서 말한 '일석삼조'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여행자에게 이곳은 '마지노선'과도 같은 곳이다. 

교토에서 한 주간 머물렀던 게스트하우스 Dolphins. 젊은 부부와 처제로 보이는 친절한 아가씨가 공동 운영하고 있는 아주 깔끔한 도미토리식 숙소다.
 교토에서 한 주간 머물렀던 게스트하우스 Dolphins. 젊은 부부와 처제로 보이는 친절한 아가씨가 공동 운영하고 있는 아주 깔끔한 도미토리식 숙소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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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교토에서 한 주간 머문 도미토리식 게스트하우스 Dolphins다. 8~10명이 침대방 하나를 사용하는 형식인데, 지저분하거나 소란스러울까 봐 염려할 필요가 없다. 주인인 젊은 부부와 처제로 보이는 아가씨가 매우 깔끔한 성격인데다 투숙객 준수사항이 엄격히 적용되기 때문이다.  

일단 한 사람당 숙박비는 2500엔에, 할인혜택은 없으며 게스트하우스 측에서 제공하는 모든 편의시설(세탁기 200엔, 버터 한 큰 술 50엔)은 가격이 책정돼 있다. 통금시간은 없지만 11시 이후 실내에서의 모든 개인 활동과 전기제품 사용이 금지된다. 앞서 소개한 바 있는 프랑스인 사이먼이 '쫓겨난' 곳도 여기인데, 그렇다고 해서 긴장할 필요는 없다. 규칙만 깨지 않으면 그들은 언제나 상냥하고 손님을 위해 최선의 예의와 노력을 다한다.   

일단 교토역에 도착한 사람들은 역내 2층 인포메이션 센터를 찾아가라.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이곳에서 다양한 가격대 숙박부터 교통·관광 정보까지 한국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단 이 일대 웬만한 비즈니스호텔 평균 가격이 5000엔대이며, Dolphins와 가까운 같은 가격의 또 다른 게스트하우스의 여직원은 상당히 불친절하니(남자 제외) 염두에 두길.   

[일본의 '선진국다움'] 

두 번째는 널리 알려진 화려한 관광지 외에도 결코 놓치지 말고 보았으면 하는 것들이다. 다음은 일본의 '선진국다움'을 체감할 수 있었던, 우리가 배우고 실천했으면 하는 덕목들이다.  

사찰 등 주요 관광명소에 장애인을 배려하는 시설들이 눈에 띈다.
 사찰 등 주요 관광명소에 장애인을 배려하는 시설들이 눈에 띈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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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의 히사기혼간지와 지온인에서도, 오사카의 해양박물관에서도 장엄하고 멋들어진 풍경 속에 공통적으로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노약자를 위한 배려시설이다. 비단 장애인뿐만 아니라 노인이나 아이(주로 그 부모)를 위한 세심한 조치였는데, 특히 유서 깊은 고찰의 본당 옆에 목재를 이용해 만든 완만한 이동통로는 대충 외관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안팎을 효율적으로 둘러볼 수 있게 동선을 고려했음을 알 수 있었다.

사회약자를 위한 시설을 혐오스럽게 여기고, 될수록 작고 안 보이게 가리려는 우리 사회 지배적 인식과는 달리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비장애인보다 조금 더 유리한 공간을 할애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휠체어 탄 장애인의 에스컬레이터 이동을 돕고 있는 안내원
 휠체어 탄 장애인의 에스컬레이터 이동을 돕고 있는 안내원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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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교토역에서 봤던 제복 입은 이 남자의 모습은 공공기관의 한 평직원까지도 의식화시킬 수 있는 일본이란 나라에 존경심마저 갖게 했다. 그는 한참 북적이는 시간대에 휠체어를 탄 세 명의 장애인을 차례대로 에스컬레이터에 태워 위층까지 인도했는데, 그들 모두의 필요를 만족시킬 때까지 단 한 번도 힘든 기색 없이, 연신 웃음 띤 얼굴로 고객의 상태를 체크하며 마지막엔 인사하는 것까지 잊지 않았다.

언젠가 서울 신도림역에서 휠체어 탄 남자 장애인을 짐짝 다루듯 하며, 휠체어 승강기가 내려오는 동안 쉴 새 없이 휴대전화에 대고 욕설을 하던 공익근무요원이 생각난다. 이날 '익숙한 모욕'을 당한 장애인과 짧은 대화를 나눴는데 그의 말이 지금도 슬픈 메아리처럼 울린다.

"남의 시선이나 멜로디 같은 건 이제 괜찮아요. 그런데 (안내요원을) 불러도 오지 않고... 화장실이 급할 때면 미칠 것 같아요. 집에서 단도리를 한다고 하는데도…."

물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일본식 변기들
 물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일본식 변기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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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더, 화장실에서도 본받을 만한 일본인들의 생활습관을 엿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최근에 지은 건물에서만 볼 수 있는 '대소변 분리정화'나 수돗물 재활용이 가능한 '절약형 변기'가 일본에서는 아주 작은 식당까지도 상용화되고 있었다. 전 세계 인구 중 수돗물을 사용하는 '특권'을 단 20%만이 누리고 있단 사실을 상기하면 '모범시민'다운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한때 국내에도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 쓰고)' 운동이 유행처럼 퍼졌지만 여전히 절약하는 삶은 구차한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 이기적인 삶에서 탈피하고 싶은 당신, '시장갈 때 장바구니, 회사에서 내 컵 쓰기' 이 작은 실천부터 동참해볼 것을 권유한다.

[애마 예찬]

자전거 위가 아니었음 무심코 지나치거나 아예 못 봤을 장소들
 자전거 위가 아니었음 무심코 지나치거나 아예 못 봤을 장소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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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정을 멋지게 장식할 수 있었던 여러 이유 중 단연 일등공신은 나의 '애마', 자전거다. 위 사진 속의 장소들은 만약 자전거를 타지 않았다면 무심코 지나쳤거나 아예 보지 못했을 곳들이다.

상단 좌측의 개울은 미미즈카(귀무덤)을 보러갈 때마다 주변 풍경이 예뻐 여러 번 감탄한 곳인데 알고 보니 16세기 후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으로 사찰 건립에 필요한 자재를 운반하기 위해 개통시킨 수로였다. 오른쪽은 긴카쿠지(은각사)를 찾던 중 우연히 발견한 교토교엔. 자전거로 건물 외부만 한 바퀴 돌아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만큼 드넓은 이곳은 19세기 말 교토에서 도쿄로의 수도 이전 이후 이를 안타깝게 여긴 국왕이 축조시킨 왕실정원이었다.   

아래쪽 좌측은 숙소 근처에서 길을 잃은 덕분에 보게 된 '이치히메 신사'로 여성과 아이를 수호하는 다섯 여신이 모셔져 있어 전국적으로도 인기가 높은 곳이다. 마지막 우측 장소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는 곳으로, 교토에서 오사카로 두 번째 '자전거 이사'를 하던 중 상당한 수의 사람들이 모여 있어 찾아들어간 곳이다. 일본어 표지판만 있어 도대체 그 용도를 알 수 없었으나, 한 현지인 부부의 말을 조각조각 이해한 바에 따르면 1년에 단 한 번, 딱 3일만 공개하는 곳으로 내가 '무척 운 좋은 여행자임을 입증'해준 장소였다.

이 기회를 빌려 여행 내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함께 걷고 달려준 나의 자전거에도 고마움을 전한다. 무엇보다 이 친구의 장점은 '탄소똥'을 싸지 않는 글로벌적 위생성과 어떤 풍경도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드는 재주라 하겠다. 

[Special Thanks]

끝으로 일본말도 할 줄 모르는 낯선 이방인에게 따뜻한 미소와 뜻밖의 친절을 베풀어준 이들과, 우연히 만나 짧은 순간 즐거운 추억을 쌓은 모든 길벗들을 추억해본다.

교토에서 오카사로 자전거로 이동할 때 길 곳곳에서 도움을 줬던 사람들
 교토에서 오카사로 자전거로 이동할 때 길 곳곳에서 도움을 줬던 사람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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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자전거를 타고 먼 길을 달리는 나를 독려해주고, 길을 물을 때면 외면하거나 귀찮은 내색 없이 성심성의껏 안내해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한다. 특히 교토에 도착한 밤, 한 시간 넘게 함께 숙소를 찾아준 한국인 남성과 일본인 아저씨는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이다.

우연히 만나 짧지만 즐거운 순간을 함께한 사람들
 우연히 만나 짧지만 즐거운 순간을 함께한 사람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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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혼간지를 구경할 때 갑자기 몰려와 함께 사진을 찍게된 일본 초등학생들, 헤이안 신궁을 '점령'한 경주 고등학교 학생들, 기모노를 입고 분칠을 했다고 해서 모두가 게이샤가 아님을 알게 해준 신넨자카에서 만난 두 여성 모두모두 반가웠습니다.

신카이수지 시장골목의 야키소바 청년과 한식당 아주머니
 신카이수지 시장골목의 야키소바 청년과 한식당 아주머니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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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정이 듬뿍 든 오사카 신카이수지 시장. 그 중에서도 매일같이 따끈한 야키소바를 맛보게 해준 점원 청년과 '집 나와 고생한다'며 공짜 김치찌개와 밑반찬을 듬뿍 주신 한식당 어머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여 나의 20여 일간의 일본 여정이 끝이 났다. 여행은 대부분 기약없는 스침일 때가 많다. 그러나 모든 길 위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그곳에 오래도록 뿌리내려 산 사람들과 그들이 이룩한 소중한 문화다. 그래서 그 어떤 만남도 소홀히 하거나, 씻지 못할 상처를 남겨선 안 될 것이다. 나는 이제 일본의 여러 골목길을 떠올릴 수 있고, 그 안에 나를 향해 웃어준 사람들을 기억할 수 있다. 이것이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성과다.

일본을 떠나기 전 오사카에서의 마지막 밤, 이제는 익숙해진 신카이수지 시장 입구 어묵가게에선 작은 음악회가 열리고 있었다. 하루 일과를 마친 현지인들과 나와 같은 여행자들의 발길을 붙잡았던 그 순간은, 마치 나의 여행을 아쉬워하는 환송회처럼 느껴졌다.


태그:#일본, #자유여행, #자전거 , #관광 , # 배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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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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