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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동이>에서 최숙빈(숙빈 최씨)의 라이벌이 될 장옥정(장희빈).
 드라마 <동이>에서 최숙빈(숙빈 최씨)의 라이벌이 될 장옥정(장희빈).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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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동이가 숙녀 동이로 바뀐 이후, MBC 드라마 <동이>는 훗날 최 숙빈(숙빈 최씨)의 라이벌이 될 장옥정(장 희빈)의 거취를 중심으로 흥미진진하게 전개되고 있다.

궁궐에 운석이 떨어진 사건과 화음의 부조화(소위 '음변')가 돌발한 사건을 둘러싸고 반(反)장옥정파와 친(親)장옥정파가 불꽃 튀는 접전을 펼치고 있다. 반장옥정 쪽에는 명성왕후(명성대비)와 서인 당파가, 친장옥정 쪽에는 숙종과 남인 당파가 있다.

이런 가운데 주인공 동이(한효주 분)는 자신과 가족을 불행에 빠뜨린 사건의 열쇠를 장옥정(이소연 분)이 쥐고 있을지 모른다는 판단 하에, 일단 그를 살리기 위해 서인의 음모를 파헤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이것이 6일 방영된 제6부까지의 내용이다.

그런데 현재 <동이>의 화두인 장 희빈과 관련하여 우리가 자칫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 그것은 주인공 동이와 심정적으로 일체가 되는 과정에서, 동이의 라이벌이 될 장 희빈을 무조건 악의 화신으로 매도할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장 희빈은 무작정 욕을 먹기에는 좀 억울한 인물이다. 왜냐하면, 그는 조선 후기의 사회발전상을 반영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성격이 표독스러웠든 아니든 간에 인성이 부족했든 아니든 간에, 그는 조선사회의 발전상을 반영하는 '시대변화의 표상'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다.

장 희빈은 정말 '악의 화신'이었을까

장희빈의 무덤인 대빈묘.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 서오릉 소재.
 장희빈의 무덤인 대빈묘.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 서오릉 소재.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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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아(E. H. Carr)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와 인성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다루는 이야기 속에 나오는 인물의 사생활에 대해 역사가가 도덕적 판단을 내릴 필요가 없다는 것은 오늘날 논의할 필요조차 없다. …… 헨리 8세는 나쁜 남편이었을 수 있지만 훌륭한 왕이었다. 그것이 역사적 사건에 영향을 미칠 때에만 역사가는 그의 그런 (도덕적) 자질에 관심을 갖는다."

카아의 말은 역사적 인물의 도덕성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한 인물의 인성에 좌우되어 그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그르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장 희빈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우선적 관심을 둬야 할 대상은 '그가 독했는지 혹은 교활했는지'보다는 '그가 어떤 역사적 맥락 속에서 역사무대에 등장했느냐'여야 할 것이다. 

역관 아버지를 일찍 여읜 장 희빈을 궁궐에 투입한 대표적 인물은 조사석(1632~1693년)이라는 고위 관료다. 장 희빈의 모친과 내연관계였다고 알려진 조사석은 장 희빈이 후궁이 되기 6년 전인 숙종 6년(1680)에 예조판서에 오른 인물로서 남인 당파와 연계된 정치인이었다. 숙종 14년(1688)에는 좌의정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본래 궁녀는 각 관청의 공노비 중에서 선발되었고 그 외의 사람이 궁녀가 되는 것은 형사처벌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공노비가 아닌 장 희빈은 정상적인 경우라면 궁녀가 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장 희빈이 남인의 개입 하에 궁궐에 투입되었다는 것은 남인이 그의 신분을 적당히 위조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입궁 후에도 남인이 환관과 상궁들을 매수해서 그가 숙종 옆에 다가갈 수 있도록 물밑작업을 벌였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발생한 결과들을 놓고 볼 때, 남인이 장 희빈을 궁녀로 만든 것은 '위장취업'을 권유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를 후궁 혹은 왕비로 만들어 숙종을 수중에 넣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장 희빈은 일종의 전략적 기획작품이었던 것이다.

남인이 역관의 딸을 전략적으로 후원한 까닭

조선시대에 해당하는 명나라·청나라 시대의 상업지구였던 북경 전문대가(前門大街, 치안먼다지에). 정식 명칭은 정양문대가(正陽門大街, 정양먼다지에). 사진은 2008년에 복원된 전문대가의 모습. 무역에 관심이 많았던 조선 역관들이 한번쯤 방문했을 장소다.
 조선시대에 해당하는 명나라·청나라 시대의 상업지구였던 북경 전문대가(前門大街, 치안먼다지에). 정식 명칭은 정양문대가(正陽門大街, 정양먼다지에). 사진은 2008년에 복원된 전문대가의 모습. 무역에 관심이 많았던 조선 역관들이 한번쯤 방문했을 장소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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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남인이 하필 역관의 딸을 전략적으로 후원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자금력'이라는 문제가 작용했다. 이 문제를 설명하려면, 조선 후기의 사회경제적 발전을 빼놓을 수 없다.

조선 후기에는 농기구와 시비법 등의 개발로 농업생산성이 향상되고 상품작물이 재배됨에 따라 이른바 부농들이 대거 출현했다. 또 공업 기술자들은 관영 수공업의 틀을 깨고 민영 수공업 쪽에서 활로를 모색했다. 또 상인들 중에서도 대자본을 축적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조선 후기에 서민들을 위한 문화 콘텐츠인 판소리·탈춤·한글소설·서민음악 등이 대거 쏟아진 것은 이들이 문화생활을 향유할 수 있을 만큼 경제적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특히 더 많은 부를 축적한 집단이 있었다. 중국을 오가는 사신단에 소속된 역관들이 바로 그들이다. 박지원의 <열하일기> '도강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신단 중에서 당상관(정3품 이상)은 은 3천냥, 당하관은 은 2천냥을 갖고 연경(북경)에 가서 중국 상품을 사온 뒤에 이를 국내에서 비싼 값에 되팔 수 있었다. 은을 준비할 여력이 없는 관리들은 부유한 상인에게 자신의 권리를 팔곤 했다.

역관도 무역특권이 부여되는 정식 관리에 포함되었다. 정사·부사·서장관 같은 고위직에 비해 역관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후보자는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에, 역관들은 일반 고위관료들보다 훨씬 더 자주 중국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이것은 그들의 치부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역관에게 무역특권을 허용하는 제도적 장치 외에, 조선 후기에 이들의 치부를 한층 더 부추긴 것은 서민의 '재테크'를 허용하는 사회 분위기였다고 할 수 있다. 농·공·상업 분야에서 서민 부자들이 대거 출현하지 않았다면, 역관들의 치부는 양반들의 집중적 견제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상놈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사회적 분위기 탓에, 이들은 별다른 견제 없이 부를 축적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서민이 치고 올라가는 시대적 분위기에 편승해서 '떼돈을 긁어모은 대표적 인물'이 바로 장 희빈의 오촌당숙인 역관 장현이었다. '떼돈을 긁어모은 대표적 인물'이라는 표현 정도로는 부족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는 인조~숙종 시기에 역관 생활을 바탕으로 조선 팔도에서 손꼽히는 '재벌'의 대열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장 희빈을 챙겨준 인물이 바로 장현이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거의 부녀관계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쯤 되면 남인들이 왜 장 희빈을 밀어주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장 희빈의 배후에 거대한 재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 희빈이라는 여인이 제도권 붕당인 남인과 서민 출신 재력가의 정치적 결합을 매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서민의 지위 향상이 낳은 인물, 장 희빈

이런 점을 볼 때, 서민들의 경제력과 지위가 급상승하는 조선 후기의 사회적 분위기가 장 희빈이라는 한 인물을 배태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제도권 붕당이 후궁 혹은 왕비 자리를 약속하면서까지 서민 출신 여인에게 손을 내밀 정도로, 조선 후기에는 서민들의 위상이 그만큼 향상되었던 것이다.

장 희빈은 '시대변화의 표상'이라 불릴 만한 인물이었다. 그는 조선 후기 서민들의 사회적 성장을 반영하는 인물 중 하나였던 것이다. 종래에는 인성이나 개성을 근거로 장 희빈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주류를 이루어졌지만, 이처럼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장 희빈은 긍정적 조명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드라마 <동이>를 시청하면서 주인공 최 숙빈만 일방적으로 편들 게 아니라 최 숙빈의 성공 비결과 장 희빈의 진보적 요소에도 함께 주목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일거양득 혹은 일석이조가 아닐까.


태그:#동이, #장희빈, #장옥정, #최숙빈, #숙빈 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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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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