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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을 넘게 뚝방길을 지키고 자리를 떠나지 않았던 큰 개
▲ 성동구 뚝방이 3개월을 넘게 뚝방길을 지키고 자리를 떠나지 않았던 큰 개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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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은 뚝방이입니다. 성동구 성수동의 뚝방길에서 자리를 떠나지 않고 3개월을 지키고 앉아 있는 녀석. 이후 이 개는 다행히도 주인을 찾았습니다.

집을 나온 큰 개는 대부분  목줄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작은 개의 목줄과는 많이 다른, 벗어나지 못하는 고단한 삶의 굴레 같습니다.

큰 개의 목줄을 볼 때마다 가슴이 저려 옵니다. 그리고 줄을 끊고 나온 그 철없음이 안쓰럽고 걱정도 되지만 다른 한편으론 저렇게라도 나오지 않았다면 평생 목줄이 갈 수 있는 그 거리가 세상의 전부였을 녀석의 답답한 생이 떠오릅니다.

3년간 집도 없이 짧은줄에 매여  폭염과 혹한을 견디어 낸 옥상위의 리트리버
▲ 옥상위의 리트리버 3년간 집도 없이 짧은줄에 매여 폭염과 혹한을 견디어 낸 옥상위의 리트리버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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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큰 개의 우직함과 충성심을 높게 삽니다. 그리고 지금은 여건이 되지 않지만 나중에 마당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 큰 개를 키우고 싶다는 사람들은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서 큰 개를 키우고 있다는 분들이 개를 보낼 때가 없느냐며 입양시킬 곳을 알아봐 달라고 자주 상담을 요청하십니다. 대부분이 또다시 이사를 가야 하는데 몸집이 커서 못 데리고 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큰 개가 쏟아내는 엄청난 양의 배설물과 날리는 털, 우렁찬 짖음으로 인해 이웃들의 항의가 거세 견딜 수가 없다는 이유도 많습니다.

작년 가을, 경상남도 남해의 욕지도란 섬에 버려진 유기동물들이 문제로 떠오른 적이 있었습니다. 섬에 버려진 유기동물의 구조와 치료를 위해 욕지도를 직접 찾아갔고 섬에 도착한 첫 날, 예방접종을 위해 마을 분들께 키우고 있는 개들을 데리고 나오라고 방송을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접종을 위해 나온 개들의 종류가 너무나 다양했습니다. 동물병원도 애견샵도 없는 외딴섬인데 리트리버, 말라뮤트, 허스키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고 달마시안과 차우차우, 심지어는 그레이하운드까지 있었습니다.

그 개들을 데리고 나온 연세 드신 어른신들께 여쭈어보니 예상했던 대로 도시로 나간 자녀들이 키우다 감당이 안 되어 섬으로 내려 보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데리고는 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나무 판자에 묶어 꼼짝할 수 없이 밤낮으로 양식장을 지키는 개로 보내거나 산속에 묶인 채 방치한 소수는 식용으로 삶을 마감하기도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나라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무료한 큰 개의 삶
▲ 흔히 볼 수 있는 대다수 큰 개의 삶 우리나라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무료한 큰 개의 삶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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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주변에서 큰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온 여유로운 모습과 TV안에서 넓은 정원을 맘껏 활보하고 있는 큰 개들의 모습을 자주 접할 수 있습니다. 대다수 큰 개들의 삶을 생각하면 저 또한 그 평화롭고 자유로운 모습에 넋이 나갑니다. 하지만 내가 처한, 그리고 앞으로 처 할 상황을 떠올리면 저는 절대로 큰 개를 키울 수 없습니다. 큰 개의 행복을 책임질 수 없습니다.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원룸에 살고 있고 곧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젊은 남자분과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저에게 상담을 요청한 것이 뭐였느냐면 얼마 전에 100만 원을 주고 도베르만을 분양 받았는데 앞으로 배우자가 될 분이 그 개를 키운다면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여 개를 다시 돌려주고 분양비를 환불 받으려 하는데 100만 원을 다 주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여자분과 평소 큰 개를 키우는 것에 대하여 대화를 해 본 적이 없냐고 물으니 매번 강하게 거부를 했지만 막상 사 오면 괜찮겠거니 했다는 것입니다. 덧붙이는 말은 작은 개는 키우는 맛이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도베르만의 늠름한 외모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경외심을 나타내더군요.

원룸에 살면서 어떻게 도베르만을 키울 생각을 했느냐며 나무라듯 말하니 키워 보지는 않았지만 도베르만 동호회에 가입하여 알 만한 것은 다 안다고 하더군요. 또한 사람을 물거나 사나운 도베르만은 순종이 아니라 잡종이라 그런 것이라는 말까지 덧붙여서요. 만약 덩치가 너무 커져서 감당이 안 되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는 역시나 시골에 내려 보내서 자유롭게 살게 해주면 되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왔습니다.

주인의 잘못된 소유욕으로 창고에 갇혀 사는 큰 개
▲ 창고에 갇혀 사는 큰 개 주인의 잘못된 소유욕으로 창고에 갇혀 사는 큰 개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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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이 안되면 시골로?

내가 감당하지 못하고 끝까지 책임지지 못한 큰 개는 어느 누구도 쉽게 거두어 줄 수 없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키우던 큰 개를 입양 보낸 뒤 그 곳이 개농장이나 번식장이었음을 뒤늦게 알고 도움을 요청하는 사례는 굉장히 많습니다. 허나 이미 소유권이 넘어간 상태라 처벌도 힘들고 다시 돌려준다 하며 거액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보낸 첫날 도살돼 억만금을 주고도 다시는 볼 수 없는 일도 허다합니다.

감당. 동물을 키우거나 키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감당이란 것은 현재의 감당이 아니라 앞으로 바뀌게 될 환경 및 불확실한 미래에서도 현재와 같을 수 있는가, 견디어 낼 수 있는가에 대한 책임감을 포함하는 말입니다. 살아 있는 동물에게는 말입니다. 지금 내가 충동적인 환상에 사로잡혀 분양 받으려 하는 큰 개의 삶이 최후엔 저리 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는 것입니다.

큰 개 = 환상 = 충동적 분양 = 불감당 = 시골 = ?

이 공식은 우리나라의 주거환경과 양육여건상 쉽게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 큰 개를 위한 변호 -

큰 개는 경망스럽지 않습니다.
큰 개는 충직합니다.
큰 개는 기다릴 줄 압니다.
그리고 큰 개는 주인만을 섬깁니다.

하지만 ..
큰 개는 매일 묶여 있습니다.
큰 개는 오고가는 발길질에 익숙합니다.
큰 개는 기다림의 고통을 견뎌야 합니다.
그리고 큰 개는 주인을 잃고 나면 더이상 갈 곳이 없습니다.

큰 개의 품위를 지켜줄 수 없다면
큰 개의 충직함을 빛나게 할 수 없다면
큰 개의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없다면
큰 개에게 품은 환상을 하루빨리 버려주세요.

덧붙이는 글 | 동물자유연대 함께나누는 삶 게시판에 올려진 글입니다.



태그:#유기견 , #유기동물, #동물학대,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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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자유연대 반려동물복지센터 국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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