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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62주년 위령제 장면. 눈부시게 푸른 하늘이었다.
▲ 4.3 62주년 위령제 4.3 62주년 위령제 장면. 눈부시게 푸른 하늘이었다.
ⓒ 이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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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듯 하늘은 파랬다. 해마다 4·3위령제가 열리던 날은 어김없이 궂은 날씨였다. 그런데 2010년 62주년 4·3은 달랐다. 가슴 속에 응어리졌던 무엇인가가 뻥 뚫린 것처럼 쾌청했고, 약간의 한기를 감출 수는 없었지만 따스한 봄 햇살을 느낄 수 있었던 좋은 날씨였다.

위령제 사상 최고의 날씨라 할 만했다.

4.3 62주년 위령제 장면 눈부시게 푸른 하늘이었다
▲ 4.3 62주년 위령제 4.3 62주년 위령제 장면 눈부시게 푸른 하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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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4·3평화공원을 가득 메운 유족과 도민들.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이라 여야 정당의 대표들과 예비후보자들도 앞다투어 자리를 함께했다.

오전 11시, 위령제가 엄숙히 시작되었다. 식순에 따라 장정언 평화재단 이사장의 고유문, 김태환 도지사의 주제사, 깅용하 도의회의장의 추모사가 이어졌다. 다음은 정부 대표인 정운찬 총리의 추도사 순.

그런데 이게 웬일, 총리는 보이지 않고 대신 국무총리 실장이라는 사람이 참석하여 추도사를 대독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대통령을 대신해 참석하여 도민의 억울한 감정을 풀어주겠다던 총리는 도대체 어디로 갔는가? 

1년 전인 지난해 61주년 위령제 때는 어땠던가? 당시 한승수 국무총리는 4·3위령제 대신 경기 일산에서 열린 서울 모터쇼에 참가했었지, 아마? 졸지에 모터쇼보다도 못한 행사가 되어 버렸던 4·3위령제.

1년 후인 올해, 정부는, 총리는 무슨 이유를 불참 명분으로 내걸었나? 천안함 실종자를 구하다 순직한 고 한주호 준위의 영결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란다. 한 준위의 영웅적 죽음을 누구보다 슬퍼하는 유족이며 도민들이어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라는 아쉬움이 드는 것은, 60여년 전 영문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양민의 죽음 때문이다.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는 행불인 수천기 비석에 내려앉은 까마귀들을 보기 때문이다. 두 살, 세 살, 여섯 살짜리 아이들의 억울한 죽음이 새겨져 있는 각명비를 보며 가슴이 먹먹해지기 때문이다. 두 살난 젖먹이 딸을 등에 업은 채 피신 도중 총에 맞아 희생된 변병생 모녀의 조각상에, 차마 눈을 떼지 못하기 때문이다.

4.3평화공원에 있는 행방불명인 표석, 수천기
▲ 4.3평화공원에 있는 행방불명인 표석 4.3평화공원에 있는 행방불명인 표석, 수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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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평화공원에 있는 행방불명인 표석에 내려앉은 까마귀들
▲ 4.3평화공원에 있는 행방불명인 표석 4.3평화공원에 있는 행방불명인 표석에 내려앉은 까마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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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평화공원의 핵심공간이라 할 수 있는 위령탑과 각명비
▲ 위령탑과 각명비 4.3평화공원의 핵심공간이라 할 수 있는 위령탑과 각명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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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명비에 새겨져 있는 두살, 세살, 여섯살짜리 아이들의 억울한 죽음
▲ 각명비 각명비에 새겨져 있는 두살, 세살, 여섯살짜리 아이들의 억울한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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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년 1월6일 봉개동 지역에 2연대 토벌작전이 사작되면서 군인들에게 쫒겨 두살난 젖먹이 딸을 등에 업은채 피신도중 하얀 눈밭에서 총에 맞아 죽어야 했던 변병생 모녀의 상
▲ 모녀상 49년 1월6일 봉개동 지역에 2연대 토벌작전이 사작되면서 군인들에게 쫒겨 두살난 젖먹이 딸을 등에 업은채 피신도중 하얀 눈밭에서 총에 맞아 죽어야 했던 변병생 모녀의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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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은 기억하기 싫은 과거의 비극일 뿐이고, 천안함 사건은 현재의 비극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도 가능할 수도 있겠다. 아니 백보 양보해 정 총리가 작년의 한 총리처럼 모터쇼에 참석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자족하며 우리 제주도민들 애써 참고 이해하고 넘어가 주려했다.

그러나 <미디어오늘> 보도(대한민국은 비통, 국무총리는 '4대강 미소')에 따르면, 전국에 애도의 물결이 흐르고 있는 와중에 정운찬 총리, 그날 오후 낙동강의 4대강 공사 현장을 방문했단다.

오전 한주호 준위 영결식에서 침통한 표정을 지었던 그는 언제 그런 표정이었냐는 듯 이 곳에서 '4대강 사업' 성공을 다짐하는 파이팅 소리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곳을 방문한 이달곤 전 행정안전부 장관과 환한 얼굴로 악수를 나누기도 했단다.

그렇다. 총리는 애당초 4·3위령제에 오고 싶지 않았던 거다. 천안함 사건을 명분으로 고 한준위의 영결식 참석을 핑계로, 아니 그보다는 가슴 벅찬 4대강 현장에 나가고 싶었던 거다.

봄꽃 화사하게 핀 4월. 4·3유족들은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일부 보수 세력들의 4·3특별법에 대한 헌법소원과 행정소송 제기로 가슴에 큰 대못이 박혀 있었으며, 총리는 위령제 참석 약속 파기로 유족들의 마음에 또 하나의 큰 대못을 박았다.

그나마 애써 자위하는 것은, 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운동이 끝나지 않은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잊지말라는 영령들의 준엄한 명령을 다시금 깨우쳐 준 기회가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다.

4.3 평화공원
▲ 4.3 평화공원 4.3 평화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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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평화공원
▲ 4.3 평화공원 4.3 평화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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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주의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4.3, #4.3위령제, #정운찬, #4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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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부탄과 코스타리카를 다녀 온 후 행복(국민총행복)과 행복한 나라 공부에 푹 빠져 살고 있는 행복연구가. 현재 사)국민총행복전환포럼 부설 국민총행복정책연구소장(전 상임이사)을 맡고 있으며, 서울시 시민행복위원회 공동위원장, 행복실현지방정부협의회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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