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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남자들은 양로원에 가서도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를 하고, 조선 여자들은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라면 양로원에서도 이를 간다."

소설가 성석제의 말이다. 그만큼 남자들에게 있어 군대 이야기란 빼놓을 수 없는 대화의 양념이다. 그러나 지나친 것은 모자람보다 못한 법. 숙녀를 모시고 군대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느새 '아저씨'가 되어 대화에서 따돌림 당할 수 있으니 주의.

그런 과유불급의 군대이야기 세계에 새로운 강호가 나타났다. 블로그에 군대 이야기를 개시한 지 반 년 만에 600만 명의 방문횟수를 기록한 다크호스. 그는 누구인가.

자신을 미실과 덕만공주의 땅 서라벌에서 태어난 젊은이로 소개한 이 고수는 자신이 겪었던 군대 이야기를 유쾌한 입담으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 결과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폭발적인 호응을 보냈고, 급기야 자신의 직속상관까지 댓글을 다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그 경험과 입(글)담을 바탕으로 한 책이 나왔다.
김명곤 전 문화부장관은 추천사에서 남녀 모두에게 공감과 호감을 선사했다며 호평했다.
 김명곤 전 문화부장관은 추천사에서 남녀 모두에게 공감과 호감을 선사했다며 호평했다.
ⓒ 도서출판 바오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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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랄가츠의 군대이야기>(도서출판 바오밥). 이 책은 시간순이 아닌, 에피소드 중심으로 올렸던 글들을 입대부터 전역까지 순서대로 꾸렸다. 블로그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댓글 등은 볼 수 없지만 깔끔하게 정리된 책장을넘기자, 나도 모르게 그의 군시절에 몰입하게 된다.

사실 저자와 나는 같은 사단에서 같은 기간 동안 군 생활을 했다. 소속 대대는 달랐지만 책에 잠깐 나오는 분대장 교육대 1위 이야기는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저자는 사단 1등, 나는 사단 6등이었다). 어쩐지 군 생활 이야기가 친근하더라니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악랄가츠(본명 황현)가 풀어내는 군대 이야기는 특별하지 않다. 춘천 102 보충대에서 부모님과 눈물의 작별을 하고 지옥같은 신병교육대를 거쳐 '아 신병교육대 그곳은 차라리 천국이었구나'하는 자대 생활까지. 군 복무를 한 사람이라면 그다지 특별하게 느낄 만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엔 재미와 공감이 있다. 그의 에피소드를 하나하나 되짚어보면 자신의 군생활과 묘하게 겹쳐 '아 나도 저때 저런 적이 있었지'하는 생각이 들며, 그 시절로 되돌아간다.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있지만, 군대라는 곳은 언제나 평범하지 않은 일이 터지는 곳이 아니던가. 군대를 겪지 못한 사람이나 오래 전에 군대를 갔다 온 사람들은 악랄가츠의 글을 통해 '요즘 군대'의 모습을 간접 경험하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중대창고란 말 그대로 온갖 물품으로 가득 차 있는 창고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6·25 이후 유구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 중대를 거쳐 간 빛나는 선배들이 그 창고에 물건을 짱박기만 했지 대대적으로 빼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곳을 지금 다 까라는 것이었다. 사실 이등병이었던 나는 사안의 심각성을 알지 못했다. 창고에 얼마나 많은 물품들이 비축되어 있는지 몰랐다. 하지만 고참들의 표정은 유격 복귀행군 때보다 더 하얗게 질려 있었다.

"왜 하필 내 임기 중에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 나 퇴임하고 해도 되잖아! 왜 지금이냐고, 아아아!" 말년 보급계원이 울면서 지나간다.' - p.86~87


책 표지엔 '군대를 다녀온 이에겐 추억을, 군대를 가야할 이에겐 용기를, 군대에 소중한 사람을 보낸 이에겐 위안을, 군대에 있는 이에겐 희망을'이란 문구가 적혀있다. 신병교육대 훈련을 받고 있는 후배에게 재미있는 에피소드 몇 장을 출력해 편지봉투에 담아 보낸 적이 있다. 후배의 답장이 날아왔다.

"형님. 저는 무사히 훈련 잘 받고 잘 먹고 잘 삽니다. 그런데 그 블로그 몇 장 더 출력해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지금 생활관에서 돌려보는 중입니다. ㅎㅎㅎ"

저자는 한 편의 시트콤 같은 글을 쓰는 바탕엔 잊혀가는 추억을 잡기 위한 노력, 그리고 군 시절의 꼼꼼한 일기가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문득 나도 군시절의 일기장을 들춰보았다. 그리고 씁쓸히 웃을 수밖에 없었다.

2006.04.24. 눈 엄청 옴.
4월 하순에 눈보라가 몰아쳤다. 이건 거짓말이야. 이건 거짓말이라고….

2006년 혹한기 훈련. 강원도 화천의 한 구석이다. 악랄가츠의 글을 읽다보니 저절로 군 시절이 떠오른다. 화천은 눈의 지옥이었다.
 2006년 혹한기 훈련. 강원도 화천의 한 구석이다. 악랄가츠의 글을 읽다보니 저절로 군 시절이 떠오른다. 화천은 눈의 지옥이었다.
ⓒ 박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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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악랄가츠의 블로그 http://realog.net



악랄가츠의 군대이야기 - 빡세게 유쾌하고 겁나게 발랄한 청춘의 비망록

황현 지음, 바오밥(2009)


태그:#악랄가츠, #군대이야기,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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