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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바위를 힘들게 밀어 올려 산의 정상에 올려놓는 순간, 바위는 떼구르르… 까마득한 산 아래로 굴러버리고 만다. 시지프스는 다시 커다란 바위를 정상을 향해 힘껏 밀어 올린다. 하지만 바위는 다시 굴러버리고…. 언제 끝날지 기약이 전혀 없는,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계속될 형벌이란다. 신을 모욕한 죄, 그 형벌이란다. '시지프스의 신화' 이야기다.

'제7회 김병철 조각전- 시지프스의 후예들(갤러리 통큰, 3.17~3.30)'은 시지프스처럼 언제 끝날지 모르는 노동을 하는, 그 노동으로 반복된 삶을 살아가는 21세기 대한민국의 40대 남성들을 대변, 위로하는 조각전이다.

'제7회 김병철 조각극-시지프스의 후예들'-조각가 김병철
 '제7회 김병철 조각극-시지프스의 후예들'-조각가 김병철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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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하필 40대 남성들인가? 조각전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가?
"모든 세대들마다 저마다 겪어내야 하는 고충이 있겠지만 특히 40대 가장들은 더욱 더 힘든 것 같다. 1960년대에 태어나 우리 사회 굵직한 사건들이 많았던 70년대와 80년대에 성장하고 공부를 해야 했던 40대들은 그래서 특히 많은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는 세대이다. 턱없는 사교육비와 등록금, 증가한 고령인구, 몇 년째 계속되고 있는 경제 한파 등, 오늘 우리의 가장 많은 문제들을 경험해내고 있는 40대란 특정세대를 통해 대한민국의 현실을 말하고 싶었다." (조각가 김병철)

2008년 가을, 조각가 김병철은 '가족'을 주제로 개인전(제6회)을 열었다. 그 조각전에서 가족들을 위해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을 묵묵히 살아내는 이 땅의 수많은 아버지들을 만났다. 남자는 눈물을 함부로 흘려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통념을 깨고 수시로 눈물을 흘리는 남자도 만났다. 병상의 아내에게 한 송이 꽃을 바치는 순애보의 남편도 만났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한 가족에게 가장의 역할은?'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만남이었다. 때문인지 조각전이 열렸던 인사동 갤러리 앞을 지날 때면 그때 만났던 조각품들이 드문드문 떠오르곤 했다. 조각전의 그 남자들은 내 주변 누군가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조각전은 2008년의 조각극 그 두 번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 만난 40대 남자들 역시 다음 조각전을 만날 때까지 의미 있게 기억될 것 같다.

'제7회 김병철 조각극-시지프스의 후예들'-<만취한 김씨>
 '제7회 김병철 조각극-시지프스의 후예들'-<만취한 김씨>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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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김병철 조각극-시지프스의 후예들'-<세상살이>
 '제7회 김병철 조각극-시지프스의 후예들'-<세상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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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취한 김씨> <외줄타기> <세상살이…> <후회> <비밀><추억의 저금통> <얼굴-마음의 언어> <개놈의 새끼들>…. 작가가 '시지프스의 후예들'이라고 대변하고 있는 그들은, 2008년의 조각전에서도 의미 있게 만났던 내 주변의 남자들 혹은 가장들이었다.

"작가의 생활이나 경험, 생각들이 바탕이 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내 이야기일 수도 있다. 술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타인의 이끌림 때문이든 스스로 즐기기 때문이든 잦은 음주로 점철된 21세기 대한민국 40대 남성들의 삶을 표현하고 싶었다."

<만취한 김씨>란 작품을 보면서 박씨, 최씨, 이씨 등도 많은데 왜 하필 '김씨'일까? 조각가 자신일까? 궁금한 마음에 물어봤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외에도 발길을 쉽게 떼지 못하게 하는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섰다가 가는 작품은 <추억의 저금통>과 <외줄타기>. 둘 다 특별한 장치를 했기 때문이다.

<추억의 저금통>에서는 1960년대에 태어난 40대들이 청소년기와 20대를 보낸 70~80년대에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통해 자주 들었을 법한 '옛 노래' 혹은 '올드 팝송'들이 쉴 새 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추억의 저금통 속 주인공 남자는 오랜만에 교복과 교련복을 입은 학창시절을 추억하고 있나보다 싶었다.

'제7회 김병철 조각극-시지프스의 후예들'-조각가 김병철 씨가 <추억의 저금통>을 열어 보이고 있다.
 '제7회 김병철 조각극-시지프스의 후예들'-조각가 김병철 씨가 <추억의 저금통>을 열어 보이고 있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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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김병철 조각극-시지프스의 후예들' 전시풍경 일부
 '제7회 김병철 조각극-시지프스의 후예들' 전시풍경 일부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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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줄을 잡은 한 남자가 어떤 운명에 이끌려 올라가다가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허공에서 뱅그르르 맴돌다 서서히 추락하다가 물에 빠지기 직전, 다시 외줄을 탄다. '휴~! 다행이다' <외줄타기>란 이 작품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그 남자는 몇 년째 계속되고 있는 경제 한파를 아슬아슬, 어떻게든 견뎌내고 있는 소규모 자영업자 같았기 때문이다.

몇 년째 고생고생하면서 간신히 버텨내고 있는 남편도 떠올랐다. 뉴스에서는 경기가 풀리고 있다는데 어떻게 된 건지 갈수록 장사가 힘들다는 친구도 떠올랐다. 언젠가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했다는 어떤 자영업자의 죽음도 떠올랐다. 외줄을 타는 남자가 제발 물에 빠지지 않기를! 이젠 더 이상 돈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며.

혀만 계속 움직일 뿐인 <뻐꾸기 둥지>란 작품도 많은 이야기를 조근 조근 들려주고 있었다. 이 집 가장은 영업사원인가 보다. 하루 종일 수많은 말을 하고 또 해야 하는 그런. 무릎을 꿇고 납작 엎드려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손을 바짝 내민 '세상살이… ', 싸늘한 시선의 <개놈의 새끼들>도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제7회 김병철 조각극-시지프스의 후예들'-조각가 김병철의 손
 '제7회 김병철 조각극-시지프스의 후예들'-조각가 김병철의 손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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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철의 작품에는 해학과 냉소가 공존한다. 따뜻한 인간미가 넘치는 이야기들 속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차가운 미소와 날카로운 비판의식이 담겨있다. 그는 절망에 빠진 사람의 공허함을 표현하기도 하며, 동시에 절망 속에서도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어딘가 있을 희망의 끈을 찾는다. 차가운 미소 속에서도 낭만의 그림자를 찾는가하면, 씁쓸함 웃음 속에 따뜻한 마음을 담아내기도 한다. 나뭇가지를 얽어놓은 머리카락, 흰자위가 훤히 드러난 눈, 헤벌린 입속에 이빨이 드러난 채 성기를 드러낸 인체, 나무 조각의 정교한 짜임으로 구성된 김병철 작품은…. 인생의 황금기를 달린다는 40대 남성을 개인으로 호명한 김병철의 작업은 특정한 세대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시대의 삶을 이야기하는 현실비판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 조각전 도록 중에서


전시중인 작품은 몇 되지 않는다. 열 몇 작품에 불과하다. 그래도 이 작품들은 저마다 참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었다. '제7회 김병철 조각극-시지프스의 후예들'은 21세기 대한민국 40대 남성들을 위로하는 조각전이다. 인사동(서울) '갤러리 통큰'에서 3월 30일까지 열린다.

어쩔 수없이 날마다 술을 마셔야 하는 김씨도, 가족들을 먹여 살리려면 혀에 발린 소리라도 해야만 하는 당신도, 간신히 외줄에 버티고 있는 당신도, 당신처럼 40대인 한 조각가가 당신이 가족과 사회에 차마 하지 못한 이야기를 대변해주고 있는 이 조각극에서 작은 위안이라도 얻을 수 있으시기를!


태그:#조각가 김병철, #시지프스의 후예들, #갤러리 통큰, #만취한 김씨, #조각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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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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