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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에서 몽트뢰까지 한 번에 갈 수도 있었다. 그러면 골든 패스라인을 포기해야만 한다.루체른에서 인터라켄, 몽트뢰까지 이어지는 골든 패스라인과 우리 일정은 일치하건만, 대사관에 들르기 위해 베른으로 삐죽 새는 바람에 뚝 끊겨 버린 셈이다. 우리는 좀 돌아가더라도 골든 패스를 타기로 했다. 베른의 대사관 직원도 그걸 권했다.

창밖 풍경만으로도 여행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스위스에는 유명한 열차 노선들이 있다. 빙하특급, 베르니나 특급, 빌헬름 텔 특급, 골든 패스가 그것. '세상에서 가장 느린 특급열차'라는 애칭을 가진 빙하특급은 300km 거리를 장장 8시간에 걸쳐 달린다. 베르니나 특급은 알프스를 종단해 이탈리아로 들어가는 고산열차이고, 빌헬름 텔 특급은 배와 열차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노선이다. 꿈의 횡단 노선으로 알려진 골든 패스를 선택한 우리는, 가장 인기있다는 '인터라켄~몽트뢰' 구간을 포기할 수 없었다.

계획에 없었던 대사관 방문

골든패스 스위스의 루체른에서 인터라켄을 거쳐 포도밭이 펼쳐지는 몽트뢰까지 이어지는 노선
▲ 골든패스 스위스의 루체른에서 인터라켄을 거쳐 포도밭이 펼쳐지는 몽트뢰까지 이어지는 노선
ⓒ 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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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 역 포토부스에서 사진을 뽑기까지 애 좀 먹었다. 혹시 몰라서 한국에서 여권 사본을 챙겨갔지만, 사진은 챙기지 못했다. 여행을 거듭하면서, 여권을 잃어버리는 건 '바부탱이'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여기기 시작했고 슬슬 꾀가 나서 사진 같은 건 챙겨야 할 짐 리스트에서 뽑아 버린 지 이미 오래. 그러나 대사관에서 여행증명서를 발급 받으려면 사진이 필요하다.

스위스 사람들은 영어를 꽤 잘해, 역시 관광도시라서 다르다 싶었는데 포토부스에서는 독일어만 통했다. 게다가 뭐가 그리 선택이 복잡한지 한참을 헤매며 따라했건만 도대체 사진이 나오질 않는다. 어디 다른 구멍이 또 있나 살펴보아도 잘 모르겠다.

부스 밖에서 기다리던 나는 옆 부스에 들어간 사람을 눈여겨보던 중이었다. 어디서 사진이 튀어나오는지 목격할 찰나, 아줌마의 순발력으로, 8스위스프랑(우리 돈 8000여원)이나 하는 돈을 다시 넣고 재시도하려는 남편을 제지시켰다. 사진은 뜻밖에도 부스 바깥에서 출력이 되었다.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안에서만 찾고 있었으니.

대사관 가는 길은 호젓하고 조용했다. 외길이 갈라지는 곳에 대사관은 섬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증명서 발급을 기다리는 동안, 대사관 마당을 둘러보기도 하고, 두 명의 외국인과 한국인 여자가 근무하는 사무실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잘 정돈된 정원과 숨소리조차 빨아들인 듯한 고요. 여직원은 친절하지도 불친절하지고 않았다. 목소리는 나직하고 옷매무새도 단정했다. 나는 문득, 재미없는 천국 루체른의 악몽이 떠올라서 슬몃 웃음이 샜다.

잠깐 들른 곳이지만 베른은 도시 냄새가 물씬 났다. 촌에서 온 것처럼 정신없이 두리번거렸다. 차들도 많고 사람도 많았다. 버스 안에서 바깥 구경하느라 정신없는데 어느 순간 검표원들이 버스 위로 후다닥 올라탔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패스를 가지고 있었지만, 검표원들을 맞닥뜨리는 건 처음이라 괜히 긴장이 되었다.

유럽의 도시들은 대체로 버스를 탈 때 버스표를 검사하지 않는다. 운전사는 운전에만 열중할 뿐, 승객이 버스표를 구입했는지 안했는지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 대신 불시에 검문을 하듯 검표원들이 들이닥친다. 그래도 걸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파리든 베른이든 로마든, 지하철이나 길거리 한구석에서 무슨 작당이라도 하듯 삼삼오오 몰려 있는 모습을 보면 그들은 십중팔구 검표원들이다. 다만 베른의 검표원들은 선명한 빨간색 조끼를 걸치고 있다.

골든 패스를 타고 몽트뢰를 향해가는 내내 나와 남편은, 눈 시리도록 푸른 구릉들을 눈에 담느라 바쁜데, 중 1 딸애는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한창 가요 톱을 달리는 2NE1의 'I don't care'를 수도 없이 반복해서 듣느라고 바쁘다.

몽트뢰 가는 길에 저 색깔은 그야말로 카렌디쉬 오일파스텔의 '그래스그린' 색깔.
▲ 몽트뢰 가는 길에 저 색깔은 그야말로 카렌디쉬 오일파스텔의 '그래스그린' 색깔.
ⓒ 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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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스위스제 카렌디쉬 오일파스텔 48색 가운데에는 그래스그린(grass green)이라는 색깔이 있다. 정말로 그 색은 스위스의 푸른 풀색 바로 그것이다. 그래스그린으로 시작해 옐로그린으로 옅어지면서 라임그린까지, 어쩌면 그렇게 스위스의 자연과 꼭 같은 색인지. 분명 그 색깔은 자연에서 온 것이리라. 자연이 가르쳐 준 색이리라.

몽트뢰에서 하루 자면 이제 이탈리아로 넘어가 버릴 테니, 그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되어 목이 아프도록 창가에 코를 박고 있는데 여전히 딸애는 바깥 풍경에 관심이 없다. 안타까운 마음에 저 풍경 좀 보라고, 자꾸만 딸애를 쿡쿡 찔러댄다. 그럴 때마다 딸은 잠깐 일별할 뿐 별 관심이 없다. 결국 나도  'I don't care'.

여행따라 흘러가기

베른에 있는 한국 대사관 여권 잃어버린 덕에 대사관 구경까지하는 복(?)을 누리기도.
▲ 베른에 있는 한국 대사관 여권 잃어버린 덕에 대사관 구경까지하는 복(?)을 누리기도.
ⓒ 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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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을 잃어 버리는 바람에 참 다양한 경험을 했다. 인터라켄에서 경찰서에도 가보고, 역에 있는 포토부스도 이용하고, 베른에 있는 대한민국 대사관까지. 빈틈없이 짜여진 스케줄이 흥미를 반감한다고 투덜거렸는데 결국 일이 터진 셈이다. 잠깐이긴 하지만 일정에 없던 베른도 가보고, 얼마나 흥미진진한가. 여행이란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사건이 한 번씩 빵 터져 줘야 제 맛인 거다. 귀찮은 일이 벌어진다고 해서 짜증낼 것도 안달할 것도 없다. 그건 그것대로 즐기면 된다.

먹을 걸 걱정해서 고추장이며 밑반찬을 한국에서부터 잔뜩 싸들고 가는 게 나는 싫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 컵라면을 먹기 위해 커피포트를 챙기는 것도 싫다. 한국을 통째로 들고 갈 필요는 없잖은가. 혹시 호텔이 너무 춥지는 않을까 더럽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것도 싫다. 소매치기가 극성이라고 못 갈 것도 없다. 지구 반대편에도 사람은 산다.

위험하거나 남에게 큰 피해를 주는 일 아니라면, 여행가서는 모든 걸 흔쾌히 받아들이는 게 현명하다. 가능하다면 여행하면서 겪게 되는 모든 일들을 즐기자, 는 게 내 생각이다.

외국 가서 추위에 떨어봐야 '하~ 우리 온돌이 정말 위대한 거구나' 느낄 것이고, 화장실도 돈 내고 가봐야 '하~ 우리나라 화장실에서 휴지 좀 아껴 써야겠구나', 유럽의 식당에서 돈 내고 물도 사먹어 봐야 '하~ 단무지 더 달라 해놓고 남기면 안 되겠구나', 여권 잃어봐야 '하~ 사진 좀 예쁘게 찍어 둘 걸', 이 모든 걸 깨닫게 되는 거다. 그것대로 다 경험이 되고 추억이 된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여행은 실수투성이에다 사서하는 고생일 뿐이다.

산다는 것도 마찬가지. 계획대로만 흘러간다면 감사하고 복 받은 일이겠지만 인생이 어디 그런가.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 도사리고 있고 뜻하지 않은 반전이 있어 우리를 불행하게도 행복하게도 한다. 왜 난 이만큼 노력했는데 이것 밖에 안 돌아오는 걸까, 억울해 할 필요도 없고, 왜 남은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 걸까, 답답해 할 것도 없다는 걸 마흔 넘어서야 깨달았다.

그리고 종종 인생은 '선택이 아니라 포기'라는 비밀도 알게 되었다. 선택의 기준은, 이것과 저것 중 어느 것을 가졌을 때 더 행복한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과 저것 중 어느 것을 잃었을 때 더 불행한가에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그건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포기라는 걸 30대에 새끼를 낳아 기르면서 알게 되었다.

인생 뭐 별 거 있나, 강물처럼 흘러가는 거지 뭐. 흘러가다 보면 옆으로도 새고 가로막는 바위도 만나겠지만 결국은 바다로 나아가겠지. 삶을 살아낸 자라면 누구나 저마다의 바다에 이르는 법이다.

여행도 강물처럼 흘러가는 거지. 긴장하고 마음 졸이고 안달할 필요가 있을까. 때로는 소매치기도 당하고 때로는 굶기도 하고 때로는 여권도 잃어버리면서 그렇게 마음을 적당히 놓아버리는 게 오히려 여행을 즐기는 한 방법인 것을.

풍경 구경에 눈이 호강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달리는 기차에서 흘러나오는 방송은 어느새 불어로 바뀌었다. 몽트뢰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2009년 8월, 2주 동안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여행했습니다. 환율도 그 당시 기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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