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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과거를 돌이켜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혹자는 '현실 불만족'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모든 현실에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그런 불만족이 그 이유는 아닙니다. 제가 요즘 들어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는 까닭은 이제 삶의 한 '고비'를 넘어서고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저는 스물여섯이라는 결코 적지 않은 나이에 다시 대학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공부가 8년간 계속 되었지요. 종종 세상의 크기는 제가 읽고 있는 책의 크기와 같게 느껴졌습니다. 책이 세상의 전부처럼 보일 때도 많았지요. 그러고 보니 제가 요즘 들어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는 까닭은 어쩌면 그 동안의 삶에 대한 추억에 잠겨보는 일이기도 하겠군요.

오늘의 삶을 살며 그러면서도 자꾸 뒤를 돌아보며, 저는 '책상 위 두 개의 선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 두 개의 선물은 그리 값나가는 것들은 아닙니다만, 제가 이 선물을 유독 아끼는 이유는 그것들이 항상 저와 가까이 있는 물건들이기 때문입니다. 문학공부 한답시고, 주로 머물러 있는 공간이 책상이다 보니 항상 책상 위에 시선이 먼저 가지요.

이 선물들은 바로 이 공간 속에서 항상 저와 함께 숨 쉬는 존재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이 선물들이 제게는 때론 '용기'이고, 때로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책상 위 두 개의 선물'이라 제목붙이고 싶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바로 오늘의 행복한 삶을 기록해두고 싶은 마음에서일지도 모릅니다.

선물 하나 ― 스승의 마음 같은 선물

스승의 마음 같은 선물.
▲ 연필꽂이 스승의 마음 같은 선물.
ⓒ 박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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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글을 쓸 때를 제외하곤) 비교적 잘 정리되어 있는 제 책상 위에 단아하게 놓여있는 물건이 있습니다. 바로 나무로 만들어진 '연필꽂이'입니다. 그리 오래된 물건도, 값나가는 물건도 아닙니다. 그저 깔끔하게 정리된 나뭇결에, 흐릿하게 난초 그림이 보일 뿐입니다. 아마 5년 전쯤에 받은 선물로 짐작됩니다.

학부 시절, 저는 어느 교수님의 방에서 잠깐 더부살이를 한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께서 어딘가를 다녀오시면서 연필꽂이를 두 개 사오셨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먼 길에서 사온 연필꽂이 중에 하나에 금이 가있는 겁니다. 나무로 만들어진 까닭에, 나뭇결을 타고 금이 쫙 갔던 것이지요.

선생님께서도 속상한 마음을 숨기지 않으셨지만, 금이 가지 않은 온전한 연필꽂이를 제게 주시며 쓰라고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순간, "그냥 망가진 것 주셔도 되는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것이 '스승의 마음'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연필꽂이, 사실 이제는 별로 쓸모없는 물건일 수도 있습니다. 거의 모든 글은 노트북을 사용하여 집필하다 보니 연필․볼펜은 크게 사용할 일이 없죠. 그래서 제 연필꽂이 역시 그 자체로 불필요해진 존재이며, 불필요한 존재들이 흩어지지 않게 역할만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저는 이 존재가 '스승의 마음'으로 보입니다. 당신은 금이 간 걸 가지시면서, 제자에게는 온전한 물건을 주고 싶으셨던 그 마음. 아마 그 마음이 있어 부족한 사람이 이만큼이라도 공부할 수 있었던 게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또 다른 선물 하나―새벽기도 같은 선물

가끔 왜 그런 친구 있지 않습니까? 자주 만나지는 않아도 반가운 친구. 1년만에 문득 전화해서는 '뭐하냐?'고 태연히 묻는 그런 친구 말입니다. 제게는 그런 친구 같은 물건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책갈피입니다. 책 읽는 습관이 유달라 저는 책갈피를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저 메모가 필요하면 연필로 쭉 밑줄을 치면 그만이고, 다시 봐야 할 부분이면 책장을 꾹 접어놓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책갈피라는 게 책에 꽂혀 있으면 발견하기 어렵고(?), 책을 읽는 동안은 거치적거리는 게 영 불편합니다. 그런데 유독 아끼는 책갈피가 하나 있습니다. 어머니 후배분이 7~8년 전, 일본에 다녀오시면서 사다주신 책갈피입니다. 이제는 부분적으로 녹도 슬고, 구겨질 대로 구겨진 책갈피.

새벽기도 같은 선물
▲ 책갈피 새벽기도 같은 선물
ⓒ 박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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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갈피를 사랑하는 이유도 책갈피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언젠가 이 선물을 주신 분이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거 공부할 때 쓰고, 공부 열심히 해. 내가 잘되라고 새벽기도 때마다 같이 기도해줄게.' 사실, 저도 잠깐 교회에 나가본 일도 있지만 이렇다 할 종교는 없습니다. 새벽기도 같은 건 해 본 적도 없지요. 그런 사람을 위해 매일 새벽 기도를 해주신다는 말씀,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사실, 지금까지 기도를 해주시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책갈피를 볼 때마다 저는 그 분이 새벽기도 하시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내심 기분이 좋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기도한다는 일이 쉽지 않은 까닭이지요.

요 며칠 자꾸 뒤를 돌아다보게 되는 이유에는 사실 지난 8년간 앞만 보고 달려온 까닭에 체력이 지친 까닭도 있을 테고, 앞날에 대한 불안도 일정 부분 작용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책상 위 두 개의 선물'처럼 고마운 분들이 항상 제 곁에 있으니 행복합니다. 그리고 더 열심히 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야 조용히 고백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태그:#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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