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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올해 창간 10주년 기획의 일환으로 국내 11개 진보싱크탱크들과 공동으로 '지방선거 10대 어젠다'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삽보다 사람'이라는 주제가 붙은 이번 기획을 통해 거대 담론보다는 주민들의 삶과 밀접한 과제를 구체적으로 선정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내놓을 계획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경남 합천군은 초중고 100% 친환경 무상급식을 실현하고 있다. 유기농 딸기를 먹고 있는 합천초교 학생.
 경남 합천군은 초중고 100% 친환경 무상급식을 실현하고 있다. 유기농 딸기를 먹고 있는 합천초교 학생.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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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아주 죽겠습니다. 올해 친환경 무상급식 100% 달성하려고 하는데, 경남도민들이 가장 많이 지지하는 한나라당이 반대하고 있으니, 이게 도대체 뭔 상황인지 모르겠어요. 가슴이 조마조마 합니다."

경남도교육청의 한 고위 관계자는 괴롭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그는 "무상급식이 정쟁의 대상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학생들 좋은 음식 먹이자는 문제가 왜 정쟁의 대상이 되느냐"고 답답한 심정을 밝혔다. 이 관계자의 우려와 걱정은 괜한 게 아니다.

경남도교육청은 올해 도내 초·중학교 100% 무상급식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무상급식은 도교육청과 지자체가 예산을 거의 절반씩 부담해야 가능하기 때문에, 지자체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이 기를 쓰고 반대한다면? 경남도교육청의 계획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경남 지자체는 거의 한나라당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나라당은 의무교육에 해당하는 초·중학교 전면 무상급식 실시를 반대하고 있다. "재원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부자들까지 공짜로 밥을 줄 필요가 있느냐"며 시기상조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또 "북한식 사회주의 정책" "포퓰리즘" 등의 표현을 동원해 무상급식을 공격하고 있다.

경상남도, 올해 100% 친환경 무상급식 도전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한나라당의 안방인 경남에서는 친환경 무상급식이 모범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경기도와 전라북도의 지자체가 벤치마킹을 하기 위해 경남을 찾을 정도다.

사실 무상급식은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에 의해 전국적인 의제가 됐지만, 그보다 앞서 권정호 현 경남도교육감이 2007년 12월 교육감 선거에 나서면서 주장했던 정책이다. 권 교육감은 2008년부터 도내 100명 이하 초·중학교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등 의욕적으로 이 문제를 추진하고 있다.

그렇다면 경기도의회처럼 경남도의회는 무상급식 추진에 제동을 걸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경남도의회는 2010년 무상급식 100% 실현을 위한 도교육청 예산 864억원을 통과시켰다. 경남도의회 전체 48명 의원 중 40명이 한나라당 소속이다. 그럼에도 경기도처럼 정치적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경기도교육청이 3월부터 도서벽지와 농어촌 읍면지역 전체 초등학생에 대한 무상급식을 시행한 가운데 10일 오전 경기도 평택 갈곶초등학교에서 김상곤 경기도교육감과 김진표 민주당 의원(오른쪽부터)이 3학년 학생들과 함께 무상으로 제공된 급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이 3월부터 도서벽지와 농어촌 읍면지역 전체 초등학생에 대한 무상급식을 시행한 가운데 10일 오전 경기도 평택 갈곶초등학교에서 김상곤 경기도교육감과 김진표 민주당 의원(오른쪽부터)이 3학년 학생들과 함께 무상으로 제공된 급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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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교육청 체육보건교육과에서 학교급식 업무를 담당하는 배대순씨는 "예산 처리에서 약간의 논란은 있었지만, 정파적으로는 흐르지 않았다"며 "도교육청과 의회 사이에 아이들 먹을거리에 어떤 문제가 있고, 이걸 바꾸기 위해서는 어떻게 급식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다"고 말했다. 

또 경남은 20개 기초단체 가운데 이미 10개 군에서 초·중학교 100%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이중 거창·남해·의령·하동·합천군에서는 고등학교까지 무상급식을 확대실시하고 있다. 이들 자치단체보다 규모가 큰 통영시도 초등학교 100% 무상급식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 지차체와 의회는 급진적인 정당이 장악했을까? 아니다. 경남 10개 군 중에서 정현태 남해군수만 무소속일 뿐, 나머지 9명 군수는 모두 한나라당 소속이다. 통영시 역시 마찬가지다. 경남 10개 시 중에서 양산시를 제외하고 모두 한나라당이 장악했다.

이번엔 경남의 국회의원을 보자. 경남 지역구 전체 국회의원 17명 중 강기갑(사천시)·권영길(창원시 을) 민주노동당 의원, 최철국(김해시 을) 민주당 의원을 제외한 14명은 모두 한나라당 소속이다.

한나라당,경남 국회의원-자치단체-지방의회 장악...그런데 무상급식은 사회주의?

정리하면, 경남 국회의원·자치단체·의회 모두를 한나라당이 장악했다. 경남을 '한나라당 안방'이라 불러도 과하지 않은 이유다.  한나라당은 무상급식을 "사회주의 좌파 정책"이라 비판하고 있지만, 정작 그 '사회주의 정책'은 자신들 안방에서 꽃피고 씨앗은 다른 지역으로 퍼져 나가고 있는 셈이다.

이군현 한나라당 의원은 작년 경남도교육청 국정감사에서 "가정형편에 관계없이 무조건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데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사회주의적인 발상이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의원의 지역구인 경남 통영·고성은 주민들의 환영 속에서 무상급식이 실시되고 있다.

또 조해진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11일 MBC <100분 토론>에 참석해 전면적 무상급식 실시를 비판했지만 역시 그의 지역구 중 한 곳인 경남 창녕군에서는 초·중학교에서 100% 무상급식이 실시 중이다.

한나라당의 '안방' 경남 합천군은 초중고 100% 친환경 무상급식을 실현하고 있다. 합천군 합천초교에서 11일 점식식사로 제공된 음식.
 한나라당의 '안방' 경남 합천군은 초중고 100% 친환경 무상급식을 실현하고 있다. 합천군 합천초교에서 11일 점식식사로 제공된 음식.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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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러니 경남 주민들조차 "한나라당이 현실을 무시한 채 무상급식을 너무 정치적으로 몰고 가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는 한 자치단체장은 "농촌지역일수록 교육을 강화해야만 주민들의 이탈을 막을 수 있는데, 그 점에서 무상급식은 농민-학생-학부모-공무원 모두에게 좋은 정책이다"며 "한나라당 중앙당에서 무상급식을 정치적으로 흔드는 건 지역민들 정서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무상급식 예산 864억 원을 확보한 경남교육청 역시 이점에서 고민스럽다. 도내에서 초·중학교 전체 무상급식을 실현하려면 약 1720억 원이 필요한데, 나머지 비용은 지자체의 협조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손대영 경남도교육청 학교급식당당자는 "정치적 논란이 아닌 교육, 환경, 주민 복지 차원에서 무상급식이 논의돼야 한다"며 "예산 확보 문제와 아이들 건강 등 해당 지자체와 폭넓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남도교육청은 학교급식법을 근거로 무상급식을 추진하고 있다. 학교급식법 제8조 1항은 "학교급식의 실시에 필요한 급식시설·설비비는 당해 학교의 설립·경영자가 부담하되,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4항은 "특별시장·광역시장·도지사·특별자치도지사 및 시장·군수·자치구의 구청장은 학교급식에 품질이 우수한 농산물 사용 등 급식의 질 향상과 급식시설·설비의 확충을 위하여 식품비 및 시설·설비비 등 급식에 관한 경비를 지원할 수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법대로 무상급식 추진하는데, 왜 위에서 재 뿌리나"

이 법을 근거로 경남도교육청 배대순씨는 "그동안 급식시설과 설비비까지 급식비에 포함시켜 학부모가 부담하도록 했던 학교가 있었다"며 "이제 급식시설·설비비 등 급식운영비는 교육청이 부담하고, 식품비는 지자체가 맡아 학부모 부담을 줄이는 게 맞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안방' 경남 합천군은 초중고 100% 친환경 무상급식을 실현하고 있다. 합천군 남정초교의 장독대. 이 학교는 된장, 고추장, 간장은 물론이고 매실액도 직접 만들어 학생들에게 제공한다.
 한나라당의 '안방' 경남 합천군은 초중고 100% 친환경 무상급식을 실현하고 있다. 합천군 남정초교의 장독대. 이 학교는 된장, 고추장, 간장은 물론이고 매실액도 직접 만들어 학생들에게 제공한다.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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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교육청은 학교급식에서 '무상'에만 방점을 찍는 게 아니다. 친환경을 강조하며 아이들 건강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를 위해 경남도교육청은 친환경 농산물 학교 공급만이 아니라 학교마다 장독대 설치 사업을 벌이고 있다. 급식을 조리할 때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안전한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배대순씨는 "어린 시절의 먹을거리와 입맛은 성인이 돼서도 건강 등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경남에서 발전한 장 문화를 아이들이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접하고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패스트푸드 등에서 비롯되는 아이들 건강 문제를 학교가 지켜주면 미래의 사회 비용도 절약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경남도교육청은 올해 거창군에 '학교급식지원센터'를 만들 예정이다. 이곳을 통해 친환경 먹을거리를 확보하고 이를 학교에 공급하는 등 친환경 무상급식을 더욱 안착시킨다는 방침이다.

어쨌든 경남도교육청은 "학생의 건강과 교육, 그리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친환경 무상급식은 최선의 선택"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이런 확신을 바탕으로 지자체의 협조를 구할 방침이다.

경남의 친환경 무상급식 100% 실현의 꿈. 한나라당은 자신들 '안방' 지역의 꿈에 사회주의 딱지를 붙이고 있다.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는 한 지자체장은 이렇게 푸념했다.

"우린 돈 많아서 무상급식 하는 줄 압니까? 예산만 잘 배정하면 대도시에서도 무상급식 가능합니다. 아니 학생, 학부모, 농민, 교사 다 좋다는데 왜 위에서 재를 뿌리고 그런데요? 기자님이 좀 서울 올라가서 말려줘요."


태그:#무상급식, #경남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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